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러브 코미디를 망가뜨리는 법-208화 (225/313)

“안 해. 잘 모르겠어. 미안.”

“나 아직 용건 안 꺼냈는데?”

“네가 뭘 말하든 미리 거절이야.”

“왜요?”

“이상한 소리를 할 게 뻔하니까.”

“섭섭하네.”

“전혀 섭섭해보이지 않아. 가기나 해.”

벌써 재미있어진다.

아직 즐길 거리도 많이 남았는데 지금부터 이러면 방학 내내 얼굴에서 웃음이 안 떠날 것 같잖아.

**

“우리 켄 왔냐!?”

전용 주차장에 차를 세우자마자, 가게 안에서부터 삼촌들이 달려나와 껄껄 웃으며 내 등을 두드렸다.

어지간히 반가운 모양. 두 사람은 나를 무슨 만능 엔터테이너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물론 그날 매출이 팍 뛰긴 했지만, 그냥 활기차게 서빙만 한 것뿐인데...

기대감이 너무 과하다. 매출이 기대이하면 생매장을 당하는 건 아니겠지?

거대하기 짝이 없는 손으로 맞다보니, 아무리 환영 차 인사를 하는 거라지만 많이 아프다.

삼촌들의 통뼈가 등뼈에 맞부딪칠 때마다 찾아오는 묵직한 감각.

그에 어깨를 당기며 등근육을 수축시킨 내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픕니다. 그만 때리십쇼.”

“어엉? 아팠냐? 미안하다.”

진심이 담긴 사과가 맞긴 한데... 삼촌들의 얼굴이 워낙 험악해서 야쿠자가 죽기 직전의 사람을 비꼬는 것처럼 들린다.

그들과 해후를 나누고 가게 안으로 들어간 나는 탈의실에 가방을 휙 던져놓고 나왔다.

그리고는 가게 안을 둘러보았다.

딱 한 번 일했던 곳인데 왠지 정감이 간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입구에 가족 향기가 풀풀 나는 사진이 여러 장 붙어있어서 그런 것일지도.

“환기구 위치가 바뀌었네요?”

“크고 웅장한 걸로 풀체인지했다. 가게에 온 손님들의 옷에 튀김 냄새가 배면 안 되잖냐. 이래도 냄새가 날 수 있으니까 배치도 창문 쪽으로 바꿨지.”

발전했구나. 민머리는 그대로지만.

“그렇군요.”

“뭐 시킬 거 없냐? 테이블 배치라든가 뭐 이런 거.”

“예...? 삼촌들이 저한테 시켜아지 제가 왜 삼촌들을 시켜요?”

“네 센스가 좋으니까 그러지.”

“장사꾼도 아닌데 센스가 좋긴 뭐가 좋습니까. 지금 몇 시에요 근데?”

“지금? 여덟 시 조금 넘었다.”

“오픈하려면 아직 멀었네요? 아까 탈의실 안에 전단지가 수두룩하던데, 관광지 게시판에 붙여놨어요?”

“아, 그걸 생각하지 못했군.”

그런 기본적인 것도 안 했어?

발전했다는 생각은 취소다.

“그럼 이노오 선배랑 같이 전단지부터 붙이고 올게요.”

“알았다. 아홉 시까진 와라. 아침 먹고 시작해야하니까.”

“예.”

탈의실에서 전단지를 한아름 가지고 나온 나는, 가게 밖에서 입구의 사진을 보고 있는 렌카에게 다가갔다.

“뭐 보고 있어요?”

“사진.”

“그니까 무슨 사진.”

“이것저것 보고 있었어. 전단지 몇 장이야?”

“200장 정도 될 겁니다.”

“왜 그렇게 많이 가져왔어? 붙일 수 있는 게시판은 적은데.”

“붙이러 가면서 주민들이나 일찍 관광을 온 사람들한테 나눠주려고요.”

“좋은 생각이네? 얼른 가자.”

삼촌들의 가게가 잘 되는 걸 바라는지, 렌카의 의욕이 살짝 올라가있는 게 느껴진다.

