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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코미디를 망가뜨리는 법-206화 (223/313)

그러자 내 어깨에서 꾸벅꾸벅 졸려고 하던 미유키가 눈을 비비적거리더니 말했다.

“나랑 테츠야 군이랑 같이 공부하기로 했어.”

“아 진짜? 그럼 2학년 중간고사 때 기대해 봐도 되는 거야?”

그러고 보니 겨울방학 후 시험이 없는 무난하고 짧은 3학기를 끝내면 곧 2학년이 된다.

반은 현실 대다수의 일본 학교와는 다르게 1학년 때의 반을 그대로 가져가 올라갈 터.

어떻게 보면 지루하겠지만, 또 어떻게 보면 적응하기가 쉬워서 나름 나쁘진 않았다.

테츠야의 면상을 계속 보는 건 좆같지만 뭐... 그러려니 해야지.

적당히 놀려주다가 무시하면 그만이니까.

“이번 시험 결과부터 봐야겠지?”

“넌 학생회니까 언제 나오는지 알지? 우리한테만 살짝 알려주라.”

“방학 전에는 나올 거야.”

미유키와 부반장의 대화를 듣고 있던 나는 슬쩍 고개를 돌려 테츠야가 앉은 곳을 살펴보았다.

퍼질러 자고 있구나. 오늘 아침부터 생긴 뚱한 표정이 자면서까지 이어지고 있는데, 저것도 능력이다.

톡.

대화를 끝내자마자 다시금 내 어깨에 수건을 올려놓고는, 자신의 머리를 기대고 기다랗게 하품을 하는 미유키.

그런 그녀를 보며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은 부반장이 말했다.

“그냥 등받이를 당기면 되지 않아?”

“난 이게 편해.”

“보기 좋네? 어제 스키장에서도, 오늘 관광할 때도 꼭 붙어 다니더니.”

그 말에 힘없이 웃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 미유키가 눈을 감았다.

그녀의 몸에 외투를 덮어준 나는, 여행을 올 때처럼 눈 꼴 시렵다는 듯 혀를 차는 부반장에게 히죽 웃어보이며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

여러 일들이 지나갔던 여행이 끝났지만, 아카데미는 평소와 같았다.

예전처럼 수업을 했고, 예전처럼 부활동을 했다.

다만 학생들의 마음속이 내일부터 돌입할 겨울방학으로 가있는 데다 기말고사까지 끝난 시점이었기에, 교사들은 학생들을 많이 풀어주었다.

“후배님, 후배님.”

쉬엄쉬엄한 수업을 끝낸 뒤 부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온 내게 다가온 치나미의 부름.

그녀를 간만에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은 내가 방긋 웃었다.

“예, 스승님.”

“여행은 잘 다녀오셨나요?”

“그럼요. 참, 보내준 사진 잘 봤습니다.”

“앗, 어땠나요?”

“스승님도 재미있는 시간을 보낸 것 같아서 기뻤네요.”

관광지에서 밝게 웃는 치나미와 렌카를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다만 저번에 사진을 보내달라고 말했을 때 치나미의 얼굴이 붉어졌던 터라 은근히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그게 없어서 조금 아쉬웠다.

“무후후... 따뜻미지근한 오키나와가 마음에 들었어요. 렌카도 저와 같은 생각을 해서 나중에 따로 같이 가기로 했답니다.”

그럼 거기에 나도 껴야겠군.

여행의 여운에 취했는지 눈빛이 몽롱해진 치나미를 잠깐 내려다본 내가 물었다.

“스승님은 방학 때 뭘 할 건가요?”

그에 고개를 마구 털어내며 정신을 차린 치나미가 대답했다.

“원래는 집에서 빈둥거릴 예정이었는데, 부모님과 함께 시골에 가기로 했어요.”

“그래요? 언제 돌아오는데요?”

“언제까지 묵을지 정해지지는 않았지만 꽤나 오래 있을 것 같아요. 한 열흘...? 길면 보름? 다음 동계대회 전까지는 돌아올 생각이에요.”

치나미는 최소 이틀마다 한 번씩 보면서 힐링을 해줘야하는데...

이러면 조금 곤란하다. 영상통화가 있다고는 하지만 나는 치나미의 말랑말랑하고 토실토실한 엉덩이가 만지고 싶단 말이야.

집으로 초대하려고도 했건만... 그래도 가족 일이라는데 어쩔 수 없지.

치나미가 시골에서 돌아올 때를 기약해야겠다.

“그렇군요. 가서 자주 전화해요.”

“넷, 그럴게요.”

“이제 일할까요?”

“엇, 저는 감독님과 3학기 때 사용할 비품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어야하니, 후배님께서는 먼저 일을 하고 계세요. 너무 열심히 하지는 마시고 요령을 조금 피우시면서요.”

팔을 쭈우욱 뻗어 내 어깨를 토닥거린 치나미가 감독실에 노크를 하더니 이내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평소처럼 뚱한 표정을 지은 렌카가 내게 다가오자 이를 드러내며 웃어보였다.

