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러브 코미디를 망가뜨리는 법-132화 (132/313)

“마츠다!”

다소 성나 보이는 렌카의 목소리.

부실 안에 있던 몇몇이 나와 그녀를 주목했다.

“왜요?”

“수건을 이렇게 개면 어떡해?”

방금 내가 개었던 수건을 가리키며 나무라는데, 속이 훤히 보이는 수준이라 그저 웃음만 나온다.

당당한 걸음걸이로 그녀에게 다가간 나는, 다른 사람들은 들을 수 없을 정도로 말소리를 낮추었다.

“어디가 잘못됐는데요?”

“대충한 게 너무 티날 정도로 엉망이잖아...!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지만 요령을 피우면 곤란해.”

“평소에 안 하던 트집을 잡으시네요? 복수하고 싶으면 정당하게 해야지, 이건 부장답지 않습니다. 지금 되게 추한 거 알죠?”

“읏...!”

“그리고 부활동 시간이 끝났을 때 어쩌려고 지금 이러는 건가요?”

“.... 지금 협박하는 거야...?”

“제 신경을 긁으니까 걱정이 돼서 그런 겁니다.”

내가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는 뉘앙스를 은연중으로 풍겨대자, 렌카의 기세가 살짝 죽었다.

“신경을 긁다니... 점심시간 이후로 보고도 똑바로 했잖아...”

“농담이었습니다. 이쯤 할까요?”

“이, 이쯤하자니... 수건을 대충 갠 건 사실인데...”

“그게 아니라, 소원 말입니다. 여기서 멈춰드릴까 물어보는 겁니다.”

“뭐...?”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들은 렌카의 눈이 커졌다.

“오늘 부장의 반응을 보니까 답답해 죽으려는 것 같아서, 소원은 이만 끝내려고 하는데 어떠세요?”

“.....”

렌카의 눈빛에 의심의 기색이 서렸다.

내 말의 진위를 파악해보려는 듯한 모습.

살웃음을 지은 내가 말을 이었다.

“소원을 덜 쓴 거니까 나중에 이어서 쓰겠다느니 하는 말은 안 하겠습니다. 부장이 끝내달라고만 하면 바로 끝낼게요.”

“.... 정말이야...?”

“예.”

“트집 안 잡을 거야...?”

“지금 부장처럼요?”

“.....”

“농담이고, 안 잡아요.”

“그, 그럼 끝내줘.”

“알겠습니다. 끝났어요.”

간단하리만치 소원이 종료된 게 믿어지지 않았을까?

두 눈을 끔벅인 렌카가 물었다.

“그럼... 이제부터는 보고 안 한다...?”

“예. 많이 힘들었죠? 수고했어요.”

“.....”

“수건은 다시 갤게요.”

“.... 아냐. 됐어. 다른 일하러 가.”

조기에 소원을 끝내준 게 고마웠나보다.

이런 식으로 적당히 압박했다 싶으면 느슨하게, 그리고 따뜻하게 풀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미래를 위해서다.

나중에 렌카가 조교에 끙끙거리다가, 내 온화한 마음씨를 기대하고 애정을 갈구하는 것을 보기 위해서.

그리고 오늘은 치나미에게 콩닥콩닥 마사지를 해줘야 해서 렌카와 대화할 시간이 적어지니까, 빚을 지우는 기분도 들게 할 겸 이렇게 해야 맞지.

“후배님...! 후배님! 오늘 드릴 상이에요...!”

검은 비닐봉지를 들고 동산 위로 올라오는 치나미.

도둑이라도 된 양 조용하지만 강하게 날 부르는 모습이 깜찍하다.

빨래를 툭툭 털어 널고 있던 나는 그녀를 진정시켰다.

“뛰지 마세요. 넘어집니다.”

내 말을 상큼하게 무시한 치나미가 봉지에서 아이스크림을 꺼내 내밀었다.

“빨리 흡입하도록 해요.”

“천천히 먹고 싶은데요.”

“그러면 쫍쫍 빨아 드세요.”

대신 네 입술을 그렇게 빨면 안 되겠니?

