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러브 코미디를 망가뜨리는 법-158화 (158/313)

<158화 > 장소는 어디가 좋아? 처음엔 어떡할거야?

다음날, 점심시간.

미유키의 심부름을 하러 매점으로 가면서, 나는 애니쉐어 리뷰 란에 올라온 글을 살피다 무언가를 발견하고 눈을 빛냈다.

[주인님의 비밀]

[새로운 지식들을 많이 알 수 있었던 작품이었습니다. SM에 관심이 있는 커플이라면 보셔도 좋을 듯합니다.]

[별점 : ★★★☆☆]

[추천 : 104] [비추천 : 31]

렌카의 커뮤니티 닉네임인 [달려라 이노쨩]이 남긴 리뷰.

그것을 읽어본 내 코에서 짧은 바람이 훅 하고 새어나왔다.

리뷰를 안 남길 줄 알았는데 남겼네?

별점은 렌카의 커뮤니티 성향이 순하고 자비로운 걸 감안하면 낮은 편.

혹시 나와의 감금 플레이나 메이드복 플레이가 생각나서 별점을 낮게 준 건가?

리뷰를 올린 시간은 20분 전. 비추천 비율은 꽤나 높았다.

BDSM 성향은 호불호가 많이 갈리니까 어쩔 수 없겠지.

매점에서 젤리를 비롯한 먹거리를 사고 돌아오며, 나는 렌카에게 어김없이 쪽지를 남겼다.

[나름 명작으로 통하는 만화인데 고작 3점이 말이 돼요? 진짜 만알못인가?]

점심시간이 다 끝나가는 시간이라 휴대폰을 볼 수 있었을 텐데도, 답장은 오지 않았다.

렌카가 다른 일을 하고 있거나, 아니면 어그로라 생각하고 무시를 하려는 것 같다.

[승부욕 생기게 하네요. '여자친구 조교일지'라는 만화책 한 번 봐보세요.]

이어서 쪽지를 보내놓은 나는 교실로 돌아와, 친구들과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미유키의 책상 위에 사놓은 것들을 올려놓았다.

"됐냐?"

“웅, 고마워."

"심부름 좀 그만 시켜라."

“마츠다 군은 움직이지 않으면 매번 자려고 하잖아. 곧 오후수업인데 졸면 안 되니까 어쩔 수 없었어."

"네가 가기 귀찮았던 건 아니고?"

"그런 것도 있긴 했지."

"핑계는..."

투덜거린 나는 의자에 철퍼덕 주저앉아 몸을 쭈욱 늘어뜨렸다.

그러자 젤리 봉지를 뜯던 미유키의 미간이 좁혀졌다.

"똑바로 앉아야지 뭐하는거야?"

“하아.... 알았어.”

그놈의 쓰리섬이 뭐라고... 어쩌다 이런 호구가 된 것이냐, 마츠다 켄.

물론 미유키를 위해서라면 심부름이든 뭐든 다 할 수 있긴 하지만... 처량하다, 처량해.

못마땅한 듯 한숨을 내쉬긴 하지만 얌전히 말을 듣는 내 모습에, 빵녀가 빵을 먹다 말고 픽 하는 웃음을 터뜨렸다.

부반장은 몰라도 너만큼은 안 그럴 줄 알았는데... 실망이 크다.

지금 먹고 있는 슈크림빵에 있는 크림, 자지에 발라서 빨게 시킨다?

"웃기냐?"

"콜록! 미, 미안..."

“장난이야. 많이 웃어라."

**

“마츠다 군.”

차 안에서 창밖을 바라보던 미유키의 부름.

그녀의 목소리가 진중해져있음을 알아차린 내가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왜.”

장소는 어디가 좋아?"

어제 질문의 연장이구나.

속으로 쾌재를 부른 나는 미유키의 동네 골목으로 들어서며 차를 아주 천천히 몰았다.

“뭐가?"

“장소 말이야. 장소."

"그러니까 무슨 장소."

일부러 모른 척 천진난만한 표정을 짓고 있자, 미유키가 분통을 터뜨렸다.

“아 진짜...! 그거 있잖아....! 어제 내가 물어봤던 거..!”

