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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코미디를 망가뜨리는 법-191화 (191/313)

  

위스키를 조금만 타는 하이볼의 특성상 도수가 높다고는 할 수 없지만, 맥주보다는 훨씬 세다.

가뜩이나 술을 못하는 미유키가 마시면 취기가 빨리 오를 텐데 괜찮으려나?

그래도 하이볼로 인사불성이 되지는 않을 테고, 미유키가 알아서 잘 조절할 테니까 상관없겠지 싶다.

  

“상관은 없는데... 마셔본 적 있어?”

  

“가족들이랑 외식할 때 아주 조금...”

  

“그럼 그렇게 해. 알아서 잘 조절하면서 마셔.”

  

“응.”

  

내가 주문을 모두 끝내자, 자신의 외투를 벗은 미유키가 가게 안을 둘러보고는 포근한 미소를 지었다.

시끌벅적한 분위기가 마음에 든 듯했다.

  

“이런 곳에서 술 마시는 건 처음이야.”

  

“가족들이랑 외식했을 땐 어디에서 마셨는데?”

  

“보통은 호텔 룸 안에서 마시지. 아니면 공원이나.”

  

“아주머니랑 아저씨가 조용한 장소를 좋아하시나보다.”

  

“맞아. 그래서 언니가 재미없다고 답답해해.”

  

카나는 시끄러운 곳을 좋아하는구나.

하긴, 이미지 상 그럴 것 같긴 했다.

  

미유키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길 얼마 후, 주문한 안주가 테이블을 가득 채웠다.

마지막으로 나온, 탄산이 보글보글 올라오는 투명한 하이볼의 손잡이를 잡은 나는 그것을 미유키의 앞에 내밀었다.

  

그러자 미유키가 잠깐 낯설어하더니, 나와 잔을 살포시 맞부딪치며 수줍게 웃었다.

그렇게 말없이 건배를 한 우린 누가 뭐랄 것도 없이 동시에 하이볼을 들이켰다.

  

목을 타고 내려가는 탄산 특유의 톡 쏘는 맛과, 레몬 향이 조금 섞인 희석된 위스키의 알싸한 맛이 마음에 들었을까?

표정을 예쁘게 일그러뜨린 미유키가 목을 떨며 기분 좋은 감탄사를 터뜨렸다.

  

그런 미유키의 눈앞에 야키토리를 내밀자, 자연스레 입을 벌린 그녀가 고기를 한 입 베어 물었다.

그리고는 입술에 약간 묻은 양념을 물티슈로 닦아내며 입을 오물거렸다.

  

“맛있냐?”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는 그녀.

킥킥거린 나는 하이볼을 한 모금 더 들이키면서, 본격적으로 미유키와 담소를 나누기 시작했다.

  

**

  

착석한지 1시간이 지난 지금, 미유키의 테이블 위에는 하이볼이 반쯤 남아있는 잔이 하나, 그 옆에 비어버린 잔이 하나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인 채로 날 지그시 쳐다보는 중이었다.

  

“.....”

  

게슴츠레 풀린 눈, 불그스름하게 달아오른 얼굴.

이 두 가지가 조화를 이룬 미유키의 모습에선 색다른 매력이 풍겼다.

  

가끔 미유키와 술을 한 잔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그녀의 눈빛은 굉장히 외설적이었다.

수학여행을 가면 방에서 단둘이, 주변 눈치를 보지 않고 마셔볼까?

리미트가 풀린 미유키... 상상만 해도 꼴린다.

  

“뭘 그렇게 빤히 봐?”

  

미유키의 눈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내 물음에, 그녀가 고개를 반대쪽으로 꺾으며 대답했다.

  

“마츠다 군이 먼저 봤으니까.”

  

혀가 꼬일 정도로 취기가 올라온 건 아니구나.

콧소리가 섞인 말투로 내게 애교를 부리는 미유키가 보고 싶었는데, 그건 다음 기회에 봐야할 것 같다.

치나미가 온 이후로도 한참을 여기 앉아있어야하는데 여기서 더 취하게 둘 수는 없지.

  

“그런 적 없는데.”

  

“그랬는데?”

  

“그래?”

“응.”

  

누가 먼저 본들 어떠하리. 좋으면 됐지.

