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화 >렌카는 음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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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담스럽다.
의상도, 포즈도 그렇지만... 특히 마츠다의 저 미소가 부담스럽다.
'지, 진심으로 좋아하고 있는 거지 저거....?"
사람의 양팔을 결박시키고, 목줄까지 채워서 개 취급을 하는 걸 좋아한다고?
아무리 취향이라지만 조금 너무한 거 아닌가 싶다.
그런데 왜 자신이 지금 이 코스프레를 순순히 해주고 있는 거지?
메이드복을 본 순간 부글부글 끓어올랐었고, 마츠다를 먼지가 나도록 팰 생각이었는데...
몇 번의 대화가 오간 뒤로, 어쩌다 보니 의상을 입은 채로 얌전히 앉아있다.
그리고 자신의 온몸을 살피는 저 눈빛이 변태 같게 느껴지면서도, 또 낯부끄럽게 느껴지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뿌듯한 건 왜일까?
'뭐라는거야....'
지금 자신이 저 시선에 기뻐하기라도 한다는 뜻인가? 말이 되지 않는다.
20분은 언제 지나는 걸까. 시간이 너무 느리게 가는 것 같다.
그나저나 웃을 때 엄청 잘생겼네... 시원해가지고....
내면은 음흉한 주제에 저렇게 훈훈한 건 반칙 아니야?
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
꽈악...
그녀는 자신의 목이 약하게 당겨지는 느낌에 눈썹을 꿈틀했다.
"야...! 뭐해.....!"
"아, 미안해요. 가까이서 보고 싶어져서."
"맞을래? 하지 마라..."
그에 마츠다가 자신의 의자를 앞으로 쭉 잡아당겼다.
가까이 데리고 올 수 없다면, 자신이 직접 앞으로 가서 보겠다는 의지가 충만해보인다.
보면 볼수록 욕망에 충실한 놈이다.
헛웃음을 친 렌카가 어깨끈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이거 일부러 이렇게 느슨한 걸로 산 거지...?"
“뭐가요?"
“어깨끈... 자꾸 내려가려고 하잖아...”
“마감이 그럴 줄은 몰랐어요. 의도가 있었다면 방금 옷이 흘러내리려 할 때 잡아주지도 않았겠죠. 쇼핑몰 후기에도 어깨끈 이야기는 없던데..."
“그래....? 믿어줄게.”
“예․ 근데... 아니다. 됐어요.”
“뭐야? 얼버무리지 말고 똑바로 얘기해. 짜증나게 하지 말고.”
“아뇨... 이 정도면 딱 맞겠다 싶었는데, 한 치수 더 작은 걸로 살 걸 그랬네요.”
"그럼 애초에 사이즈를 큰 걸로 샀다는 뜻이잖아! 다분히 의도적인 게 맞...”
버럭 따지고 들던 렌카는, 마츠다의 시선이 자신의 가슴으로 향하자 몸을 움츠렸다.
이후 뭘 보냐며 마츠다를 나무라려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의 눈빛에 무언가를 살피는 듯한 기색이 서려있었기 때문이었다.
‘왜 저래...? 변태 새끼...'
없는 점이라도 찾아보는 건가 싶었던 그녀는,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 어떠한 생각에 눈을 부릅떴다.
“야!! 너, 너 지금 설마 내 가슴이 작아서 끈이 흘러내린다고 생각하는 거야!?"
"갑자기 왜 이래요? 난 그런 소릴 한 적이 없는데?"
어이없어하는 마츠다의 표정을 본 렌카의 정신이 퍼뜩 돌아왔다.
갑자기 화딱지가 나서 소리를 지르고 말았는데... 왜 그랬을까.
이러면 자기 발등을 찍는 것과 다름없잖은가. 한심하다, 이노오 렌카.
“그렇게 작지도 않은데 괜한 자격지심이 있네요."
이어지는 마츠다의 장난기 어린 목소리.
엄청난 창피함이 밀려온 렌카가 언성을 높였다.
"다 닥쳐...!"
"얼굴 엄청 빨개졌어요."
"닥쳐! 닥치라고!"
"알았어요. 보기만 할게.”
시종일관 능글맞은 마츠다의 태도에 화가 치민 렌카였지만, 그녀는 입을 꾹 다물고 애꿎은 침대보만 만지작거렸다.
'어이가 없네...'
자신이 먼저 가슴을 언급했다는 게 황당하다.
물론 마츠다가 도발을 했고, 그에 홀라당 넘어가버리긴 했지만 원래 이런 얘긴 절대 안 하는데...
방 안에 감돌고 있는 묘한 분위기에 휩쓸려서, 마츠다가 자신의 가슴을 가소롭게 보는 것 같아서 홧김에 말이 튀어나와버렸다.
쪽팔려 미치겠다.
“며, 몇 분 지났... 헉!"
