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러브 코미디를 망가뜨리는 법-169화 (169/313)

“편견이 심하네요. 난 그런 적 없는데?”

“말투가...”

날 음해하는 건 여전하네.

자꾸 이러면 채찍질 강도를 높여버리는 수가 있어요.

“말투가 뭐 어때서요?”

“.... 됐어. 내가 말을 말아야지.”

설명하기 힘들었던 거야? 아니면 귀찮았던 거야?

반응을 보아하니 후자 때문인 것 같긴 하다.

툴툴대는 렌카에게 히죽 웃어보인 내가 물었다.

“할 얘기 끝났으면 저랑 매점 갈래요?”

“내가 왜 너랑 매점을 가?”

“갈 수도 있지 않나?”

“죽어도 싫어.”

“왜요? 같이 가요. 사탕 사줄게요.”

“.... 어린아이 다루듯 말하지 마.”

“음료수도 사줄게.”

“싫다니까...! 그리고 너 지금 매점 다녀오는 길 아니야?”

“맞는데 또 가고 싶어지네요. 근데 부장.”

“뭐.”

“마지막 소원은 언제쯤 빌 거예요?”

“알아서 쓸 거야. 왜? 불안해?”

“전혀요. 안 쓸 거면 저 주라고 말하려 했던 거예요. 좋은 게 생각나서.”

그 말에 렌카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나와의 추억들이 머릿속에 그려지고 있는 듯한 모습.

낄낄거린 나는 렌카의 손에 내 몫으로 산 젤리를 반쯤 강제로 들려주었다.

“이거 먹고 힘내요. 부활동 시간에 봐요.”

그리고는 당황하는 렌카의 어깨를 한 번 툭 두드려준 뒤, 그녀에게서 멀어졌다.

“흠흠... 호구 청소를 해야 할 시간이네에...”

부자연스런 투로 흥얼거리듯 말하며 재빨리 호구 보관실로 들어가버리는 치나미.

날 마주치자마자 저러는데, 얼굴을 마주보기가 창피한 것 같다.

실소를 터뜨린 나는 닫혀버린 보관실 문의 문고리를 잡았다.

끼릭.

하지만 문고리는 돌아가기만 하고 열리지는 않았다.

안에서 치나미가 몸으로 문을 막고 있음을 눈치챈 나는, 문짝에 어깨를 기대고 힘을 주며 밀었다.

스윽.

“므으으읏...!”

약간의 저항감만 느껴질 뿐, 손쉽게 열리는 문.

틈새에서부터 치나미가 기를 쓰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빵 터져버릴 뻔한 것을 참아낸 나는 적당한 힘을 유지해 버티면서, 틈새 사이로 손을 집어넣어 치나미의 어깨를 건드렸다.

“스승님, 문 좀 열어주세요.”

그에 치나미가 흠칫하더니, 사람을 경계하는 새끼고양이 같은 눈빛으로 날 쳐다보았다.

“왜요...?”

“일해야죠. 호구를 청소하는 날이라면서요.”

“그렇군요...?”

“그렇죠.”

“어쩔 수 없네요... 얼른 들어오세요...”

치나미가 머뭇머뭇 뒤로 물러나는 것을 확인한 나는, 문을 열고 보관실 안으로 들어갔다.

이후 우물쭈물거리는 그녀를 지그시 바라보며 물었다.

“뭐가 어쩔 수 없다는 거예요? 저는 왜 피하는 거고요?”

“네...? 제가 그런 말을 했었나요...? 게다가 피하다니요? 그런 적 없는데요...?”

그래, 그렇다고 쳐주자.

고개를 주억거린 나는 치나미에게 한 발자국 성큼 다가갔다.

그리고는 ‘흐엡!’ 하며 놀라는 그녀의 양 어깨에 손을 올려 마사지를 해주기 시작했다.

“늣... 후배님... 일을 하러 오셨다면서 마사지는 왜 하시는 건가요...?”

“근육만 조금 풀어드린 다음 일할 겁니다.”

“그, 그런가요...? 어깨는 괜찮은데요...”