기본안주로 나온 삶은 풋콩을 집어 미유키의 입술 앞에 가져다댄 내가 말했다.

  

“먹어.”

  

“왜 아까부터 이것저것 먹이려고 그래?”

  

“먹어야 덜 취해.”

  

“나 안 취했어.”

  

저렇게 말하는 사람치고 진짜 안 취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단다.

라고 튀어나오려는 말을 집어넣은 내가 풋콩을 더욱 앞으로 내밀자, 미유키가 입을 앙 벌리더니 풋콩의 끄트머리를 삼켰다.

  

얌전히 잘 받아먹는 모습이 보기 좋다.

앞으로는 미유키가 투정을 부릴 때마다 적당히 취할 정도로만 술을 먹여서 조신하게 있도록 해볼까 싶다.

  

짭짜름한 콩이 맛있었는지 배시시 웃는 미유키.

다양한 행동을 보여주는 그녀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를 이어나가던 나는,

  

우우웅-!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휴대폰이 덜덜거리는 소음을 내자 발신자를 확인해보았다.

치나미에게 전화가 오고 있다. 아까 내가 보내놓은 위치에 도착한 모양.

미유키에게 풋콩을 한 번 더 먹인 나는 통화 버튼을 누르고 휴대폰을 귀에 가져다댔다.

  

“어디세요?”

  

-도착했어요. 안쪽이 음산한 가게가 맞나요?

  

“맞습니다. 열고 직원한테 일행 있다고 말씀하신 뒤 쭉 들어오면 돼요. 사람이 많긴 한데 찾기는 어렵지 않을 겁니다.”

  

-넷...!

  

군기가 빡 들어간 대답과 동시에 훅훅거리며 호흡을 고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긴장한 모양이다. 술자리가 처음이라서 그런 건지, 아니면 미유키, 나와 삼자대면을 해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저러니까 나도 떨린다.

너무 굳어있으면 주변 공기가 딱딱하게 변해버릴 우려가 있으니 잘 달래주어야겠다.

  

-그럼 들어갈게요...! 제가 보이면 손을 들어주세요.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나는 술집 입구를 주시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딸랑거리는 종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큼지막한 목도리로 얼굴을 반쯤 감싼 치나미가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이제부터가 진짜인가? 너무 마음 놓지 말고 분위기를 잘 살피면서 행동하자.

그리 생각한 나는 치나미가 우리 테이블을 쉽게 찾을 수 있게끔 자리에서 일어나,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는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안녕하세요, 하나자와 후배님.”

  

언제나 예의가 바른 치나미의 인사에, 밝은 낯으로 활짝 웃은 미유키가 그녀를 반겼다.

  

“안녕하세요, 선배. 어서 앉으세요.”

  

안으로 자리를 옮긴 미유키가 자신의 옆자리를 톡톡 쳤다.

고개를 꾸벅 숙여 감사의 뜻을 전하고는 그곳에 앉은 치나미의 눈이 데굴 굴러갔다.

표정을 보니 약간 굳어있는데, 자신이 이런 자리에 끼어도 될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듯했다.

  

치나미의 앞에 작은 접시를 놓은 내가 물었다.

  

“부장은 집으로 돌아갔어요?”

“아, 네.”

  

“따로 뭐라고는 안 하던가요?”

  

“음... 딱히 뭐라고는 하지 않았지만 무슨 일이 생기면 꼭 자신에게 연락하라고 했어요.”

  

치나미를 나름 쉽게 보내줬구나.

셋이서 호텔로 갈 예정인 걸 알았다면 노발대발하며 막았겠지?

다음번엔 렌카와 포썸도 도전해볼까 싶다.

  

“그렇군요. 다음에는 부장도 같이 불러서 놀죠.”

  

“앗, 그래도 괜찮을까요?”

  

“당연하죠.”

  

“하나자와 후배님은 어떠신가요? 괜찮으신가요?”

  

치나미의 조심스런 물음에, 묵묵히 대화를 듣고 있던 미유키가 대답했다.

  

“전 좋아요. 이노오 선배랑은 친하게 지내고는 하니까...”

  

“다행이에요.”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는 있었지만, 어색한 분위기가 분명히 있었다.

