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러브 코미디를 망가뜨리는 법-207화 (224/313)

“부실에 가보려고. 마무리 못한 일이 있을 수도 있고, 이노오 선배랑 나나세 선배한테 인사도 할 겸.”

“그래? 알았어. 회의 끝나자마자 연락할 테니까 이따 봐.”

“알았다. 근데 미우라는 어디 있냐?”

“글쎄? 화장실이라도 간 거 아니야?”

테츠야 군... 존재감이 나날이 줄어들면서 이젠 미유키에게도 잊혀져가고 있구나.

수학여행 때도 그렇고, 오늘 시험 결과도 그렇고... 많이 힘들지? 그 마음 다 안다.

그래도 용기를 더 내서 똥볼을 차보도록 하렴.

그래야 내가 또 뺨따구를 갈기지.

**

“앗! 후배님!”

부실 안에는 제복 차림의 치나미가 있었다.

헤실헤실 웃는 낯으로 날 반긴 그녀는, 총총걸음으로 내게 다가오더니 자신의 두 손을 허리 뒤로 옮겼다.

“드디어 겨울방학이로군요.”

“그러네요. 오늘 바로 시골에 내려가나요?”

“맞아요. 오늘 밤에 고속도로를 타고 내려가기로 했어요. 후배님과 함께 정월을 쇠지 못하는 게 너무나도 아쉽네요.”

내년, 늦어도 내후년 정월엔 다 같이 보내면 되지.

히요리까지 포함해서.

라는 말을 삼킨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요. 내려가면 사진 많이 보내줘요.”

“물론이에요. 가자마자 보내드리도록 하겠어요.”

“알겠습니다. 여긴 부장이랑 같이 왔어요?”

“네. 렌카는 지금 밖 창고에 있어요.”

“그래요? 그럼 잠시만...”

말끝을 흐린 나는 치나미에게 성큼 다가가, 그녀가 입은 제복 치마를 위로 살짝 젖히고 그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먓!?”

이후 특유의 깜찍한 감탄사를 터뜨리는 그녀의 엉덩이 밑부분을 사근사근 쓰다듬었다.

“후, 후배님...!”

순식간에 새빨개진 얼굴로 창밖을 곁눈질하는 치나미.

혹시 렌카가 올까 불안한가보다.

“가, 갑자기 이러시면 조금 곤란한데요...”

“당분간 못 만지니까 지금 많이 만져둬야죠.”

“앗... 그렇게 되는 건가요?”

“예.”

“그렇군요... 이해했어요.”

아예 납득을 해버리는구나.

우리 치나미는 너무 귀여워서 탈이에요.

얼마 지나지 않아 치나미의 코에서 새어나오던 바람이 강해졌다.

약간 찬 느낌이 있었던 온도 또한 따뜻해진 상태.

그녀가 천천히 흥분을 하고 있다는 방증이었다.

미유키가 올 때까지, 앞으로 20분 정도가 남아있다.

그 정도면 치나미와 한 번 할 시간은 충분하지 않나?

그러한 생각을 할 즈음, 어김없이 방해꾼이 등장했다.

-치나미! 문 잠가야하니까 나와!

부실 밖에서 들려오는 렌카의 목소리에, 나는 마지막으로 치나미의 안쪽 허벅지를 쓰다듬어주면서 손을 빼냈다.

“나갈까요?”

“.... 그... 저, 저는 잠시 화장실에 다녀와야 할 것 같네요...! 먼저 나가 계세요...!”

다급하게 자신의 제복 매무새를 가다듬은 치나미가 화장실로 걸어갔다.

빠르게 발을 놀리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다가 부실 밖으로 향한 나는, 날 보고 흠칫하는 렌카에게 한손을 들어올렸다.

“안녕하세요, 부장.”

“너는 왜 계속 부실에만 있어?”

“매니저가 방학을 앞두고 부실에 이상이 없는지 체크를 하는 게 이상한 건가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냐는 듯 렌카를 위아래로 훑자, 무안해한 그녀가 헛기침을 했다.

“.... 그러네. 치나미는 안에 있었어?”

“화장실 갔다가 온대요. 같이 기다리죠.”

“기다리는 건 상관없는데, 거리는 좀 두지?”

“싫습니다. 기말고사 점수 나왔죠? 몇 등이에요?”

그 말에 렌카의 눈빛이 확 가라앉았다.

“.... 넌?”

“제가 먼저 물어봤잖아요.”

“내가 먼저 되물어봤어.”

“말을 먼저 꺼낸 건 난데?”

“그걸 되물어본 건 내가 먼저 했어.”

이 요상한 말장난은 뭐지? 약간 반사 같은 느낌인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저런 말을 하는 걸 보니, 슬슬 내 말과 행동에 제대로 적응해나가고 있는 것 같다.

“억지 부리지 마세요.”

