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화>콩닥콩닥 마사지 시즌3 #2
미유키를 데려다주고 아카데미로 돌아온 나는, 치나미에게 무언가를 말하는 렌카를 발견했다.
표정이 심각한 걸 보니 치나미가 나와 단둘이 어딜 갈 거라고 말한 모양인데....
치나미는 그런 렌카의 열변을 진지하게 들어주는 기색을 보이다가, 내가 멀리서 다가가자 환한 미소를 지으며 한손을 흔들었다.
“후배님...! 여기에요!"
그녀에게 마주 손을 흔들어준 내가 물었다.
“무슨 얘길 하고 있었어요?"
"아... 그게..."
치나미가 내게 설명을 해주려는 찰나, 렌카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치나미. 화장실 가고 싶다 하지 않았어? 지금 다녀와. 대회 관련으로 마츠다랑 잠깐 얘기할 게 있어."
“앗, 네."
부실 안으로 들어가는 치나미.
그녀의 뒷모습을 보고 있던 렌카는, 치나미가 화장실로 사라지자 부실 문을 닫았다.
그리고는 자신의 가슴 앞으로 팔짱을 꼈다.
"치나미한테 마사지를 해준다고?"
솔직하게 말했구나.
역시 두 사람의 우애는 깊다.
“그러려고요. 근데 대회 관련으로 할 말이 있다 하지 않았어요?”
"아닌 거 알았잖아."
“그렇긴 하죠. 그래서, 문제라도 있습니까?"
“있어. 원래 오늘 치나미랑 같이 돌아가기로 했는데, 너 때문에 혼자 가야 될 판이야."
“그럼 집까지 태워줄게요."
이 대답을 기다린 걸까?
렌카가 망설임 없이 고개를 주억거리더니 말했다.
"돌아가면서 아이스크림이랑 케이크 먹고 가자.”
웃기시네 시간을 벌 생각이지?
보아하니 나와 치나미를 단둘이 있게 하는 것이 불안해서, 가게 안에서 늦은 밤이 될 때까지 버티려는 듯하다.
"그건 안 됩니다."
“왜?”
“그냥 같이 돌아가기로만 한 거지, 디저트 가게에 간다고는 안 했잖아요.”
“원래 그런 곳은 충동적으로 가는 거야. 치나미한테는 내가 물어볼게.”
“저랑 어딜 가는 걸 끔찍이도 싫어하는 사람이 갑자기 디저트 가게라... 이거 굉장히 수상하지 않나요?"
“... 누가 너랑 가는 걸 싫어한대? 그런 적 없어."
얼굴에 나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다 쓰여 있잖아.
우리 렌카는 발뺌도 잘 못하네.
"아니었어요? 그럼 다음에 같이 가요.”
"다음은 무슨 다음이야..! 오늘 가고 싶은 건데....!"
"근데 부장."
“뭐..!"
“크리스마스 때 산타걸 코스프레 해줄 수 있어요?"
태연히 화제를 돌리는 내 행동이 황당했을까?
렌카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 돌았냐 진짜?"
“잘 어울릴 것 같은데. 해줘요.”
“안 해...! 안 한다고....! 죽어도 안 해...!"
오늘 같이 케이크를 먹으러 가는 대가로 해 달라 하면 해줄 가능성이 높았다.
끔찍이 아끼는 친구가 음흉한 내게 무슨 짓을 당할까봐 걱정되는데, 고작 코스프레 정도로 퉁칠 수 있으면 당장 하겠다고 달려들겠지.
만약 거절한다면 렌카가 날 그렇게까지 음란하게 보지 않는다는 뜻이겠고.
이걸로 렌카와 또 다른 추억을 쌓을 수도 있지만.... 눈물을 머금고 다음으로 미뤄야겠다.
지금 중요한 건 치나미와의 관계니까.
“왜 화를 내고 그러세요. 알았어요. 지금은 포기할게.”
"... 지금은? 그럼 나중에 해 달라고 말한다는 뜻이야? 아, 아니... 이게 문제가 아니라... 디저트 먹으러 가자니까?"
“안 됩니다. 오늘 따로 포장해서 내일 줄게요.”
단호하기 짝이 없는 내 태도에, 렌카가 인상을 마구 찌푸렸다.
내게 성큼 다가온 그녀가 자신의 기다란 검지를 들어올렸다.
“너... 치나미한테 강제로 뭐 하려 하면 진짜 죽을 줄 알아...!”
“절 너무 못 믿는 거 아닙니까?"
