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릿과 딸기 사이에 있는 요거트 피치.
그것을 한 입 먹어본 미유키의 감상이었다.
진심이 담겨있는 감탄에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주억거린 치나미가 말했다.
“그렇죠? 맛있죠?”
“네...! 솔직히 기대하지 않고 있었는데, 이렇게까지 맛있을 줄은 몰랐어요...”
“후후... 렌카도 처음 먹을 땐 그랬답니다.”
“렌카라면... 이노오 선배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맞아요. 혹시 아시나요?”
“두세 번 정도 뵌 적이 있어요. 저번엔 밖에서도 만나서 인사했구요. 좋은 분이셨어요.”
“그렇죠? 겉으로는 조금 딱딱해 보이기는 하지만 속은 참 깊은 친우님이에요.”
슬슬 이야기꽃을 피우기 시작하는데, 친목을 다지는 건 처음이면서 뭐 저리 할 말이 많은지 모르겠다.
커피만을 홀짝이며 미유키의 옆에 앉아있던 나는, 온갖 주제로 대화를 나누던 치나미가 마사지에 대한 주제를 꺼내자 귀를 쫑긋했다.
“하나자와 후배님께서는 마츠다 후배님의 마사지를 받아보신 적이 있나요?”
“마사지요? 네, 있어요.”
해주긴 했지.
거사를 치르고 난 직후나, 가끔 미유키가 칭얼거릴 때.
“몸이 순식간에 흐물흐물해져서 헤롱헤롱한 상태로 변하지 않았나요?”
그저 치나미다운 말인데 왜 이렇게 야하게 들릴까?
그건 미유키 또한 마찬가지였는지, 아이스크림을 먹다 멈칫하고는 고개를 들었다.
“그... 흐물흐물... 헤롱헤롱이요...?”
“노곤해진다는 뜻이랍니다.”
“아... 노곤... 딱히 노곤해졌다기보다는 그냥... 음... 뭐라고 설명해야할지 잘 모르겠네요. 나나세 선배도 마츠다 군한테 마사지를 받은 적이 있었죠?”
“네.”
“그때 노곤해지셨나보네요?”
“맞아요. 집으로 돌아가자마자 바로 곯아떨어져버렸어요. 아, 그리고 이거...”
치나미가 자신의 가방 앞주머니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냈다.
손바닥의 반 만한 크기를 지닌 동그란 물건.
그것을 미유키에게 내민 치나미가 밝게 웃었다.
“집에서 가져온 모모님 배지에요. 가방이나 지갑에 붙여놓으면 아주 귀엽답니다. 부디 받아주셨으면 좋겠어요.”
모모님의 악랄한 기운이 가득 깃들어있는 배지를 받아들고 살펴본 미유키가 물었다.
“그냥 주시는 거예요?”
“그럼요. 집에 여러 개가 있으니 더 필요하면 말씀하셔도 돼요.”
“정말 고맙습니다...! 잠시만요...”
양해를 구한 미유키가 자신의 가방 앞부분에 배지를 붙였다.
그리고는 가방을 들어 치나미에게 보여주었다.
“어때요?”
“아주아주 잘 어울리는군요. 완벽한 그림이에요.”
가방의 크기가 워낙 크고 검은색의 심심한 디자인이라서, 솔직히 잘 어울린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래도 포인트를 준 만큼 아기자기한 느낌이 있긴 하네.
모모님으로 타락해버린 가방을 이리저리 둘러본 미유키의 표정이 더욱 화사하게 변했다.
그러자 치나미가 헤실거리더니 말을 이었다.
“다이어리 꾸미기용 스티커도 있으니까 관심이 있으시다면 제게 말씀하세요.”
“그래도 될까요?”
“물론이에요. 언제든 환영할게요.”
좋아라하는 두 사람. 사이좋은 자매 같아서 그림이 나쁘지 않다.
미유키가 치나미에게 맞춰주는 것 같은데... 착각인가?
치나미를 은근히 잘 다룰 듯한 느낌이다.
**
“오늘 정말 즐거웠어요. 다음에 또 만났으면 좋겠네요.”
맨션에 도착해 허리를 숙이는 치나미.
차에서 내린 미유키가 마주 인사를 했다.
“저도 마찬가지에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선배.”
이후로도 미유키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짧게 나눈 치나미는, 내게도 고개를 꾸벅 숙이더니 맨션으로 들어갔다.
“마츠다 군, 선배가 저렇게까지 인사를 하시는데 차에서 내려야지, 손만 흔들면 어떡해?”
조수석에 올라타자마자 엄한 투로 타박을 하는 미유키를, 나는 질렸다는 듯 쳐다보았다.
“그 정도로 깐깐하게 해야 되냐?”
“농담이야. 천성이 되게 순하신 분 같아.”
“맞아. 그런 사람이야. 오늘 어땠어?”
“재밌었어. 근데...”
말끝을 흐린 미유키가 눈을 게슴츠레 떴다.
“왜 또.”
“어떤 마사지를 해줬길래 선배가 노곤해하셔?”