미유키로서는 치나미와 함께 호텔로 가야 해서 복잡한 마음이 들었을 테고,

치나미로서는 나와 만나고 있는 미유키와의 자리에 자신이 난입하여 미안한 마음이 있을 테지.

이 무거워지려는 공기를 어떻게든 순환시켜야한다.

  

나는 메뉴판을 펼치고 가장 끝부분 구석에 있는 아이스크림 사진을 가리켰다.

  

“아이스크림 드실래요? 복숭아 맛도 있던데.”

  

“낫...! 아주 탐이 나는군요...!”

  

치나미 특유의 순진하지만 노티가 풀풀 풍기는 말투, 그리고 복숭아에 눈이 돌아간 모습이 웃겼을까?

미유키가 돌연 기분 좋은 실소를 터뜨렸다.

일반적인 상황이었다면 그러려니 했을 텐데, 취기 때문에 텐션이 올라와있었기에 뭐든 재미있는 모양이었다.

  

어쨌거나 저런 미유키의 행동 덕에, 치나미 또한 긴장이 풀렸는지 입꼬리를 올렸다.

다행이라고 생각한 나는 점원을 불러 맥주와 잔, 그리고 아이스크림을 주문했고, 치나미의 접시 위에 안주 한 종류를 덜어주었다.

  

“고맙습니다, 후배님.”

  

“뭘요. 많이 드세요.”

  

“죄송하지만 조금만 먹으면 안 될까요? 렌카와 배가 빵빵해지도록 밥을 먹어서요.”

  

빈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게 웃기다.

그나저나 배가 빵빵하다라... 왠지 야하게 들리는 대사다.

  

“원하시는 대로 하세요.”

  

“네. 그런데 하나자와 후배님께서는 술을 많이 드신 건가요?”

  

방금 터진 미유키의 웃음에 용기를 얻은 것 같은 치나미의 물음.

달아올라있는 자신의 뺨을 만져본 미유키가 반문했다.

  

“왜요? 저 얼굴 많이 빨개요?”

  

“조금 많이 빨갛군요. 잘 익은 복숭아가 되어버렸어요.”

  

보통 이런 경우엔 잘 익은 홍시나 사과 같다고 하지 않나?

치나미다운 감상평이다.

  

“그래요? 한 잔 반 정도밖에 안 마셨는데...”

  

“약간 알딸딸하시면 제가 복숭아 즙을 드릴게요.”

  

“복숭아 즙이요...? 그걸 갖고 오신 거예요?”

  

“네. 오늘 마츠다 후배님께서 맥주를 마시자고 하시길래 갖고 왔지요. 잠시만요...”

  

모모님 얼굴이 박힌 크로스백을 연 치나미가, 그 안에서 복숭아 즙을 세 팩 꺼냈다.

그리고는 그것을 나와 미유키의 앞에 놓고는 말했다.

  

“숙취해소에 좋은 거니 쭈욱 들이키세요.”

  

알겠다고, 고맙다고 대답한 우리가 복숭아 즙을 마시는 사이, 직원이 맥주를 가져와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달짝지근한 즙을 다 먹고 병따개로 맥주를 딴 나는, 얼음이 반쯤 채워진 빈 잔에 그것을 따랐다.

  

이후 잔의 몸통 부분을 잡고 치나미에게 내밀자, 그녀가 두 손으로 공손히 잔의 아랫부분과 손잡이를 잡았다.

  

“감사합니다, 후배님.”

  

“뭘요. 건배할까요?”

  

“앗, 네.”

  

치나미가 쥐고 있는 잔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는 것이 보인다.

풀렸던 긴장이 다시 찾아온 건가?

술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 생각한 나는 웃는 낯으로 잔을 든 미유키, 그리고 치나미와 잔을 부딪쳤다.

  

**

  

“흠흠. 맛있군요. 안주가 아주 맛있어요.”

  

새빨개진 얼굴로 젓가락질을 하고 있는 치나미.

안주가 빠르게 줄어가는 게 눈에 보일 정도로, 그녀의 입은 쉬지 않고 놀려지고 있었다.

  

알코올이 들어가면 식욕이 상승하는 건 그 어떤 사람에게서나 보이는 공통점이지.

음식을 냠냠 먹는 모습이 귀엽다.

  

“으으음...! 훌륭해요. 전문점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군요...!”