렌카에게 전단지를 반절 정도 떼어준 나는, 그녀와 함께 아직 한산한 거리를 거닐었다.

“그런데 어떻게 알았어?”

게시판 한 곳에 전단지를 붙인 렌카의 물음.

종이가 구겨지진 않았는지 잘 확인해본 내가 되물었다.

“뭘요?”

“큰삼촌이랑 작은삼촌 말이야. 어떻게 구분했냐고. 보통 사람들은 엄청 헷갈려하거든. 너무 똑같이 생겨서.”

“저번에 보니까 큰삼촌이 스시를 주로 하고, 작은삼촌이 튀김류를 맡더라고요. 그렇게 분류해서 일을 하시나본데, 팔에 기름으로 인한 흉터가 많은 사람이 작은삼촌이니까 구분은 쉬웠어요.”

“눈썰미가 좋네. 근데 반만 맞았어.”

“반만 맞았다니요?”

“큰삼촌이나 작은삼촌은 모든 걸 같이 해. 큰삼촌이 튀김을 맡을 때도 많아. 다만 큰삼촌이 조금... 겁이 많아서 튀김을 할 땐 무조건 긴팔을 입어서 흉터가 남지 않은 것뿐이야.”

험악한 얼굴과 산만한 덩치를 가진 큰삼촌이 퐁! 하며 튀어오르는 기름에 소녀처럼 꺅꺅거리는 모습이 머릿속에서 그려진다.

갑자기 기분이 조금 다운되네. 생각하지 말자.

“그건 또 몰랐던 사실이네요. 부장은 어떻게 구분해요?”

“난 목소리만 들으면 알아.”

“목소리는 완전히 똑같던데?”

“미세하게 차이가 있어. 말투도 그렇고.”

“아무리 가족이라고 해도 목소리만 들으면 알기 쉽지 않을 것 같던데...”

“오랜 시간동안 같이 지내다보면 자연스레 구분할 수 있어. 이거 여기다 붙일까?”

“너무 위쪽이잖아요. 키 작은 사람들은 보기가 쉽지 않을 테니까 아래쪽에 붙여요.”

“알았어.”

“제가 나온 신문을 붙였던 것처럼 꼼꼼하게 붙이세요.”

“.... 아침부터 짜증나게 굴지 말아줄래?”

“깐깐하시네. 다 붙였으면 저분한테 전단지 드리고 와요. 주민인 것 같으니까 관광은 잘 하고 있냐느니 하는 얘긴 하지 말고요.”

멀리서부터 조깅을 하면서 이쪽으로 오고 있는 아저씨를 가리키자, 렌카가 움찔했다.

“내가? 뭐라고 말해야할지 생각을 못했는데...?”

“전단지에 쓰여 있는 그대로 말하면 되잖아요.”

“그런가...? 알았어.”

날 대할 때와는 다르게 소심한 종종걸음으로 아저씨에게 다가간 렌카가 예쁜 미소를 지었다.

“안녕하세요? 다짜고짜 죄송합니다. 이노오 가 스시에서 점심, 저녁 특선으로 참치 10프로 할인하는데... 시간 괜찮으시면 와주시겠어요?”

“으응? 이노오 가 스시에서? 거기 참치가 아주 맛있는데 한 번 들러야겠군. 근데 누구...? 알바생인가? 낯이 조금 익는 것 같기도 한데...”

“가게 앞에 붙어있는 사진을 보셨나보네요? 저는 그 가게 주인 조카에요.”

“무, 뭣...? 조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렌카의 얼굴을 바라보는 아저씨.

무시무시한 삼촌들과는 다르게 조카가 아주 예쁘장하니 믿어지지가 않나보다.

저 마음 이해한다. 나도 처음엔 못 믿었으니까.

얼떨떨한 표정으로 전단지를 받아드는 아저씨를 보며 킬킬거린 나는, 맞은편에서 강아지를 산책시키고 있는 젊은 여자에게 다가갔다.

내 전단지는 여자한테만 뿌려야지.

