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저... 또 다시 해롭기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입으로 자신을 능욕하는 것을 보라.
기분이 굉장히... 굉장히...
“농담이고, 가기 전에 더 풀어줄게요. 잠깐 누울까요?”
음... 나쁘지 않을지도?
“네에... 그럴까요...?”
라고 생각하면서 홀라당 유혹에 넘어가버린 치나미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샤워를 하러 가기 직전에 실금을 했던 자신이 그려졌기 때문.
지금은 깨끗해진 침대를 곁눈질한 그녀가 부들부들 떨며 물었다.
“서, 설마 또 그... 제 민감한 부위를 건드릴 생각이신가요...!”
“안 할게요. 딱 마사지만.”
“.... 정말이에요...?”
“약속하겠습니다.”
진중한 마츠다 후배의 표정을 본 치나미는 자신의 가슴이 크게 고동치자 고개를 마구 털어냈다.
심장에 좋지 않으니까, 저 얼굴을 쳐다보지 말아야겠다.
그렇게 굳은 결의를 다지던 그녀는, 어느새 소파에 앉은 마츠다 후배가 이리 오라며 손짓하자 다짐을 깨끗하게 지워버리고는 총총걸음으로 그에게 다가갔다.
“스승님.”
“네...”
“다 왔어요.”
“네...”
“내려야하지 않나요? 졸릴 텐데.”
“네...”
연신 똑같은 대답만을 반복하며 손가락을 꼼지락거리고 있는 치나미.
그녀가 현재 입고 있는, 사이즈가 큰 복실복실한 흰색 플리스의 소매가 손바닥 밑부분을 가리고 있는 게 깜찍하다.
마지막 마사지는 잘 받아놓고선 갑자기 또 쑥스러워하다니.
이해는 한다. 이성을 되찾으니 오늘 일탈을 했다는 후폭풍이 몰려들어 심란하겠지.
나는 자신의 무릎만 내려다보고 있는 그녀의 안전벨트 버클을 풀어주었다.
딸깍 하고 경쾌하게 울려 퍼지는 소리에 흠칫한 치나미의 고개가 들렸다.
“앗...? 여긴 어디인가요...?”
“스승님 집이요.”
“아하... 벌써 도착했군요...?”
“예.”
“그러면... 오늘 감사했어요... 조심히 돌아가세요...”
내게 꾸벅 인사를 한 치나미가 조수석 문을 열려고 했다.
비상등을 켜고 기어를 파킹으로 옮겨놓은 나는, 먼저 차에서 내려 조수석으로 갔다.
이후 고개를 갸웃하는 치나미에게 손을 내밀었다.
“집 앞까지 데려다줄게요.”
“그, 그러실 필요까지는 없는데요...”
“걱정돼서 그래요.”
“.....”
배려에 기뻤던 걸까?
수줍게 웃은 치나미가 내 손바닥 위에 자신의 손을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손바닥 크기를 비교해보려는 듯 손가락을 쫘악 폈다.
“크, 크시네요...”
“그런가요?”
“네... 너무 커요...”
첫 관계를 가진 직후라 그런지, 저 크다는 말이 무척이나 야하게 들린다.
악의가 전혀 없이 순수하게 놀라워하는 게 꼴리는데 정상인가?
예전에도 생각했던 거지만, 조만간 정신과라도 가야하나 모르겠다.
손가락을 구부려 치나미의 손을 전부 감싸 쥔 내가 말했다.
“갈까요?”
“.... 네.”
맨션 현관의 자동문을 지난 우린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버튼을 누르자 조용한 기계음과 함께 숫자가 하나씩 줄어드는 층 표시기.
곧이어 1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자, 나는 치나미를 데리고 그 안에 탔다.
“몇 층이에요?”
대답 대신 5층 버튼을 누르는 그녀.
안절부절 못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침착하다.
“스승님의 부모님께서는 주무시고 계시겠네요?”
“맞아요...”
“말씀은 드려놓은 거죠? 늦게 돌아간다고.”
“네... 그런데 저어... 후배님.”
“예.”
“손은 계속... 잡고 계시는 건가요...?”
“그래야죠.”
