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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코미디를 망가뜨리는 법-128화 (128/313)

“재료가 소진되어 조기마감을 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죄송해요!”

긴장한 렌카의 외침에, 가게 밖에 있던 몇 명의 손님들이 원성을 터뜨렸다.

쌍둥이는 조금 남아있던 재료로 간단한 초밥을 만들어 공짜로 내어주고, 다음 날 30퍼센트를 추가로 할인해주는 쿠폰을 배분하며 손님들을 달랬다.

아까 내 말을 받아쳤던 것도 그렇고, 장사꾼으로서의 센스 정도는 있네.

렌카가 손님들을 물리는 사이, 큰삼촌이 다가와 내 어깨를 툭 쳤다.

“수고했다, 켄.”

만난 지 반나절도 채 지나지 않았음에도 날 친밀하게 이름으로 부르는 그.

수건띠를 풀고 얼굴에 묻어있는 땀을 닦아낸 내가 장난스레 물었다.

“수고하셨습니다. 근데 한산하다면서요?”

“나도 이렇게 될 줄은 전혀 몰랐다. 네 덕분이야. 이건 오늘 일당이고, 두둑하게 담았다.”

두툼한 봉투를 내미는 그.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됐어요. 일당 받으러 온 것도 아닌데.”

“안 줄 수가 없는 상황이잖냐. 바닥에 묻어버리기 전에 받는 게 좋다고 본다.”

처음 만났을 때 저 말을 했다면 무서웠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심드렁하게 한손을 휘저은 내가 대답했다.

“됐다니까요. 그냥 밥만 사줘요.”

“나는 다시 안 물어본다?”

“예. 괜찮습니다.”

“알았다. 너 여기서 알바 안 할래?”

저 대사가 왜 안 나오나 했다.

“싫습니다.”

“가차 없는 놈...”

진심으로 서운해 하는 두 사람.

산만한 사람들이 주먹을 교차하며 아쉬워하는 모습을 보니 왠지 웃기다.

그나저나 알바라...

이것으로 소원의 개수를 늘릴 수 있는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

그리 생각한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가끔씩은 도와드릴게요.”

“진짜로? 그래주면 배 터질 때까지 초밥만 먹여주마.”

요리물에서나 볼 법한 열혈 사장님처럼 말하네.

은근히 어울린다.

“다음부터는 일당 받을 거예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쌍둥이들과 농담을 주고받고 있는데, 손님들을 전부 물린 렌카가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자 작은삼촌이 렌카에게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들이밀었다.

저건 또 어디서 가져온 거지?

“렌카! 우리 사진 한 장만 찍어줘라.”

“무슨 사진이야... 그걸 왜 찍어...”

“가게 앞에 사진을 걸어놔야 이 녀석이 우리 가족인 줄 알고 여자 손님들이 찾아올 거 아니야.”

“그런 요행은 바라면 안 되지...!”

“또 잔소리냐? 빨리 찍기나 해.”

“하... 자세 잡아봐.”

질색을 하던 렌카가 자포자기하며 사진기를 들자, 쌍둥이가 날 데리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덩치가 큰 두 사람의 뒤에서 양손을 좌우로 들어올린, 마치 근육자랑을 하는 듯한 포즈를 취했다.

재수 없는 거만한 표정까지 곁들이자, 렌카가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젓더니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모든 일을 끝내고 샤워까지 마친 나는,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왔다.

아직 해가 지지도 않은 시간인데... 힘들다.

육체노동이 빡세긴 했어.

“요즘 삼촌들이 장사가 안 돼서 걱정하고 있었는데... 방향성을 잡은 것 같아서 기쁘네. 오늘 고마웠어.”

어느새 내 옆으로 다가온 렌카의 진심이 담긴 칭찬.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린 나는 그녀를 돌아보았다.

“맛이 좋아서 언젠가는 터졌을 겁니다. 예상한 시간보다 일찍 끝났는데, 소원은 이걸로 끝이죠?”

“끝이야. 수고 많았어.”

“그럼 바로 제 소원 빌게요.”

“뭐...? 지, 지금?”

“예. 내일이 일요일이죠?”

렌카의 눈동자가 데구르르 굴러갔다.