“작은삼촌! 에비텐 우동 두 개!”

왁자지껄한 식탁 사이에서부터 울려 퍼지는 내 목소리에, 열심히 튀김을 튀기고 면을 삶고 있던 작은삼촌이 대답했다.

“에비텐 우동 두 개 확인!”

“큰삼촌은 오토로 두 접시 빨리요!”

“오냐!”

나는 시끄럽다고 느껴지지 않는 선에서, 약간의 장난기를 곁들이며 목소리를 키웠다.

조용한 식당보다는 관광지답게 활기를 띠는 게 낫지.

일하는 직원들은 물론, 손님들까지.

조용한 식사를 원하는 손님들도 있었기에, 그런 사람들에게는 미리 고지를 하여 구석자리나 가게에서 조금 떨어진 야외 테이블에 앉혔다.

“저기... 저희 야외 테이블에 앉아도 돼요? 네 명인데...”

내가 또래처럼 보이는 네 명의 여자 손님의 말에, 렌카가 밝은 낯으로 대답했다.

“물론이에요. 안내해드릴게요.”

저들은 내가 전단지를 주었던 사람들이었다.

줄 당시까지만 해도 저들끼리 까르르 거리며 쑥덕거렸는데, 찾아올 것 같았다.

친절하게 그녀들을 테이블로 안내한 렌카가 다시 돌아오자, 내가 물었다.

“주문 받았어요?”

“아니. 메뉴판 좀 천천히 보고 주문한대.”

“알았어요.”

“힘들면 조금 쉴래? 야외 테이블 주문만 받으면 풀이라 숨 돌릴 시간 있는데.”

“전 됐습니다. 브레이크 타임도 있는데 지금 쉬어서 뭐해요?”

“됐으면 뭐... 말고...”

새침하게 말을 얼버무린 렌카가 바깥을 바라보았다.

야외 테이블에 있는 손님들이 손을 드는 모습을 확인한 그녀가 재빨리 다시 나갔다.

렌카는 주문을 받는 사람치고 꽤 오랜 시간동안 야외 테이블에 있었다.

다른 손님의 요구사항을 주방 쪽에 전달하는 날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무슨 말을 하는 여자,

그리고 곤란한 표정으로 무언가 말을 하는 렌카...

그런 식으로 얘기를 나누며 내가 있는 쪽을 흘끔흘끔 곁눈질하는데, 낌새가 온다.

저들 중 한 사람이 내 연락처를 원하고 있는 것 같은 낌새가 와.

태연하게 일을 하던 나는, 손님한테 오더를 받은 음식을 삼촌들에게 말한 렌카가 날 부르자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왜요? 문제 있어요?”

“문제는 아니고... 저 야외 테이블 서빙은 내가 도맡아서 할게.”

“굳이?”

“저쪽 일행 중 한 명이 너한테 관심 있나봐. 네가 가면 괜히 시간을 빼앗길 것 같으니까 내가 가는 게 좋겠어.”

예상한 대로였다.

이런 연락처 이벤트를 통한 질투심 유발 클리셰가 없으면 러브 코미디가 아니긴 하지.

문제는 렌카와 나는 썸을 타는 사이가 아니라서 질투를 하지 않는다는 건데... 일단 어떻게 되나 봐야겠다.

“그래요?”

“응. 우리더러 남매냐고 물어보기까지 하더라.”

“남매?”

“홀에서 너랑 내가 삼촌이라고 하는 걸 들었나봐.”

“그래요? 남들이 들으면 헷갈릴 만도 하겠네요. 그래서 뭐라 했는데?”

“남매라고 했지.”

“예? 왜요?”

“거기서 아니라고 하면 설명하느라 시간이 걸리잖아. 그래서 그냥 맞다고 했어.”

쿨한 렌카답다.

하긴, 그편이 확실히 편하기는 하지.

“그래요? 되게 질색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평온하네요?”

“질색하다니? 뭐가?”

“우리 둘이 남매라는 게요.”

“사실도 아닌데 뭐 어때.”

