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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코미디를 망가뜨리는 법-125화 (125/313)

열 시가 넘었는데 이렇게 늦은 시간에 웬일일까.

창문을 열고 툇마루로 나온 나는, 잔디를 피해 돌길만을 찾아 폴짝폴짝 뛰면서 이리로 오고 있는 그녀를 발견했다.

“뭐하냐 지금?”

“안 자고 있었어?”

“방금 자려고 누웠다가 일어난 거야. 빨리 올라와.”

그에 미유키가 잰걸음으로 다가오더니 내 앞에 섰다.

그녀의 머리엔 모래 비스무리한 게 묻어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것을 털어내며 미유키를 타박했다.

“집에 올 거면 연락하랬잖아.”

“자고 있을까봐 그런 거지...”

“자고 있어도 깨우라고 저번에 그러지 않았나? 기억 안 나?”

“기억은 나는데, 깨우기 싫었어.”

“너답다. 뭘 또 이렇게 덕지덕지 붙이고 온 거야?”

“모래인가봐. 놀이터에 있었거든.”

“놀이터?”

거기서 테츠야를 만났나본데... 만나고 나서 바로 온 건가?

고개를 갸웃한 나는 찬바람이 불어오자 일단 미유키를 안으로 들여보냈다.

TV 옆에 있는 간이 난로에 앉아 손을 후후 부는 미유키.

그런 그녀의 옆에 털썩 주저앉은 내가 물었다.

“놀이터에서 바로 왔다는 게 뭔 소리야?”

“그게... 원래는 그냥 집에 가려고 했는데, 테츠야 군의 머리가 깨져서...”

“응...?”

내가 지금 무슨 얘기를 들은 거지?

머리가 깨져? 테츠야가?

미유키가 망치로 놈의 대가리를 두들겼나?

입을 살짝 벌리고 벙 쪄있는 내게, 미유키가 한숨을 내쉬며 설명을 시작했다.

상황은 이랬다.

미유키가 놀이터에서 테츠야를 부르고 오늘 일에 대해서 추궁을 하는 와중, 그네를 타며 이야기를 듣던 테츠야가 갑자기 뒤로 넘어졌단다.

그때 모래 사이에 숨겨진 돌멩이에 뒤통수를 찧어 출혈이 있었고, 테츠야는 응급실에 있는 상태.

미유키는 그런 테츠야를 부축해 집에 데려다준 뒤, 놈의 부모님과 함께 응급실에 갔다가 지금 돌아온 것이었다.

미도리에게는 마침 친구 집과 가까우니 자고 가겠다고 말을 했고 말이다.

“.... 아마 어린애들이 놀다가 미처 치우지 못했던 돌멩이였나봐. 경고문이라도 붙여놔야지 안 되겠어.”

무슨 그딴 이벤트가 일어나냐.

테츠야 이 새끼는 원래 재수가 없는 놈이었구나.

헛웃음을 친 내가 말했다.

“미우라는 괜찮대?”

“피는 좀 많이 났는데, 찢어진 범위만 크지 심각한 건 전혀 아니었어. 의사선생님께서 내일 오전에 다시 오라고 하셨는데, 지금쯤 집에 돌아갔을 거야.”

“그래? 근데 왜 넘어진 거야?”

“균형을 못 잡아서 떨어진 것 같았어.”

나는 근심어린 표정으로 테츠야를 걱정하는 미유키의 허리를 잡고 끌어당겼다.

“그래도 큰일은 없어서 다행이었네.”

그러자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댄 미유키가 자신의 큰 눈으로 날 올려다보았다.

“마츠다 군, 물어볼 게 있어.”

“물어봐.”

“.... 아니다. 나중에 얘기할게. 지금은 사과부터 하고 싶어. 미안해.”

“뭐가?”

“그냥... 이것저것.”

테츠야가 그런 말을 한 것에 자신의 책임도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아니면 아까 내게 보여주었던 태도 중에서 무언가 켕기는 것이 있는 걸까?

뭐가 됐든 섬세한 미유키의 감정이 잘 드러나는 것 같아서 귀엽다.

미유키의 팔을 손으로 쓰다듬은 나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나도 미안해.”

“흐응...”

돌연 자신 특유의 콧소리를 내며 몸을 꼬는 그녀.

꽤 감동한 표정인데, 설마 내가 마주 사과를 할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혹은 늦은 밤에 잠겨버린 목소리가 듣기 좋았거나.

“가방도 못 갖고 왔으니까... 내일 아침 일찍 집에 들러야겠네?”

“응...”

“미우라는 부모님이 병원에 데려다주시나?”

