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러브 코미디를 망가뜨리는 법-151화 (151/313)

<151화 > 판도라의 상자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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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엉.

마우스에 손을 올린 채 화면만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던 미유키가 고개를 마구 흔들었다.

지금 자신이 보고 있는 게 조금 충격적이라서, 순간 정신을 놓아버렸다.

'자매덮밥...?'

혹시 막... 자신, 그리고 카나와 침대에 누워있는 걸 상상해보고 그러는 건가?

[여친과 여친 친구의 유혹]도 참... 뭐라고 해야 할지...

마츠다를 놀리려고 엿봤는데 반대로 자신이 놀려지는 기분이다.

심각하게 여기지 않으리라고 다짐했고, 딱히 뭐라 할 생각이 없는 것도 그대로긴 하지만 속은 좀 탄다.

가슴을 쓸어내린 미유키는 일단 모니터를 끄고, 노트북을 원위치에 돌려놓았다.

그리고는 자신을 등진 채 자고 있는 마츠다를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찰짜악-!

왠지 얄밉고 짜증나는 마음이 들어, 그의 엉덩이를 아주 강하게 때렸다.

“아. 뭔데...?"

고통을 느끼지도 않는 건지, 무미건조한 감탄사를 터뜨리며 상체를 일으키는 그.

미유키가 능청스레 핑계를 대었다.

“그냥.”

“....그냥?"

"응. 그냥 때려봤어."

"뭐냐...? 갑자기 정신이 나갔나?"

"뭐래... 나 잘 거야."

콧방귀를 끼고 요에 누워버리는 미유키.

그녀의 목소리에서 이상함을 감지했는지, 마츠다가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그냥 자서 화났냐? 더 얘기할 거 있었어?"

마츠다의 잘못은 전혀 없었다.

충동적인 행동을 한 자신이 문제인 거지.

".... 아닌데."

“맞는 것 같은데... 이리 와봐."

잠에 취한 목소리로 저리 말한 마츠다가 미유키 자신의 몸을 끌어당겼다.

복부에 올라간 마츠다의 손을 꼬옥 붙잡은 미유키는, 자신의 뒷목에 그의 따스한 숨결이 닿자 삐죽 내밀었던 입술을 오므렸다.

자신은 오늘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츠다와 자신의 사이가 틀어지는 일은 없었다.

야동 취향이 조금 특이하다는 건 알게 되었지만, 그건 서로의 관계에 어떠한 지장도 주지 않을 것이었다.

노트북을 엿보기 전에 마츠다가 자신에게 보여주었던 태도를 되새겨보면, 그리고 지금 그가 자신의 배에 손만 올렸음에도 가슴속에 봄바람이 찾아오는 걸 보면 확실했다.

방금 봤던 것들은... 일단 마음속에 담아두려 하지는 말자.

순간적으로 그런 장르가 보고 싶었던 것일 수도 있잖은가.

물론 [특별]이라는 폴더를 따로 만들어놓은 상태라 그저 충동이라고 치부하기엔 어폐가 있긴 하지만... 괜찮다. 현실과 판타지는 다른 거니까.

그래도 마츠다의 취향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볼 필요는 있을 것 같다.

**

'봤구나.'

내가 얕은 잠에 빠져있을 때, 미유키는 분명히 노트북 비밀번호를 풀고 내가 받았던 것들을 봤다.

그렇지 않고서야 다짜고짜 엉덩이를 갈길 이유는 없었다.

조금 충격을 받았을 테지?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슬슬 치나미와의 잠자리도 가시권인데, 몰래 해버렸다가 미유키가 모든 전말을 알게 되면 엄청난 원망을 쏟아낼 것이다.

여태까지는 치나미와 끝까지 가지 않은 채로, 그저 마사지라는 명목으로 애무만 했고, 미유키도 전부는 모르지만 마사지를 했다는 것만큼은 알고 있어 안전하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치나미와 하룻밤을 보낼 생각을 하고 있는 이제부터는 아니다.

세상에 그 어떤 사람이 여자친구 몰래 다른 여자와 자는 걸 좋아하겠는가?

상황이 엄청 심각해지기 전에, 미유키를 설득하는 편이 나았다.

단, 단도직입적인 설득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우회로를 사용할 것이었다. 미유키 스스로 충분히 생각하고, 결정할 수 있게끔 선택권을 주면서 말이다.

내 야동 취향을 들키는 것이 그 포석.

