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화>마법소녀할래요? 메이드할래요?
다음날 저녁.
여느 때처럼 미유키를 데려다주고 렌카의 집으로 간 나는, 대문 앞에서 우산을 쓴 채 조신하게 서있는 그녀를 발견했다.
렌카는 후줄근한 트레이닝 복을 입고 있었다.
오늘 날 만나는 것 외엔 일이 없어 얌전한 옷을 입었나본데, 서운하네.
렌카의 앞까지 빗물이 튀지 않게끔 차를 천천히 몰아간 내가 문 잠금을 해제하자, 그 소리를 들은 그녀가 조수석 문을 열었다.
그리고는 우산을 탈탈 털더니, 인사조차 하지 않고 차에 탔다.
“안녕하세요, 부장."
"......."
"인사 안받아줘요?"
“가기나 해."
“인사.."
"......"
“인사.."
"안녕! 됐냐!?"
재차 재촉을 하자 마지못한 척 버럭 소리를 지르는 렌카.
츤데레 기질이 충만한 그녀에게 킥킥 웃어보인 나는 차를 출발시켰다.
러브호텔에 도착한 우린 카드키를 받아 엘리베이터 앞에 나란히 섰다.
그때, 엘리베이터 문이 조용히 열리면서 한 남녀가 나왔다.
거사를 치르고 나온 커플이었다.
그들을 본 순간, 렌카가 슬쩍 내 등 뒤로 자신의 몸을 숨기려고 했다.
왠지 모르게 쑥스러운 기분이 들었나보다.
이런 곳에서 다른 커플을 마주치는 것만큼 뻘줌한 상황이 없긴 하지.
"괜찮아요?"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간 내 물음에, 퍼뜩 정신을 차린 렌카가 내게서 조금 떨어졌다.
“뭐가...."
“아닙니다. 올라갈게요."
“.... 짜증나..."
투덜거리는 렌카와 함께 저번의 그 방으로 향한 나는, 이곳에 또 오게 되어 착잡해졌는지 한숨을 푸욱 내쉬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철창이 쳐져있는 자그마한 쪽방을 가리켰다.
“빨리빨리 끝내야 부장도 좋죠? 바로 시작할게요. 저기서 옷갈아입고 오세요.”
"하... 30분만 하면 되지?"
“예.”
"알았어."
어깨를 축 늘어뜨린 렌카가 쪽방으로 들어가고 얼마 뒤,
"야!! 이 개새끼야!"
그곳에서부터 우렁찬 욕지거리가 터져 나왔다.
저럴 줄 알았다. 이제부턴 더욱 뻔뻔하게 굴어야지.
그래야 입어줄 테니까.
"왜요? 무슨 문제 있어요?"
“문제...? 직접 봐봐! 문제가 없나!"
바닥을 쿵쿵 울리며 내게 다가온 렌카가 코스프레용 복장을 내밀어 보여주었다.
그건 메이드복이었다.
가슴이 절반 정도는 드러날 정도의 노출이 있는, 치마가 짧은 야한 메이드복 말이다.
“저번에 네가 대중적인 코스프레라고 했지!? 메이드복이 대중적이야?"
주먹을 불끈 쥐며 내게 따지고 드는 그녀.
침대에 걸터앉은 내가 대꾸했다.
“이 정도면 충분히 대중적이지 않나요? 메이드복은 할로윈 때 많이들 코스프레 하잖아요. 메이드 카페도 많고요.”
“할로윈 때는 바니걸이나 간호사 등이 메이저지! 메이드복은 아니야! 그리고 메이드 카페에서 입는 메이드복은 노출이 없다고! 근데 이건....
말끝을 흐런 렌카가 자신의 입을 뻐끔거렸다.
잠깐 그렇게 말을 잇지 못하던 그녀는, 자신의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코스튬의 가슴 부근을 가리켰다.
“가슴이랑 성기가 드러나는 복장은 아니라며! 이건 가슴이 드러나잖아!"
"가슴은 부장이 말하는 그... 전체가 아니라, 한 지점을 말한 건데.”
"그건 또 무슨 소리...”
미간을 구긴 채 내게 따지고 들던 렌카의 입이 다물렸다.
내가 유두를 말하고 있음을 눈치챈 것이다.
그 틈을 탄 나는 서서히 빨개지려는 렌카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이런 코스프레의 특성상 윗가슴이 조금 드러나는 건 감수해야죠. 이 외에 드러나는 민감한 부위는 없잖아요.”