한동안 침묵하던 렌카가 고개를 들어 시간을 물어보려다가 흠칫했다.
마츠다의 얼굴이 더 가까워져서였다.
깨끗하고 시원시원한 그의 얼굴을 보니, 사람이 참... 멋지게 생겼다는 생각이 든다.
속은 시커멓기 그지없지만 말이다.
".... 쳐다보지 말라고....
“눈까지 닫으라고요? 좀 심한데...”
“몇 분 지났냐니까...
"닥치라면서요."
“이건 말해줘도 되잖아.....
“5분 지났습니다.”
스톱워치를 보여주기까지 하는 마츠다.
그의 말대로 5분이 약간 지나있음을 확인한 렌카의 눈앞이 아찔해졌다.
체감상 15분은 지난 것 같았는데 고작 5분이라니. 나머지 15분은 어떻게 버턴담.
"하아....
"왜요? 막막해요?"
“그게 아니라... 불편해서 그래...”
“어디가 불편한데요? 수갑이?"
“수갑도 그렇고... 목줄 때문에 목이 뻣뻣해지는 것 같아...."
“그래요? 잠깐만요."
옆머리를 긁적인 마츠다가 양해를 구하더니, 돌연 렌카의 목 뒤로 손을 뻗었다.
자신의 뒷목을 감싸는 큼지막한 손길.
그에 어깨를 달짝인 렌카가 마츠다의 팔을 쳐내려고 했지만,
꾸욱..꾹...
목덜미가 적당한 지압으로 눌리기 시작하자 얌전해졌다.
절대 의외로 시원해서가 아니라, 팔을 움직이기 불편한데다 계속 발악을 하면 마츠다가 온갖 트집을 잡을 게 뻔해서다.
그렇게 정신승리를 한 렌카는, 한편으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츠다의 뒤틀린 성벽을 받아주는 사람이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이라서 말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이런 피해를 준다고 상상해보면... 끔찍하기 짝이 없다.
'아니,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해야 돼?'
이건 마치 순종적인 노예 그 자체잖은가.
드디어 미치기라도 한 건가? 왜 순응하고 자빠졌지?
정신차려야한다.
"부장."
가까이 붙어있다시피 하던 마츠다의 부름.
중저음으로 낮게 깔리는 듣기 좋은 목소리에, 렌카가 눈꺼풀을 위로 올렸다.
“왜...”
"그냥 불러 봤어요."
“.... 미친놈."
“요즘 성격이 너무 더러워지는 거 아니에요?"
“네가 더럽게 만들잖아... 아, 맞다... 야."
“왜요.”
“너 동계대회 나갈 거지?"
“동계대회? 검도?"
“응. 단체전이야. 5인제고..
“그래요?”
마츠다의 눈이 살짝 가라앉으면서, 입꼬리가 위로 쓰윽 올라갔다.
무언가 음모가 있는 듯한 표정.
또 무슨 개짓거리를 할까 라는 불안감과 궁금증이 동시에 든 렌카가 물었다.
“뭐야...? 왜 그딴 얼굴을 해?”
"아뇨... 뭐... 나갈 생각은 딱히 없긴 한데...”
“근데?”
“나가면 뭐해줄 건데요?”
그러면 그렇지. 왜 조건을 안 거나 했다.
“해줄 게 뭐가 있는데? 난 네가 검도에 취미를 붙일 것 같다고 하니까, 네 발전을 위해서 물어본 거였어. 근데 그런 식으로 나오면 곤란하지."
“지금 스승님한테 배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밌어요. 그리고 스승님이 나가라고 하면 나갈 거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그럼 내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겠다는 거야? 치나미 말만 듣고?"
"부장은 나가겠냐고 물어만 본 거 아니었어요?"
"그렇긴 한데..."
"서운한가보네?"
“무, 뭐래....! 누가 서운하다고... 그리고 얼굴 좀 떨어뜨려...! 뭐하는 짓이야....!"
“마사지하고 있잖아요. 착하지? 얌전히 있어요."
아이를 다루는 것 같은 말투.
욱한 렌카는 따지고 들려다가, 그냥 가만히 있기로 했다.
괜히 화를 내봐야 마츠다가 판 함정으로 굴러들어가는 꼴.
닥치고 시간이 지날 때까지 버티는 게 더 나을 것 같았다.
라며 마음을 가다듬으려던 렌카는,
“이제 괜찮죠? 마사지는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마츠다가 뒷목에서 손을 떼어내며 의자에 앉자 콧방귀를 꼈다.
“그러든가 말든가..."
"근데 부장."
“뭐.”
“이런 거 한 번 더 해보고 싶지 않아요?”
“개소리하지 마. 오늘로서 끝이야."
"아쉽다."
저런다고 누가 마음이 약해질 줄 아나?
장난감처럼 다뤄지는 게 뭐가 좋다고?