라는 말을 삼킨 나는 포장지를 깠다.

살구색과 분홍색이 어우러진 아이스크림이 그 자태를 드러낸다.

보기만 해도 물리는 것 같은데, 치나미는 어떻게 이런 걸 계속 먹는 거지?

사람이 신기하다.

“왜 안 드세요?”

저리 말한 치나미가 자신의 아이스크림 첨단부를 입에 쏙 집어넣었다.

음음... 뭔가 야릇한 장면이다.

아이스크림을 대충 씹어 먹은 내가 물었다.

“오늘 시간 돼요? 저도 스승님에게 상을 드리려고 하는데.”

“상? 뭔가요?”

“마사지죠.”

“아앗...!”

놀람, 그리고 절제된 기쁨이 담겨있는 탄성을 터뜨린 치나미의 입가가 씰룩였다.

고대하고 있었나보다.

“그런데 오늘 동계대회 관련으로 렌카, 감독님과 할 이야기가 있어서... 조금 기다려야 될지도 몰라요.”

“동계대회?”

“네. 슬슬 준비해야지요.”

“얼마나 걸릴까요?”

“글쎄요...? 많아도 30분 정도면 끝날 것 같아요.”

그때쯤이면 미유키를 데려다준 뒤 돌아오고도 남을 충분한 시간이다.

그나저나 동계대회 회의라...

남자부 선수에 관한 주제가 나오면 내 이름도 언급되려나?

아마 치나미가 추천하려고 할 것 같은데... 이건 나중에 생각하자.

“알겠습니다. 근데...”

말끝을 흐린 나는 어깨에 닿을락 말락 하는 치나미의 옆머리를 아주 조심스럽게 만지작거렸다.

그리고는 그윽한 눈으로 치나미를 쳐다보았다.

“머리 잘랐네요? 지금 봤습니다.”

얼굴이 확 붉어진 치나미가 아이스크림을 입에 꼭 물었다.

그 상태로 고개만 천천히 주억거리는데,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번쩍 안아들고 싶은 충동이 인다.

이제는 스킨십에 조금 적응한 치나미의 부드럽고 말랑한 볼살을 콕 찌른 내가 말했다.

“30분이라고 했죠? 기다릴게요.”

“.... 네에...”

**

“이번 주 금요일에 밥 먹자.”

차에서 내린 미유키의 말.

여느 때처럼 정감이 가는 그녀의 집을 슬쩍 살핀 내가 대답했다.

“알았어. 밥 먹고 바로 우리 집에 오게?”

“모르겠어. 아빠가 주말에 가족끼리 놀러갈 데 없냐고 물어보던데... 어떻게 되나 봐야할 것 같아.”

“그래? 어쩔 수 없지.”

“만약 가게 되면 마츠다 군도 같이 갈래? 물어볼까?”

점점 적극적으로 변하는 미유키... 너무 좋아.

“아냐. 그냥 집에서 쉬고 있을게.”

“왜? 같이 가자. 아빠도 좋아할 텐데...”

“진짜 좋아하실 것 같으면 눈치봐서 한 번 물어보든지.”

“응. 나 갈게?”

작별인사를 하고 집으로 향하는 미유키의 걸음걸이는 무척 가벼워보였다.

남들에게 드러내기 부끄러워선 우리 사이를 숨기고 있던 그녀가 슬슬 용기를 내는 모습이 보기 좋다.

그녀가 집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본 나는 다시 검도부로 돌아갔다.

이후 부실 앞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렌카와 치나미가 밖으로 나왔다.

“뭐야...? 네가 여기 왜 있어...?”

내가 아직까지 남아있어 놀랐는지, 렌카의 눈이 동그래졌다.

저 물음에 대한 답은 치나미가 대신 해주었다.

“후배님께서 제게 마사지를 해주실 거예요.”

“마사지? 그때 그거...?”

“네.”

“.....”

무언가 껄끄러웠는지 인상을 구긴 그녀는, 마츠다와 따로 할 말이 있다며 치나미에게 양해를 구하고는 나를 따로 불렀다.

이후 주위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고는 목소리를 가라앉혔다.