태연스럽기 짝이 없는 대답에 ‘아하...’ 하며 수긍한 치나미가 자신의 발을 안쪽으로 오므렸다.
운동화 끄트머리의 토캡으로 밑창을 톡톡 건드리는 그 소녀 같은 모습을 보자니 절로 아빠미소가 지어진다.
느릿하게 올라간 엘리베이터가 5층에 도착하자, 나는 치나미를 데리고 나왔다.
복도식 맨션이라 그런지 방향이 한쪽뿐이었기에 어디로 가야하는지 물어볼 필요가 없었다.
우린 누가 뭐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마음이라도 통한 듯, 서로 보폭을 맞추며 흰 전등이 켜져 있는 복도를 거닐었다.
그렇게 505호의 현관문 앞에 막 도착했을 즈음, 치나미가 발걸음을 우뚝 멈추더니 날 올려다보았다.
“여기에요...”
“그렇군요. 들어가서 푹 쉬세요. 손발은 꼭 씻고요.”
“알겠어요...”
여전히 부끄러워하고 있는 치나미의 손을 놓아준 나는, 그녀를 조심스럽게 끌어안았다.
가슴께에 포옥 들어오는 치나미의 머리.
그녀의 동그란 뒤통수를 사근사근 쓰다듬은 내가 말했다.
“내일 봐요.”
“.... 후배님도 조심히 들어가세요...”
“예.”
포옹을 풀고 뒷걸음질을 치며 치나미에게서 멀어지자, 조신한 미소를 짓고 있던 그녀가 양손을 어깨 위로 올리더니 좌우로 흔들었다.
마치 어린이집 아이들에게 작별인사를 하는 것 같은 제스처.
그 뜬금없는 천진난만한 행동에 헛웃음을 친 나는, 그녀에게 마주 손을 흔들어주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렇게 다시 운전대를 잡고 집으로 돌아와 세수를 하고 누우니, 시간은 벌써 새벽 세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치나미와 헤어진 지 20분 정도 지났는데, 그녀는 지금쯤 뭘 하고 있으려나.
혹시 복숭아를 마구 흡입하고 있지는 않을까?
태평하게 자고 있는 건 절대 아닐 테고... 한 번 연락해봐야겠다.
휴대폰 밝기를 최소로 줄인 뒤 어플을 킨 나는 치나미에게 톡을 남기려다가,
‘응?’
그녀의 프로필 사진에 있는 모모님의 표정이 바뀌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번엔 하트 눈인가?
헤롱거리거나 화난 게 아니라 헤벌레하고 있는 모모님이라...
자신의 감정 상태를 프로필 사진으로 자주 표현하는 치나미가 저런 모모님을 걸어놓았다는 건, 오늘 겪었던 일이 좋은 추억으로만 남았다는 증거.
혹시나 스트레스를 받았을까 걱정스런 마음이 있었는데, 정말 다행이었다.
그나저나 모모님 바리에이션이 무척 다양한데, 진짜 아헤가오도 있는 거 아니야?
모모님을 좋아하는 매니아 중에서 어떤 사람이 기이한 취향을 갖고 있다면, 커미션을 의뢰할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왠지 두려워진다. 심연을 들여다보고 싶지 않아.
치나미에게 연락하려던 나는 마음을 바꾸었다.
상당한 여운을 느끼고 있는 것 같으니, 그녀 혼자 많은 생각을 하게 두기 위해서였다.
내일 만나서 얘기하자. 그게 나을 듯하다.
**
“잠 못 잤어? 왜 눈 밑이 퀭해?”
차에 타자마자 내 얼굴을 쓱 쳐다본 미유키의 물음.
짧은 하품을 하며 핸들을 잡은 내가 대답했다.
“그냥... 휴대폰 만지다가.”
치나미와의 관계는 미유키에게 말하긴 해야 한다.
하지만 오늘은 아니다.
왜? 속이 보여도 너무 보이잖은가.
아무리 미유키가 치나미와의 관계를 허락해줬다고 하더라도, 텀은 두어야 맞다.
“늦게까지 야동 본 건 아니지?”
“건 수 하나 잡았다고 계속 우려먹냐 넌? 이제 질리니까 다른 걸로 놀려라.”
