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화 > 판도라의 상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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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진이 잔뜩 빠진 숨을 내뱉던 미유키는,
-지금 비 오는데, 라멘집 갈래?
욕실 문밖에 커다란 그림자가 드리우고, 거기서부터 들려오는 마츠다의 나긋한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대답했다.
“아, 아니..! 안 가.... 오늘은 쉴래...”
- 진짜 안가? 많이 힘들어?
자신이 몇 번이나 가버리는 것을 봤으면서도 많이 힘드냐니...
순간 발끈한 미유키가 언성을 높였다.
"안 간다니까...!"
-왜 화를 내고 그러냐? 알았다.
무안한 듯 머리를 긁적인 그림자가 사라지는 것을 본 미유키는 힘없이 기지개를 켜다가 온몸이 쑤셔오자 인상을 마구 찡그렸다.
가랑이 안쪽의 내전근은 물론, 온몸이 죄다 쑤신다.
"미치겠네..."
오늘은 정말... 지금까지 마츠다와 가져온 관계 중에서 가장 격했고, 아팠다.
그리고 너무 좋았다. 삽입 전후의 고통이 대단하긴 했지만 다시 한 번 하고 싶을 만큼.
그 정도로 마츠다는 마치 날을 잡은 사람처럼, 오늘 자신에게 엄청난 황홀경을 선사해주었다.
특히나 마음에 든 건, 관계 내내 자신을 꿀이 뚝뚝 떨어지는 눈빛으로 쳐다봐주었다는 거다.
그 눈빛이 가식이 아니라 진심인 건, 3자가 봐도 알 수 있을 정도.
자신을 무척이나 위하고 있다는 게 보여서 좋았다.
그것 때문에 마츠다가 자신의 배에 사정했을 때, 순간적으로 안에 해도 된다고 말할 뻔했었다.
2회차, 3회차에서도 마찬가지. 억지로 밖에 싸는 것보단 차라리 안에 싸서 서로 만족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었다.
'내가 미쳤지...
자신이 이렇게 변태처럼 변할 줄 누가 알았을까?
이게 다 마츠다 때문이다. 참 나쁜 놈이 아닐 수 없다.
아니, 나쁜 놈이라고 하기엔 자신도 즐기고 있으니까... 음흉한 놈이라고 하자.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마츠다에게 책임을 일부 떠넘긴 미유키가 자신의 복부를 만져보았다.
마츠다와 자신의 사랑의 결실들이 닿았던 장소... 당시 굉장히 뜨겁다고 느꼈었는데, 지금도 그렇게 생각되어지는 건 착각일까?
"후으..."
다시금 몸이 달아오르기 시작한 미유키는 고개를 털어내며 탕에서 일어났다.
지금은 사색에 빠져있을 때가 아니었다. 이 여운이 전부 날아가 버리기 전에, 빨리 샤워를 끝내고 마츠다와 꼭 껴안은 채 잠들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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콕․콕.
마츠다의 단단한 몸통 이곳저곳을 찔러보는 미유키는, 호흡이 점점 규칙적으로 변하고 있는 마츠다를 올려다보았다.
"마츠다 군."
“....왜.”
"자?"
“아직....
말투를 들어보니 곧 잠들 것 같다.
오늘 전희 후에 세 번이나 관계를 가져서 많이 피곤했던 건가?
아니, 1시간이나 이렇게 조용히 누워있었으니 잠이 오는 건 당연한 것일지도.
'나는 안 오는데..
몸에 힘이 없는 상태이긴 하지만 정신은 너무나도 멀쩡했다.
이대로 자기는 아쉬운데... 라멘집에 가자고 할까?
잠에 들려는 마츠다를 다시 깨우는 건 미안하지만, 오늘은 어리광을 조금 부리고 싶다.
마츠다도 자신이 이런 행동을 하는 걸 좋아하는 것도 같고...
이런저런 고민을 하며 가만히 있던 미유키는, 마츠다의 코에서 기다란 바람이 새어나와 정수리를 간지럽히자 눈을 한 번 감았다 떴다.
“마츠다 군...”
"......"
"자...?"
그새 잠에 들었나보다. 그냥 오늘은 마츠다를 쉬게 놔둬야겠다.
내일 새벽에 가면 되지. 음, 그렇게 하자.
마츠다가 편한 자세로 쉴 수 있도록 그의 품에서 나온 미유키는 정자세로 누워 눈을 데굴 굴렸다.
