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러브 코미디를 망가뜨리는 법-212화 (229/313)

“그래요.”

뚝.

곧바로 끊긴 전화.

왠지 렌카가 이를 갈고 있을 것 같은데 착각일까?

주먹을 꽉 쥐고 부들부들 떠는 렌카를 상상해보며 피식한 나는, 마침 드르륵거리는 소리와 함께 창문이 열리면서 미유키가 들어오자 그녀를 반겼다.

“왔냐?”

“응. 방금 일어났어?”

“어. 잠깐만 앉아봐.”

“왜?”

“빨리. 할 말 있어.”

체온으로 따스해진 요를 팡팡 두드리자, 미유키가 고개를 갸웃하더니 내 옆에 엉덩이를 붙였다.

그런 그녀에게, 나는 겨울방학 때 할 계획을 전했다.

“알바를 한다구?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서?”

“그냥 짧게만 해보게. 삼촌네 가게에서 일했는데 재미있더라고.”

“그래...? 되게 마음에 들었나보네? 그럼 우리 공부는?”

미유키는 내가 알바를 한다는 것 자체는 찬성하는 모양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알바가 아니라 사화생활을 한다는 것 자체를 반기는 거겠지.

가만 보면 미유키는 날 듬직하고 어엿한 사회인으로 키우려는 것 같단 말이야.

“일주일 내내 일하는 건 아니니까 휴무 날에 공부하면 되지. 주 4일 정도로 해볼까 생각 중인데... 이게 내 마음대로 되나?”

“보통은 스케줄 조정하니까 상관없어. 그래서 지원은 했고?”

“어. 오늘 오후 3시에 면접 보러 오래.”

“뭐야...? 이미 지원했네?”

“자세한 건 돌아와서 알려줄게. 근데 이력서 갖고 오라는데 문구점에서 파나?”

“이력서...? 팔긴 하는데... 마츠다 군은 알바 경험이 없잖아.”

“어.”

“그럼 그냥 가장 간단한 이력서로 사서, 신상정보만 적으면 될 것 같아.”

이력서가 굉장히 초라하겠군.

서류만 보면 채용이 꺼려지겠지만, 얼굴을 보는 자리이니만큼 괜찮겠지.

렌카가 내 험담을 했다면 또 모르겠으나 그러진 않았을 테니 뽑힐 가능성이 높을 거다.

우리 렌카... 나와 여러 일들을 겪어나가면서 호감도를 쌓아나가자꾸나.

“채용여부는 당일 알려주는 거야?”

이어지는 미유키의 물음에 어깨를 으쓱인 내가 대답했다.

“글쎄. 그건 잘 모르겠네. 만약 뽑히면 바로 일하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짧게 하니까 빨리 배워야한다면서.”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럼 면접 다 보고 어떻게 됐는지 연락 줘. 마츠다 군이 일한다고 하면 하루카 만나게.”

“그게 누군데.”

“기억 못할 줄 알았어. 나나세 하루카.”

“아, 생각났다.”

치나미와 성씨가 같은 미유키의 친구였지.

오랜만에 들어서 기억이 안 났다.

예쁜 애 옆에 예쁜 애가 있다고, 미유키의 친구이니만큼 당연히 예쁘겠지?

언제 한 번 보고 싶다.

어느 번화가의 규동 가게.

 옆에 아담하고 분위기가 좋은 카페가 있다.

규동 가게에는 식사시간이 아님에도 손님들이 꽤 있었지만, 카페는 한산했다.

번화가에 있는 곳임에도 인기가 그다지 없구나.

디저트 메뉴가 별로거나, 아니면 커피가 맛이 없나보다.

카페 카운터에서 휴대폰만 쳐다보고 있는 알바생을 흘깃거리며 그 자리를 떠난 나는 공용 주차장에 차를 대어놓고 시간을 보았다.

면접까지는 30분 정도가 남아있다.

그냥 들어가서 기다릴까? 아니면 여기서 시간을 때우다 갈까?

손님들이 많아서 들어가면 민폐니까 조금 대기하다가 가야겠다.

그런 생각을 하던 찰나, 치나미의 메시지가 왔다.

[후배님, 사진을 보내드려요.]

그저 밋밋한 문장일 뿐인데도 왜 귀엽게 느껴지지?

아빠미소를 지은 나는 치나미가 전송한 사진을 확인해보았다.

