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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코미디를 망가뜨리는 법-155화 (155/313)

<155화 > 사이좋게 보는 야동

철컥.

창밖에서부터 대문이 열리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미유키구나. 얘는 집에 오려면 나한테 전화하라니까... 말을 참 안 듣는다.

그녀를 마중하기 위해 몸을 일으키려던 나는, 머릿속에 어떠한 생각이 스쳐지나가자 마음을 바꾸었다.

'자는척해봐야겠다.'

미유키가 이곳에 온 이유는 아마도... 분이 가시지 않아서겠지.

자동차 안에서 마지막으로 관계를 가졌을 때, 그녀가 한참 머뭇거리다가 겨우겨우 집으로 돌아갔던 것을 되새겨보면 확실했다.

스으윽...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사이 창문이 열렸다.

요와 이불 사이의 미세한 공간으로 스며들어와 온몸을 싸늘하게 만들고, 얼굴을 훑고 지나가는 찬바람.

오슬오슬한 척 몸을 떨며 이불을 여민 나는 저벅거리는 발소리가 화장실로 향하고, 이후 손발을 씻고 나온 미유키가 내 뺨과 가슴, 그리고 복부를 콕콕 찌르자 인상을 미세하게 꿈틀했다.

'뭐하는거지?'

마치 생소한 생명체를 건드려보듯 그저 찔러만 보고 있다.

일어나라고 애교를 부리는 건가? 아니다. 그럴 생각이었다면 아예 품에 쏙 안겼을 것이다.

일단 잠자코 기다려보자.

"마츠다 군... 일어났어...?"

조심스럽게 날 부르는 미유키.

내가 진짜로 자고 있다면 절대 듣지 못할 정도로 자그마한 목소리였다.

“마츠다 군... 자고 있는 거야....?"

또 다시 모기만도 못한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부른 그녀는, 곧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내며 자리를 옮겼다.

위이이잉...

이어서 들려오는 컴퓨터 쿨러가 돌아가는 소리.

이제야 미유키가 뭘 하려는지 알아차린 나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어 새어나오려는 웃음을 참아내었다.

아까의 행동은 노트북을 훔쳐보기 위해서, 내가 깊게 잠들었는지 아닌지 테스트를 한 거구나.

속으로 실실 쪼갠 나는 은근슬쩍 몸을 뒤척였다.

"으음..."

그러자 미유키가 헉 하며 숨을 삼켰다.

눈을 뜨지 못해 그녀가 뭘 하는지는 모르지만, 조용한 것으로 보아 몸이 굳어버린 듯했다.

그렇게 미유키를 골탕 먹인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따닥거리는 키보드 소리가 귀를 간질이자 텀을 조금 두고 실눈을 떠보았다.

모니터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다. 자신이 직접 가져온 듯한 유선 이어폰을 낀 채였다.

모니터에서 새어나오는 빛 덕에 미유키의 안색이 약간 상기되어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벌써 야동을 보고 있는 듯했다.. 쓰리섬 야동일 가능성이 높겠지?

통계에 의하면, 여성은 남성과는 달리 자신이 이성애자든, 동성애자든, 양성애자든 상관없이 남녀 모두에게 성적 흥분을 느낀다고 한다.

여자와 여자가 질펀하게 구르는 것을 보고도 흥분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것도 대다수의 여성들에게 나타나는 성향이란다.

신빙성이 높은 연구결과라고 하는데, 내가 뭐 통계에만 의존하려는 것도 아니고...

그냥 참고만 하면 좋을 듯하다. 희망 한 스푼이 추가된 느낌 정도로.

그래도 미유키가 영상을 보면서 흥미를 조금이라도 느낀다면 좋겠지.

"....음..."

화면에 눈을 둔 채로 짤막한 콧소리를 내는 미유키.

연신 자신의 입술을 핥으며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하고 있는데, 자신이 저런 소리를 낸 것조차 모르는 것 같았다.

이제 어떡할까.

여기서 일어나며 미유키를 깜짝 놀라게 하고 대화를 시도할까?

아니면 더 기다릴까.

내 선택은 후자였다.

지금 일어나버리면, 미유키는 야동을 자세히 살필 겨를이 없어진다.

그렇다고 해서 너무 오래 기다리면 질려할 가능성도 있으니까... 계속 미유키의 표정을 지켜보면서 타이밍을 잘 재자.

그나저나 대가리를 굴리기가 너무 힘들다.

난 지능캐가 아닌데.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야동을 보면서 자세를 몇 번이나 바꿔 앉은 미유키의 다리가 오므려지고...

그녀의 얼굴이 상당히 빨개졌을 무렵에, 나는 유령처럼 상체를 스르륵 일으켰다.