“전체적으로 주물러줄 거예요.”

“아하...”

“뒤로 돌아요.”

“네에...”

순순히 몸을 돌려 등을 맡기는 치나미.

양옆으로 볼록하게 튀어나온 날개뼈부터, 등 전반을 살살 만져준 나는 그녀의 허리에 팔을 두르고 뒤로 천천히 당겨보았다.

“.....”

이런 내 행동에 움찔한 치나미였지만, 별다른 반항은 하지 않고 있다.

안심한 나는 아주 자연스럽게 그녀를 보관실 구석으로 인도해,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이후 다리를 벌려 치나미를 그 안에 앉도록 하고, 그녀의 등을 내 가슴에 밀착시키고 허벅지를 약한 힘으로 주무르기 시작했다.

“흐익... 아파요...”

그러자 양손을 허리에 붙이며 고통스러워한 치나미의 상체가 내 가슴에 더욱 깊숙이 파고들어왔다.

동시에 코로 솔솔 들어오는 진한 복숭아 향.

변태마냥 몰래 그녀의 체취를 맡은 내가 말했다.

“많이 불편했어요?”

“사, 사실은 조금...”

“그럼 말을 해야지 왜 억지로 숨기려고 해요?”

“.....”

“며칠 갈 것 같은데, 자연스럽게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는 저만 일할게요.”

“안 돼요...! 후배님 혼자 그렇게 둘 수는 없... 히에엑...!”

안쪽 허벅지를 누르자마자 기함을 해놓곤 그렇게 둘 수 없기는 무슨.

나는 온몸을 웅크리며 바들바들 떠는 치나미의 복부를 토닥여주며 그녀를 진정시켰다.

“그러면 더 아픕니다. 힘 빼세요.”

“후아아아... 넷...! 그런데 너무 세게 누르시는 게 아닐지요...?”

“세게 안 눌렀어요. 건드리기만 했습니다.”

“그, 그러면 건드리지 마시고 쓰다듬어주세요.”

쓰다듬어달라니... 역시 치나미는 천성이 야하다.

자기도 모르게 내뱉는 말이 무척 야릇하게 들리잖아.

알겠다고 대답한 나는 치나미를 더욱 끌어당겨와, 그녀의 허벅지 안쪽을 조심조심 문질렀다.

서혜부에 닿을 듯 말듯 자신의 피부를 문지르는 커다란 손.

그 감촉이 마음에 들었는지, 치나미의 자세가 한층 편안해졌다.

“므으응...”

특유의 신음을 작게 터뜨리며 자신의 등은 물론 둔부까지 내 몸과 딱 밀착시키는데, 만져주면 만져줄수록 체온이 점점 올라가는 게 느껴졌다.

그런 치나미의 어깨 위에 턱을 얹어놓은 나는, 복숭아처럼 분홍빛으로 물든 그녀의 뺨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히에엑!?”

그에 얌전히 마사지를 받던 치나미가 온몸을 달싹였다.

근육통이 있는 상태에서 저렇게 경기를 일으키면 아플 텐데... 실수했다.

“흐아아아...”

예상대로, 치나미가 심한 고통을 호소했다.

그녀가 더 이상 펄떡거릴 수 없도록 복부에 손을 대어 신체를 고정시킨 내가 다급히 사과했다.

“미안해요. 괜찮아요?”

“후에... 네에... 갑작스럽게 그런 행동을 하시니 놀랐던 것뿐이에요...”

근육통이 내가 예상한 범위보다 더 심하다.

렌카가 그랬었다. 오늘 치나미가 아픈 걸 내색하지 않은 척을 했다고.

그랬다면 근육을 잔뜩 긴장시킨 채로 걸어 다녔을 텐데, 그것 때문에 심해진 듯하다.

도복 바지로 갈아입을 때 아프지는 않았으려나?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조심할게요.”

“아, 아니이... 그게 아니구요... 예고는 하고 하시라는 거예요...”

“그런 뜻이었어요?”