자신의 입으로 쓰리섬과 관련된 얘길 하기엔 창피했나보다.

이 정도면 적당하다고 생각한 내가 말했다.

“여자 두 명이랑 하게 되면 어느 장소가 좋냐고 물어보는 거냐 지금?"

".... 맞아."

“대체 그게 왜 궁금한데?"

“아 얼른 얘기해봐."

오늘도 이러는 걸 보면, 확실히 흥미가 돋긴 했나보다.

만세라도 부르고 싶지만 참자. 아직 답이 나온 건 아니잖은가.

"진지하게 해야 되냐?"

“응.”

어제처럼 머리를 빠르게 굴린 나는 여전히 전방을 주시하며 잠깐 텀을 두었다.

그리고는 물었다.

“여자는 섭외했다고 쳐?”

"응."

"그 여자는 우리가 아는 사람이야? 아니면 네가 아는 사람이야?"

"음... 거기까진 생각을 못해봤는데. 우리가 아는 사람이 가장 좋다고 했으니까... 그걸로 가정해서 대답해볼래?”

“그러면 호텔이 나을 것 같은데.”

“왜?”

“섭외한 여자는 우리 집을 모르니까, 우리가 익숙한 듯 행동해버리면 혼자 붕 뜨는 느낌이라서 움츠러들 거야. 셋 다 낯선 곳에서 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싶어."

“붕 뜨는 느낌? 그건 호텔이든 마츠다 군의 집이든 거기서 거기 같은데? 어차피 그 여자는 나와 마츠다 군만큼 가깝지는 않을 거잖아. 차라리 배려해주면서 행동하는 거면 몰라도."

장소와 더불어 서로의 관계에 대해서까지 생각하고 있었구나.

가까워지면 되지, 왜 그렇게 선을 긋니.

치나미나 렌카가 서운해 하겠다. 히요리도 물론이고.

“일 리 있네. 근데 막상 상황이 닥치면 셋 다 어색해서 주뼛대기만 하지 않을까? 우리가 아는 사람 중에서 그쪽을 경험해본 사람이 있을 가능성은 희박하니까.”

“마츠다 군이 어떻게 하라고 말해주면 되잖아. 많이 보니까 나나 그 여자보다는 잘 알 거 아니야."

"그렇게 많이는 안 보는데.”

"거짓말하지 마. 바보.”

콧방귀를 끼는 미유키.

악의가 전혀 없는 말투로 쌀쌀맞게 구는데, 갑자기 막 꼴린다.

"그리고 야동에서 나온 거랑 실제로 하는 건 다르지. 야동은 자극적인 면을 강조하는 거니까....”

“실제로는 더 순할 거다?"

"그런 거지.”

“그렇구나...”

“근데 나랑 대화하는데 왜 딴 짓을 하고 있냐?”

그 말마따나 미유키는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던 양손 엄지를 우뚝 멈춘 그녀가 어색하게 웃었다.

“메모하고 있었는데....”

"뭘? 나랑 얘기한 걸?"

"응... 안돼?"

머릿속에 담아둘 수 있었을 텐데도 확실하게 기억하기 위해서 메모를 남길 정도라...

미유키의 학업성적이 우수한 이유가 여기 있었구나.

하긴, 공부 좀 한다는 사람치고 노트필기를 안 하는 사람은 없지.

미유키의 저러한 반응은 내게 있어 아주 좋은 징조.

안 된다고 할 이유는 전혀 없다.

“상관없는데, 집에 들어가서 하든가."

그 말에 미유키가 창밖으로 눈을 돌렸다.

자신의 집이 눈앞에 있음을 확인한 그녀가 안전벨트를 풀었다.

"잠깐 기다려줄 수 있어?"

“왜?”

"나 속옷만 챙기고 다시 오려구."

우리 집에서 잔다는 소리였다.

고개를 갸웃한 내가 물었다.

“오늘 목요일인데?"

"알아."

“아주머니한테는 뭐라고 말하려고?"

"그건 내가 알아서 할게. 마츠다 군은 괜히 엄마한테 미안해하지 마."

꾸중을 들을 걸 감수하고 우리 집에서 자려는 의지가 보이는데, 이 쓰리섬에 관한 주제 토론의 흐름이 끊기길 원하지 않는 모양이다.