진녹색이 가득한 곳에 분홍분홍한 그녀가 있으니 색감이 굉장히 좋다.

사진을 확대해 새하얀 치나미의 피부를 감상하던 내가 화면을 두드렸다.

[예쁘네요. 프로필 사진으로 해도 되겠어요.]

[앗, 싫어요.]

단호한 거절이다. 모모님이 아니어서 그런가보다.

이런 건 우유부단하지 않고 확실하구나.

살짝 타락시키고 싶어질지도?

[알겠습니다. 다른 사진은 안 보내주나요?]

[무슨 사진이요? 제가 예쁘게 자른 키위 사진을 보내드릴까요?]

[그것도 궁금하긴 하지만 다른 게 필요하네요.]

[어떤 거요?]

[예를 들자면 샤워를 한 직후의 뽀송뽀송한 스승님 사진이나... 뭐 이런 것들요.]

[앗.]

나름 노골적으로 원하는 사진을 말하자, 치나미가 짤막한 감탄사가 적힌 답변을 보내왔다.

그녀가 쑥쓰러워하는 표정이 눈앞에 그려지는 것 같은 느낌.

치나미가 빨리 돌아왔으면 좋겠다. 벌써부터 그녀의 토실토실한 엉덩이와 부끄부끄한 얼굴이 그리워.

[어때요?]

[흠... 후배님의 부탁이시니 긍정적으로 고민을 해보아야겠네요.]

[감사합니다.]

[저는 어머님께서 요리 준비를 하자고 하셔서 이만 가봐야겠어요.]

[그래요. 나중에 연락해요.]

[넷.]

그러고 보니 치나미는 내가 알바 면접을 보러 왔다는 걸 모르지.

렌카와 같이 알바를 하게 되었다고 했을 때, 그녀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질투는 절대 하지 않을 테고, 높은 확률로 좋아할 것이다.

그녀는 나와 렌카가 친하게 지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니까.

그런 마음가짐으로 쓰리섬도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치나미와의 톡을 마치고 의미 없는 휴대폰질을 하던 나는, 약속시간 15분 전쯤 차에서 내려 가게로 갔다.

아까 많던 손님은 죄다 빠져나간 상태였다. 빨리 나오고 빨리 먹을 수 있는 규동 가게라서 회전률이 좋은 것 같다.

투명한 유리 안을 흘끗 바라보니, 어떤 중년인이 포스기 앞에 서있는 렌카에게 무언가를 설명하고 있었다.

포스기 사용법을 배우고 있나보다.

그녀가 입은 파란색 물결무늬 복장이 무척이나 어울린다고 생각하며, 나는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딸랑거리는 종소리와 함께 내게로 쏠리는 시선.

내가 손님인 줄 착각한 중년인이 인사를 하려고 할 때, 렌카가 먼저 선수를 쳤다.

“왔어? 사장님, 저 친구에요.”

그러자 사장의 눈이 순식간에 내 위아래를 훑었다.

그저 새로 지원한 알바생의 첫인상을 살피려는, 악의가 없는 눈빛이었다.

렌카와 눈인사를 한 나는 사장에게 상체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마츠다 켄이라고 합니다. 오늘 면접 보러 왔습니다.”

“예, 안녕하세요. 약속시간까지는 아직 남았는데 일찍 오셨네요?”

“뭐든 미리미리 하는 편이라서요.”

“마음에 드네요. 이노오, 잠깐 카운터 좀 혼자 맡고 있을래? 모르는 거 있으면 주방에 켄토한테 물어보면 돼.”

알겠다고 대답한 렌카를 놔두고, 사장은 나를 창고 옆 사무실로 데리고 갔다.

이후 나를 편한 의자에 앉혀두고, 자그마한 책상을 가지고 와 내 앞에 놓았다.

“이력서는 갖고 왔죠?”

“예. 여기... 그리고 말씀 편하게 하셔도 됩니다.”

두 손으로 내미는 이력서를 받아든 사장이 웃는 낯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렇게 할게. 잠깐만...”

양해를 구한 사장은 내 이력서를 훑어보기 시작했다.

사장이 여자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특히 남편의 실좆에 만족하지 못하는 유부녀였다면 아주 환상적이었을 텐데.

꼭 도키아카는 이런 디테일적인 부분에서 감점이 있다. 똥겜답게.

“알바 경험이 없네?”

이력서를 간단하게 살핀 사장의 물음.