“네... 후배님의 이해력이 모자라신 것 같아 걱정되네요...”

맥이는 것도 상큼하게 하네.

그래도 조금 더 적극적이게 된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

픽 하고 웃은 나는 마사지를 재개하며 치나미에게 당부했다.

“지금부터 강도를 조금씩 높게 가져갈 건데, 약간 아플 수도 있어요. 그럼 저한테 말해주세요. 약하게 마사지할 테니까.”

“.... 그냥 쓰다듬어주시기만 하면 되잖아요.”

“쓰다듬기만 해선 근육이 풀리지 않아요. 내일 덜 아프기 위해서라도 이게 맞아요.”

“그런가요...”

어딘지 모르게 아쉬운 듯한 한숨을 포옥 내쉰 치나미가 보관실에 있는 호구를 곁눈질했다.

그리고는 말을 이었다.

“호구를 닦아야 하는데... 큰일이에요.”

“쉬엄쉬엄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어제 초벌로 닦아놓기도 했잖아요.”

“으음... 그러면 내일 아침이나 점심에 따로 시간을 내야겠네요...”

유혹에 홀라당 넘어가버린 치나미.

오늘 부활동이 끝날 때까지 여기에서 마사지를 받을 기세인데, 내 손길에 홀라당 넘어가버렸나보다.

“제가 혼자 하겠습니다. 스승님은 쉬시고, 정 가만히 있을 수 없겠다면 제가 잘 하는지 감독만 해주세요.”

“흠흠... 그러면 내일 몸 상태를 보고 결정하겠어요.”

“그래도 되고요. 다시 시작할까요?”

“앗... 저... 이번엔 아랫배를 주물러주셨으면 좋겠네요. 여기도 조금 당겨서...”

부끄러워하면서도 할 만한 요청은 다 하네.

소신 있어. 그래서 더 좋아.

치나미의 아랫배에 손가락을 대고 살포시 누른 내가 물었다.

“여기요?”

“.... 조금 더 아랜데...”

“여기? 허리 라인 쪽?”

“네, 거기요...”

말투를 보아하니 여기보다 더 아래구나.

다만 거기까지 내려가면 다소 민감한 부위이니만큼, 타협을 한 모양이다.

여기서 밀회를 즐기고픈 마음이 굴뚝같지만 참자.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치나미가 다 나으면 시도해봐야지.

“알겠습니다.”

그렇게 나는 여전히 쑥스러워하고는 있지만 그래도 예전보다는 적극적으로 변한 치나미와 함께, 보관실 안에서 묘하고도 꽁냥한 시간을 보내며 서로의 거리를 더욱 좁혔다.

**

부활동이 끝난 시간.

탈의실 앞에서 치나미를 기다리고 있는 렌카에게로 향한 나는, 뚱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녀에게 히죽 웃어보였다.

“부장은 평소에 뭘 하세요?”

“평소에 뭘 하냐는 게 무슨 뜻인데?”

“좋아하는 게 뭐냐고요. 취미 같은 거.”

“저번에 말해주지 않았나?”

“그런 기억은 없는데요.”

“그래? 검도야.”

“그건 특기잖아요.”

“그럼 영화라고 하자.”

거짓말하지 마. 만화나 애니를 보는 거잖아. 굿즈 수집도 있고.

이제 솔직해질 때도 되지 않았니? 내가 두 번째로 추천해준 만화는 봤어?

“어떤 장르?”

“알 필요 없어.”

“또 서운하게 할래요?”

“서운하다니 다행이네.”

“자꾸 이런 식으로 나오면 혼납니다.”

“.... 누가 날 혼내는데? 네가?”

“그럼 다른 누가 있을까요?”

“어디 한 번 해봐. 내가 눈 하나 깜짝하나.”

지금까지 해왔던 걸 생각해보면 눈 하나 깜짝 수준이 아닌데.

그나저나 오늘따라 반골기질이 충만하네.

최근에 교육을 안 해주니까 기세가 등등해진 건가?

콧방귀를 낀 나는 렌카에게로 한걸음 성큼 다가갔다.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