“안녕하세요, 부장. 스승님이랑 잘 놀다 왔어요?”

“응. 네가 없어서 굉장히 좋았던 것 같아.”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기는.

“저도 부장이 없어서 좋았습니다.”

“그렇다니까 다행이네. 일일알바 안 까먹었지?”

“기억하고 있습니다. 사흘 뒤 여덟 시까지 삼촌네 집으로 가면 되잖아요.”

“맞아.”

“그때 제 차로 같이 갈까요?”

“아니. 제안은 고맙지만 정중하게 거절할게.”

“알겠습니다. 여섯 시 반까지 집 앞으로 갈 테니까 나와요.”

“거절한다니까?”

“알았어요. 그럼 같이 가는 걸로 알고 있겠습니다.”

렌카의 눈이 질끈 감겼다 뜨였다.

내 막무가내 식 화법에 뒷목이 당기는 모양이었다.

리액션이 찰져서 좋긴 하지만 이쯤 됐으면 적응을 할 만도 한데 저러는 모습이 웃기다.

“진짜로 올 거야?”

“믿기 싫으면 먼저 가도 돼요.”

“.... 그럼 내가 집에서 나올 때까지 기다리려고?”

“잘 아시네요.”

“하... 알았어. 같이 가.”

“그래요. 대중교통으로는 2시간 이상 걸리는데 시간도 아끼고 얼마나 좋아요.”

“그렇다고 치자.”

“삼촌네 가게 도와주고 바로 알바 시작할 거예요?”

“.... 시작은 할 건데, 바로는 아니야.”

“왜요?”

“일이 있어서.”

렌카가 말한 일이라는 건 코미케를 말함이었다.

그날 자신이 좋아하는 굿즈를 무더기로 구입하겠지?

날 마주치면 어떤 표정이 튀어나올지, 그리고 어떤 핑계를 댈지 정말 궁금해진다.

“이제 일해.”

“할 일이 별로 없는데 좀 쉬면서 할게요.”

“뭐라는 거야... 엄청 많거든? 저기 수건 무더기로 쌓여있는 거 안 보여?”

절도 있게 부실 한켠을 가리키는 렌카.

약간 잔소리를 하는 와이프 같은 느낌이다.

못 이기는 척 한숨을 푸욱 내쉰 나는, 방학 때 렌카가 보여줄 다양한 반응을 상상해보며 수건을 접기 시작했다.

봄방학이 없는 건 아쉽지만, 대신 겨울방학이 기니까 괜찮다.

렌카와 톡톡 튀는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걸로 만족하자.

[수석, 하나자와 미유키]

[차석, 나츠메 호노카]

복도 게시판에 붙은 등수의 가장 윗부분을 훑은 나는, 예상과 한 치도 다르지 않은 등수에 그럼 그렇지 했다.

부반장과 매번 사이좋게 1, 2위를 나눠먹는 미유키... 독과점이 심하다.

빵녀는 5등인가? 저번에는 어땠는지 기억이 잘 안 나지만 엄청 잘했구나.

이런 똑똑한 유전자를 가진 세 사람에게는 인류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내 우수한 씨즙을 뿌려줘야 마땅하지 않을까 싶다.

우생학적인 생각을 해본 나는 눈동자를 굴려보다가,

[10위, 마츠다 켄]

10위에 떡하니 자리한 내 이름을 발견하고 씨익 웃었다.

느낌이 좋다 했는데 딱 10위다.

중간고사만큼의 기쁨은 없었다. 더 높은 등수를 차지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는데 정확하게 턱걸이라 감동이 덜한가보다.

하지만 미유키는 나와는 다른 생각을 한 모양이었다.

“마츠다 군! 봐봐!”

방방 뛰는 것도 모자라 내 팔을 마구 흔들어대며 자신의 기다란 검지로 게시판을 가리켰던 것이다.

마치 당연한 결과라는 듯 거만하기 그지없는 표정을 짓고 있던 나는, 그녀의 호들갑에 점점 얼굴이 무너져갔다.

“알았어. 진정해. 가채점 해봤잖아.”

“그래도...!”

자랑스럽다는 눈빛으로 날 올려다보는 미유키.

그리고 주위에서 느껴지는 선망과 질시가 담긴 시선... 마음에 든다.

오늘밤은 아주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11위, 미우라 테츠야.]

내 바로 밑에는 테츠야가 있었다.

이래서 사람은 겸손해야한다.

10위 안쪽일 거라고 거들먹거리더니 결과를 보라.

목표도 달성하지 못한데다 등수가 나보다 아래잖은가.

빠르게 손뼉까지 치며 좋아라하던 미유키는, 내 밑에 자리한 테츠야의 등수를 보고는 잠깐 움찔하더니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저번 중간고사 때처럼 똥 씹은 면상을 하고 있는 테츠야의 어깨를 상냥하게 두드렸다.

“테츠야 군도 엄청 잘했어!”

진심이 담겨있는 미유키의 칭찬에 어색한 미소를 지은 테츠야가 자신의 똥내 나는 아가리를 열었다.

“다음번엔 꼭... 꼭 10등 안으로 들게.”