속편하게 앉아있는 저 꼴을 보니 배알이 꼴린다.
자신은 지금 심신이 지쳐있는데, 물이라도 권해주든가 하지....
저렇게 예의가 없는데 한 번 더는 무슨 한 번 더? 어림도 없다.
싸가지는 밥 말아먹어가지고...
속으로 꿍얼꿍얼 마츠다를 욕한 렌카는, 고개를 슬쩍 돌린 채 눈동자만으로 그를 살피며 시간을 보냈다.
**
휙.
침대 위에 아무렇게나 던져진 메이드복.
옷을 갈아입고 나온 렌카를 홀끗거런 내가 무심한 듯 말했다.
“그걸 왜 던지고 그래요.”
“어차피 버릴 거 아니야? 싸구려잖아."
“싸구려라니? 나름 비싸게 주고 산 건데요.”
"어깨 부근 마감이 그런데 비싸게 샀다고? 사기 당했네. 안타까워."
“부장 말을 듣고 나니까, 마감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넌지시 아까 그 가슴에 대한 화제를 언급하자, 렌카의 이빨이 뿌드득 갈렸다.
“시끄럽고, 빨리 나가자. 여기 1초라도 더 있으면 미쳐버릴 것 같아.”
같이 나가자고 해주는 거야? 우리 렌카... 아까 틱틱대면서 은근히 좋아하던 것도 그렇고 많이 바뀌었네?
가슴에 대해선 너무 열등감을 느끼진 마라.
미유키나 치나미보다는 훨씬 작지만 일반사람들과 비교하면 나름 크고, 한손으로 움켜쥘 수 있을 정도라 좋으니까.
고개를 주억거런 나는 렌카가 던진 메이드복을 집고 팔에 걸쳐놓았다.
그렇게 밖으로 나가려는데,
"야...! 잠깐만... 그거 내놔."
렌카가 성큼성큼 내 앞으로 걸어오더니 손을 뻗었다.
“뭘요?"
“메이드복... 내놓으라고.”
“왜요?"
"그냥 갖고 가면 이상한 짓 할거 같아.”
"이상한짓?"
“아, 아무튼 내놔....! 내가 손빨래해서 줄게."
갑자기 왜 저럴까 싶었던 나는, 렌카의 표정에 부끄러움이 가득하자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눈치챘다.
그녀는 내가 저걸 갖고 가서 자위 비스무리한 행동을 할까 우려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쯤 됐으면 변태는 내가 아니라 네 자신이라는 걸 인정할 때도 되지 않았니?
물론 최근에 대놓고 욕망을 드러내긴 해서, 저런 반응은 어찌 보면 당연하긴 하지만서도... 보면 볼수록 웃긴다.
어쨌거나 저런 음습한 상상을 하는데 받아주지 않으면 도리가 아니겠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은 나는, 갑작스레 웃는 내가 불안했는지 눈동자를 데굴 굴리는 렌카가 보란 듯이 메이드복을 코앞까지 가져갔다.
"흐아악!"
기겁을 하며 메이드복을 낚아채듯 빼앗아가는 렌카.
가방에 그것을 쑤셔 넣은 그녀가 자신의 검지로 날 가리켰다.
"이, 이럴 줄 알았어! 미친놈! 쓰레기!"
악에 받친 채 고래고래 욕을 하는 모습이 왜 이렇게 사랑스럽게 보일까.
아아... 지금 당장 렌카를 넘어뜨리고 한 판 하고 싶다.
부들부들거리는 렌카의 앞에서 대소를 터뜨리던 내가 표정을 싸악 굳혔다.
이후 움찔하며 뒷걸음질을 치는 렌카를 불렀다.
부장."
“무, 뭔데...!"
"갑자기 부장이 너무 좋아지려고 해요."
렌카의 입이 떠억 벌어졌다.
설마 이런 소리를 들을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입 한 번 크네. 나중에 펠라할 때 잘 부탁해.
당황해선 말을 잇지 못하는 그녀의 어깨를 토닥인 내가 말했다.
“나가죠. 데려다줄게요."
“....아니.... 잠깐만... 너 방금 뭐라고 그랬어...?”
“같은 검도부 부원으로서, 그리고 부장으로서 좋다는 뜻이니까 오해하지 말아줬으면 하네요. 부장은 자꾸 이상한 망상을 하는 게 흠이에요."
“오, 오해는 무슨 오해! 난 그런 생각 안 했어...!"
다시 성난 모습으로 돌아온 렌카.
알겠다는 뜻으로 어깨를 으쓱인 나는, 그녀를 스쳐지나가 방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는 렌카에게 이리 오라며 손짓했다.
"뭐해요? 안 갈거야?"
"가..! 간다고! 지금 가잖아...!"
정신을 차리더니 황급히 걸음을 옮기는데, 계속 장난을 치고 싶지만 참자.
나중에 더 놀려먹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