"억지부리지 마...! 이건 노출을 위한 복장이잖아....! 나 이거 인정 못해. 내 시선에선 너무나도 야하니까 안 입을 거야. 그리고 지금부터 널 두들겨 팰 거고.”
“알았어요. 제가 이런 부장의 반응을 예상하지 못한 것도 아니니까... 다른 코스프레로 해요.”
“.... 두개 갖고왔어?"
"예. 잠깐만요."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구석 옷장에서 다른 복장과 소품을 꺼내, 침대에 펼쳐놓았다.
그리고 렌카는,
"......"
새로운 복장을 보고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그저 눈을 질끈 감는 것으로 자신이 지금 느끼고 있는 절망감을 표현했다.
내가 렌카에게 보여준 것이, 최근 무척 인기를 끄는 마법소녀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이 변신했을 때의 코스튬이었기 때문이었다.
가슴 부근에 리본과 타원형 크리스탈이 달린, 치마통이 좌우로 무척 넓은 기다란 원피스,
흰색 롱 부츠와 웨딩장갑, 그리고 끄트머리에 금색 별이 새겨져 있는 마법봉.
성인을 떠나 애니를 무척 좋아하는 렌카도 거부감이 들만큼 많이 유치한... 그러한 복장이었다.
“메이드복이 별로면 이거 입어줘요."
"......"
“대사도 해줘야 됩니다. 별의 힘이여, 내게 정의를 지킬...”
"닥쳐... 소름끼치니까.....
“이건 신체노출도 없는데? 조건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거예요.”
"무효야...! 대중적이지가 않아...."
필사적으로 대중성을 어필하는 모습이 웃기다.
“요즘 성인들도 이 애니를 많이 본대요. 애니를 싫어하는 부장도 보자마자 딱 알아챈 눈치던데, 이 정도면 대중성은 있다고 봐도 되잖아요."
“누, 누가 싫어한대...? 그냥 잘 보지 않는다고만 한거지...”
“저번엔 분명 별로라고 하지 않았나? 어쨌든 그렇다고 치고, 이거 입어요. 포즈는 따로 사진이 있긴 한데, 일단 말로만 설명하자면 한쪽 발을 뒤로 들고, 손가락으로 브이를 만든 다음 윙크를...."
"그만! 더 이상 듣기 싫어...! 절대 안 해...."
고개를 마구 휘젓는데, 이걸 입는 건 죽기보다 더 싫은 것 같다.
아니, 내 앞에서 입는 게 싫다고 해야 맞지.
"약속인데 해야죠."
“너 원래 이런 거 좋아했니?"
"예. 오직 부장만이 아는 제 비밀입니다."
“.... 애초에 메이드복을 선택하게 하려고 고른 게 티가 나는데 혓바닥이 너무 긴 거 아니야?"
“진짠데요."
"씹덕새끼..."
너도 씹덕이잖아.
이것이 바로 동족상잔의 현장인가? 슬프다.
"칭찬고맙습니다. 이것들이 정 마음에 안 들면, 다음 코스프레 땐 부장의 뜻대로 바니걸이나 간호사 쪽으로 고려해볼게요. 고양이도 나쁘지는 않죠?”
“다음 같은 소리하네 ! 그딴 건 없어!"
"알았어요. 입기나 하세요.”
“.... 미치겠네 진짜아...!"
렌카가 한쪽 발을 마구 굴렀다.
어지간히 돌아버릴 것 같은 마음이 잘 드러난다.
한동안 그렇게 불만을 표출하던 그녀의 시선은, 마법소녀복이 아니라 메이드복으로 가있었다.
"저거만 입으면 돼...?”
울며 겨자 먹기로 메이드복을 선택하려는 모양인데... 마법소녀복보다는 굴욕감이 덜하긴 하지? 잘 선택했어.
방긋 웃은 내가 대답했다.
“저거랑 소품 두 개만 착용하면 됩니다."
“소품...? 뭔데...?”
"옷걸이 옆 선반에 있었는데, 못 봤어요?”
그 말에 렌카의 눈이 천장으로 향했다.
무언가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으로 가만히 있던 그녀는,
“서, 설마..."
경악을 하며 자신의 손을 입으로 가져갔다.
떠올린 것이다. 그곳에 뭐가 있었는지.
"예. 그겁니다."