“너나.”

“그래요.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까, 특별히 부장의 억지를 들어줄게요. 전 10등입니다.”

“무, 뭐...? 거짓말하지 마...!”

눈이 두 배는 더 커지는 렌카.

그녀의 격한 리액션에 히죽 웃은 내가 물었다.

“반응을 보니 저보다 등수가 낮나보죠?”

“.... 시끄러.”

“이번 내기소원은 제 차지네요. 부장에겐 아쉽게 됐습니다.”

“억지야...! 난 내기한다고 안 했어.”

혓바닥이 길어지는 렌카의 모습이 웃기다고 생각한 내가 태연스레 말했다.

“방금 부장이 부린 억지는 뭔데요?”

“아 몰라. 1학년이랑 2학년 시험 난이도도 생각하지 못하는 네 소원을 들어줄 필요는 없다고 봐.”

혓바닥이 길어지네. 귀엽긴.

표정이 실시간으로 뒤바뀌는 렌카의 반응을 즐기던 나는, 그녀를 위해 화제를 돌려주기로 했다.

“모레 여섯시 반까지 가면 되죠?”

“.... 맞아. 근데 혹시 너... 정월에 멀리 가거나 해야 하는데 나 때문에 빠지는 건 아니지?”

“일이 있었으면 그때는 안 된다고 미리 말했겠죠. 신경 쓰지 마세요.”

“그럼 됐고...”

“그나저나 부장은 시골에 안 내려가나보네요?”

“나는 뭐... 집에서 가족들이랑 보내는 게 끝이야.”

“그렇군요. 정월 잘 보내세요.”

“그래... 너도.”

“내일 심심하면 연락해도 되죠?”

“아니. 절대 하지 마.”

“문자 보낼게요.”

“답장 안 할 거야.”

말은 저렇게 하지만 답장할 거 다 안다.

틱틱대는 렌카와 시간을 보낸 나는, 부실 밖으로 치나미가 나오자 그녀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물기가 약간 묻어있다. 흥분을 식히기 위해 세수까지 해버린 건가?

이러면 치나미와 하지 못한 게 너무 아쉬워지는데... 렌카가 방해를 해버려서 이렇게 된 거니까 그녀에게 대신 받든가 해야겠다.

방학이라 늦잠을 자고 싶지만, 오늘과 내일은 일찍 일어나야한다.

시끌시끌하게 울리는 알람에 인상을 팍 찌푸린 나는 잘 뜨여지지 않는 눈꺼풀을 억지로 올리며 이불을 치웠다.

날이 춥다. 난방을 켰는데도 으슬으슬하다.

정월다운 추위라고 해야 할까? 기분이 썩 나쁘지는 않다.

상체를 쭈욱 펴며 간단하게 근육을 당긴 나는 샤워를 했다.

이후 시간에 맞춰 미유키의 집에 가니, 자동차 소리를 들었는지 현관문이 자연스레 열렸다.

그 앞으로 간 나는 기모노를 입고 있는 미유키와 카나, 그리고 미도리가 날 마중하고 있자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안녕하세요, 아주머니.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마츠다 군도 새해 복 많이 받으렴.”

아침식사 후 시골로 내려갈 예정일 텐데도 복장을 갖춘 것으로 보아, 내게 명절 기분을 느끼게 해주려는 것 같다.

“저도 기모노를 입고 올 걸 그랬네요.”

“아냐. 전혀 상관없어. 입는 게 좋다고 생각했으면 미유키를 통해서 입고 오라고 했을 거야.”

아아... 기모노로도 감출 수 없는 저 커다란 가슴에 걸맞은 인자함을 보라.

어찌 감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춥지? 얼른 들어와.”

이어지는 미도리의 말에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인 나는, 따스함이 감도는 미유키의 집 안으로 들어가, 와타루와 인사를 나누고 식탁에 앉았다.

여러 요리가 담긴 직사각형의 찬합이 식탁에 올라가있는 게 눈에 띈다.

조림류부터 시작해서 연근, 검은콩, 새우 등이 들어가 있는데, 미도리가 오세치를 만든 모양이다.

“배고프지? 새해 덕담은 미뤄두고 일단 먹자.”

젓가락을 든 와타루의 말을 시작으로, 나와 미유키네 가족들은 화목한 분위기 속에서 식사를 했다.

예전과는 다르게, 미유키는 카나와 나란히 붙어서 앉아있었다.

무척 닮아있는 자매의 사이좋은 모습을 보니 자매덮밥이 마려워진다.

순진할 것 같지만 속내는 야한 미유키, 그리고 눈매가 동생보다 날카로워 색기가 흐르지만 성적인 쪽은 하나도 모르는 카나.

재미있는 상황이 많이 나오는 건 물론 무척 꼴리기까지 할 테지.