들도록 노력해볼게도 아니라 들게?

못 지킬 약속은 하는 게 아닌데... 역시 입이 가벼운 놈답다.

“응, 난 테츠야 군을 믿어. 11등도 엄청 잘한 거야. 너무 기죽어있지 마.”

“실망시켜서 미안해.”

“실망 같은 건 전혀 안 했어. 두 사람 모두 엄청 열심히 노력한 걸 잘 아니까 기쁘기만 한데?”

“고마워...”

격려에 기쁘겠지만 나보다 낮은 등수를 차지한 건 자존심이 상하겠지.

그래도 테츠야치고는 잘한 셈인가?

나도 칭찬은 해주마.

**

“얘들아! 책상이랑 의자 복도에 빼놔! 다치지 않게 조심하구!”

교탁 앞으로 간 미유키가 손뼉을 짝짝 치며 지시를 내리자, 교실 안에서 우당탕탕하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방학을 맞이하여 들뜬 학생들이 재빨리 움직임으로서 나는 소음이었다.

딱 봐도 신이 난 그들을 도와 묵묵히 책상과 의자를 복도에 옮겨놓은 나는, 무리를 모여 교실을 빠져나가는 학생들과 간단하게 작별인사를 했다.

이후 부반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미유키의 뒤에서 빵을 오물오물 먹고 있는 빵녀에게 다가갔다.

“야, 빵녀.”

“콜록.”

한 차례 깔끔한 기침으로 대답을 대신하는 빵녀.

그녀에게 휴대폰을 내민 내가 물었다.

“넌 방학 때 뭐하냐?”

“난... 콜록! 시골 가려고...”

시골에 내려가는 사람들이 많구나. 정월이라서 당연하다지만 가족이 없는 나는 서러워서 살겠나?

빨리 히로인들을 임신시켜서 대가족을 이루어야겠다.

“그러냐? 방학 잘 보내고, 내 전화번호 알지? 심심하면 연락해라.”

“콜록.”

“그래, 나 빵 하나만 줘봐.”

“크림빵이랑 소보로랑 연유빵 있는데... 켁...! 뭘로 줄까...?”

더럽게 많이 가지고 다니네.

쟤는 어쩌면 밀가루가 아닐까?

“왜 이렇게 많이 들고 다녀? 소보로로 줘.”

“응...”

“돈 내야하냐?”

“아, 아니야... 이제까지 매점에서 많이 사줬잖아... 콜록!”

빵녀에게 기침이란 뗄 래야 뗄 수 없는 관계구나.

자지를 입에 문 채로 쿠훕! 쿱! 하는 기침을 터뜨리며 찐득한 점액을 꿀꺽거리는 소심한 빵녀... 왠지 꼴린다.

“왜 마사코를 괴롭히고 그래?”

부반장과의 대화를 끝낸 미유키의 타박.

어깨를 으쓱인 내가 말했다.

“괴롭히긴 뭘 괴롭혀. 이제 다 끝났냐? 가면 돼?”

“아직이야. 나 학생회 회의만 끝내고 가자.”

“방학인데도 해?”

“3학기 운영방안에 대해서만 짧게 하는 거야. 30분 정도 걸리는데 기다려줄 거지?”

“그래야지.”

그 당연하다는 듯한 대답에, 옆에 있던 부반장이 신기한 눈으로 우릴 쳐다보았다.

“너희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서로 못 잡아먹어서 난리지 않았었어? 특히 미유키 너는... 마츠다 군을 엄청 싫어했잖아.”

그 말에 예전 생각이 났을까?

미유키가 추억을 되새겨보듯 희미한 미소를 짓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니까.”

“그렇기는 하지... 그래도 되게 의외다. 보면 볼수록 적응이 안 돼.”

적응이 안 되는 사람치곤 할 말은 다 하네.

심드렁한 낯으로 머리를 벅벅 긁은 내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이상한 소리하지 말고 얘기 끝났으면 빨리 사라져.”

“뭐야... 짜증나. 방학 잘 보내.”

“오냐. 너도 잘 보내든지 해라.”

건들거리는 농담 식 대답에 악의 없이 투덜거린 부반장이 빵녀와 함께 교실에서 나갔다.

못 말리겠다는 듯 픽 하는 웃음을 터뜨린 미유키는, 교실에 나와 단둘이 남게 되자 내 제복 마이에 붙어있는 먼지를 떼어내주었다.

그리고는 말했다.

“내일 아침에 잠깐 우리 집에 와.”

“왜? 너 가족들이랑 누마즈에 있는 친가에 간다며.”

“정월이잖아. 혼자 보내면 안 되니까 같이 아침 먹자.”

“밤엔 돌아오니까 혼자는 아니지.”

“그래도 같이 먹자. 엄마랑 아빠도 마츠다 군이 왔으면 좋겠대.”

미도리와 와타루가 정월에 날 초대했다?

테츠야가 알면 피눈물을 흘리겠군. 원래 자신의 자리를 빼앗기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그러면 뭐... 갈게.”

“응. 뭐하고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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