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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코미디를 망가뜨리는 법-114화 (114/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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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자신이 무슨 소리를 들은 걸까?

제대로 들은 게 맞나?

“소원이라고...?”

“예. 소원이요. 부장에게서 점수를 땄다는 건 잘했다는 뜻이잖아요.”

대련을 하고 싶다 했던 건 마츠다 본인인데 조건을 걸고 있다.

반성은 제대로 하고 있는 건가? 기가 찬다.

게다가 저 쑥스러워하는 듯한 표정은 뭔지...

“진심이야?”

“아니면 그냥 하고요. 지금 바로 준비할까요?”

“하...”

검도에 진심인 것처럼 보이지 않는 철부지.

다만 엄청난 고수가 될 수 있는 재능이 눈에 보이는, 잠재력이 무척 큰 야생마.

지금의 마츠다는 이렇게 보였다.

여태껏 이런 개성이 강한 부원이 있었던가?

아카데미는 물론 중, 고등학교에서도 본 적 없다.

괜히 오기가 생기는 것 같다.

“저는 저 나름대로 부장에게 다가가려고 노력하는데, 부장은 여전히 색안경을 꼈네요.”

갑자기 훅 들어오는 마츠다의 말에, 렌카가 눈살을 찌푸렸다.

“색안경이라니... 네 행동은 좋게 말해도 잘했다고 볼 수 없어.”

“소원을 언급한 거요?”

“그것도 그거지만 미우라에게 보여주었던 폭력적인 모습...! 그게 가장 커. 몰라서 묻는 거야?”

“반성하고 있습니다.”

“내 눈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데?”

“그건 내 앞에 있는 사람이 부장이니까요.”

“그건 또 무슨 소린데?”

“절 싫어하는 게 눈에 보이고, 내가 뭘 하든 마음에 들지 않는 듯 행동하잖아요. 그 누구라도 그런 식으로 나오면 삐딱해질 수밖에 없죠.”

마츠다의 말투가 조금 격해지고 있다.

쌓였던 것을 터뜨리려고 하는 듯한 모습.

조금 더 지켜봐야겠다고 생각한 그녀가 팔짱을 끼자, 마츠다가 말을 이었다.

“우리 분명히 첫 단추는 잘 꿰지 않았어요? 극히 초반엔 약간 어긋나긴 했지만, 봉사시간을 채우려고 교문을 청소하다가 목례를 하니까 앞으로 그렇게만 하라며 격려를 해줬죠. 기억나요?”

“그래, 기억나.”

“피규어를 사러 갔을 때 우연히 마주쳤던 날도 생각나네요. 그때 부장이 제 농담에 웃기도 했었는데.”

“맞아. 그때 집까지 태워다줬던 것도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그런데 그 후로부터 모든 게 어긋나버렸죠? 정확한 시기는 아마... 동기와의 대련, 그때 이후 같네요.”

듣고 보니 확실히... 그때 이후로 뭔가가 비뚤어지기 시작했다.

마치 불협화음을 일으키는 톱니바퀴처럼.

물론 그 전부터 위태롭긴 했지만, 본격적으로 갈등이 심화된 건 친선대련이 끝나고 나서부터였다.

동기의 호면 옆을 때리는 건 상대를 경시하는 행동이다.

렌카 자신이 무척 사랑하는 검도라는 무도.

이를 존중하지 않는 마츠다에게 화가 났고, 대련이 끝난 뒤 그를 불러 딱딱한 어투로 훈계를 했었다.

마츠다 또한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예의 없는 태도를 보였고 말이다.

‘자존심... 때문인가?’

마츠다의 에고는 강하다. 마치 실력이 뛰어난 스포츠 선수들이 자신만의 기준점을 갖고 있는 것처럼.

그리고 그건 자신 또한 마찬가지였다.

마츠다로서는 시종일관 싸늘하게 구는 자신에게 물러서기 싫었을 테고,

자신 또한 건들거리는 마츠다에게 좋게 말해주기 싫었다.

이게 지속되면서, 그리고 틈틈이 엇나가는 마츠다를 보면서 감정이 쌓였고, 이번에 확 터져버린 것 같았다.

“검도부에 입부하고 나서부터 사고도 안 치고 얌전히 있었는데, 부장은 절 항상 마음에 들지 않아 했죠. 양아치라는 이미지가 박혀있으니까요.”

“그것도 그렇지만, 네가 그 대련에서 조금이라도 상대를 존중했다면 달라졌을 거야. 그 자리에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면,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겠지. 그리고 그때 네가 뭐랬는지 기억 나?”

“어떤 거요?”

“네 동기가 호면 옆을 맞았을 때, 감독께서 거긴 격자부위가 아니라고 말씀하셨잖아. 너는 알고 있다고 대답했어. 그리고 내가 호면 옆을 때리는 건 무슨 경우냐고 물었을 때, 네가 뭐라고 대답했지? 반칙은 아니라고, 자유대련이기도 하다고 했지? 이건 네가 그 타격이 비매너인 것을 알고 있었다는 뜻 아니야?”

