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화 > 진솔한 대화
“마츠다 군, 내가 인터넷에서 봤는데.... 연인끼리 진솔한 대화를 나누는 건 관계에 큰 도움이 된대. 혼자 해결하려고 하지 마. 알았지?"
혼자 해결하지 말라?
야동을 들킨 상태인 지금, 굉장히 중의적인 표현으로 들린다.
미유키의 집 앞에 차를 댄 나는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돌아보았다.
"갑자기 뭔 소리래?”
“아무것도 아냐. 나 들어간다? 스티커 사진 잘 보관해."
“그래. 가라.”
“도착하면 샤워할 거지? 1시간뒤에 영상통화 걸게."
“알았다."
미유키는 집 안으로 들어가기 전까지,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았다.
자주 보여주는 행동이지만... 얼굴은 평소와는 달랐다.
어딘지 모르게 불안해하는 기색이 담겨있었다.
마치 한창 호기심이 많은 어린 아들을 놀이공원 한복판에 홀로 떨어뜨리는 것처럼.
돌아가자마자 혼자 자기위로를 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미유키가 본격적으로 날 떠보려는 것 같은데... 마침 영상통화도 한다고 했겠다. 타이밍에 맞춰 야동을 한 번 틀어봐야겠다.
아니면 아예 연락을 씹고, 걱정하는 미유키가 직접 집으로 찾아오게 한 다음 딸딸이를 치는 모습을 보여줘볼까?
아니, 이건 너무 나갔다.
대딸까지 받은 마당이고, 날 향한 미유키의 사랑이 아주 깊은 상태라 뭘 하든 호감도가 깎이진 않겠지만....
거기까지 가지 않아도, 보는 것만 현장검거를 당하면 터놓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될 터다.
미유키를 고생시키는 것도 싫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샤워를 마치고 요 위에 노트북을 올렸다.
이후 쓰리섬 야동을 켜놓고, 가장 극적인 장면을 찾아 일시정지를 해놓았다.
여자 한 명이 뒤에서 남자의 가슴을 애무하고, 다른 한 명은 밑에 깔려 박히고 있는 부분.
이정도면 충분하지. 준비는 다 됐다.
우우웅!
그 상태에서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시간을 보내고 있던 나는, 미유키에게서 영상통화가 걸려오자 베개를 가슴에 끼우고 엎드런 상태에서 통화 버튼을 눌렀다.
곧이어 화면에 나타난 미유키의 민낯․
화장을 하지 않았음에도 빛이 나는 모습에 속으로 감탄한 내가 다짜고짜 물었다.
"샤워했냐?"
-응․ 근데 머리 제대로 안 말렸어?
"수건으로 대충 닦았는데.”
-내가 제대로 말리랬잖아. 두피 안 좋아지면 나중에 머리 빠진단 말이야.
“안 빠져."
-말 좀 듣지?
“잔소리하지 말고 카메라 조금 내려봐.”
-왜?
“빨리.”
의아해하던 미유키의 표정이 일변했다.
내가 가슴을 보려고 하는 걸 눈치챈 모양.
기다란 한숨을 내쉰 그녀는 엄한 낯으로 날 나무라려다가 멈칫했다.
-.... 마츠다 군. 혹시 요새 막... 성욕이 끓어오르고 그래?
“갑자기 뭔 소리래?”
-아니... 지금처럼 카메라를 내려보라는 것도 그렇고...
“내가 이런 적이 한두 번이냐?"
-그렇긴 한데... 눈빛이 평소보다 음흉하잖아. 장난으로 넘어가지 말고, 진지하게 이야기해봐.
지금이 타이밍인가?
나는 가슴에 껴있던 베개를 꺼내 몸을 옆으로 돌렸다.
휴대폰은 아래에서 위를 보게끔, 미유키가 보고 있는 화면 한쪽 구석에 내 어깨 바로 뒤에 있는 노트북의 화면이 3분의 1정도 나오도록 말이다.
"항상 그렇지 뭐."
-그래...? 음...
대답을 경청하며 무언가 생각에 잠겨있던 미유키의 눈동자가 한쪽 구석으로 향하는 게 보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 어?
내 안배를 알아차린 듯한 그녀의 입에서부터 낮은 탄성이 터져 나왔다.
