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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코미디를 망가뜨리는 법-145화 (145/313)

<145화>처음 선보일 코스프레는?

“후배님."

뒤에서부터 날 부르는 치나미.

여느 때처럼 반복적인 노동을 하고 있던 내가 고개를 돌리자, 멀찍이 있던 렌카가 후다닥 달려와 대화에 끼어들었다.

"무슨 얘기해?"

치나미가 벙 찐 채로 렌카를 올려다보았다.

"친우님, 방금까지만 해도 멀리 있지 않으셨나요....?"

"아니? 마침 지나가는 길이었는데?"

“그래요...? 후배님께 소독용 에탄올을 가지고 와 달라 하려고 했어요.”

“그래? 들었지, 마츠다? 얼른 갖고 와.”

속이 훤히 드러나는 렌카의 태도.

그저께부터 오늘 수요일까지, 렌카는 매번 이랬다.

나와 치나미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면 난입해서는 제대로 된 대화를 이어나가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호구나 죽도를 청소할 때도 마찬가지. 시도 때도 없이 보관실에 들어와선 방해공작을 펼쳤다.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은 내가 물었다.

“그제부터 왜 이러는 거예요?”

“무슨 소리야? 이해를 못하겠는데.”

태연스레 발뺌을 하는 렌카를 쳐다본 나는 한쪽 입꼬리를 쓰윽 올렸다.

비웃는 듯한 미소. 이를 본 렌카가 자신의 적으로 빛나는 눈을 데굴 굴렸다.

불안함을 느낀 모양이었다.

“알겠습니다."

간단하게 대답을 하고 비품창고로 들어가자, 뒤따라온 렌카가 다짜고짜 말했다.

“무, 뭔데...? 무슨 짓을 꾸미려는 거야?"

"무슨 소리에요? 이해를못하겠는데.”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주자 침을 꼴깍 삼키는 렌카.

눈동자를 좌우로 움직이며 주위를 살핀 그녀가 목소리를 낮추었다.

“코스프레... 이상한거 시키려고...?"

제 발등에 도끼를 자꾸 찍어대는데, 이러면 내가 널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잖아.

“그렇게 말하는 걸 보면, 참견이 심하다는 걸 알고 있긴 했나보네요.”

"......"

“코스프레가 걱정되면 빨리 하고 끝내는 게 낫지 않을까요? 30분만 투자하면 되는데요.”

“새, 생각 중이니까 그 얘긴 그만해."

“얘기는 부장이 먼저 꺼냈잖아요. 요즘 부장이랑 대화하는 게 왜 이렇게 재미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집에 가서 전화해도 돼요?”

은근슬쩍 관심을 드러내자 움찔하는 렌카.

뭐 이런 미친놈이 다 있나는 표정으로 날 홀겨본 그녀가 딱 잘라 거절했다.

"아니. 죽어도 안 받을 거니까 쓸데없는데 힘쓰지 마.”

솔직히 말해봐라. 너도 이런 내 반응을 즐기고 있지?

틱틱대는 척하면서 속으로는 좋아라하고 있잖아.

아니냐? 아님 말고.

분사형 에탄올을 챙긴 나는 그것을 렌카에게 내밀었다.

“스승님한테 갖다 줘요."

“내가 왜 그래야하는데?”

“어차피 제가 가면 또 참견할 거잖아요. 저는 여길 정리할 테니까 부장이 좀 갖고 가요."

"......"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렌카가 에탄올을 낚아채듯 빼앗아가더니 공얼거리며 창고에서 나갔다.

우리 렌카... 내 명령도 잘 듣고 버릇이 많이 좋아졌네.

**

아무리 렌카가 우리 경로를 침범한다고 해도, 부원들을 살펴야하는 부장의 입장인 그녀로선 한계가 있는 법이었다.

때문에 나와 치나미는 틈틈이 방해 없이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지금도 마찬가지. 실내 건조실에서 빨아둔 검도복을 말리며 단둘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잔소리꾼이 없으니까 살만하네요."

“잔소리꾼이라니요?"

"부장요"

“어허....! 후배님. 그런 식으로 말씀하시면 못써요.”

“제가 뭘 하려고 하면 못미덥다는 이유로 끼어들었잖아요. 매니저 일을 한지 꽤 지났는데도 저러니까 조금 서운해서요.”

그 말에 치나미가 도복을 팡팡 털다 말고 다가와 내 등허리를 토닥였다.