그리고는 무덤덤한 투로 말했다.

"뭐하냐? 지금?"

이에 인기척을 느낀 미유키의 고개가 내 쪽으로 홱 돌아갔다.

그리고,

"꺄아아아악!!"

그녀의 입에서 어마어마한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귀신이라도 본 사람마냥 기겁을 하며 뒤로 자빠지는데, 덕분에 노트북에 꽂혀있던 이어폰 줄이 팽팽해지면서 툭 하고 빠졌다.

[아앙...! 하아앙...]

스피 에서 고스 새어나와 방 울리는 야동 배우의 신음.

설마 이어폰이 빠져버릴 줄은 나도 몰랐는데, 놀란 마음이 가시면 굉장히 뻘쭘해하겠지?

그러게 무선 이어폰을 갖고 오지 그랬어.

**

“하아...”

따뜻한 녹차를 들이켠 미유키의 입에서 나온 노곤한 한숨.

그녀를 빤히 쳐다보고 있던 내가 물었다.

“이제 괜찮냐? 좀 진정됐어?"

"......응."

“뭘 그리 놀랄 게 있다고....”

"소리도 없이 일어난 사람을 봤는데 어떻게 안 놀라...?”

"이어폰을 끼고 있으니까 그렇지. 대체 왜 나 몰래 노트북을 보는 건데?”

"......"

대답하지 않는 그녀.

입이 세 치나 튀어나온 모습이 귀엽다.

“비밀번호는 어떻게 알았냐?”

“.... 힌트 보고 풀었는데...”

“그걸 풀었다고?"

“대단하다. 대단해."

비꼬는 듯한 말투에 빈정이 상했을까?

미유키가 입을 삐죽 내밀더니, 컵을 탁상 위에 올려놓고 내 허벅지를 꼬집으려 했다.

그러다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고개를 가로저으며 자신의 무릎 위에 손을 올려놓았다.

"저... 마츠다 군."

“미안해... 함부로 봐서...”

“평생 비밀로 할 수 있었던 것도 아니고... 상관없어."

대수롭지 않은 듯한 내 모습에 안도했는지, 미유키의 눈이 지그시 감겼다 뜨였다.

“근데 있잖아.... 저번에 영상통화 할 때도 그렇고... 따로 폴더까지 만들어둘 정도로 여자 두 명이랑 하는 영상을 좋아해....?”

두 명뿐이겠어? 세 명, 네 명이랑 하는 것도 좋아해.

아니, 하렘은 다 좋아.

미유키의 목소리는 무척 진지했다.

이번만큼은 얼버무리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한 내가 뒷머리를 벅벅 긁으며 대답했다.

“아니 뭐... 여러 장르를 보긴 하는데, 그쪽을 더 좋아하긴 하지....

"그... 지, 진짜 자매... 그런 게 취향이야.....?"

“그건 배우들 얼굴이 예뻐서 그냥 받은 건데.”

“그래....?”

미유키의 얼굴색이 약간이나마 펴졌다.

불행 중 다행이라는 표정. 자매물에 관심이 없다 하니 조금 안도한 듯했다.

사실 자매덮밥도 취향인데... 카나와 미유키가 아니라면 관심은 없지만.

현 상태에서 이런 대화를 나누기보다는, 분위기를 환기시킨 후에 다시 하는 게 맞다고 본다.

그리 판단한 나는 미유키를 뒤에서부터 끌어안고, 그녀의 어깨 위에 턱을 살포시 대었다.

“아주머니한테는 뭐라고 하고 왔어?"

그에 키가 자신의 허리를 두른 내 팔에 손을 올려놓았다.

"그냥... 친구 집에서 잔다고..."

“그랬더니 뭐라셔?"

"......"

미유키의 고개가 아래로 약간 숙여졌다.

딱 보니 미도리가 짓궂은 말을 했구나.

또 안전을 운운했으려나?

"자고 갈 거지?"

뺨끼리 맞닿을 정도로 바짝 가까이 붙은 내 물음에, 미유키가 입을 우물거리더니 대답했다.

"...응..."

"밥은?"

"먹고왔... 흐의...!?”

말을 하다 말고 움찔하는 미유키.

내 손이 자신의 아랫배를 지나 쑤욱 내려올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듯한 반응이었다.

미유키의 가랑이 사이는 조금 젖어있었다.

이게 오늘 나와의 관계가 끝난 후에도 남아있었던 여운으로 인한 건지, 아니면 야동으로 인한 건지는 잘 모르겠다만... 좋은 징조이긴 하다.

분위기가 꽤나 야릇해졌음을 확인한 나는 재차 야동을 언급했다.

"저거 보면서 흥분했어?"