무언가를 자세히 쳐다보려는 듯 눈을 좁게 뜨고 있는 그녀를 바라보던 내가 물었다.
“왜?"
-아... 그... 잠깐만...
미유키의 양쪽 어깨가 위로 올라가는 게 보인다.
양손을 전부 들었다는 증거. 화면을 캡처하려는 것 같다.
잠자코 미유키가
ㅣ 기다리 ! 나는,
-마츠다 군. 지금 뭐하고 있었어?
살짝 가라앉아있는 미유키의 목소리를 듣고, 그녀가 캡처한 화면을 확대했으리라고, 내가 뭘 하는지 확실하게 알아차렸을 거라고 직감했다.
“너랑 통화하잖아."
-아니... 그 전에 뭐하고 있었냐구.
이제 어떡할까.
계속해서 모른 척 얼버무리는 것이 나을까?
아니면 뻔뻔하지만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나을까?
두 선택지 중에서 내가 내린 결론은 타협이었다.
이 대화 자체가 어색한 듯이 굴자. 누가 봐도 나 뭐 했소... 하는 것처럼.
그리고 미유키가 이에 대해 언급하면 순순히 인정하자.
화면에 노트북이 나오지 않도록 자세를 바꾼 내가 대답했다.
“뭐 좀 봤는데.”
-뭘 봤는데?
"그냥 뭐...
-마츠다 군. 야동봤지?
이제는 인정해도 된다고 본다.
미간을 꿈틀한 나는 열린 노트북을 한 번 쓰윽 확인하는 것처럼 보이게끔, 아무런 말없이 고개만을 돌렸다.
그리고는 한 팔을 휘저어 노트북을 덮은 뒤, 다시 화면을 쳐다보았다.
“봤냐?"
-응... 봤어.
“민망하네..."
-아냐... 볼 수도 있지... 근데... 마츠다 군, 그런 거 좋아해?
"뭐가."
- 여자 두명 나오는 거...
“시끄러.”
은근슬쩍 시선을 피하며 단답형으로만 말하는 내가 웃겼는지, 미유키가 작은 실소를 터뜨렸다.
-괜찮으니까 제대로 말해봐봐. 아니면 전화로 말고, 내일 얼굴 맞대고 얘기해볼까?
얼굴 맞대고 얘기하면 더 쪽팔리지 않을까?
내가 아니라 네가.
“야동 한 번 들킨 거 가지고 선생님처럼 굴지 마라."
-뭐 어때? 혹시 내가 이런 얘길 하니까 창피해서 그래?
“창피는 무슨... 걸리니까 무안한거지."
-마츠다 군도 야한 얘기 자주 하잖아. 그러니까 얼른 말해봐. 그런 쪽이 취향이야? 좋아하는 거지?
좋아'만' 하는 거라...
저런 식으로 얘길 한다는 건, 실제로 할 의향은 없는 거지? 라고 묻는 것과 똑같은 듯 보인다.
홀러가는 상황을 보아하니 설득이 조금 어려워 보이는데... 당연한 일이다.
다른 방법을 써야하나?
아니, 미유키에게 야동을 들킨 건 얼마 되지 않았다.
아직 더 지켜봐야 맞다.
어차피 쉽게 풀리리라고 기대하지도 않았잖은가.
다짜고짜 화를 내거나 탐탁찮아하지 않고, 침착하게 남자친구의 취향을 물어오는 것만으로도 좋은 징조다.
그러니까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쓸데없는 소리는 그만하고 자자. 나 피곤하다.”
- 엄청 쌩쌩해 보이는데? 그리고 뭐가 쓸데없는 소리야? 이런 얘기를 해야 사이도 더 끈끈해지는 거지. 안그래?
“지금 너네 집 가서 덮치기 전에 조용히 해."
-와도 돼.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날 도발하는 미유키.
오랜만에 개구쟁이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구나.
피식한 나는 휴대폰을 가로로 세워놓고 이불을 턱밑까지 끌어올렸다.
“잔다."
-그래도 되는데, 통화는 끊지 마. 켜놓고 자.
“감시라도 하려고?”
-사람이 왜 그렇게 의심이 많아? 얼굴 보고 싶어서 그러는 거야.