그렇게 식사를 마친 나는, 도와주지 않아도 된다며 한사코 거절을 하는 미도리에게 괜찮다고 웃어보이고는, 와타루를 도와 친가에 보낼 선물을 트렁크에 실어주었다.

그 사이 옷을 갈아입고 내려온 미유키가 집에서 조금 떨어진 곳까지 날 따로 끌고 오더니 말했다.

“마츠다 군도 같이 갔으면 좋았을 텐데.”

“다음에 같이 가.”

“응. 밤에 돌아오면 바로 마츠다 군 집으로 갈게.”

“아냐. 돌아오면 연락만 해두고 푹 쉬어. 나 내일 일찍 나가봐야 돼.”

“어디 가게?”

“이노오 선배네 삼촌들이 하는 가게에서 일일알바 하기로 했어.”

“아 진짜? 저번에 거기?”

“어. 거기 삼촌들이 내가 꼭 와줬으면 좋겠대.”

“그 정도로 마츠다 군이 잘했었어?”

“글쎄. 그건 모르겠고 그냥 내가 마음에 드나봐.”

“잘했으니까 마츠다 군을 마음에 들어 하시는 거겠지.”

내 코트 옷깃을 톡톡 털어준 미유키가 말을 이었다.

“일은 언제 끝나는데?”

“글쎄. 재료가 소진되는 시간에 따라서 다를 텐데 너무 늦지는 않을 거야.”

“알았어 그럼. 일 열심히 하다 와. 가기 전에 연락하구.”

“오냐.”

미유키와 미유키의 가족들이 출발할 때까지 집 앞에 있던 나는, 와타루의 차에 탄 그녀가 뒷좌석에서 고개를 내밀고 손을 흔드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차에 탔다.

첫 날부터 느낌이 좋다. 왠지 방학 내내 즐거울 것 같은 기분이야.

**

전통적인 느낌을 물씬 풍기는 가옥.

그곳에서 조금 떨어진 장소에 차를 대어놓은 나는, 해가 뜨기 전 특유의 어둡고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이후 집에서 나온 렌카가 창문을 두드리자 잠금을 풀었다.

덜컥.

“안녕.”

블루베리 향을 풀풀 풍기며 차에 타더니 인사를 해오는 렌카.

그녀의 얼굴에는 옅은 화장기가 감돌고 있었다.

내게 잘 보이기 위해서 한 건 절대 아닐 테지?

파운데이션으로 보정된 그녀의 하얀 피부톤을 흘끗거린 내가 말했다.

“안녕요. 근데 화장했어요?”

“했어.”

“왜?”

“큰삼촌이 하고 오래.”

삼촌들의 의도는 알겠다.

렌카의 얼굴이 예쁘니 얼굴마담으로 내세울 생각이겠지?

삼촌들이 운영하는 가게가 도심 번화가에 있는 음식점이나 카페였다면 효과가 아주 컸겠지만, 가게는 관광지에 있었다.

커플, 부부는 물론 가족 단위 관광객이 많이 오는 곳이라는 뜻. 때문에 저 전략은 효과가 크지 않았다.

그래도 뭐... 예쁘면 적어도 손해는 아니니까 그러려니 하자.

“잘 어울리네요.”

“어쩌라고.”

“칭찬도 못해요?”

“하지 마. 애초에 놀릴 생각밖에 없으면서 칭찬은 무슨...! 말만 번지르르해가지고...”

투덜거리고 있는 렌카가 입은 검은색 스키니진이 돋보인다.

골반을 제외한 뼈대가 얇아서 안 그래도 호리호리한데, 코디 때문에 더욱 훤칠한 것 같다.

그야말로 바니걸에 최적화된 몸. 꼭 이번에 사둔 복장을 입히고 말 거다.

그리고 내 앞에서 토끼 율동을 하도록 시킬 거야.

“.... 무, 뭔데? 왜 그런 눈으로 쳐다보고 난리야?”

내 음흉한 기색을 읽어냈을까?

렌카가 창문 쪽으로 자신의 몸을 붙이더니 미간을 구겼다.

“그런 눈이 어떤 눈인데요?”

“이상한 생각을 하는 눈이잖아...!”

“전 아무 생각도 안 하고 있는데? 이상한 생각을 하는 건 오히려 부장이 아닐까요?”

“추, 출발이나 해...! 앞에 봐!”

“밥은 먹고 왔어요?”

“안 먹었어...!”

“그러면 중간에 휴게소 같은데 들러서...”

“아니...! 삼촌이 오픈하기 전에 밥 준댔으니까 안 먹어도 돼...!”

“왜 말을 끊고 그래요. 어쨌든 출발합니다.”

이를 드러내며 웃어보인 나는 사이드 브레이크를 해제하고 기어를 드라이브에 놓았다.

이후 천천히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며 렌카를 불렀다.

“근데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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