샵에 가면 흔히 받을 수 있는 마사지이긴 하지만, 일반적인 남녀관계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그런 쪽이긴 했지.
마사지 관련 대화를 할 때, 치나미가 오일을 언급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나는 약간의 질투심을 보여주고 있는 미유키의 머리를 사근사근 쓰다듬었다.
“내일 너한테도 해줄게. 그리고 토요일은 집에 돌아가 있어. 밤에 태우러 갈 테니까.”
“토요일? 왜?”
“이노오 선배가 그날 호출했어.”
“진짜? 무슨 일로?”
“나도 잘 모르겠네.”
“오래 걸리는 거야?”
“아마도?”
“그래...? 알았어.”
의외로 순탄하게 넘어가주려는 기색인데, 아마 렌카가 부장으로서의 권한으로 날 불렀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뭐 사고 싶은 거 있어? 아니면 영화라도 한 편 보고 들어갈까?”
“아니. 오늘은 엄마가 빨리 오래. 어제 외박한 거 때문에...”
“그럼 바로 간다?”
“응.”
그렇게 미유키를 내려주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우연히 테츠야를 발견했다.
운동복 차림으로 동네를 뛰고 있는데, 땀을 뻘뻘 흘리는 모습으로 보아 런닝을 한지 제법 지난 것 같았다.
요즘 뱃살이 조금 들어갔나 했더니 꾸준히 운동을 하고 있었구나.
삑-!
클락션을 아주 짧게 울리자, 놈이 뒤를 돌아보더니 내 차를 알아보고 멈칫했다.
놈의 근처에 차를 세운 나는 운전석 창문을 열었다.
“운동하고 있었냐?”
“응. 너는... 아이스크림 먹고 돌아오는 길이야?”
그리 말하며 조수석을 살피는 테츠야.
미유키를 찾아보는 놈의 행동에 짧은 웃음을 터뜨린 내가 대답했다.
“어. 미유키는 집에 들어갔어.”
“그렇구나... 너는 지금 집에 가게?”
“그러려고. 맞다, 내일은 너 혼자 올 수 있지?”
“왜? 일 있어?”
이 새끼 뻔뻔한 게 하늘을 찌르네?
좋게 말해줘서 저러는 건가? 그냥 대놓고 이제부터는 안 태운다고 말했어야 했나?
아니면 미유키와 가까워지는 날 견제하고 싶은 건가?
이미 늦어버렸다는 걸 모르는 거냐 너는?
사회성이 결여된 인간과 대화를 하는 느낌이다.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안다는 말은 누가 했더라?
그 격언이 크게 와 닿는다.
어쨌든 이젠 넌 아웃이다.
신경도 살살 건드리고 문조차도 세게 닫는... 예의라고는 차릴 줄도 모르는 널 태우는 건 부처가 아닌 이상 못하지.
아니, 그런 식으로 하면 부처님도 목탁으로 네 머리통을 부수겠다.
“일은 없는데 피곤해서. 잠 잘 시간이 짧아져.”
“아... 그러면 어쩔 수 없네. 알았어.”
아쉬운 듯 고개를 끄덕이는 테츠야에게 간다며 손짓한 나는, 브레이크를 떼며 놈에게서 멀어졌다.
이후 코너 쪽에서 속도를 늦추었다.
약간의 태닝을 한, 건강미가 넘치는 예쁜 여자가 걸어오고 있었기 때문.
나와 눈을 마주친 그녀는 고맙다는 뜻으로 한손을 들어올려보이더니 차를 지나쳤다.
다시 악셀을 밟으며 차를 출발시킨 나는 룸미러로 여자를 살폈다.
멀찍이서 다시 런닝을 시작하는 테츠야와 어떠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보이는데...
혹시 테츠야의 누나인가? 도키아카를 플레이할 때는 글로만 몇 줄 나오고 말았던?
럽코... 아니, NTL 장르에서 빼앗기는 남자의 누나나 엄마가 아름다운 건 국룰임을 상기해보면,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갑자기 아랫도리에 피가 몰리는데, 친누나가 아니고 그냥 동네의 친한 사람일 수도 있잖아.
지금 아주 바쁜 시기에다 히요리조차도 만나지 못한 상태면서 하반신을 마구 휘두르려 해선 안 된다.
그러니 참으렴, 내 자지.
**
다음날 오후, 부활동 시간.
“마츠다.”
보관실 안에서 혼자 죽도를 닦고 있던 나는, 문이 열리며 퉁명스런 목소리가 들려오자 고개를 돌렸다.
“왜요? 부장.”
“치나미는?”
“빨래 널러 갔습니다.”
“그래...? 오늘 점심에 찍어준 위치 보내놨는데... 확인했어?”
“했습니다. 아침 8시까지 맞죠? 늦지 않게 갈게요. 근데 하나 물어볼 게 있습니다.”
“말해봐.”
“언제 끝나요?”
“소원을 말하는 거면... 나도 확답은 못하겠어.”
“그러니까 괜히 불안해지는데요?”
“전혀 불안한 표정이 아닌데?”
네가 빌 소원이 몇 개 없으니까, 다 예상이 가니까 그렇지.