“왜 치나미한테 마사지를 해주려고 하는 건데?”

“항상 고마우니까?”

“저번에도 같은 이유를 댔잖아.”

“이거보다 적절한 이유가 어디 있는데요?”

“.... 맞는 말이긴 한데, 그렇게 말하니까 이상한 짓을 하려는 것처럼 보이잖아...”

“무슨 이상한 짓이요? 설마 또 변태 같은 상상을 하는 건가요?”

그에 렌카가 찔끔하며 몸을 달싹였다.

“다, 당연히 할 수 있는 걱정 아니야...!? 마사지를 해주는 사람이 너니까...!”

혹여나 치나미가 들을까봐 톤을 잔뜩 죽이며 따지는데, 왜 귀엽게 보이지?

무언가 마음에 안 드는 듯 혀를 찬 나는, 렌카가 살짝 움찔하는 틈을 타 입을 열었다.

“그렇게 못 미더우면 부장이 직접 받아볼래요? 부장한테도 해줘요?”

“뭐...? 싫어.”

“단호하네요. 그럼 마지막 남은 소원으로 빌까요?”

렌카의 눈이 부릅뜨여졌다.

본능적으로 한쪽 발을 뒤로 뺀 그녀가 이를 악물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상할 대로 상한 자존심이 더 꺾여서는 안 된다는 각오가 느껴지는 것만 같다.

“그, 그건 네 마음이지만... 더 이상 날 힘들게 하면... 나도 남은 소원을...”

“협박하는 건가요?”

“.... 네가 먼저 오늘 나한테... 막 신경 거슬리게 한다면서 협박했잖아...!”

“아니, 부장을 생각해서 소원도 중간에 그냥 끝내준 사람한테 너무하는 거 아닙니까?”

“.....”

할 말이 없어졌는지 입을 앙다무는 그녀.

조소를 지은 내가 물었다.

“마사지 받을래요?”

“소, 소원이야?”

“아뇨. 부장한테 빌 마지막 소원은 따로 있습니다.”

마지막 소원이라는 말에 불안함을 느낀 듯, 렌카의 눈이 데굴 굴러갔다.

“.... 그게 뭔데...?”

“알려줄 의무는 없다고 봅니다. 그래서, 받을 거냐고요.”

“안 받아...! 내가 왜 너한테 마사지를 받아...?”

“그럼 됐습니다. 같이 돌아가죠.”

“어딜...?”

“집이요. 이왕 이렇게 된 김에 태워줄게요.”

“됐어. 혼자 갈 거야.”

“주인 말 들어야죠.”

“누, 누가 네 주인이야...!? 죽고 싶어...?”

질색을 하며 날 노려보는 렌카.

새침하게 구네. 교육이 덜 됐다.

턱 아래쪽을 긁으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은 내가 말했다.

“같이 가요. 차타고 가면 금방이잖아.”

“.... 그 표정은 뭐야...”

“어떤 표정이요?”

“지금 그거...!”

“저는 평소대로 한 건데요.”

“아니야...! 내가 화를 낸 걸 담아두고 다음 소원에서 보복하려는 생각이지...? 그런 짓은 그만둬...”

혼자 소설도 쓰고, 우리 렌카는 망상증이 좀 심하네.

평소답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그렇고... 오늘의 렌카는 뒷구멍에 굴복한 여기사 같다.

어깨를 으쓱이는 것으로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나는, 벽 옆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어 가까이 다가오려는 치나미에게 방긋 웃어주었다.

“얘기 다 끝났어요. 금방 갈게요.”

“네...! 자동차는 어디 있나요?”

“정문 앞에 잠깐 대놨습니다. 이노오 선배가 집까지 태워달라는데, 그래도 되죠?”

“그럼요. 후배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셔야지요.”

허겁지겁 고개를 끄덕이는 치나미.

만면에 피어난 미소를 보아하니, 나와 사이가 별로 좋지 않은 렌카가 먼저 그런 제안을 한 것이 기쁜 듯했다.

“뭐하는 짓이야...?”

뜬금없이 상황을 정리해버린 내게, 렌카가 가라앉은 투로 저런 말을 해왔다.