“그, 그런 적 없어...! 멋대로 넘겨짚지 마...!"

"그래? 그럼 이건 뭐야?"

가랑이 사이를 스윽 슥 만지며 미유키를 자극하자, 한 차례 짧은 경련을 일으킨 그녀가 내 손을 덥석 붙잡았다.

다리를 바짝 오므려 팔을 묶어놓은 그녀가 고개를 돌리고는, 내 뺨에 자신의 입술을 거의 맞대다시피 했다.

"하, 하지 마..."

말로만 하는 만류임을 알고 있었던 나는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

“잠깐 같이 봐볼까?”

“뭘...?"

“네가 보고 있던 거."

“미, 미쳤어?"

“저번에 네가 분명 연인끼리 진솔한 대화를 나누는 건 관계에 큰 도움이 된다고, 혼자서 해결하지 말라고 말하지 않았나?"

그에 할 말이 없어진 미유키의 입이 다물어졌다.

잠깐 콧바람을 훅훅 내뱉던 그녀가 입을 연 건, 내가 그녀의 민감한 부위를 꾸욱 눌렀을 때였다.

“으힉... 그건 대화... 대화를 말하는 거였어.....

“같이 보면서 대화하면 되잖아."

“여, 영상통화를 했을 때는 엄청 창피해했으면서 지금은 왜 이러는 건데...?"

“들켜서 막나가는 거지."

농담 섞인 투로 미유키를 놀린 나는 탁상을 당겨와 노트북을 열었다.

이후 미유키더러 직접 잠금을 풀라는 뜻으로 화면을 턱짓했다.

".... 하아..."

이런 내 의도를 알아차린 미유키가 잠깐 머뭇거리더니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는 느릿하게 손을 놀려 비밀번호를 입력했다.

그대로 풀려 바탕화면이 나타난 노트북.

나는 망설임 없이 터치패드를 움직여 쓰리섬 야동이 그득한 폴더로 들어갔다.

"볼거지?"

"......"

“뭐 볼래?”

"......"

“내가 골라?"

“마, 마음대로 해... 이 바보야....!"

성을 내며 내게 결정권을 넘기는 그녀.

의외로 흥미가 동한 것 같은 모습이다.

킥킥거린 나는 [특별] 폴더 안에 있는 수많은 제목 중에서, 다소 소프트한 야동을 틀었다.

다짜고짜 쓰리섬을 하는... 아마추어나 일반인이 만든 영상이 아니라, 스토리까지 나름 탄탄하게 있는 것으로 말이다.

처음엔 난색을 표하던 미유키는, 막상 영상이 시작되자 침을 꼴깍 삼키고는 내 손목을 잡은 자신의 손에 힘을 꽉 주었다.

내가 어떤 방법으로 야동을 보는지 궁금해선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보는 거야..? 남자들은 막... 넘기면서 본다던데...”

“그건 또 어떻게 알았냐? 누가 알려줬어?"

"이, 인터넷에서...”

또 인터넷이야? 대딸도 그걸로 배워놓고선...

너답다, 너다워.

“너는 어떤 식으로 봤는데?”

“....그냥... 넘기다가 조금 궁금한 부분이 있으면 틀어놓고 계속 봤어...”

순순히 자신의 감상방법을 실토하는 게 웃기다.

"지금은 같이 보는 거니까, 그냥 넘기지 말고 내용이 어떤지 파악해보면서 보자."

“아, 응... 그, 그런데 내일 아카데미 가야하는데...

“한 편만 보고 자면 되지."

보고 나면 순순히 잘지, 아니면 격렬하게 한 판 할지는 모르겠지만.

"알았어... 그리고 거기 만지지 마...”

“왜 이렇게 하지 말라는 게 많아? 독재자냐?"

"아니이... 집중 좀 하게... 자꾸 이러면 무슨 내용인지 모르잖아...”

이게 무슨 영화인 줄 아냐?

뭐... 러닝타임은 영화랑 비슷하긴 하네.

알겠다고 대답한 나는 미유키와 사이좋게 야동을 감상했고, 평소에 볼 때와는 전혀 다른 맛을 느꼈다.

넘기면서 보는 것보다 더 이입이 잘 되는 느낌이다.

감수성이 풍부한 미유키는 나보다 더하겠지?

부디 흥미를 느꼈으면 좋겠다.

미유키의 이해심이 조금이라도 모자랐다면, 나와의 관계가 여기서 아주 약간만 더 멀었다면 이렇게 함께 야동을 시청하는 건 꿈도 못 꾸고, 쓰리섬을 유도하기 위해 훨씬 어려운 길을 가야했을 거다.

아예 포기해야했을지도 모르고

그러니 널따란 마음씨를 가진 그녀에게 감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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