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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코미디를 망가뜨리는 법-157화 (157/313)

<157화>누굴 섭외할 건데?

“춥군요.”

부실 바깥을 청소하고 있는 내게 다가온 치나미의 말.

기다란 봉을 좌우로 움직이며 바닥을 쏠던 내가 고개를 돌렸다.

“네, 춥네요.”

"아주 추워요."

목소리 톤이 치나미치고는 일정한데, 약간 화가 난 것 같다.

빗자루질을 멈춘 나는 치나미를 똑바로 내려다보았다.

"왜그러세요?"

"흠. 조금 서운해서요.”

“어떤 점이 서운했을까요?"

“저번 주의 취소된 약속을 다시 잡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들어서요. 물론 제가 먼저 미루자고 하긴 했지만, 이에 대한 언급은 일언반구도 없이 그냥 넘어가려 하시는 것 같아 마음이 편지 않네요."

마사지를 말하고 있구나.

그때 이후로 이와 관련한 대화를 나눈 적이 없어 불안했나보다.

그런데 우리 치나미... 마사지를 받지 않으면 살 수 없는 몸이 되어가는 거야?

“스승님. 그건..."

"스승의 마음을 몰라주는 후배님께서 제자로서의 역할을 잘 할 수 있을까요? 저는 크나큰 의구심이 드네요. 그렇다고 후배님을 파문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 그냥 그렇다구요.”

이러다간 홍이라며 코웃음까지 치겠네.

귀여운 치나미의 비판에 살웃음을 터뜨린 내가 말했다.

“마사지가 받고 싶었나 봐요?"

"흠흠..."

“말을 하지 그랬어요. 지금 잠깐 해줄까요?”

"그런 마사지가 아니라, 오일을 이용한 노곤노곤 마사지를 말하는 거였어요."

언제는 콩닥콩닥 마사지라고 하더니.

“그렇군요. 이쪽으로 와볼래요?”

나는 치나미를 데리고 도복 건조실로 향했다.

펑퍼짐한 남색 검도복이 걸려있는 빨랫줄.

그 사이로 치나미를 데리고 간 나는, 정전기가 올라와서인지 위로 솟은 그녀의 머리카락을 잘 정리해주었다.

그리고는 나긋한 투로 치나미를 달랬다.

“마사지는 당연히 잊지 않고 있었습니다. 언제가 좋을지 고민하고 있었어요.”

“.... 그런가요?"

"예, 물론이죠."

“조바심이 나서 말씀드린 건 아니에요.”

"알고 있습니다."

조금만 기다려주렴. 어떻게든 미유키에게 승낙을 받아낼게.

그나저나 러브호텔 주인은 함박웃음을 짓고 있겠지?

호구 한 명이 마사지 컨셉과 감옥컨셉, 이 두 개의 룸을 잡아놓은 채로 가지도 않고 있으니까.

치나미의 뒤로 돌아간 나는, 방긋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이후 손가락에 약간씩 힘을 주며 마사지를 해주었다.

“뭘 하시는 건가요...! 저는 지금 마사지를 받고 싶지 않아요..!”

새침하게 고개를 홱홱 돌리며 싫은 척을 하던 치나미는,

"으음..."

내가 몇 차례 뭉친 근육을 풀어주기 시작하자 기분 좋은 콧소리를 내뱉었다.

힘을 전부 빼고 내 손길에 온몸을 맡기는 건 덤.

그런 치나미의 어깨를 적당히 주물러준 나는, 손을 살며시 내려 그녀의 엉덩이를 토닥였다.

그러자 잔뜩 나른해져있던 치나미가 의문 섞인 투로 물었다.

“응앗... 거기는 왜 자꾸 건드리시는 건가요...?"

"버릇입니다."

“아주 나쁜 버릇이군요.. 저라서 용서를 해드리는 거지, 다른 사람이었다면 큰일이 났을 거예요...”

미유키, 너, 렌카, 그리고 히요리...

이렇게 딱 네 명한테만 할게.

헌데 만진다는 것 자체엔 거부감이 안 드나보네? 자주 해줘야지.

“알겠습니다. 어깨는 여기까지만 해드릴게요.”

"으응..? 이게 끝인가요..?"

아쉬움을 토로하는 치나미.

그녀의 등허리에 손을 대어놓고 원을 그리며 쓰다듬은 내가 말했다.

“슬슬 악당이 올 때가 돼서요.”

"악당...?"

치나미의 고개가 15도 각도로 슬쩍 틀어지는 찰나,

덜컥.

건조실 문이 열렸다.

"치나미, 여기 있지?"