"야이 미친놈아...! 메이드복만 입으면 끝이잖아!"
“아니죠. 코스프레에도 컨셉이 있는 법 아니겠습니까. 이번 컨셉은 강제로 잡혀온 노예니까... 그거까지 착용하는 게 맞죠.”
"이 또라이 새끼! 죽어!"
“오래 살 건데요. 그래서, 마법소녀 할래요? 메이드 할래요?”
능글맞은 미소를 지은 내 물음에, 렌카가 당장에라도 날 때릴 듯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마음은 이해가 간다. 둘 다 싫은데 하나를 고르려니 짜증이 나겠지.
그래도 참으렴. 노예로서의 마음가짐은 이렇게 점점 성장하는 거란다.
“하아... 취향 한 번 거지같네 진짜...
렌카의 입에서 새어나온, 답답함이 가득 묻어나오는 숨결.
한참, 아주 한참의 시간동안 고뇌하던 그녀는,
“그럼 이렇게 하죠. 그런 소품이 있다는 건 말하지 않은 제 잘못도 분명히 있으니까, 소품까지 착용해주면 20분으로 끝내드릴게요.”
혹할만한 타협안에 고개를 들었다.
그러더니 기회를 잡았다는 양 새로운 제안을 했다.
“15분.”
타협안과 5분 차이. 받아줄 수도 있겠지만 그러지 않을 거다.
자비를 베풀어주거나 협상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나라는 마인드를 심어주기 위해서였다.
“20분. 이 정도도 싫으면 새 날짜를 잡아보고요.”
다음 약속을 기약하는 발언을 하자, 렌카가 아랫입술을 꽈악 깨물었다.
너도 오늘 날 만난 김에 확 끝내버리고 싶잖아.
말다툼을 하면 할수록 화가 나는 건 네 자신이기도 하고... 그치?
그러니까 20분으로 만족해라. 무려 10분이나 줄여줬다.
“... 입고 나오자마자 20분?"
예상대로, 렌카가 한 발 물러선 듯한 반응을 보였다.
나는 시계 어플을 켠 휴대폰을 렌카에게 보여주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고,
"......"
그녀는 싫증이 가득한 표정으로 내 제안을 받아들였다.
"좋아. 메이드복으로 입을게. 더 이상 다른 말하기 없기야."
“물론입니다. 스톱워치는 입고 나오자마자 킬게요.”
"알았어... 지금 입는다...?"
"예. 기다릴게요.”
렌카가 힘없이 발을 놀리며 쪽방으로 움직였다.
들어가는 와중에 날 몇 번이나 쏘아본 건 덤.
그녀가 쾅! 소리가 날 정도로 문을 강하게 닫으며 들어간 것을 확인한 나는 재빨리 침대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
렌카가 쪽방에서 나온 시간은 한참이 흐른 뒤였다.
그리고 나는 밍기적대며 나온 그녀를 보고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나체인 상태에서 메이드복을 입었기 때문이었다.
브라가 없다는 뜻이다.
'얘봐라...?'
아무리 가슴이 드러나는 메이드복이라지만, 속옷을 차는 것까지는 용서해주려고 했다.
렌카의 입장에선 최소한의 보호구가 있어서 좋고, 내 입장에선 더욱 야한 느낌이라서 좋고.
그래서 속옷 위에 메이드복을 입어도 그냥 넘어갈 생각이었는데... 예상치 못했다.
이쯤 되면 너도 즐길 정도까지는 왔냐?
아니면 한 번 하는 김에 제대로 해서 트집을 잡지 못하게 하려는 건가?
라는 생각을 하던 찰나, 렌카가 낯간지러움이 잔뜩 묻어나오는 목소리로 스톱워치를 턱짓했다.
“빠, 빨리 시간 재...
그에 정신을 차린 나는 스톱워치를 작동시켜놓고, 휴대폰을 미리 옮겨둔 탁상 위에 올려놓은 뒤 다시 렌카를 살폈다.
자신의 몸을 감상하지 못하게 팔을 안쪽으로 모은 채로 한쪽 손목을 잡고 있는데, 그로 인해 가슴골이 더욱 드러난다는 걸 너는 알까?
팬티까지 안 입은 건 아니겠지...?
설마 그럴 리는 없을 것이다.
"너무 예뻐요."
진심이 담겨있는 칭찬에 흠칫한 렌카가 이를 악물었다.
“.... 닥쳐..."
“예.”