  

새로 시킨 가라아게를 맛본 치나미의 감탄.

그에 눈을 흐리멍덩하게 뜨고 있던 미유키가 말했다.

  

“선배, 과식하면 힘들어요...”

  

혀가 살짝 꼬여있다. 많이 취해있다는 증거.

도수가 나름 높은 하이볼을 네 잔 정도 마셨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치나미의 경우는... 미유키와 취한 정도가 비슷했다.

중간에 치나미가 하이볼을 반 정도 마신 걸 감안하더라도, 주량은 미유키가 훨씬 앞서는구나.

간이 별로 안 좋은가? 복숭아 즙 대신 헛개나무 즙이라도 먹일까 싶다.

  

아까까지만 해도 남아있던 어색한 분위기는 현재 완전히 날아간 상태.

미유키와 치나미는 사적인 이야기를 하며 서로의 우애를 다져나가고 있었다.

  

간간히 두 사람과 화기애애한 담소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던 나는 슬쩍 휴대폰을 확인해보았다.

10시가 다 됐다. 여기서 시간을 더 보내면 쓰리섬은 물 건너갈지도 모르니까... 슬슬 가야겠다.

  

판단을 마친 나는 둘의 대화가 잠깐 멎은 타이밍에 맞춰 입을 열었다.

  

“이제 일어날까요?”

  

그러자 치나미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느엣? 벌써요?”

  

“시끄러운 곳이라서, 조용한 장소로 자리를 옮기려고 합니다.”

  

“아... 헤어지는 게 아니었네요?”

  

저런 말까지 하는 걸 보면 이 자리가 꽤나 마음에 들었나보다.

  

“예. 헤어지려면 아직 멀었죠.”

  

“앗...! 그렇군요. 그러면 일어나도록 해요.”

  

그렇게 자리에서 일어난 우린 계산을 마치고 추운 크리스마스의 거리로 나왔다.

  

“므아아... 춥네요...!”

  

목도리를 동여맨 치나미가 자신의 팔을 부여잡았다.

술로 인해 열이 발산되면서 상대적으로 심한 추위를 느끼고 있는 것이다.

  

미유키도 의연한 척하고는 있었지만 몸을 떨고 있는 상태.

그녀들의 목도리를 제대로 잘 매어준 나는 근처에 보이는 료칸 비슷한 컨셉의 호텔을 가리켰다.

둘이 대화를 하는 사이 미리 예약해두었던 곳이었다.

  

“저기 들어가서 마실까요?”

  

“저기...? 아하...! 호텔이군요...!”

  

“예. 어떠세요?”

  

“조용하니 좋겠네요...! 저는 좋아요.”

  

평소의 치나미였다면 이상한 상상을 하며 잔뜩 부끄러워했을 텐데, 술이 들어간 상태라 아무래도 좋은 모양이었다.

천진난만하게 고개를 주억거리는 치나미와는 달리, 미유키의 표정은 약간 굳어있었다.

머릿속에서 그려보고 있나보다. 호텔에서 일어나게 될 일을.

  

치나미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헤실헤실 웃고 있는 틈을 탄 나는 미유키의 삐죽 튀어나온 윗머리를 잘 정리했다.

  

“갈까?”

  

“.... 응.”

  

앞으로 어떻게 될까? 막상 상황이 닥쳐오니 예상을 전혀 못하겠다.

술자리의 화목했던 분위기를 침대까지 갖고 가는 건 무리겠지.

그래도 술자리가 큰 도움이 된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 이걸 발판으로 최대한 열심히 노력해보자.

  

**

  

두 사람과 함께 방에 들어간 나는, 잠깐 쉬고 있으라 말한 후 호텔 안에 있는 매점으로 향했다.

간단하게 마실 술과 안주를 사기 위해서였다.

여자들끼리 대화를 할 시간을 주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대충 맛있어 보이는 먹거리들과 맥주를 몇 캔 산 내가 일부러 늑장을 부리면서 방으로 돌아왔을 땐, 미유키와 치나미는 다다미방에 요를 깔고 누워있는 채였다.

특히 치나미는 머리만 남겨두고 이불을 덮은 상태였는데, 왜소한 그녀의 몸이 규칙적으로 솟았다가 내려앉고 있었다.

  

‘자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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