오지랖이 서려있는 렌카의 목소리를 들은 나는 치나미를 내려다보며 씨익 웃었다.

"봤죠?"

그에 눈이 두 배는 더 커진 치나미가 자그맣게 탄성을 터뜨렸다.

“.... 어떻게 아셨어요....?"

“올 것 같더라고요.”

"점쟁이신가요...?"

“그럴 지도 모르죠."

“세상에..."

진지하게 무속을 믿는 눈치다. 이래서 난 치나미가 좋아.

렌카는 시야에 네가 없으면, 나한테 이상한 짓을 당하는 줄 알고 엄청 불안해하니까 이쯤 올 거라고 예상을 한 것뿐이란다.

"치나미...! 나 좀 도와줄래?"

빨랫줄에 널려있는 도복 사이로, 딱 달라붙어있는 우리 하반신을 발견한 렌카가 다급하게 다가오는 것이 보인다.

마지막으로 치나미의 등허리를 톡톡 두드린 나는, 얼굴을 가린 도복을 걷어내며 그녀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부장."

윽..!"

못 볼 걸 봤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는 렌카.

내 소원이 다 쓰인 상황이라 요즘 편해졌는지 표정관리를 안 하려고 하는데, 그러다가 혼난다 진짜.

**

"아침부터 얼굴색이 안 좋더니... 대체 무슨 일이야?"

주차장 앞. 학생회 모임을 마치고 온 미유키를 본 테츠야의 걱정이었다.

눈 밑이 퀭해있던 미유키가 힘없는 미소를 지었다.

"그냥... 아침에 잠깐 피곤한 일이 있어서...."

"어떤 거?"

"그런 게 있어.”

다정함 속에 냉정함이 들어있는 말투였다.

더 이상 캐묻지 말라는 뜻이 담겨있는.

하지만 우리의 눈치 없는 테츠야는, 미유키의 속내를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뭐야... 요즘 비밀이 많아진 느낌이다? 우리 사이에?"

철없는 투정. 애새끼가 따로 없다.

15년 지기 소꿉친구면 미유키의 미세한 표정변화정도는 알아야하지 않나?

근데 저놈은 제 스스로의 감정만 챙기느라 그런 건 신경을 쓰지도 않고 있다.

네가 그러니까 미유키도 슬슬 거리를 두려고 하는 거야.

오랜만에 특별히 태워다주려고 하는데 갑자기 마음이 바뀌려고 하네.

지금 나와 미유키는 중요한 시기를 보내고 있다고.

너 같은 새끼가 끼어들 자리 따윈 없으니까, 조용히 얻어 타고 돌아가라 씨발아.

“이건 엄청 개인적인 일이라서 그래. 미안.”

테츠야를 달래주는 미유키.

예민한 상태일 텐데도 무척 상냥하다.

만약 테츠야가 저 질문을 던진 사람이 미유키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면 지금쯤 분위기가 조금 싸해졌을지도 모르겠다.

미유키가 더 곤란해 | 전에, 나는 두 사이에 끼어들었다.

"가자. 춥다."

“아, 그래..."

그렇게 떨거지를 빨리 떨궈주고 미유키의 집으로 돌아가는 길.

서행을 하고 있는 내 팔을 애정 어리게 툭 친 그녀가 물었다.

"웬일이야? 마츠다 군이 테츠야 군을 먼저 태워준다고 하고?”

왜긴. 네가 좋아할만한 일을 해서 호감을 더 사려고 그러지.

이러다보면 너도 내가 좋아할만한 일을 해보자고 하지 않을까?

물론 테츠야를 태워다주는 정도로는 가능성이 희박한 건 아는데, 지금의 나로선 뭐든 해봐야 맞지.

“뭐하냐고 물어봤는데 그냥 집에 간다더라고. 오늘 날씨가 어제보다 더 춥기도 해서, 데려다준다고 했어.”

"엄청 기특하네...?"

“의외라는 표정이다? 난 원래 그렇게 나쁜 놈이 아니라고.”

“말이 잘못됐잖아. 원래 나쁜 사람이 맞지만, 서서히 착해지고 있는 거지."

"농담이냐? 진담이냐?"

"반반이라고 하자."

장난기 어린 말투로 농담을 건넨 미유키는, 차가 자신의 집에 도착하자 날 빤히 바라보았다.

"마츠다 군."

“왜..

“오늘도 마츠다 군 집에서 잘까?"

“아주머니가 안 된다고 했다며. 그럼 안 되는 거지."

"아침엔 자고 가라더니?"