“그럴 거야.”

“알았어. 같이 샤워할까?”

“.....”

미유키는 분명히 내 머리에서 풍기는 샴푸 냄새를 맡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자신 혼자 샤워를 하겠다는 말 없이, 수줍게 고개만 주억거렸다.

날 향한 감정이 더더욱 커지는 게 눈에 보이는 것 같아서 기쁘다.

물을 받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미유키가 내 손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자 피식했다.

“뭐해?”

“오, 오늘 나 피곤하니까 샤워만 해야 돼... 마츠다 군은 변태니까... 미리 말하지 않으면...”

“알았어. 누가 뭐래?”

“.....”

대수롭지 않은 듯 어깨를 으쓱이자 뚱한 얼굴을 하더니 손목을 놓아주는 미유키.

작게 킥킥거린 나는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키스를 해주고는 욕실로 향했다.

**

끄트머리가 약간 뭉툭한 무언가가 입술 사이로 파고들어온다.

자두 향이 나는 따스하고 촉촉한 그것은 곧 윗입술 안쪽의 말랑한 살을 훑고 지나가더니 잇몸을 건드려보다가 쏙 빠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같은 행위를 반복했다.

무방비한 입을 유린하는 감각에 부스스한 눈을 뜬 나는,

“.....”

미유키가 잽싸게 몸을 돌리는 모습을 보고 실소를 터뜨렸다.

“뭐하냐...?”

“.....”

“야, 뭐하냐고...”

날 등지고 자는 척을 하는 미유키의 엉덩이를 툭툭 건드리자, 천천히 몸을 돌린 그녀가 낭패감이 깃든 얼굴로 물었다.

“일어났어...?”

“그렇게 하는데 누가 안 일어나? 지금 몇 시야?”

“여섯 시 반...”

어제 우리가 일어나기로 한 시간이다.

알람을 이런 식으로 하다니... 우리 미유키의 성적 호기심이 나날이 오르고 있구나.

느릿느릿 상체를 일으킨 나는, 자신도 일으켜달라며 양손을 뻗는 미유키를 붙잡았다.

이 풋풋한 느낌... 오랜만인 것 같다.

집에 있는 야채 도시락을 먹고, 사이좋게 양치질을 하고, 샤워는 따로.

준비를 마치고 밖으로 나온 우린, 차를 타고 미유키의 집에 들렀다.

이후 몰래 가방을 들고 나온 그녀와 함께 아카데미로 향했다.

그렇게 동기들과 인사를 나누며 수업을 준비하고 있던 도중, 교실 문이 열리며 테츠야가 들어왔다.

여전히 얼빵한 눈으로 터벅터벅 걸어오는 놈의 대가리엔 붕대가 둘러져있었다.

덕분에 안 그래도 덥수룩해진 머리가 붕 떠버렸는데, 그 모습이 문화제 때 분장했던 갓파 같아서 절로 웃음이 새어나오려고 했다.

“테츠야 군, 의사선생님께서 뭐라셔?”

모두의 관심을 받고 있는 테츠야에게 달려간 미유키의 물음.

힘없는 미소를 지은 놈이 대답했다.

“그냥 어제 말했던 그대로지 뭐. 물 들어가지 않게 조심하래.”

“멍하거나 그러진 않아?”

“아직은? 맞다, 엄마랑 아빠가 고맙다고 전해달래. 나중에 식사 한 끼 대접한다는데... 꼭 와.”

“알았어. 그나저나 조심해. 무슨 다 큰 사람이 그네에서 넘어져?”

“할 말이 없네...”

“그래도 괜찮다니까 다행이다...”

안도한 미유키는 책상에 앉아있는 날 가리키며 테츠야에게 무어라고 말을 하더니 돌아왔다.

그리고는 내 허리를 콕콕 찔렀다.

화해를 종용하는 그녀를 보며 어쩔 수 없다는 듯 입맛을 다신 나는, 붕대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학생들에게 둘러싸인 테츠야에게 다가가 복도를 가리켰다.

“잠깐 나올 수 있냐?”

“아... 그래.”

양해를 구하고는 날 따라 복도로 나온 테츠야.

어물쩡거리고 있는 놈을 내려다본 내가 말했다.

“미안하다.”

“어...?”

“미안하다고. 어제 뺨 날린 거.”

“그... 나도 미안. 내가 먼저 사과를 했었어야하는 건데...”

계속 추태를 보여줄 줄 알았는데 사과를 하다니.

대가리에 빵꾸가 나면서 정신이 일부 돌아온 건가?

대충 고개를 끄덕인 나는 붕대를 턱짓했다.

