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껄이는 꼴을 보아하니 자신의 헤어스타일이 잘못되어있다는 건 꿈에도 상상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 그... 뭐라고 설명해야할지 모르겠는데...”
어색하게 웃는 미유키.
배려를 한답시고 말을 아끼는 것 같은데... 저건 솔직하게 말해줘야 한다.
안 그러면 다른 사람들한테 민폐다. 눈이 썩어버리고 말 거야.
자리에서 일어나 테츠야의 곁으로 다다간 나는, 놈의 반원형으로 패여 있는 옆머리를 가리키며 물었다.
“너 이거 어디서 했냐?”
“어제 동네 미용실에서... 옆머리가 버섯처럼 되는 게 싫어서 조금 눌러달라고 했는데, 이상해?”
이건 옆머리를 누른 게 아니라 두개골을 누른 거잖아.
엑스레이를 찍어보면 측두엽이 움푹 들어가 있을 것 같다.
대체 뭘 어떻게 하면 이런 스타일이 나오지? 다운펌도 아닌 듯한데... 뭐 날이 날카로운 아이스크림 스쿱 같은 걸로 자른 건가?
갑자기 미용사의 역량이 궁금해진다.
아무리 내가 테츠야를 혐오한다지만, 이건 남자로서 그냥 넘어갈 수가 없다.
“오늘 시내 샵에 가서 짧게 잘라라. 시원하게.”
내 조언을 들은 테츠야의 얼굴이 요상하게 변했다.
이제야 눈치챈 모양이었다. 자신의 머리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말이다.
“그, 그렇게 이상해?”
“네가 봤을 땐 안 이상했냐?”
“난 괜찮은 것 같은데...”
“더럽게 이상하니까 토 달지 말고 잘라라. 수업시간 전까지는 모자 써서 전체적으로 다 누르고.”
“모자가 지금 있을 리 없잖아...”
“그럼 물이라도 묻혀서 눌러놔 새꺄.”
“아, 알았어...”
비웃음거리가 될 뻔한 걸 살려줬으니까 고마워해라 씨발아.
만약 이번에도 저번 여름방학 때처럼 내 헤어스타일을 따라하면, 다시는 오늘처럼 봐주지 않을 거다.
그렇게 사소한 해프닝이 지나가고, 곧 시작된 수업.
연신 자신의 머리를 만지작거리는 테츠야를 보며 작게 혀를 찬 나는, 미유키가 허리를 콕콕 찌르자 고개를 돌렸다.
“왜.”
입을 다문 채로 방글방글한 미소를 지으며, 노트 귀퉁이를 가리키는 그녀.
그곳을 확인해보니,
[친절하게 구는 거 보기 좋았어. 근데 욕은 별로였어.]
예쁘장한 글씨체로 쓰인 문장이 있었다.
테츠야에게 ‘새끼’라고 했던 것을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구나.
나는 시큰둥하게 어깨를 으쓱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러자 눈썹을 꿈틀한 미유키가 샤프를 들어, 그 문장 밑에 새로운 문장을 썼다.
[욕은 나쁜 거야.]
새끼 정도는 넘어가줄 수 있지 않나?
욕과 폭력에 관해서만큼은 타협이 없는 미유키답다.
불만이 그득한 표정을 지은 나는 칠판으로 눈을 돌렸다.
그때,
스으윽.
미유키가 자신의 따스한 손을 내 바지 안으로 들여보내, 팬티 윗부분을 조심조심 주물럭거렸다.
태연하게 교과서를 보며 수업을 듣는 척을 하는 치밀함까지 보이면서 말이다.
오늘 내가 예쁜 짓을 해서 칭찬을 해주고 싶은 듯한 행동.
오랜만에 교실에서 포상을 받는구나. 기다리고 있었다.
미유키가 이럴 것을 예상하고 있었던 나는, 침착하게 책상과의 거리를 좁혀 옆자리의 시야를 차단했다.
그리고는 미유키처럼 뻔뻔하게 교과서에 시선을 두고, 그녀의 손길을 즐기기 시작했다.
“.... 흡.”
미유키는... 책상에 팔꿈치를 댄 채로 턱을 괴고 있다.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자지를 잡은 오른손을 느릿하게 흔드는데, 교실이라는 특수한 장소에다 사람들까지 많아서 배덕감이 꽤 있다.
누군가가 눈치를 챌까 우려스럽고, 쫄깃하다.
미유키는 그런 걱정 따윈 없는 건가?
어쩌면 내가 알아서 잘 숨기겠지... 하는 편안한 마음을 갖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쯤이면 됐다고 생각한 나는 배꼽 아래에 있는 미유키의 팔을 톡톡 건드렸다.
그만두라는 의사. 그러나 미유키의 손놀림은 멈출 생각이 없었다.