어깨를 으쓱인 나는 다 닦은 죽도를 잘 정리해서 넣어놓았다.
“할 말은 다 끝났나요?”
“끝났어.”
“그럼 전 스승님한테 가볼게요.”
스윽.
말없이 문 옆으로 몸을 비켜주는 렌카.
그녀를 스쳐지나간 내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내일 봬요.”
“.... 그래.”
그렇게 부실 밖으로 나가 동산으로 올라간 나는 벤치에 앉아 무언가를 보면서 실실 웃고 있는 치나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흐으음...”
벤치 등받이 위에 뒤통수를 기댄 채로 하늘을 보고 있는데, 졸린 것 같다.
치나미에게 접근한 나는, 그녀의 어깨 위로 얼굴을 들이밀며 인기척을 내었다.
“빨래는 다 끝났어요?”
“므아앗!?”
기겁을 하는 치나미.
소스라치게 놀라며 온몸을 튕긴 그녀의 손에서 살짝 젖어있는 수건이 쏙 빠져나갔다.
공중에 붕 떠버린 그 수건을 낚아챈 내가 손을 내밀었다.
“여기요.”
“아... 고, 고맙습니다... 그리고 후배님...! 사람을 그렇게 놀라게 하면 못 써요...! 살금살금 오셔서 뒤를 잡다니... 검도인으로서 당당하셔야지요...!”
“딱히 살금살금 오진 않았습니다만...”
“흠흠... 어쨌든 무슨 일이신가요?”
“죽도 청소가 다 끝나서 스승님을 도와주려고 왔죠.”
“그러신가요? 여기 일도 전부 끝났어요. 참, 어제 하나자와 후배님께서 만족하시던가요?”
“아주 만족스러워하던데요. 어제 받은 모모님 배지도 귀엽다면서 좋아하던데... 오늘 그대로 끼우고 등교했어요.”
“후후... 다행이네요. 이제 같이 부실로 내려갈까요?”
“잠깐 쉬죠. 할 일도 없는데.”
치나미의 바로 옆에 털썩 주저앉자, 움찔한 그녀가 침을 꼴깍 삼켰다.
서로의 골반이 맞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라 놀란 모양.
그녀의 머리카락 위에 묻어있는 나뭇잎을 떼어낸 내가 물었다.
“빨래하느라 힘들었죠?”
“아니요...? 원래 해왔던 일인데요...?”
“몸이 피로한 것처럼 보이는데.”
“네에...? 그럴 리... 아...! 그러고 보니 어깨근육이 조금 결리는 느낌이 나는 것 같기도 하네요...? 제자의 정성이 담긴 마사지가 필요한 시점인 듯싶군요.”
유도심문에 홀라당 넘어간 치나미가 내게서 등을 지며, 좌우 어깨를 순서대로 달싹였다.
그런 그녀의 어깨 위에 손을 올린 나는, 약한 힘으로 마사지를 시작하며 나긋하게 속삭였다.
“조만간 제대로 해드릴게요.”
“므하... 빨리 연락해주셨으면 좋겠네요...”
벌써부터 나른해진 투로 솔직한 속내를 털어놓는 그녀.
기대감이 상당히 올라와있는 상태인데, 다음 주 월요일에 바로 불러야겠다.
등록된 마지막 회차입니다
“야, 일어나.”
“.... 시러...”
잠결에 앙탈을 부리는 미유키.
샤워까지 마치고 왔음에도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어제 두 시간에 걸쳐 해준 마사지가 마음에 들었던 건가?
“오늘 집에 간다고 아주머니한테 그랬었잖아. 태워줄게. 얼른 일어나.”
“지금 몇 시야...?”
“여섯시 반.”
“아 뭐야...! 아직 새벽이잖아...”
인상을 마구 구긴 채로 앙탈을 부리는 모습이 예쁘다.
흐트러져있는 미유키의 앞머리를 잘 정리해준 내가 말했다.
“지금 출발해야하니까 그렇지.”
“나중에 나 혼자 갈게에...”
“그럼 나 먼저 가?”
“응...”
“알았어. 간다?”
“으응... 잠깐만...”
흐느적거리는 손으로 내 팔을 붙잡은 미유키의 입술이 한데 모아졌다.
눈을 감은 채 붕어처럼 입술을 오물거리는데, 뽀뽀를 해달라고 애교를 부리고 있다.
피식한 나는 그녀가 원하는 대로 해주었다.
마지막으로 이불까지 꼼꼼하게 덮어주고 창문을 여니 상쾌한 바람이 뺨을 스쳤다.
날씨 한 번 더럽게 좋네. 오늘 같은 날 미유키와 데이트를 해야 하는 건데.
속으로 투덜거린 나는 차에 탄 뒤 렌카가 보내준 위치를 네비에 입력했다.
렌카가 날 호출한 장소는 도쿄 외곽의 커다란 공원 근처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관광객이 많이 돌아다니는 먹자골목 부근.
공용주차장에 차를 대어놓고 아직 한적한 길을 따라 위치에 도착한 나는 렌카에게 전화를 걸려고 했다.
그때,
“일찍 왔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