“머리는 괜찮냐? 그네에서 넘어졌다며?”

“.... 괜찮아. 미유키한테 들었어?”

아니었구나.

미유키를 언급하는 걸 보니 여전히 밑바닥에 있다.

아까 자신의 집에 밥을 먹으러 오라고 할 때 ‘꼭’이라는 부사를 강조한 것도 그렇고...

내가 이 새끼한테 무슨 기대를 했었던 거지? 반성한다.

“어. 부활동은 할 수 있겠어? 땀나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아냐. 의사선생님이 가벼운 훈련은 상관없다고 하셨어.”

그래, 여자들의 관심을 받길 좋아하는 너로서는 렌카의 위로를 받기 위해서라도 무조건 가야겠지.

잠깐만... 이렇게 생각해보면 테츠야 이 새끼 이거...

일부러 지 대가리를 터뜨린 게 아닐까?

테츠야의 등을 약하게 두드린 내가 말했다.

“들어가자.”

“그래...”

**

예상대로, 테츠야는 부활동 시간에 렌카의 진심어린 위로를 받았다.

아프다며 엄살을 부리는 꼬라지를 보니 짜증이 조금 났지만, 조교당한 이후 테츠야를 멀리하다가, 종국에는 멸시하게 될 렌카를 상상해보니 기분이 조금이나마 좋아졌다.

평소와 다름없는 매니저 일을 하던 나는, 부활동 시간이 끝나자마자 치나미와 함께 주차장으로 향했다.

테츠야에겐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거리를 두기 위해서였다. 이제부터는 카풀도 해줄 생각이 없었으니까.

지금까지 태워줬으면 됐지, 더 호구 짓을 했다간 뒷좌석이 놈의 냄새로 꾸릿해질 거다.

“하나자와 후배님께서 좋아하시는 물건이 있을까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걸음을 옮기고 있던 나는 옆에서 들려오는 치나미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책은 다 좋아할 겁니다.”

“음... 하나자와 후배님은 공부를 잘하시지요?”

“예. 수석을 놓친 적이 없네요.”

“대단하시군요. 그렇다면 공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요.”

왜 정상적인 주제로 대화를 하려는 거지? 의외잖아.

그러고 보니 치나미는 공부를 잘했지.

미유키와 치나미가 내 아이를 낳으면 머리는 문제가 없겠어.

“무슨 얘기를 하든 좋아할 겁니다.”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며 주차장으로 향하자, 미리 기다리고 있던 미유키가 치나미를 보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안녕하세요, 나나세 선배!”

상대방을 기분 좋게 만드는 활기찬 음색.

만면에 미소를 띤 치나미가 허리를 숙이는 것으로 미유키의 인사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하나자와 후배님! 오늘 잘 부탁드릴게요!”

순조로운 하렘을 구축하기 위한 본격적인 첫걸음은 나쁘지 않아 보인다.

금방 친해질 것 같은 분위기.

그래, 데면데면한 사람이랑 함께 3P를 하는 것보단 서로 가까운 게 훨씬 좋지.

둘이 깊은 우애를 다졌으면 좋겠다.

벌써부터 잡담을 하고 있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나는 스마트키로 차 문을 열었다.

“타세요.”

“앗... 네!”

미유키가 조수석, 그리고 치나미가 뒷좌석.

두 사람이 차에 타자, 차 안에 향긋한 냄새가 감돌았다.

자두 향과 복숭아 향의 조화... 아주 좋다.

“저희가 가는 곳은 요거트 피치가 가장 맛있어요.”

안전벨트를 맨 치나미의 말에, 고개를 돌린 미유키가 싱그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 저도 요거트 피치로 먹어볼까요?”

“하나자와 후배님께서 드시고 싶은 맛으로 드셔야지요. 저는 절대 강요하지 않아요. 추천만 드릴 뿐이에요.”

낯선 사이니 자신의 취향을 강요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한 말이겠지만, 나랑 먹을 땐 의견을 물어보지도 않고 요거트 피치만 세 번 담게 했으면서 미유키에게는 선택권을 주다니...

아주 부조리하다. 이건 쉬이 넘어갈 수 없는 나쁜 행동이야. 마사지로 혼내준다.

“그런데 하나자와 후배님께서는 모모님이라는 캐릭터에 대해 아시나요?”

“모모님이요? 물론 알죠. 인기가 많다고 들었어요.”

사악한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치나미를 룸미러로 흘끗거린 나는, 말없이 아이스크림 가게로 차를 몰았다.

등록된 마지막 회차입니다

“와아...! 이거 진짜 맛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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