“그렇잖아..! 네가 나한테 하는 짓만 봐도...!"
"그건 소원이니까, 그리고 부장이니까 그런 거고요. 제가 착하고 순한 스승님한테 그런 코스프레를 해 달라 할 것 같아요?"
“나라서 그렇다니... 그럼 나는 성격이 나쁘다는 거야?"
뭐지? 지금 내가 성격이 더럽다고 에둘러 말했다고 약간 서운해 하고 있는 건가?
양심이 없어도 너무 없는 게 아닌가 싶은데....
그런 노예에게는 엉덩이가 빨개질 때까지 채찍질이 필요해요.
"그건 부장 본인이 더 잘 알겠죠. 근데 잠깐만...”
말끝을 흐린 나는 렌카의 손바닥을 아주 빤히 바라보았다.
그 눈빛이 굉장히 부담스러웠는지, 렌카가 흠칫하며 자신의 손을 등 뒤로 옮기더니 반걸음 물러났다.
"무, 뭐야?"
“손가락이 조금 갈라져있는 것 같아서요."
혀를 찬 나는 품에서 자그마한 휴대용 핸드크림을 꺼냈다.
치나미와 은근한 스킨십을 할 용도로 가져왔던 건데, 특별히 너한테도 바르게 해준다.
핸드크림 뚜껑을 열고 뒤집은 나는 당혹스러워하는 렌카의 손목을 붙잡고 내 쪽으로 가져왔다.
이후 그녀가 놀라선 가만히 있는 틈을 타, 재빨리 손등에 핸드크림을 조금 짜주었다.
"알아서 바르세요.”
“마음대로 잡고 난리야..."
툴툴대면서도 일단은 크림을 꼼꼼히 바르는 모습이 귀엽다.
“손 달라고 했으면 안 줄 거였잖아요. 아니에요?"
"... 그건 그렇지만... 어쨌든 치나미한테...”
"집착이 너무 심하네... 내가 그렇게 못 미더워요?”
“그러니까 경고하는 거지... 그것도 몰라...?”
덜컥.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 사이, 부실 문이 열리면서 손에 물기를 묻힌 치나미가 나왔다.
찌푸려져있는 렌카의 얼굴을 본 그녀가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친우님께서는 후배님께 또 화를 내시는군요. 대회도 얼마 안 남았는데 그렇게 몰아붙이시면 후배님의 기가 죽을지도 몰라요. 지양하도록 해주세요.”
그 말에 렌카가 눈으로만 나를 쏘아보았다.
치나미는 우리가 대회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는 줄 알고 있는 상태.
때문에 내게 더 이상 뭐라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게 왜 거짓말을 하고 그래.
그냥 치나미가 걱정되니까 나한테 한 마디 하겠다고 하면 되지... 과잉보호가 지나치다.
**
언제나 고풍스런 분위기를 풍기는 렌카의 집 앞.
그곳에 차를 세운 나는 고개를 돌려 뒷좌석을 쳐다보았다.
"들어가요."
“.... 내가 했던 말 명심해."
마지막까지 경고를 곁들이는 그녀.
치나미가 아휴... 하는 한숨을 토해내더니 렌카를 나무랐다.
"친우님. 친우님의 승부욕은 잘 알고 있지만, 후배님은 대회에 처음 참가하시는 거예요. 다독여도 모자랄 판에 그렇게 쏘아붙이시면 어떡하나요?"
"치나미, 그게 아니라...."
"그리고 감사인사부터 하셔야지요. 후배님께서 친우님의 댁까지 태워다드리는 게 당연한 일은 아니잖아요.”
“.... 무, 물론 그렇지. 고마워."
어색한 미소로 내게 감사를 표하는 렌카를 보며, 나는 아랫입술을 안으로 오므렸다.
웃음이 터질 것 같아서였다. 쩔쩔매는 렌카가 웃겨서.
오늘 렌카가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데... 많은 수난을 겪는 날이구나.
“전 괜찮습니다. 친하니까 할 수 있는 말이라고 봐요. 그렇죠?”
너그러운 척 연기를 하며 렌카를 압박하자, 작게 이를 뿌드득 간 그녀가 대답했다.
"마, 맞아... 갈게.”
"푹 쉬세요."
차에서 내린 렌카는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며 불안한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가 집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나는 러브호텔로 차를 몰았다.
월요일에다 아직 해가 완전히 지기 전이라 그런지, 주차장은 매우 한산했다.