“그게 불문율 같은 건 줄은 몰랐습니다.”

“오해였어?”

“예.”

렌카의 언성이 조금 높아졌다.

“그럼 미리 말을 했었어야지... 애초에 예법을 몰랐다고 했으면 알려주면서 다음부턴 조심하라고만 하고 좋게 끝냈을 거라고.”

“애초라고요? 그렇게 따지자면 애초에 몰랐냐는 질문을 하는 게 먼저 아닙니까?”

“대답을 그렇게, 알고 있다는 식으로 했는데 누가 몰랐다고 생각할까?”

전후사정, 잘잘못을 따지는 건 다 떠나서, 이런 식으로 서로 끝도 없이 꼬리를 물고 늘어지느라, 자존심, 고집을 세우느라 사이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거다.

이럴 땐 누구 하나가 굴복하거나, 물러서거나 해야 한다.

하지만 마츠다나 자신이나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친선대련이 끝나고 나서 마츠다가 치나미에게 한소리를 들었을 때, 그가 보여준 얌전한 반응을 보고 자신의 방식이 잘못된 게 아닐까 잠깐 고민이 들었었다.

치나미의 지도를 받으며 점점 나아지고 있긴 한 건 사실이기도 하고, 자신이 편협한 시각으로 마츠다를 봤던 것도 맞다.

여기서는 검도부의 주장으로서 한 발 물러나주는 게 옳다고 보긴 하지만...

마츠다처럼 에고가 강한 사람에게 그랬다간, 더 안하무인이 될 가능성이 있었다.

솔직히 인간 대 인간으로서, 자존심 싸움이 되어버린 이 승부를 지고 싶지 않기도 하고.

남들이 유치하다고 생각해도 상관없었다.

꼭 길들이고 싶었다. 저 야생마를.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골이 아파오던 렌카는,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 어떠한 생각에 눈을 빛냈다.

‘소원이라...’

어쩌면 마츠다의 저 제안을 통해 이 무너진 관계를 해결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가령 자신도 조건을 걸어서, 충족되면 무조건 말을 따르도록 한다든지...

하루에 2시간씩 시간을 할애해 검도에 관한 것들을 배우도록 한다든지...

뭐 이런 식으로 말이다.

핑계 같은 걸 잘 대지 않는 마츠다의 성격상, 패배하면 군말 없이 따를 것이다.

그렇다면 이 방법으로 그를 계도할 수 있지 않을까?

강제성이 있긴 하지만, 원래 소원이라는 게 다 그런 법 아니겠는가.

시간이 지나면 마츠다도 적응을 할 테고.

다만 걱정스러운 점은 마츠다가 어떤 소원을 빌지 모르겠다는 거다.

불안했다. 뜬금없이 소원을 언급하니까.

물론 지지 않으면 그만이고, 이기리라고 자신하고 있지만...

자신과의 대련 때 마츠다가 보여주었던 날카로운 본능과, 수련을 통해 실력이 오른 걸 감안해보면 안전장치를 거는 것도 나쁘지 않다.

“이 주제는 여기까지만 얘기하고, 본론으로 들어가자. 무슨 소원을 빌고 싶은 건데?”

“그건 모르죠.”

“왜 몰라? 홧김에 말한 것도 아닌 듯한데, 생각해둔 게 있을 거 아니야. 설마 막... 이상한 걸 제안할 생각은 아니지?”

“이상한 거?”

“.....”

차마 말을 꺼내지 못한 렌카가 입을 꾹 닫자, 마츠다가 아... 하는 탄성을 터뜨리더니 물었다.

“설마 성적인 쪽으로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니겠죠?”

단도직입적인 그 질문에, 렌카의 얼굴이 확 빨개졌다.

그런 그녀의 얼굴을 본 마츠다가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에 괜히 찔끔한 렌카가 재빨리 대답했다.

“나, 난 성적으로까지 생각한 적 없어...! 괜히 넘겨짚지 마...!”

“그럼 다행이고요. 어쨌거나 그런 쪽은 아닙니다.”

심각했던 분위기가 묘하게 풀어지고 있다.

대체 왜? 고작 몇 마디 대화를 나누었을 뿐인데?

어이가 없다.

눈을 질끈 감았다 뜨며 감정을 다스린 렌카가 말했다.

“나도 조건을 걸어야겠어.”

“조건? 소원이요?”

“그래. 서로 소원을 걸고 내기하는 거야. 실력 차이를 감안해서 넌 1점, 난 10점을 따면 각자 원하는 바람을 들어주는 걸로 하자. 총 판수는 30판. 대련이 끝났을 때 내가 딴 점수에서 1의 자리는 그냥 버릴게. 어때?”