"알았다."
**
“마츠다 군. 샤워하면서 그거 본 거 아니지?"
차에 타자마자 하는 얘기가 야동에 관한 것이라니.
아침부터 난리다. 나야 미유키가 이것에 대해 언급하면 언급할수록 좋지만.
“샤워하면서 어떻게 보는데? 노트북에 물 다 튀기라고?”
“마츠다 군은 어떻게든 봤을 것 같아. 이번엔 뭘로 봤어? 어제랑 똑같은 거?"
“안 봤어. 벨트나 매라.”
"응."
그렇게 아카데미로 간 우린 주차장에서 사이좋게 내렸다.
미유키는 수학여행 건으로 학생회실에 가야한다고 했기에, 나는 그녀의 가방을 들고 운동장을 가로질러 교실로 향하려고 했다.
그러다가 운동장 끄트머리 벤치에서 익숙한 색깔의 뒤통수를 발견하고 발걸음을 멈추었다.
남색의 기다란 포니테일.
저 헤어스타일을 한 사람은 렌카밖엔 없다.
이 추운 날씨에 저기서 혼자 뭘 하는 걸까?
씨익 웃은 나는 발소리를 죽이며 살금살금 다가가, 그녀의 사선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어보았다.
"....."
휴대폰으로 무언가를 보고 있다.
만화인데, 귀갑묶기를 당한 여주인공이 남주인공에게 채찍을 맞으며, 아래에서 물을 질질 흘리고 있는 장면이 눈에 띈다.
'저건...'
내가 익명으로 렌카와 쪽지를 나눌 때 추천해주었던 거다.
[주인님의 비밀]이라는 작품. 그녀는 지금 그걸 보고 있었다.
자신의 곁에 누가 있는지도 모른 채,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하면서까지 말이다.
몰입감이 있는 건가? 난 꼴리는 것밖에는 모르겠던데.
장난기가 든 나는 렌카의 바로 뒤까지 접근해 가만히 서있었다.
그러자 자신의 시야에 그늘이 진 것을 확인한 그녀가 고개를 돌렸다.
"안녕하세요?"
그 틈을 탄 내가 한손을 들어 인사를 건네자,
"흐아아악!?"
까무러칠 정도로 놀란 렌카가 온몸을 달싹였다.
다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가 물었다.
“무, 뭐야!? 네가 여긴 무슨 일로 와....?”
“익숙한 뒷모습이 보여서 인사하려고 왔죠. 뭐 보고 있었어요?"
"아, 알거 없어...!"
렌카의 반응을 보니, 왠지 미유키와 내 상황이 겹쳐지는 것 같은 느낌이다.
다만 그녀는 고의로 들킨 게 아니라, 진짜 숨기고 싶어 한다는 것이 차이점이겠지만.
"야한 거라도 봤어요?"
"야한 거는 무슨....! 내가 넌 줄 알아? 가방은 왜 두 개나 들고 있는 건데...?”
"하나는 미유키 거예요. 스승님은 어디 있어요?"
"매점에..."
“아... 그럼 부장은 여기서 스승님을 기다리고 있던 거고?"
“그런 거지... 얼른 네 갈 길이나 가...”
"부활동 시간에 봐요."
“그래... 가버려."
점심시간에 봐도 좋고."
“절대 안 볼 거니까 빨리 사라져."
길 잃은 개를 쫓아내는 것 마냥 손을 휘휘 젓는 렌카.
혹시 네 손에 들려있는 휴대폰이 켜져 있다는 걸 알고 있긴 하니?
확대까지 되어있는데... 당황해서 화면을 끌 생각도 못한 채로 만지작거리다보니 본의 아니게 저런 일이 일어났나보다.
여주인공 젖꼭지가 보이잖아.
“쉬는 시간에 교실로 찾아가도 돼요?"
"안돼."
"왜요?"
"왜긴왜야? 안 되니까 안 된다고 하는 거지. 이제 좀 가..!"
렌카와 시답잖은 대화를 나누며 시간을 끌던 나는, 그녀의 휴대폰 화면이 꺼지자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수고해요.”
특별히 배려해줬다.
그러니까 앞으로 말 잘 들으렴.
강제로 잘 듣게 하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