“렌카도 마음속으로는 후배님께서 매니저 일을 잘한다는 것을 인정하는데, 더 발전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쓴소리를 하는 거예요.”

“그게 쓴소리라고요?”

“네. 당연하지요. 물론 렌카는 후배님을 영... 아니, 오음... 아직은... 아직은 신용이 없다고 생각하는 중이지만, 점점 바뀌어가고 있어요.”

어떻게든 좋게 포장해주려는 것이, 둘이서 통화나 문자를 나눌 때 렌카가 내 뒷담화를 심하게 하긴 했나보다.

그때 우리 치나미는 지금처럼 그런 말을 하면 못쓴다고 렌카를 나무랐겠지?

나는 그렇게 믿어요. 치나미는 착하니까.

“렌카는 겉으로는 싸늘하게 굴지만, 속은 한없이 따뜻한 사람이랍니다. 최근 둘이서 이야기를 나눌 때, 후배님을 언급하는 횟수도 많아졌어요.”

이어지는 치나미의 말에 귀를 쫑긋한 내가 물었다.

“그래요? 어떤 식으로?"

“으음... 솔직히 좋은 말만 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칭찬을 하긴 했어요. 의외로 성실하고 센스가 있는 것 같다면서요.”

성실하고 센스가 있다?

쌍둥이 삼촌을 도와줬을 때를 말하는 거구나.

"부장의 칭찬은 의외긴 하지만 뭐... 기쁘지는 않네요."

"어허...! 후배님.."

허리춤에 손을 올리고 엄한 눈빛으로 날 쏘아보는 치나미.

훈계를 하려는 표정을 짓고 있는 것 같은데 얼굴이 워낙 귀여워서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치나미의 코앞까지 성큼 걸어가 그녀를 내려다본 내가 순순히 사과했다.

“잘못했습니다."

“... 잘못한 사람치고는 너무 당당하지 않나요...? 그런데 저 목이 아프려고 해요.”

고개를 잔뜩 치켜든 채로 날 올려다보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지.

나는 나긋한 미소를 지으며 치나미의 뒷목을 감쌌다.

"흐익....!"

어깨를 달짝이고는 온몸을 움츠리는 그녀.

검도복 바지 아래로 보이는 앙증맞 발가 ㅏ 순간 - 확오

“목이 아프면 근육을 조금 풀어줘야죠. 이 정도면 괜찮아요?”

살짝 주물러주다가 뒷덜미를 사근사근하게 쓰다듬는 손길.

졌는데, .

만져줘서 그런가? 반응이

예민한 것처럼 보인다.

근육 마사지를 빙자한 애무에, 치나미의 얼굴이 순식간에 발그레해졌다.

"오읏... 네..."

“우리 이번 주에 마사지할까요?"

“....네에...? 마사지...?"

"예. 마사지요."

나긋한 목소리로 치나미를 유혹하며 그녀의 뒷목을 살살 긁어주자,

"앗...! 앗!"

치나미가 뒷목에서부터 일어나는 자극에 맞춰 짤막하고 야릇한 감탄사를 터뜨리며 몸을 떨었다.

점점 풀려가는 눈과, 약간 벌어진 다리가 서서히 안쪽으로 모아지는 모습을 보아하니 제대로 느끼고 있다.

저번 마사지 이후로 민감도가 훨씬 높아진 것 같다.

“우음... 이, 이번 주 언제... 해주실 건가요...?"

간신히 입을 연 치나미의 물음.

목덜미 윗부분, 잔머리가 있는 부위까지 손을 가져가 꾸욱 꾹 누른 내가 대답했다.

“시간을 한 번 맞춰봐야겠죠?"

"넷...! 맞출게요....! 맞춰요....!"

“이번엔 전보다 조금 길게 해드리려고 하는데, 괜찮겠어요?”

“기, 길게....? 얼마나요...?”

"글쎄요. 스승님이 얼마나 좋아해주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죠?"

“웅큿...! 제, 제가 그만하라고 하면 그만해주실 건가요...?”

“물론입니다."

“더 해달라고 하면... 더 해주실 거구요....?”

"그렇죠."

“조, 좋아요... 그렇다면 함께 시간을... 후아앙...! 그거 하지 마세요...! 거긴 목이 아니에요...."

목을 넘어 아예 등을 만져주는 날 향한 치나미의 반발.

치나미의 브라끈이 있는 위치까지 손을 집어넣었던 나는, 느긋하게 손을 빼내면서 그녀의 도복 매무새를 정리해주었다.