음흉한 내 표정을 보고 불안함을 느낀 모양.

침까지 꼴깍 삼키는 그녀에게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보인 내가 말을 이었다.

“내일부터 월요일 부활동 시간까지 이틀간, 부장이 하는 모든 일을 제게 말하고 진행하세요.”

“.... 무슨... 소리야?”

“말 그대로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화장실을 갈 때도, 샤워를 할 때도, 공부를 할 때도... 이 외에도 모든 것들을 저한테 보고하라는 뜻이에요. 아, 호칭은 주인님입니다.”

“뭐어...?”

입을 떠어억 벌리는 렌카의 표정은, 지금까지 본 그녀의 모습 중에서 가장 격정적이었다.

오늘 수직상승한 평가를 상당히 까먹는 소원이긴 하지만 뭐 어때. 밑바닥으로 처박히지만 않으면 된 거지.

이 부담스런 소원을 좋은 평가로 상쇄시키기 위해서 오늘 열정적으로 일하며 이미지를 챙긴 건데, 잘 따라주렴.

등록된 마지막 회차입니다

“야...! 너 미쳤어? 절대 안 해...!”

기겁의 기겁을 거듭하는 렌카의 얼굴색은 파랬다.

곧 죽어도 하기 싫은 모양인데... 너한텐 선택권이 없단다.

담담한 표정을 지으며 렌카를 내려다보고 있자, 그녀가 주먹을 꽉 쥐더니 물었다.

“너... 오늘 내가 힘든 소원을 빌어서 보복하려는 거야...?”

“저는 성격이 그렇게까지 꼬이진 않았습니다.”

“지금 빈 소원을 보면 꼬여도 한참 꼬였잖아...!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러는 건데!”

“개인적인 취향이에요.”

“취, 취향...?”

“예.”

렌카가 자신의 가슴을 마구 두드렸다.

미칠 것 같지? 그 마음... 이해하지 않는다.

주인이 왜 노예를 이해해야하지?

“왜 하필 나한테 이러는 거야? 다른 사람한테 하면 되지 않아...?”

“다른 사람한테 저런 말을 하라고요? 부장과 저처럼 소원이라는 매개로 묶인 것도 아닌데?”

“그 뜻이 아니라... 네 취향을 왜 네가 싫어하는 나한테 해달라고 하냐고...!”

“누가 싫어한대요? 그리고 말이 잘못됐습니다.”

“뭐가?”

“해달라는 게 아니라, 하라는 거예요. 부탁이 아니라 명령이라고요.”

당당한 태도로 렌카에게 성큼 걸어가자, 그녀가 움찔하더니 반 보 물러났다.

기가 죽긴 했지만 포식자에게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날을 세우는 것 같은 얼굴인데... 마음에 든다.

“제약을 제외하면 무엇이든지 들어준다는 소원이었는데, 안 할 거예요?”

“.... 기간...”

“응?”

“최소한... 기간만큼은 줄여줘...”

이거 봐. 벌써부터 순응하려는 기색을 보이고 있잖아.

역시 넌 자질이 있다니까.

“안 됩니다. 제가 뭐 평생 하라고 했어요? 딱 이틀만 하라니까? 아니면 일주일로 늘려줘요?”

“이, 일주일...? 불합리해...!”

“불합리하다니요? 소원의 기간은 제약에 없지 않았나요? 빌 수 있는 유효기간은 한 달이지만.”

“내, 내가 만약 마지막 소원으로 평생 삼촌 가게를 공짜로 도와달라거나, 한 달 내내 우리 집을 청소하라거나 하면 어쩌려고 그래? 심하다고 생각할 거잖아...!”

비유를 해도 저런 걸로 하네? 순하기는...

렌카가 저런 식으로 나오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나는 일 리 있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맞는 말이긴 하네요.”

“거봐...! 그러니까 소원은 하루만... 하루만 유효한 걸로 하자...”

“좋습니다. 그럼 일요일은 넘어가고, 월요일 하루 전체로 하죠.”

“야... 그냥 일요일만 하면 안 돼...?”

월요일은 나와 마주치는 게 죽기보다 싫은가보지?