“.....”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그녀를 돌아보니, 여전히 수업을 듣는 척 그대로였다.
설마 여기서 싸게 할 생각인 건가?
아니면 내가 슬슬 한계에 오고 있음을 모르고 있는 건가?
만약 생각 없이 싸버리면 냄새가 진동할 텐데, 후폭풍이 두렵다.
난 상관없지만, 미유키의 이미지가 확 깎이는 게 싫어.
“.... 야.”
바로 옆이 아니라면 들을 수 없을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미유키를 부르자, 그녀가 눈동자만 굴려 날 흘끔 바라보았다.
쌀 것 같다는 내 입모양을 본 그녀는, 약간 아쉽다는 눈빛으로 짧은 콧바람을 내뱉더니 바지에서 손을 빼냈다.
그리고는 자지를 만지작거린 그 손을 자신의 코로 가져가, 변태처럼 냄새를 맡으려고 했다.
그 순간,
“마츠다.”
수업을 진행하던 교사의 부름이 들려왔다.
찔끔한 미유키가 손을 내려놓는 것을 본 내가 대답했다.
“예...?”
“얼굴이 왜 이렇게 빨갛지? 열이라도 나나?”
“아... 글쎄요...? 몸이 뜨겁긴 합니다.”
“그럼 양호실에 다녀와라. 아프면 아프다고 말을 하면 되지, 혼자 끙끙 앓고 있으면 되겠나?”
예전이었으면 내가 아프다 해도 상관없이 수업을 진행했을 텐데, 지금은 걱정을 해주는구나.
진실을 알면 걱정이 아니라 징계를 내리겠지만.
딱히 나갈 마음이 없던 나는 괜찮다고 하려다가, 갑자기 좋은 생각이 나선 입을 다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후 다른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미유키와 교실 문을 번갈아 흘긋거렸다.
나오라는 뜻. 이에 미유키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난색을 표했다.
하지만 그건 잠시뿐이었다.
실망한 척 어깨를 늘어뜨린 내가 교실 밖으로 나가려고 하자, 그녀가 번쩍 손을 들더니 교사에게 말했다.
“저... 마츠다 군이 아까부터 계속 혼자 중얼거리면서 눈을 감았다 떴다 하는데, 상태가 안 좋아 보여요. 제가 마츠다 군을 양호실로 데리고 갈게요.”
“그래? 그럼 그렇게 해라.”
그렇게 미유키의 부축 아닌 부축을 받으며 밖으로 나간 나는, 복도 문을 닫은 그녀가 팔짱을 끼자 씨익 웃으며 농담을 건넸다.
“어떻게 사람이 그렇게 뻔뻔한 얼굴로 거짓말을 할 수가 있냐?”
“.... 그런 말 하지 마. 화낸다?”
“미안, 미안.”
“그래서, 왜 불렀는데...?”
알면서 저런 질문을 하니 웃기다.
어깨를 으쓱인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조용한 복도. 분위기가 묘하다.
“양호실 가야 된다잖아.”
“안 갈 거면서...”
“일단 자리부터 옮기자.”
“어디로...?”
“나도 잘 모르겠다.”
원래 이런 상황에선 발길이 이끄는 대로 가야하는 법.
미유키의 손목을 잡은 나는 말없이 계단을 올라갔다.
2학년 복도가 있는 층을 지나, 3학년 복도까지.
여기서 더 올라가면 옥상인데, 거긴 자주는 아니지만 그래도 여러 일을 저지른 전적이 있어 식상하다.
3학년 화장실에서 할까?
아니면 학생회실 앞도 괜찮을 것 같다.
“굳이 여길 왜 온 거야...? 다른 데로 가자.”
이런저런 고민을 하던 나는 미유키가 투덜거리면서 발을 빼려는 기색을 보이자, 몸을 돌려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
“.... 왜?”
처음엔 나와 시선을 맞춘 채로 눈싸움을 하던 그녀는, 왠지 불안한 기색을 느꼈는지 뒷걸음질을 치며 자신의 등을 벽에 기대었다.
“뭔데...? 설마 여기서 막... 하자는 그런 이상한 생각을 하는 건 아니지...?”
작게 떨리는 그녀의 목소리.
나는 그런 미유키의 머리 옆 벽에 팔목 전체를 대고, 그녀와 딱 밀착했다.
다른 사람들이 미유키의 얼굴을 볼 수 없도록 몸으로 감싸다시피 한 것이다.
“마츠다 군...! 뭐해 진짜...!”
내 음흉한 표정을 확인하곤 발을 동동 구르는 미유키.
내가 아무리 쓰레기라고는 하지만 여기서 섹스를 할 생각 같은 건 없는데, 날 너무 과대평가하고 있구나.