천연덕스럽게 히죽 웃어보인 나는 정문으로 통하는 길목을 가리켰다.

“우리 스승님도 부장과 함께 돌아가는 게 좋은 듯한데, 같이 가요.”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표정을 보면 알죠. 기뻐하던데?”

“.....”

렌카의 시선이 가려진 벽 뒤로 향했다.

보이지도 않는 치나미가 신경 쓰이는지 그곳을 잠깐 주시하던 그녀는, 이내 기다란 한숨을 내쉬더니 내 제안을 받아들였다.

“하아... 알았어.”

나와 같이 돌아가기는 죽어도 싫지만, 치나미가 신경 쓰이는 모양이었다.

지금 많이 걱정해둬라.

나중엔 성욕에 찌든 제 한 몸을 간수하기도 힘들 테니까.

**

“치나미. 휴대폰 단축번호 저장돼있지?”

치나미의 손을 꼭 붙든 렌카의 당부.

그녀의 행동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치나미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물론이에요... 그런데 단축번호는 왜 물어보시는 건가요...?”

“무슨 일 생기면 나한테 꼭 연락해. 아주머니나 아저씨한테도... 알았지?”

“아, 네... 알았어요.”

“꼭이야?”

“네. 꼭이요.”

긍정적인 답을 들었음에도 여전히 걱정거리가 가득한 눈빛으로 치나미를 바라본 렌카는, 나를 쏘아보는 것을 마지막으로 차 문을 열었다.

“태워줘서 고마워.”

무뚝뚝한 목소리로 감사인사를 전하고는 멀어지는 렌카.

연신 뒤를 쳐다보는 그녀를 창문 안에서 살핀 치나미가 고개를 갸웃했다.

“오늘 렌카가 이상하군요. 차 안에서도 뚱해있더니... 왜 저러실까요?”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마사지를 받고 이야기를 나눠봐야겠어요.”

글쎄, 네게 그럴 힘이 남을까 모르겠다.

치나미와 함께 러브호텔로 간 나는, 미리 예약해둔 객실 키를 받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은은한 클래식 음악이 들려오는 좁은 공간 안.

천천히 올라가고 있는 엘리베이터의 스크린을 빤히 보고 있던 치나미가 말했다.

“이곳에 오면 기분이 이상해지는 것 같아요.”

“어떤 점이요?”

“으음... 말로는 설명할 수가 없어요.”

러브호텔 특유의 묘하고 야릇한 분위기를 느낀 것 같았다.

아니면 앞으로의 은밀하고 끈적한 마사지를 기대하고 있거나.

띵-!

[7층입니다.]

무감정한 안내음이 들려옴과 동시에 엘리베이터 문이 조용히 열렸다.

치나미의 어깨에 손을 올려놓고 살살 주무른 나는, 그녀가 움찔하며 날 올려다보자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괜찮아요?”

“네... 저는 아무렇지도 않아요.”

마사지를 받고 싶어 하던 아까와는 다르게, 지금은 약간 주춤한 기색을 보이고 있다.

내게 몸을 만져지기 직전까지 오니, 갑작스레 쑥스러움이 밀려온 모양이다.

치나미를 데리고 예의 709호로 들어간 나는 은은한 조명을 켰다.

“씻을래요? 아니면 바로 할까요?”

욕실과 이어진 마사지룸을 보며 침을 꼴깍 삼킨 치나미가 말했다.

“오, 오늘은 제가 땀을 많이 흘려서... 씻고 싶어요...”

“알겠습니다. 씻고 뭘 입어야하는지는 알죠?”

“알아요...”

“준비되면 저번처럼 문자 하나 보내줄래요?”

“아... 넷...!”

군기가 바짝 잡힌 대답을 한 치나미가 후다닥 마사지룸으로 들어갔다.

저번엔 살짝만 갔는데 오늘은 어디까지 조절을 해줘야할까.

부담이 되지 않는 선에서, 그러나 성적인 느낌만은 확실하게 받을 수 있도록 만들어줘야겠다.

최대한 기분이 좋게끔, 그리고 몽롱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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