“어떤 걸로?”
“그건 네가 생각해야지.”
“알았어. 잘 고민해볼게.”
학구열이 높은 미유키가 고민한다고 하니까 무서워진다.
기분이 나쁘지 않으면서도 곤란한... 그리고 받아치기 힘든 그런 놀림거리를 갖고 올 것만 같아.
미유키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아카데미로 향한 나는, 교실에 도착하자마자 동급생들과 인사를 나누는 둥 마는 둥하며 책상에 엎드렸다.
오늘보다 더 적게 잔 적도 수두룩한데, 피곤함이 상당하다.
치나미보다는 아니겠지만, 나 또한 정신력을 많이 소모했나보다.
“마츠다 군. 곧 수업인데 자려구?”
옆자리에 앉은 미유키의 걱정스런 목소리에, 팔에 이마를 대고 있던 내가 고개만 휘적휘적 끄덕였다.
그러자 미유키가 내 등을 콕콕 찌르며 말을 이었다.
“그럼 눈 조금만 붙여. 수업 시작할 때 깨워줄게.”
아아... 역시 미유키다.
착하디착한 그녀가 아니었다면 난 지금쯤 땡땡이를 치고 있었겠지.
아니, 근데 왜 내가 수업을 빠뜨리면 큰일이 나는 범생이처럼 굴고 있을까.
정신 차리자. 이건 마츠다 켄 답지 않다.
**
“마츠다...! 기다려.”
점심시간.
미유키에게 줄 겸 떨거지 테츠야에게도 적선해줄 과자를 사고 교실로 돌아가려던 나는, 뒤에서부터 다급한 렌카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몸을 돌렸다.
“안녕하세요, 부장.”
“너 어제 치나미랑 뭐했어?”
다짜고짜 심문을 시작하는 그녀.
눈살을 살짝 찌푸린 내가 재차 말했다.
“안녕하세요.”
그제야 내가 뭘 원하는지 알아차린 렌카가 마지못해 인사를 받아주었다.
“.... 안녕.”
“그래요. 어제 일은 왜 물어보는 건데요?”
“치나미가 이상해서.”
“이상하다니? 어떤 점이?”
“나랑 대화하다가 중간에 멍해져. 수업시간에도 드문드문 정신을 못 차리고.”
렌카에게 말하지 않았구나.
하긴, 첫 경험에 관한 얘긴 돌려 하기도 창피한 것이긴 하지.
그래도 의외긴 하다. 두 사람은 깊은 우정을 나눈 만큼 솔직하게 실토할 줄 알았는데.
혹시 장소가 장소라 말을 조심하는 걸까?
부활동이 끝나면 따로 카페에서 진솔한 대화를 나누려나?
“그리고... 걸음걸이가 조금 낯설어.”
이어지는 렌카의 말에 미간을 좁힌 내가 물었다.
“걸음걸이가 낯설다는 게 무슨 말이에요?”
“엄청 불편해 보이는데 애써 감추려는 것 같아.”
근육통이 생겼구나. 아플 거라고 확신하긴 했지만 렌카가 엄청이라는 부사를 써가며 강조할 정도니 꽤나 심한 것 같다.
렌카의 옆에서 아무렇지도 않은 척 걷는 치나미를 상상하니 웃음이 나온다.
부활동 시간에 따로 풀어줘야지.
“스승님은 괜찮을 거예요.”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식은땀까지 흘리는데.”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많이 궁금해요?”
“소, 솔직히 궁금하긴 하지만... 그렇게까지 집착하면서 캐고 싶은 건 아냐. 네가 어제 수상하게 말을 했으니까 불안한 것뿐이지.”
성장했구나. 그래, 너무 과하게 알려 들지 마.
그러면 반발심만 생기고, 그게 응어리가 돼서 쌓이다보면 싸우는 거야.
절친한 너희가 나 때문에 투닥대는 건 보고 싶긴 한데, 진심으로 으르렁거리는 건 싫어.
“내가 어떤 식으로 수상하게 말했는데요?”
“아니 막... 뭔가 음모를 꾸미는 것처럼 말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