“아주머니는 이제 네가 우리 집에서 잔다는 걸 아시잖아. 남자 집에 단둘이 있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뻔히 알고 계셔서, 무리하지 말라고 그런 말을 하셨을 테니까... 어쩔 수 없지. 솔직히 아쉽지 않다는 건 거짓말인데, 밉보이면서까지 고집을 부리고 싶지는 않다."

“오늘 왜 이렇게 생각이 깊지? 막 칭찬해주고 싶어지네...”

칭찬은 쓰리섬으로 주면 안 되겠니?

"내리기나 해라."

“싫어. 더 얘기할래. 집에 가면 혼자서 할 것도 없어."

“그럼 그러든가.”

“돌아가면 또 그거 볼 거야?"

"안봐."

“정말? 야한 거 보려고 노트북 산 거 아니야?"

“내가 무슨 야동에 미쳐있는 줄 아냐?”

그 말에 미유키가 무안한 웃음을 작게 터뜨리더니, 돌연 표정을 진중하게 바꾸었다.

“물어보고 싶은 게 생겼어."

“어제부터 왜 이렇게 긍금한게 많아? 뭔데?”

짧은 감탄사를 내뱉은 미유키가 자신의 입술을 핥았다.

진지해질 타이밍인가?

그 도전, 받아주마. 어디 해봐라.

잠깐 생각에 잠겨있는 채로 아무런 말이 없던 그녀가 조심스레 운을 뗐다.

"만약 마츠다 군이 나랑 다른 여자랑 할 기회가 생겼어, 그러면 그 다른 여자는 누굴 섭외할거야?"

어제 물어봤던 것과 비슷한 주제지만, 질문의 농도는 더 진하다.

점점 마인드가 열리려 하는 거야? 그렇게 생각해도 되겠니?

“갑자기 왜 그런 질문을 하고 그래?”

“실제로 하려는 것도 아닌데 뭐 어때. 여자친구가 남자친구의 취향을 자세히 파악해보려는 게 잘못은 아니잖아. 얼른 말해봐. 되도록이면 진지하게."

학구열이 높은 미유키답다.

이번에도 대답을 잘해야 한다. 어떻게 말해야 미유키의 기분을 살필 수 있을까?

기다란 콧바람을 내쉬며 깊은 고민을 한 나는, 뒷목을 살살 긁으며 고개를 들었다.

“네가 아는 사람을 부르는 게 낫다고 봐.”

“마츠다 군은 그 사람을 몰라도 상관없어? 여자면 누구든지 좋은 거야?"

왠지 말에 가시가 박혀있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모골이 송연해진다.

어쩌면 미유키는 내 속셈을 모조리 알고 있는 게 아닐까?

날 갖고 노는 거야? 그런거니?

“그게 아니라, 내가 알고 넌 모르는 사람을 불러버리면 엄청 어색해할 게 뻔하잖아. 게다가 그런 상황이 오게 된다고 가정하면 네 마음은 안 좋은 쪽으로 심란할 텐데, 면식이 있거나 친한 사람이면 심적으로 그나마 안정될 것 같아서 그렇게 대답했어.”

“그래....? 날 위해서 그런 대답을 했다 이거네?"

"그 상황을 만들어주는 주체가 너니까, 입장을 충분히 고려하고, 배려해야지."

“마츠다 군이랑 내가 아는 사람을 부르는 건 별로야?”

별로일 리가 있겠냐? 내가 목표로 하고 있는 바인데... 너무 좋아.

둘 중 한 명이라도 모르는 사람이랑은 할 생각조차 없었어.

사랑해, 미유키. 개처럼 발가락 핥으라면 핥을게.

“물론 그게 가장 좋긴 해.”

“우리 둘이 아는 사람 중에서 그쪽이 취향인 사람이 있을까?”

그건 내가 알아서 할게. 넌 걱정하지 않아도 돼.

"거기까진 생각을 못해봤네. 이제 됐냐?”

"일단은 됐어."

저 '일단'이라는 부사가 마음에 걸린다.

내가 내놓은 대답은 최선이었을까? 아니었을까?

알려주면 좋겠지만... 미유키는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인다.

“가기 전에 해줄 거 없어?"

눈을 게슴츠레 뜨며 입술을 내미는 미유키.

뽀뽀를 해 달라 하는 걸 보면 기분이 상한 건 아닌 듯 보인다.

다소 안도한 나는 상체를 쭉 빼며 그녀가 원하는 애정표현을 해주었다.

그에 만족스런 미소를 지은 미유키가 차에서 내리더니, 문을 닫고 손을 흔들었다.

마주 인사를 해주며 시트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있던 나는, 그녀가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사이드 브레이크를 풀었다.

하루하루 피가 말리는 기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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