그러려니 한 나는 쪽방에서 소품을 챙겨왔다.
가죽수갑과 목줄.
그것을 본 렌카가 싫은 기색이 가득한 눈빛으로 날 노려보았다.
“변태 새끼..."
"이젠 그 정도 욕은 웃으면서 넘길 정도네요. 침대에 올라가서 앉아볼래요? 이건 직접 채워줄게요.”
“내, 내가 차면 되잖아.....
“혼자 채우기 힘들 텐데? 그냥 올라가서 앉아봐요.”
20분간은 순순히 내 말에 따르기로 한 건지, 렌카가 기다란 콧바람을 내뱉으며 침대로 갔다.
그리고는 무릎을 굽히면서 다리를 바깥으로 빼며 앉았다.
그냥 앉으면 아래가 드러나니 저런 포즈를 취한 것 같은데... 더 요염해보이잖아.
역시 넌 천성이 야해. 그래서 너무 좋아.
“아프면 바로 말해요.”
“아, 아프기까지 해...?"
"아뇨. 혹시나 제가 실수해서 살이 집히면 따갑잖아요."
"......"
“손 모아서 내밀고.... 그렇죠. 잘했어요.”
“내, 내가 개야...? 잠자코 채우기나 해....
“수갑은 다 채웠어. 압박감이 느껴지거나 당기지는 않아요?”
“안 당겨... 근데 갑자기 왜 친절한 척이야...!"
압박감을 느끼는 노예를 조금이나마 풀어주는 주인님에게 일말의 고마움도 느끼지 못하겠냐?
은혜를 모르는군. 형벌은 자지로 줘야겠다.
"하...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자신의 결박된 양팔을 올렸다 내렸다 하며 툴툴대는 렌카.
그런 렌카에게 나긋한 미소를 지어주자, 움찔한 그녀가 눈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이제 목줄 채웁니다?"
“.... 마음대로 해... 어차피 나한텐 선택권이 없잖아....."
그런 태도, 아주 좋아.
앞으로도 잘 유지하도록 하렴.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인 나는 렌카의 목 뒤로 손을 집어넣고, 뒷머리를 위로 슬쩍 올리면서 목줄을 채우기 시작했다.
“훗...."
숨을 훅 들이켠 그녀에게서 블루베리 향이 확 풍겨와 코를 간질였다.
서로의 얼굴이 맞닿을 정도까지 간 건 처음인가? 두근두근하는데 너도 그랬으면 좋겠다.
렌카의 가녀린 목에 목줄까지 꼼꼼하게 채운 나는, 빨간색으로 된 끈을 살며시 잡아당기면서 굽혔던 무릎을 폈다.
그와 동시에 날 따라오고 있던 렌카의 눈이 자연스레 올라가면서, 서로 시선이 마주치게 되었다.
표정이 조금 진정되어있는데, 방금 서로 가까이 붙었던 것이 쑥스러웠던 듯 눈 밑에 홍조가 감돌아있다.
아직 채 사라지지 않은 앙칼진 눈빛에, 약간 불만스럽게 틀어진 고개, 흘러내리려는 어깨끈까지... 조합이 완벽하다.
특히 저 부끄러움과 거부감이 뒤섞인 묘하게 야릇한 얼굴이 너무 꼴린다.
자신을 내려다보는 그윽한 시선이 무척이나 부담스러웠는지, 슬쩍 고개를 돌리며 퉁명스레 불평을 터뜨리던 그녀는,
“무, 뭘 그렇게 쳐다보고 난리야... 줄은 왜 잡아당기는데... 짜증나게... 홉!"
대뜸 숨을 삼키며 바짝 긴장했다.
내 손이 돌연 그녀의 어깨를 향해 뻗어졌기 때문.
렌카가 오해를 하기 전에, 나는 반쯤 흘러내린 그녀의 옷끈을 잘 잡아당겨 어깨 위에 걸쳐주었다.
그리고는 그녀의 앞에 쪼그려 앉았다.
“꼼짝없이 벗겨질 뻔했는데, 고맙다는 인사는 없어요?"
"......"
"알았어요. 사납기는....
새침한 표정을 짓고 있는 렌카에게 씨익 웃어보인 나는, 기다란 끈을 늘어뜨리면서 침대 앞으로 옮겨둔 소파에 엉덩이를 붙였다.
이후 침대 위에 망부석처럼 주저앉아있는 렌카를 빤히, 아주 빤히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