“10점요?”

“응. 괜찮다고 생각하지 않아?”

“.... 심판은요? 나나세 선배인가요?”

“나야. 너랑 상대하는 만큼 정확하게 볼 수 있다고 자신해.”

“예...? 부장이 본다고요...?”

입을 살짝 벌리는 마츠다.

렌카는 그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 허탈한 웃음을 터뜨렸다.

“지도대련이라고 말은 했지만, 솔직히 난 이걸 감정싸움이라고 봐. 누구에게 말하기 창피하지 않아?”

“.... 뭐, 맞는 말이네요.”

“공정하게 판정한다고 장담할게. 네가 판정에 조금의 의문이라도 가진다면 그때 새 심판을 구하는 걸로 하자.”

“아뇨, 전 불만 없습니다. 그렇게 해요.”

“좋아. 오늘 밤 10시에 어때?”

“좋습니다.”

홧김... 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빠르게 대화가 오고 갔다.

그래도 뭐, 서로 원했으니까...

그나저나 대체 왜 마츠다는 미우라에게 과한 손을 쓴 걸까?

둘은 친한 친구 아니었나?

마츠다가 집에도 데려다주는 걸로 알고 있고, 하나자와를 포함해 셋이서 가깝다고 알고 있었는데...

혹시 어제 무슨 일로 다툰 건가?

두 사람을 지켜볼 일이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생각해보면 미우라는 마츠다를 친구라고 칭한 적이 없기는 하다.

서로를 꼬박꼬박 성씨로 부르는 것도 그렇고... 둘의 관계가 조금 애매하다는 생각이 든다.

뭐가 됐든 중요한 건 이게 아니다.

밤에 있을 대련을 준비하는 게 우선.

잡념을 날려버린 렌카는 훈련실 문을 열었다.

“들어가서 마저 훈련할까? 원래는 빡세게 굴리려고 했는데, 대련을 하는데 몸이 피로하면 안 되니까 적당히 하자.”

“예.”

**

내가 소원을 언급한 순간부터, 렌카가 내기를 걸어올 것이라고는 예상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일 거라고는 몰랐다.

최소한 타협을 할 줄 알았다. 5선승, 7선승 같은 방식으로.

헌데 맞불을 놓을 줄이야...

그만큼 실력에 자신이 있다는 것이겠지만 내가 불안하지도 않나? 렌카답다.

게다가 30판이라니. 기존 경기가 3판 2선승제라는 걸 생각해보면 어마어마한 시간이 걸릴 거다.

초장기전이고, 그만큼 굉장한 집중력을 요구하는 판수다.

일단은 약간 어긋나긴 했지만, 원하는 대로 되긴 했다.

어떻게든 점수를 따내야지.

약속시간이 다 되어가는 것을 확인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외투를 입었다.

흘끗 테츠야를 바라보니 휴대폰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대련이 끝난 이후로 말수가 확연히 줄어들었는데, 이제야 조금 조용해서 좋네.

절망한 네 마음을 배려해서, 오늘은 코골아도 용서해줄게.

외투 안쪽에 도복을 넣어둔 내가 놈을 지나치며 말했다.

“나 산책 간다.”

“또 가? 잘 다녀와라.”

“그래.”

어색해진 대화를 나누고 밖으로 나간 나는, 산장에서 조금 떨어져있는 훈련실로 향했다.

불이 켜져 있는데, 렌카가 먼저 와있었나보다.

근처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뒤 문을 열고 들어가보니, 과연 도복을 입은 렌카가 스트레칭을 하고 있었다.

기다란 팔다리를 쭉쭉 뻗으며 몸을 풀던 그녀가 날 발견하고 다가왔다.

“갈아입고 스트레칭 해.”

“예.”

“잠깐만... 그 전에 물어볼 게 있어. 소원의 허용범위는 어디까지야?”

왜 이렇게 섬세하게 구는 건데?

눈은 똘망똘망해가지고... 의외잖아.

“그 성적인 건 제외하고 뭐든 들어주기.”

오후에 있었던 사소한 사건을 언급하자, 렌카가 움찔하더니 헛기침을 했다.

“.... 좋아.”

“소원으로 소원을 상쇄하기 없기.”

“그것도 동의해.”

“예. 그럼 됐습니다.”

렌카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몸을 푸는데 집중했다.

그녀 몰래 픽 하는 웃음을 터뜨린 나는 간이 탈의실로 들어가 옷을 벗기 시작했다.

이제부터는 신나게 몸을 부대끼면서 쌓인 오해를 풀 시간이다.

아니지, 내가 뿌려놓은 음모의 씨앗을 발아시키는 시간이라고 해야 맞지.

모든 걸 내보여야한다.

5점 정도는 얻고 싶은데, 천재라고 불리는 렌카가 상대이니만큼 3점 정도로 최대치를 잡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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