이게 잘 될 경우, 미유키는 처음엔 거부감을 갖겠지만 서서히 적응해나가겠지.

앞으로의 하렘계획도 무탈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나름 잘 풀리게 될 것이고.

그러나 만약 잘 안 된다면... 대놓고 말하거나 다른 방법을 찾아야할 터다.

미유키가 탐탁찮아할 가능성은 매우 높다.

다만 한 가지 기댈만한 부분은, 현재 미유키와 내 사이가 최고조로 가까워졌다는 것이다.

부디 미유키가 널따란 마음으로 잘 받아주길 기원해보자.

미유키의 머리카락 사이에 코를 묻은 내가 말했다.

"미유키."

"응...?"

“왜 화났는데.”

화난 거 아니야... 얼른 자."

“잠깐 나갈래? 라멘 먹을까?"

"지금....?"

"어. 아직도 먹기 싫냐?"

“아니... 난 좋은데... 안 졸려?”

"엉덩이가 얼얼할 정도로 때려놓고선 안 졸리냐고?"

그 말에 미유키가 이불을 끌어당겨 머리를 덮어버렸다.

자신이 했던 행동이 부끄러웠던 모양.

킥킥거런 나는 미유키를 놓아주고 요에서 일어나 겉옷을 챙겨 입기 시작했다.

그러자 미유키가 이불을 홱 걷어내더니 상체를 일으켰다.

“뭐해..."

"라멘 먹으러 가야지. 너도 옷 입어라."

“더 안아줘."

양팔을 앞으로 쭉 뻗는 그녀.

드물게 보여주는 적극적인 모습에 고개를 주억거런 나는, 겉옷을 입다 말고 쪼그려 앉아 미유키의 겨드랑이 사이로 팔을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그녀의 허리를 꽉 붙들었다.

머리가 굉장히 복잡하겠지?

내게 그 야동에 대해서 언급해봐야겠다는 생각도 있을 테지만, 말을 꺼내기 어려워할 터다.

그러니 나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그리고 다정하게 행동하자.

미유키가 용기를 낼 때까지는 물론, 그 이후로도.

그렇게 미유키와 포옹을 하며 시간을 보낸 나는, 그녀와 라멘을 먹고 돌아와 사이좋게 잠들었다.

이후 다음날, 미유키의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

스윽.

정면을 응시하며 운전을 하고 있던 나는, 미유키의 손이 내 사타구니로 향하자 움찔했다.

이건 무슨 의미일까. 어제 관계가 너무 만족스러워서 보답을 해주려는 건가?

아니면 야동으로 풀 성욕을 자신이 대신 풀어주겠다 이건가?

"뭐하냐...?"

황당한 투로 미유키를 추궁해보았지만, 그녀는 창밖을 바라보는 척하며 슬슬 부풀기 시작한 사타구니를 만지작거리기만 했다.

그것도 모자라 내가 더 뭐라고 하지 않자, 아예 노골적으로 바지 속에 자신의 손을 집어넣었다.

심한 자극이 찾아오기 시작한 아랫도리.

나는 최대한의 집중력을 발휘해 조심조심 운전을 해나갔다.

그렇게 미유키의 집에 거의 다 도착했을 즈음, 미유키의 손놀림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야... 야...!"

"나올 것 같아?"

“.... 아직..

"지금도?"

"......"

"지금은?"

“잠깐..."

이를 악 문 나는 미유키의 동네에 진입하자마자, 갓길에 차를 세웠다.

그러자 내 쾌감이 터지기 직전까지 왔음을 알아차린 그녀는,

"응. 해도 돼."

자신의 몸을 내게 밀착시키더니, 아주 야릇한 목소리로 사정을 종용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뻣뻣해져있던 몸에 힘이 쭈욱 빠지면서, 아랫도리가 순식간에 질척하고, 뜨끈해졌다.

‘하...'

방금 제대로 꿰인 것 같은데... 맞나?

"많이 나왔네...?"

여전히 아래를 잡고 있는 미유키의 놀란 듯한 음색.

왠지 모르게 자존심이 상한 나는, 늘어지는 한숨을 내쉬며 미유키를 쳐다보았다.

“이대로 어떻게 돌아가라는 건데...?”

"그건 마츠다 군이 알아서 해야지... 바보야."

마무리로 안쪽을 주물럭거린 미유키의 퉁명스런 말투에, 나는 헛웃음을 치며 시동을 걸었다.