휴교면 또 모르겠지만.
나는 큼지막한 눈망울을 이리저리 굴리고 있는 미유키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는 갑작스런 달달한 행동에 놀란 그녀의 입술에, 내 입술을 가까이 가져다대고는 물었다.
“이런 것도 안 되냐?”
장난기가 잔뜩 묻어있는 목소리를 들은 미유키의 뺨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자신이 너무 앞서나간 행동을 했다는 걸 알아차린 것이다.
창피함에 몸 둘 바를 몰라 하던 그녀는, 내 어깨를 슬쩍 밀어내며 투정을 부렸다.
“이, 일탈은 이게 끝이야. 더 이상은 안 돼...”
“난 하라고 안 했다.”
“무슨 소리야...! 마츠다 군이 밖으로 나오라고 고갯짓했잖아...!”
“네가 나온 거잖아. 안 나와도 됐었는데.”
“싫다고 하니까 다 죽을 것처럼 시무룩해져놓고선...! 그, 그럼 나 들어갈 거야.”
“벌써? 지금 들어가면 날 양호실로 데려가다가 내팽개쳐버렸다고 오해할 걸?”
“상관없어... 차라리 그렇게 오해... 흡!”
재잘거리던 미유키가 숨을 헉 들이켰다.
내가 그녀의 입술을 확 덮쳤기 때문.
순간적인 행동에 놀란 그녀는 처음엔 발악을 하며 날 밀어내려고 했지만,
“하웁...”
내가 그녀의 잇몸을 혀로 톡톡 건드리기 시작하자 이내 얌전해졌다.
아니, 얌전해진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변했다고 해야 옳았다.
수업 도중 빠져나온 것도 모자라, 장소마저도 학생들이 오가는 복도에서의 일탈.
들키면 벌점을 받을 것이 분명한 탈선행위다.
학생회 소속에다 규칙이란 규칙은 모조리 꿰고 있는 미유키는, 저 사실을 분명히 잘 알고 있음에도 내 목에 팔까지 두르며 혀를 제대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점점 후끈해져가는 미유키의 체온을 느끼며 입 안을 탐하던 나는, 그녀의 갈비뼈 부근을 손가락을 지그시 눌렀다.
그러자 훅 하는 콧바람을 내뱉은 그녀의 다리가 일순 확 풀렸다.
무릎이 굽혀지면서 벽을 타고 내려가는 미유키의 몸.
그대로 바닥에 철퍼덕 쓰러질 것 같았지만, 내 다리가 그녀의 가랑이 사이에 끼워져 있어 우려하던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 후응...”
이에 안도한 콧소리를 내뱉은 미유키는, 아예 내 허벅지 위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심지어는 자유로운 자신의 양손을 내 와이셔츠 안으로 집어넣어, 맨살을 살살 긁으며 날 자극하기까지 했다.
나날이 과감해지고, 야해지면서도, 동시에 여전히 당돌하고, 똑부러지는 미유키.
그녀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미치겠다.
조용한 복도에서 쭙쭙 하고 울려 퍼지는 야릇한 소리를 느끼며, 그렇게 우린 나름 오랜 시간동안 키스를 즐겼다.
그때,
“허억...! 까, 깜짝이야...!”
복도 쪽에서부터 어떤 여자의 까무러칠 듯한 탄성이 들려왔다.
수업 중간에 어딜 다녀온 3학년 선배인 모양이었다.
초대받지 않은 손님의 인기척에, 입맞춤에 정신이 팔려있던 미유키가 움찔했다.
나는 미유키가 발각되지 않도록 내 온몸을 더욱 가까이 밀착시키며 여자의 시야를 차단한 뒤 하던 일을 계속했고,
“뭐야... 진짜 별...”
꼴불견이라는 말투로 툴툴거린 여자가 자리에서 벗어나자, 미유키에게서 입술을 떼어냈다.
그리고는 몽롱하고 그렁그렁한 눈으로 날 올려다보고 있는 그녀를 향해 히죽 웃어보였다.
“여기까지만 해?”
우리의 밀회를 목격한 여자가 교무실을 가거나, 교실 안에서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교사에게 일러바친다면 벌점은 확정.
특히 학생회인 미유키는 타격이 꽤나 클 것이었다.
나도 저번학기에 쌓아놓은 벌점이 있어서 위험할 테고 말이다.
근데 그렇게 되도 나쁘지는 않아 보인다.
미유키와 나를 콕 집어서가 아니라,
‘정체를 모르는 남녀가 3학년 복도에서 엄청 야한 애정표현을 하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소문이 나고...
그 다음 날 [공공장소에서 애정행위 발각 시 징계위원회 회부] 라는 공고문이 게시판에 붙으면 미유키의 반응이 참 재미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