그러다가 무언가 생각나서, 소리가 나지 않게끔 아주 조심하면서 몸을 일으켰다.
이후 방구석에 놓인 노트북으로 손을 뻗었다.
갑작스럽게 산 이 물건을, 마츠다는 저번에도 이번에도 보여주기 껄끄러워하는 기색을 풍겼다.
들키면 곤란한 무언가가 여기에 있다는 뜻.
그리고 그 무언가는 분명히...
'야동이겠지?'
비밀번호까지 건 것으로 보아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아니면 성인용품 같은 야릇한 물건들의 정보가 있겠지.
뭐가됐든 야한 것임에는 틀림없으리라.
바람을 피운다거나 하는 생각 따윈 추호도 하지 않았다.
마츠다가 그럴 마음이 있었다면, 눈에 띄는 노트북을 사려 하지도 않았을 테니까.
조심조심 자리를 옮긴 미유키는 펴져있는 탁상 위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화면을 열었다.
전원 버튼을 누르니 얼마 지나지 않아, 비밀번호를 입력하라는 잠금화면이 떡하니 나타났다.
입력란 밑에는 [추억]이라는 힌트가 쓰여 있었다.
추억이라... 자신과 관련된 것들인가?
마츠다와의 추억은 아직 많지 않았기에, 왠지 풀 수 있을 것 같다.
미유키는 일단 생각나는 것들을 먼저 추려보기로 했다.
가장 먼저 떠오른 추억은 전철이었다.
마츠다가 자신을 치한의 손길에서 구해주었을 때의 열차 칸 번호일까?
당시 칸 번호는 못 봐서 기억에 없는데... 마츠다도 아마 모를 것이다.
타닥.
조심스레 [전철]을 입력해본 미유키는, 비밀번호가 틀리자 이어서 자신이 탔던 역과, 중간에 내렸던 역, 그리고 그날의 날짜를 입력해보았다.
'아니네....?'
쓰읍... 하는 소리를 낸 그녀의 머릿속에 다음으로 떠오른 추억은 화장실이었다.
징계를 받은 그가 청소를 하다가 마구 짜증을 냈던 게 생각났다.
그때 되게 웃겼는데... 마츠다는 기억하려나?
작은 웃음소리를 터뜨린 미유키가 열심히 손을 놀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의 표정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어두워졌다.
화장실부터 옥상, 영화관, 회전목마, 첫 키스, 심지어 첫 경험까지.
기억나는 온갖추억거리와 날짜 등을 입력해보았지만 허사. 비밀번호는 절대 풀리지 않았다.
한참동안 비밀번호와 씨름을 하던 미유키는 머리를 벅벅 긁으며 답답함을 표출했다.
문자, 특수문자는 물론 번호까지 타이핑할 수 있는 입력란이라서 조합도 너무 많고...
혹시 힌트가 자신과의 추억이 아닌, 그의 돌아가신 부모님과 관련된 추억일까?
그렇다면 자신이 알 방법은 없다고 봐도 좋았다.
'미치겠네....'
투둑․ 투둑.
밖에서부터 미세하게 들려오는 빗소리가 마음을 진정시켜준다.
갑자기 이걸 굳이 왜 보려고 했는지 회의감이 든다.
궁금하긴 하지만 마츠다의 개인사인데... 깔끔하게 포기하고 그를 깨워 라멘집이라도 가자고 칭얼거려야겠다.
그렇게 비밀번호 해제를 그만두려던 미유키는,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 어떠한 생각에 눈을 크게 떴다.
아직 입력해보지 않은 추억이 하나 있었기 때문이다.
"아, 맞다...!"
탄성을 터뜨린 미유키가 황급히 자신의 입술을 안으로 오므렸다.
마츠다는.... 일어나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안도한 그녀는 설마 이게 먹힐까 라고 반신반의하며 키보드를 두드렸다.
그러다가,
[환영합니다.]
비밀번호가 해제되면서, 윈도우 화면에 나타난 큼지막한 환영인사를 보고 두 눈을 끔벅였다.
“돼, 됐네...?"
그녀가 입력한 비밀번호는 [MKHM].
마츠다 켄, 그리고 하나자와 미유키의 앞자리 이니셜이었다.
라멘집에 붙여놓았던 포스트잇에, 그림을 그리면서 캐릭터 위에 써놓은 4글자이기도 했다.
“흐헿... 헙....”