“그렇긴 하죠.”

“관심 받으니까 좋냐? 입꼬리 내리지?”

음음... 방금 대사, 마음에 든다.

약간 질투심이 올라온 여자친구 같은 느낌이었어.

물론 진짜로 질투를 해서가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왠지 배알이 꼴려서 저런 반응을 한 거겠지만,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하자.

“얘들아! 모둠스시 한 박스 포장 다 됐다!”

렌카와 조용히 티격태격하는 사이, 작은삼촌이 큼지막한 목소리로 저리 말하며 예쁜 포장박스를 선반에 올려놓았다.

렌카를 향해 히죽거린 내가 그것을 가리키며 말했다.

“누나, 포장 됐다니까 손님한테 드리고 와.”

“무, 뭐...?”

렌카의 눈이 두 배는 더 커졌다.

누나라는 호칭, 그리고 자연스러운 평어에 당혹스러운 모양.

그런 그녀의 반응에 작게 낄낄거린 내가 말을 정정했다.

“농담이고, 포장한 거 손님한테 드리고 오세요.”

렌카에게 장난을 치려면 적당히 해야 한다.

눈치 없이 쭉 상황극을 하려 했다간 호감도가 팍 깎일 우려가 있었다.

지금처럼 그냥 툭 던져놓고 놀라게만 해주는 정도가 딱 좋다.

“깜짝이야... 진짜 웃긴 애네... 어이없어...”

저도 모르게 가슴에 손을 얹고 한숨을 내쉰 렌카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고는 포장된 스시를 조심스럽게 비닐봉지 안으로 집어넣었다.

**

오전까지만 해도 적당히 장사가 잘 되던 가게는, 짧은 브레이크 타임이 끝나자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졌다.

관광지에 손님들이 많아진 것도 있겠지만, 다들 빨리 먹고 경치를 구경하려는 듯 테이블 회전률이 장난이 아니었다.

브레이크 타임에도 전단지를 돌렸었는데 그게 도움이 되었나보다.

새해 연휴라는 날, 그리고 식당 밖에서부터 들려오는 시끌벅적한 분위기 또한 손님의 발걸음을 향하게 만드는데 한몫했겠지.

어쨌든 몰려드는 손님들 덕분에, 렌카와 나는 잡담을 나눌 틈도 없이 일을 했다.

“켄! 새 그릇 빨리 좀 부탁한다!”

“갑니다!”

주방마저도 일손이 필요해서, 나는 렌카에게 서빙 전체를 맡기고 틈틈이 설거지를 도와주었다.

그리고 렌카가 너무 바빠서 혼자 주문을 받을 수 없을 땐, 손을 아주 깔끔하게 씻고 나와서 그녀를 도와주었다.

오픈형 주방이라서 손님들은 내가 뭘 하는지 대충이나마 알 수 있었다.

이런 식으로 깨끗하게 굴면 손님들로 하여금 위생에 대한 신뢰감을 주게 된다.

주문을 받을 때도 말을 빠르게 하지 않고 여유롭게 굴려고 노력했다.

급하게 보이면 음식도 급하게 만들진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물론 너무 나간 생각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덜 꼼꼼하게 굴다가 시비가 걸리는 것보다는 낫지.

“아카미 네 접시랑 텐동 하나, 그리고 츠케멘 하나 주문할게요. 음료는... 생맥주로 네 잔 주세요.”

“아카미 네 접시, 텐동 하나, 츠케멘 하나, 생맥주 네 잔 맞으신가요?”

“네, 맞아요.”

더블 체크로 주문에 실수가 없도록 하는 건 기본소양.

이러다가 검도계 초신성이 아니라 홀서빙계의 초신성이 되는 건 아닌가 모르겠다.

“확인했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누나! 생맥 네 잔 담아줘!”

주문을 받은 나는 렌카에게 편하게 호칭을 하며 생맥주를 부탁했다.

지금은 그녀를 놀리려고 그러는 게 아니었다.

예전처럼 가족들이 가게를 운영하는 느낌을 주기 위해서였다.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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