내 앞에서 쩔쩔매는 네가 보고 싶은데, 그럴 수야 있나.

고개를 가로저은 내가 단호히 거절했다.

“안 됩니다.”

“.... 나쁜 자식...”

“욕이 귀엽네요.”

천연덕스런 내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을까?

렌카가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날 거의 죽일 듯 노려보던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부활동 시간에도... 너한테 그런 말을 해야 돼...?”

“그건 봐드립니다. 부활동 시간만큼은 평소대로 해도 돼요. 단,”

“단...?”

“그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에 하는 모든 보고는 존댓말로 합니다.”

“야!!”

버럭 소리를 지르는 렌카.

목청이 어찌나 컸던지, 주변 관광객들의 주목을 받은 것도 모자라 가게 안에 있던 쌍둥이가 나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을 정도였다.

“헙!”

자신의 실책을 알아차린 렌카가 황급히 입을 가리며 쌍둥이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쌍둥이가 누가 뭐랄 것도 없이 동시에 서로를 쳐다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아무래도 우리가 사랑싸움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삼촌...! 그런 거 아니야! 이상한 오해하면 가만 안 둬...!”

렌카 또한 나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 다급하게 쌍둥이를 향해 손사래를 쳤다.

“그래, 그래. 다들 그런 소리를 하더라고.”

그러려니 하며 어깨를 으쓱인 두 사람은 다시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하아... 미치겠네...”

복장이 얼마나 터져있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진심을 다한 한탄이, 렌카의 도톰한 입술에서 새어나왔다.

돌아가는 상황을 재미있게 즐기고 있던 내가 말했다.

“저랑 같이 돌아가면 존댓말은 봐줄게요.”

“뭐...?”

“두 번 말 안 합니다. 갈게요.”

“기, 기다려...! 같이 가...! 옷만 챙길게...!”

시큰둥하게 몸을 돌려 차가 있는 공터로 가려던 나를 붙잡은 렌카의 말.

가벼운 코웃음을 친 나는 가게 쪽을 턱짓했다.

“갔다가 차로 와요. 3분 드립니다.”

“.....”

말없이 눈으로만 날 욕한 렌카는 곧 빠른 걸음으로 가게에 들어갔다.

**

한 마디의 대화도 없이 렌카의 집에 도착한 우리.

안전벨트를 풀고 뛰쳐나가려는 그녀를 불러 세운 내가 말했다.

“자정 넘어가고 월요일이 되면 바로 시작입니다.”

“.... 알았어.”

“거짓말로 보고하면 하루 연장이에요.”

“그런 얘긴 없었잖아...!”

“안 하면 그만 아닙니까? 설마 절 속일 생각이었어요?”

“전혀.”

“뭐, 말은 이렇게 해도 저로서는 부장과 하루 내내 붙어있는 게 아니라서 거짓말인지 아닌지 모르니까, 부장의 양심에 맡길게요.”

덜컥.

문을 여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는 렌카.

고개를 아주 약간만 돌려 어깨 너머로 날 흘끗거린 그녀가 입을 열었다.

“태워줘서 고마워.”

그리고는 자신의 기다란 다리를 움직이며 내게서 멀어졌다.

착하네. 감사인사도 하고.

속으로 낄낄거린 나는 차 안에 맴도는 블루베리 향을 맡아보았다.

월요일부터 렌카가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가 돼서 그런가?

냄새가 평소보다 시원하고 달콤하게 느껴진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뉘엿뉘엿 떨어지고 있는 해를 바라보며, 어슬렁어슬렁 돌길을 지나 툇마루로 향하다가 입꼬리를 올렸다.

툇마루 아래에 미유키의 신발이 있었기 때문.

집에 갔다가 돌아왔나? 연락이라도 좀 하지.

창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미유키가 이불을 포옥 덮은 채로 누워있었다.

요 주변에 널브러져있는 과자 봉지는 뭐지?

거실 안은 난로를 오래 틀어놓은 것처럼 후끈하고...

이불 밖으로 빼꼼 삐져나온 미유키의 머리카락이 부스스해 보인다.

미동도 없는 미유키를 의심 섞인 눈초리로 빤히 바라보던 나는, 조심조심 걸어가 요 옆에 놓인 TV 리모컨을 집어 들었다.