저도 모르게 헤픈 웃음을 내뱉은 미유키가 손으로 입가를 가렸다.
입이 함지박만하게 벌어지려는 것을 간신히 참아낸 미유키.
자고 있는 마츠다를 슬쩍 바라본 그녀의 눈이 초승달 모양으로 변했다.
비밀번호를 이걸로 해놓다니... 확실한 추억거리 중 하나긴 하다.
자신을 향한 마음이 드러나는 것 같아서 기특한 마음이 샘솟는다.
생각해보면 마츠다는 항상 이랬던 것 같다.
커플과 관련된 아이템이나 기념할만한 것들을 챙기지 않는 듯하면서도, 은근히 신경을 쓰는... 그런 다정한 면이 있었다.
'나중에 칭찬해줘야지.'
소리 내지 않게 헤실거린 미유키는 봉인이 풀린 바탕화면을 살펴보았다.
기본적인 아이콘이 즐비해있는 기본 배경.
그리고 가장 밑에 [야동]이라고 쓰인 폴더가 하나 있다.
그것을 본 미유키의 눈이 초롱초롱해졌다.
역시 야동일 줄 알았다. 심증에 물증까지 더해진 확인사살. 미유키의 입꼬리가 위로 쓰윽 올라갔다.
‘바보...’
들키기 싫었다면 혼자만 아는 비밀번호를 걸어놓든가 하지... 쯔쯔...
헌데 다른 남녀의 성관계 영상을 보는 게 좋은 건가?
아니면 야동에서 나오는 상황들이 판타지를 충족시켜주나?
어쨌든.... 야동이야 자신 또한 안 봤던 것도 아니고, 마츠다가 굳이 보겠다면야 충분히 이해해줄 여지가 있다.
야동 속 남녀는 자신들이 아니고, 남자들 중에선 안 보는 사람이 없다고들 하니까...
게다가 자신과의 관계 때마다 매번 진심으로 만족해하는 기색을 풍겨서 딱히 질투 같은 감정도 나지 않았다.
자신에게 이상한 체위나 봉사를 강요하지도 않으니 심각하게 여길 필요는 전혀 없었다.
돈을 후원하면서 이상한 생방송을 보거나, 시도 때도 없이 자위만 하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그리고 혹시 아는가?
괜찮은 내용의 야동이 있다면, 은근슬쩍 참고해서 직접 마츠다에게 서비스를 해줄 수도 있을지.
가령 찢어진 스타킹을 입어주거나... 뭐 이런 것들.
남자들은 이런 쪽에 판타지가 있잖은가. 해주면 잔뜩 흥분해선 달려들지도 모른다.
이 생각은 이쯤하고, 이제부터 마츠다의 취향을 알아봐줘야겠다.
두근두근한 마음을 뒤로한 채, 미유키는 폴더 안으로 들어가 파일 이름을 살펴보았다.
그리고는 곧바로 얼굴에서 웃음기를 싸악 뺐다.
가장 위에 있는 파일 이름이 [여친과의 임신섹스]였기 때문이다.
"......."
아니, 임신섹스라니... 제목이 너무 적나라하잖은가. 왠지 자신이 창피해진다.
이 외에도 [치녀의 손코키] 라거나, [A급 마사지사의 스타킹 풋잡] 같은...
보기만 해도 낯부끄러워지는 듯한 이름의 영상을 살펴보던 미유키는, 후끈해진 얼굴에 손부채질을 하다가,
'응...?'
파일 목록 가장 밑에 [특별] 이라고 쓰인 폴더가 하나 있는 것을 발견하고 흠칫했다.
‘특별...?’
마츠다가 스페셜하게 좋아하는 무언가가 있는 야동이구나.
따로 폴더까지 만들 정도라....? 안 볼 수는 없지.
여전히 곯아떨어져있는 마츠다를 홀끗거린 미유키가 한쪽 입꼬리를 쓰윽 올리며 폴더를 더블 클릭했다.
그리고 그녀의 입은, 수십 개나 있는 동영상 파일의 난잡하고 저렴한 제목을 일일이 읽어가면서 점점 벌어져갔다.
[도내 최고급 에스테티션들의 3P 서비스]
[매직미러 자매덮밥 쓰리섬 스페셜]
[길거리 헌팅 후 3P]
[여친과 여친 친구의 유혹, 번갈아가며 골라 넣는 절륜남, 중출 스페셜]
'이, 이게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