"그럼 조만간 시간을 정해볼까요?"

“.... 네에... 흐흠... 전화로 한 번 상의해보도록 해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치나미와 비밀스런 약속을 잡은 나는 태연하게 도복을 널기 시작했다.

**

“비 대신 눈이 왔으면 좋겠는데... 올해 날씨가 너무 이상한 것 같지 않아?"

빗물이 잔뜩 묻어있는 유리창을 바라보던 미유키의 투덜거림.

그녀의 집 앞에 차를 세워놓은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아직 눈이 내릴 시기는 아니잖아. 난 비도 좋은데.”

"싫다고 한건 아니었는데? 바보야?"

오늘따라 새침하게 구는 미유키에게 피식 웃어보인 나는 차에서 내렸다.

이후 우산을 펴고 조수석으로 가 문을 열었다.

덜컥.

그러자 밍기적거리고 있던 미유키가 기다렸다는 듯 조수석에서 뛰쳐나오더니, 내게 찰싹 달라붙었다.

움직이기 힘들 정도로 허리를 꽉 붙들고 있는데, 날씨 때문에 분위기가 끈적해져서인지 집 바로 앞인데도 애정표현이 과하다.

미도리에게도 들킨 마당이라 에라 모르겠다 싶은 건가?

날이 갈수록 요염하게 변하는 미유키... 나쁘지 않다.

나는 현관문 앞까지 그녀를 질질 끌고 가다시피 했다.

"들어가. 춥다."

“운전 조심히 해. 도착하면 연락하구.”

"알았어."

“아니면 우리 집에서 잠깐 놀고 갈래?”

“아저씨랑 아주머니도 막 돌아오신 것 같은데, 자제하자. 내가 들어가면 바쁘게 움직이실 거 아니야."

“막 돌아온 건 어떻게 알아?"

“주차장에 세워져있는 아저씨 자동차 밑에 빗물로 웅덩이가 져 있잖아. 그리고 방금 1층 화장실 창문에 불 켜진 거 봤어."

“그건 또 언제 봤대? 엄청 신기하네....?"

“우연히 본 거지. 얼른 들어가."

뒤로 쭉 빠져있는 엉덩이를 톡톡 두드려주자, 그제야 허리를 세운 미유키가 열쇠를 꺼냈다.

그렇게 미유키가 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나는 차로 돌아왔다.

이후 빗줄기를 뚫고 운전을 하다가, 휴대폰과 연결된 차 안에서 벨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스크린에 렌카의 이름이 나타나자 곧장 전화를 받았다.

“아까는 죽어도 안 받는다더니, 본인이 직접 전화를 하네요?"

-시끄러워. 조롱하지 마.

“조롱 아닙니다. 왜 전화했어요?"

-......

차 안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렌카의 복잡한 심경을 나타내는 듯한 한숨소리가 들려왔다.

잠깐 뜸을 들인 그녀가 조심스레 물었다.

-코스프레 그거... 내일 할 수 있지?

갑자기 저런 말을 한다고?

무슨 바람이 불었을까?

운전 속도를 줄인 나는 차를 갓길에 세우고, 렌카와의 통화에 집중했다.

"내일? 너무 뜬금없지 않아요?"

-네가 아까 했던 말마따나 빨리 털어버리고 마음 편하게 있는 게 나을 것 같아서. 내 편의는 충분히 봐준다고 했으니까... 내일 저녁에 가능하지? 한 일곱시쯤에.

“물론 가능하죠. 잘 생각했어요."

-만약 심하면 두들겨 패도 된다고 네가 네 입으로 직접 그랬다? 알지?

“예.”

-..... 그래. 저번에 그 호텔로 가면 돼?

자포자기한 렌카의 말투가 왜 이렇게 꼴릴까.

현실에 순응한 노예처럼 느껴져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뇨. 부장은 집에 있어요. 시간 맞춰서 데리러갈 테니까.”

-알았어. 이만 끊을게.

“왜요? 더 통화해요."

-싫어. 내일 봐.

뚝.

그대로 끊긴 전화.

단호한 렌카의 행동에 킬킬거린 나는 다시 차를 몰았다.

이후 집으로 돌아와 미리 사둔 코스프레 복장을 챙겼고, 지금까지 쭉 예약해두었던 룸으로 가서 복장을 걸어놓았다.

내일은 조금 더 적극적으로나가봐야지.

그리 생각한 나는 옷걸이 옆 선반에, 내일 사용할 도구까지 잘 정리해두고 호텔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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