왠지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느낌.

두근거리는 마음을 간신히 억누른 나는, 사이드 브레이크를 채워놓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

[봉사해라.]

[이, 이대로요..?]

[빚을 탕감해주는 대가로 명령은 뭐든 듣기로 하지 않았나?]

[읏...]

다소 어색한 대화가 오고 가자, 젊은 여자배우가 중년 남자배우의 옷을 천천히 벗기기 시작했다.

그녀의 뒤에는 다른 여자배우가 자신의 한쪽 팔을 붙잡은 채, 매우 어색한 표정연기를 하며 온몸을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노트북의 작은 모니터를 통해 그 장면을 보고 있던 미유키가 돌연 픽 하는 웃음을 터뜨렸다.

“이번에 나오는 사람들은 연기가 되게 어색하네? 배우면서...

우리는 지금 집의 모든 문을 닫고, 난로 앞에서 야동을 감상하고 있었다.

유부녀 두 명이 장을 보고 돌아오다가, 부자의 차를 받아 삼중사고가 나면서 빚을 지게 되는 스토리.

흔히 볼 수 있는 NTR물이었다. 쓰리섬을 곁들인 건 희귀하지만 말이다.

“연기 배우가 아니라 야동 배우니까 그럴 수밖에 없지. 섹스만 잘하면 그만 아니야?"

노골적인 말에 움찔한 미유키가 헛기침을 했다.

“그렇긴 한데...”

미유키가 말끝을 흐리는 사이, 여자배우 두 명이 엎드린 채로 남자의 성기 앞에 모였다.

서로의 뺨이 딱 달라붙을 정도로 밀착한 장면.

이를 본 미유키가 화제를 돌렸다.

“여자 둘이랑 하는 영상은 초반에 항상 저런 게 나오더라...”

저번과 비교하면 목소리에 부끄러움이 덜한데, 적응을 꽤나 한 것 같아서 기쁘다.

“그러냐? 난 몰랐는데.”

“넘기면서 보니까 그렇지. 마츠다 군은 실제로 하게 되면 처음에 어떡할 거야?"

"이것도 진지하게 대답해야 되냐? 그렇게 궁금해?"

“응. 잠깐만... 나 메모 좀..."

내게 안겨있던 미유키가 재빨리 휴대폰을 손에 들고 날 올려다보았다.

시작하라는 뜻. 헛웃음을 친 나는 무언가를 생각하는 척 눈동자를 위로 굴리면서 입을 열었다.

“이건 진짜 모르겠다. 닥쳐봐야 알 것 같아."

“상상하면서 계획을 세워보지도 않았어?"

“그런 건 안 해봤는데. 영상에 집중하느라...”

“그러면 지금 생각해봐봐.”

“음... 일단은 세 명이서 서로의 몸을 만지게끔 하고 싶네.”

미유키의 뺨이 조금 더 불그스름해졌다.

머릿속으로 그려보고 있는 모양이었다. 미유키 자신과 나, 그리고 다른 여자가 서로의 성감대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모습을.

“... 그 다음에는?”

“그 다음엔... 글쎄, 원하는 게 너무 많아서 순서를 못 정하겠다.”

나는 말을 하면서 눈꺼풀을 부르르 떨었다.

내 얼굴에 순간적으로 스쳐지나가는 몽롱한 표정.

그것을 눈치챘는지, 미유키의 콧등에 주름이 졌다.

"아닌척하더니 하고 싶긴 한가보네?”

“네가 상상해보라며.”

“마츠다 군은 나랑 같이 있는 거 좋아해?"

저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미유키는 지금 자신과의 성관계가 어떤지를 묻고 있는 거다.

"엄청 좋아하지."

웃음기 하나 없는, 망설임조차 없는 대답에서 진심이 느껴졌을까?

미유키가 자신의 등을 내 가슴에 더욱 붙였다.

그리고는 이불로 시선을 두며, 애꿎은 보풀을 툭툭 뜯어내었다.

“나도 좋아해...”

긍정적인 반응이 올 것 같다고, 허락을 받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고 느껴진다.

과연 내 감은 틀리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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