이후 전원 버튼을 눌러 TV를 켜보니, 미유키가 좋아하는 예능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있었다.

“어이가 없네.”

코웃음을 치며 그리 중얼거린 나는 이불을 슬쩍 들어올렸다.

평온한 표정으로 눈을 감고 있는 미유키.

누가 봐도 자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입가에 아주 약간 묻어있는 과자 부스러기가 눈에 띈다.

“야.”

“.....”

“안 자는 거 다 안다. 일어나라.”

“.... 으응...”

잠꼬대 연기를 하고 있는 게 티가 난다.

나름 자연스럽네.

묵묵히 미유키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던 나는, 그녀가 잠에 취한 척 인상을 찡그리는 틈을 타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었다.

그리고는 미유키의 입가에 묻어있는 과자 부스러기를 혀끝으로 콕 찍어 내 입으로 가져왔다.

“어헉...!?”

내가 이런 행동을 할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지, 깜짝 놀란 미유키가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어안이 벙벙해진 낯으로 날 쳐다보는 그녀.

실소를 터뜨린 나는 이곳저곳으로 뻗쳐있는 미유키의 머리카락을 잘 정돈해주었다.

“자는 척은 왜 하고 있던 거야? 놀라게 하려고?”

“아니... 그냥...”

“안 씻었냐? 머리가 붕 떠있네.”

“안 씻다니...! 몇 시간 전에 씻고 바로 누워서 이런 거거든...?”

그래도 씻긴 씻었네.

성실하기는.

“그래? 집은 안 갔어?”

“응.”

“왜? 오늘 갔다 온다고 했잖아.”

“귀찮아서... 점심에 잠깐 호노카만 만나고 왔어.”

“부반장? 만나서 뭐했는데.”

“밥 먹었어. 근데 마츠다 군은 왜 이렇게 빨리 온 거야? 늦을 수도 있다며.”

“일찍 끝났더라고.”

“뭐하고 온 건데?”

“장사.”

미유키의 고개가 갸웃했다.

“장사...?”

“어.”

“마츠다 군이 장사를 왜 해? 설마 이노오 선배가 권력을 남용하면서 마츠다 군을 강제로...”

“그런 거 아니야.”

미유키가 사정을 더 캐묻기 전에, 나는 그녀를 다시 눕게 하고 그 위에 올라탔다.

다리로 미유키의 골반을 단단히 고정하고, 어깨 위로 팔을 늘어뜨려 고정한 엎드린 자세.

그 상태로 히죽 웃자, 미유키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왜 돌아오자마자 이러는 건데...? 일단 씻어...”

“냄새나?”

“아니... 응. 냄새나. 땀 냄새 심해. 샤워해.”

재빨리 말을 바꾸는데, 수줍어하는 것 같다.

몇 번이나 몸을 섞었음에도 여전하네.

“왜 거짓말해. 혼날래?”

“.....”

말없이 고개만을 내젓는 미유키의 모습은 무척 요염했다.

그녀가 일부러 그런 기색을 담은 건 아니었다.

미유키는 그저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부끄러워하면서 무언의 앙탈을 부리고만 있었다.

그럼에도 미유키를 두른 분위기 자체가 사람을 홀리도록 만들었다.

가만히 있기만 해도 성적인 매력을 풀풀 풍기기 시작한 미유키와 시선을 맞춘 나는, 그녀와 입술이 맞닿을 정도로 가까이 붙었다.

그리고는 그녀를 그윽하게 내려다보며 말했다.

“오늘 상 받는다고 말한 거 기억나지? 14등한 거.”

“그건 언제까지 써먹을 건데...”

“오늘까지만 우려먹을게.”

“.... 무슨 상이 받고 싶은데...?”

“오늘은 안 뺀다?”

“안 빼는 게 무슨 말이야...?”

“밖으로 안 뺀다고.”

“응...?”

미유키가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한 듯 어리둥절해했다.

하지만 그건 잠시뿐이었다.

“아, 안 뺀다구...?”

내가 오늘 바라는 게 뭔지 정확하게 눈치챈 그녀는, 자신의 목젖을 크게 꿀렁거리며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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