나는 치나미와 평범한 이야기를 나누며 많은 빈자리 중 하나에 차를 대어놓았고, 그녀와 함께 로비로 들어갔다.
이후 키오스크에서 카드키를 받고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다.
“여기도 정말 오랜만이군요.”
싸구려 방향제 냄새를 킁킁 맡던 치나미의 말.
그녀를 향해 씨익 웃어보인 내가 수긍했다.
"그러게요."
“저번처럼 샤워를 하고 마사지 룸에서 준비를 마친 뒤에 후배님께 문자를 남겨두면 되나요?”
“아뇨. 오늘은 침실로 오면 됩니다."
그에 치나미의 눈이 동그래졌다.
“네에....? 왜요?”
“마사지 룸 안에 있는 베드가 딱딱하잖아요. 사이즈가 작기도 하고, 방도 좁아서 제대로 된 마사지를 해드리기가 불편해요. 넓은 침실 침대에서 하는 게 훨씬 좋을 겁니다.”
"하지만... 이불보가 오일로 다 젖어버릴 텐데요...?”
우리 치나미는 걱정이 너무 많다.
어차피 다 세탁 보내는데.
헌데 혹시 분수를 뿜어낼까 우려한 건 아니겠지?
“타올을 여러 장 겹쳐서 넓게 깔 거라 괜찮습니다.”
"그런가요...?"
“예. 일회용 속옷이랑 가운까지 입고 나오면 돼요. 알았죠?”
"아, 알겠어요..."
치나미의 눈 밑엔 홍조가 감돌아있었다.
침대를 언급하니 묘한 기분을 느낀 건가?
어쩌면 치나미도 미유키만큼이나 변태일 가능성이 있을 수 있겠다.
아님 말고.
**
- 후배니임... 어디 계시나요...?
욕실 안에서부터 들려오는 치나미의 조심스런 목소리.
마사지 룸 안에서 물건들을 챙기고 있던 나는 화장실 문틈에 입술을 가져다대었다.
“마사지 룸에 있습니다."
-왜요...?
“마사지용 물품들을 옮기려고요."
- 아하... 알겠어요...
갑자기 왜 저런 질문을 하는 걸까. 마사지를 앞두고 갑자기 확 긴장해버린 건가?
그러려니 하며 물건들을 챙겨 침실로 통하는 문을 연 나는,
“흐얏!?"
욕실에 있어야할 치나미가 기이한 탄성을 터뜨리며 다급하게 몸을 돌리는 모습을 보았다.
"응?"
가운을 입고 있는데, 머리가 젖어있지도 않다.
벌써 샤워를 끝내지는 않았을 테고... 샴푸가 없었나?
“왜 그러세요?”
치나미에게로 다가간 나는 포장되어있는 일회용 속옷이 침대 위에 올라가있는 것을 발견하고 상황을 눈치챘다.
샤워를 하려다가 속옷을 미처 못 갖고 왔다는 걸 알아차리고 가지러 나왔나보다.
“후배님..! 저, 저리 가세요..! 훠이..! 가버리세요..!”
타올로 자신의 앞판을 가린 치나미의 축객.
마치 개를 쫓아내는 것 같은 말투마저도 귀엽게 들린다.
미연시다운 뜻밖의 서비스 신이 나오는 장면인데... 그냥 물러나면 섭하지.
무심코 웃음을 터뜨린 나는 스팀기를 비롯한 물건을 내려놓고 치나미의 앞으로 향했다.
“읏...!?”
그러자 깜짝 놀란 치나미의 몸이 잔뜩 움츠러들었다.
그와 동시에 사이즈가 큰 가운의 한쪽 라인이 스르륵 내려가면서, 치나미의 탐스런 옆가슴이 보였다.
가운이 조금만 더 내려갔거나, 치나미가 아예 무방비한 채로 나왔다면 더 좋은 상황이 펼쳐졌을 텐데 그게 조금 아쉽다.
아니지, 아쉬워할 필요는 없지. 어차피 오늘 보게 될 거니까.
“후배님...! 왜 그렇게 빤히 보시는 건가요...!"
그녀는 자신의 중요한 부위가 드러난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지 못한 듯 내게 따지고만 있었다.
어지간히 쑥스러운 듯한 표정. 감상을 끝내고 그녀에게 인자한 미소를 지어준 내가 말했다.
“말도 없이 나와서 미안해요. 다시 들어가 있을 테니까, 샤워 끝나면 문자 줘요.”
“....네에... 얼른 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