바지... 어제 개어놓은 건데 다시 빨아야겠구만.

**

노트북을 본 날 이후, 미유키는 대놓고 야동을 언급하고는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 수업시간 전에 빵녀, 그리고 부반장과 그런 쪽의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남자들은 야동을 그렇게 좋아한대."

“그렇다고들 하더라. 근데 갑자기 웬 야동 얘기야? 마츠다 군이 창피해하겠다."

“오히려 좋아할걸? 마츠다 군은 속이 음흉하니까."

음흉하다.

미유키가 매번 하는 말이었지만, 오늘만큼은 굉장히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책상 위에 엎드려있던 내가 나직이 말했다.

“다 들린다. 조용히들 해라.”

그에 미유키와 부반장이 까르르 웃고, 빵녀가 콜록거리더니 화제를 다른 쪽으로 돌렸다.

내게 있어서 이런 미유키의 태도변화는 좋은 징조였다.

미유키가 슬슬 용기를 내보려는 것처럼 느껴졌으니까.

지금은 먼저 언급하기가 부끄러워서 은근슬쩍 날 떠보려는 여우같은 행동을 하고 있으나, 조금만 더 지나면 스스로 답답함을 느끼고 대놓고 물어올 것이었다.

그래, 서로 솔직하지 못한 커플은 오래 가지 못하는 법이라고.

그러니까 궁금한게 있다면 물어봐주렴. 그때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어보자.

그렇게 다가온 부활동 시간.

오늘도 어김없이 오지랖을 부리는 테츠야를 애써 무시하며 부실로 향한 나는 렌카를 마주쳤다.

“안녕하세요, 부장."

"안녕하십니까! 부장!"

무미건조하게 인사를 건네는 나와는 달리, 테츠야는 군기가 바짝 잡힌 사람마냥 우렁찬 목소리를 터뜨렸다.

그에 깜짝 놀랐는지 어깨를 떤 렌카가 어색한 낯으로 한손을 들어올렸다.

“안녕, 미우라. 지금 온거야?"

인사는 동시에 했는데, 왜 저 새끼 것만 받아주냐.

벌로 채찍질 10회 추가다.

“네, 부장."

"옷갈아입을래?"

“알겠습니다!"

힘차게 대답한 테츠야가 부실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리고 놈의 뒤를 따라가려던 나는,

"마츠다. 넌 남아."

날 대기시키는 렌카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왜요."

"남으라면 남아."

렌카의 말투에서 엄한 기색이 느껴져서인지, 테츠야가 안쓰럽다는 낯짝으로 내 어깨를 두드렸다.

내가 렌카에게 혼이 날 거라고 생각한 모양인데... 계속 그렇게 업보를 쌓아봐라. 어떻게 되나.

짜증이 그득한 표정으로 놈을 보낸 내가 렌카에게 물었다.

“마지막 소원 쓰려고요?”

“... 자꾸 날 볼 때마다 소원에 대해서 묻는데... 그렇게 불안해? 힘든 일 시킬까봐?”

"불안한게 아니라, 기대가 돼서 그래요.”

“기대라니?"

“부장이랑 또 어떤 추억을 쌓을 수 있을지 두근두근해서요.”

“추, 추억은 무슨 추억...! 악몽이라면 몰라도...”

“왜 성질을 내고 그래요. 오늘 안 좋은 일 있었어?"

“널 보는 게 안 좋은 일이야...!"

“부장이 불렀잖아요."

“그, 그건 그렇지만... 그리고 너 요즘 자꾸 나랑 말할 때 평어를 섞는데... 무슨 경우야? 예의는 갖춰주지?"

“왜 서운하게 해요. 우리 사이가 딱딱한 상하관계도 아니고... 평어 정도는 섞을 수 있다고 보는데요.”

“웃기지 마...! 너랑 나는 딱딱한 상하관계여야 맞아....!"

“아, 그럼 주인님은 나네요?"

"이...!"

렌카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아아... 이젠 하루라도 저 모습을 안 보면 아쉽게 느껴지는데, 어쩌면 조교를 당하고 있는 건 렌카가 아니라 나일지도 모르겠다.

낄낄거런 나는 멀리서부터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다가오는 치나미를 발견하고 렌카에게 손을 흔들었다.

“농담이에요. 수고해요.”

그리고는 렌카가 무어라고 말하기도 전에, 치나미에게로 쪼르르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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