고개를 주억거린 내가 대답했다.

“예. 처음입니다.”

“이노오가 삼촌들의 가게를 두 번 도와줬다고 하던데? 홀서빙으로.”

“그건 알바도 아니고 그냥 도와준 거라서 적지 않았습니다.”

“그래? 다른 건 아예 해본 적 없고?”

“예.”

“음... 이노오가 그러더군. 성실한 친구라고.”

우리 렌카가 그랬어?

나랑 같이 알바하고 싶은 마음이 컸던 거야?

포상을 내려주지 않을 수가 없구나. 펠라치오 정도면 되겠지.

“그렇게 봐줘서 고맙다고 말해야겠네요.”

그 말에 사장시 실소를 터뜨렸다.

“그래. 너도 이노오처럼 단기알바로 지원한 거지?”

“예.”

“두 사람 다 같은 아카데미에, 같은 검도부원이 맞아? 이노오가 선배이자 부장이고.”

“맞습니다.”

“친하겠네?”

친하냐고?

렌카가 들었다면 성을 냈겠군.

“그렇죠.”

“많이?”

친밀한 정도에 대한 질문치고는 너무 사적이다.

렌카와 내가 그렇고 그런 사이임을 물어보려는 것 같다.

뽑아놨더니 하라는 일은 안 하고 꽁냥대고만 있으면 싫을 테니 사장 마음도 이해가 간다.

“친하긴 한데 어느 정도의 상하관계는 있습니다. 이노오 선배는 검도부의 부장이고, 저는 부원이니까요.”

사실 지금은 그다지 깊은 사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조만간 좋은 주종관계를 맺을 거예요.

라는 말을 삼킨 나는 사장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렇단 말이지...”

말끝을 흐린 사장이 펜대로 책상을 툭툭 쳤다.

무언가 고민이 깊은 모습.

잠깐 그러고 있던 그가 물었다.

“혹시 옆 카페 봤어?”

“봤습니다.”

“손님이 별로 없었지?”

“식당에 비해 한산하던데요?”

“그렇지? 거기도 내가 운영하고 있는 거 알아?”

알지, 알고말고.

“몰랐습니다.”

“그래? 혹시 카페에서 일해볼 생각은 없어? 시급은 홀서빙만큼 챙겨주마.”

“카페요? 저 혼자서요?”

“일단은 이노오랑 같이 넣을 생각이야. 먼저 물어봐야겠지만.”

사장이 무슨 의도를 가지고 있는지 알겠다.

예쁘고 잘생긴 알바생을 홀서빙으로 두긴 아까우니, 카페로 돌려 남녀 손님을 모두 잡겠다는 거다.

아마 우릴 넣어놓고 돌아가는 상황을 한 번 볼 생각인 것 같은데, 받아들여야 마땅하겠지?

렌카가 어떤 대답을 할지는 모르겠으나, 시급도 홀서빙과 같다면 그녀 또한 승낙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규동 가게의 단순 홀서빙보다는 카페 알바가 더 나으니까.

홀서빙을 전문적으로 배우려는 게 아닌 이상은 당연히 카페로 마음이 쏠리겠지.

“전 좋습니다.”

“호탕해서 좋네. 시간대는 언제든 상관없어?”

“시간대는 상관없지만 주 4일만 하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물론 가능하지.”

여기서, 렌카와 나를 같은 타임에 넣어달라고 말을 해야 맞다.

하지만 난 그러지 않을 것이다.

왜? 사장은 높은 확률로 나와 렌카가 함께 일할 수 있도록 스케줄을 조정할 테니까.

완전히 같은 타임은 안 되겠지만.

어쨌든 상하관계가 있는 부장과 부원의 관계에 사이도 친하다?

일의 능률이 오르는 건 당연하다.

문제는 사장이 나와 렌카의 관계가 그저 부장과 부원이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할 때 발생하는데...

이건 뭐, 일단 같이 넣어보고 일적인 면에서 손해를 본다 싶으면 따로 떨어뜨려놓든가 하겠지.

“언제부터 일할 수 있어?”

이어지는 사장의 말에 뿌듯한 미소를 지어보인 내가 대답했다.

“오늘부터도 가능해요.”

“열정적이라 보기 좋네. 그럼 오늘 잠깐 배워보자.”

“알겠습니다.”

“잠깐만 기다려.”

사장은 사무실에 있는 미니 냉장고에서 캔커피를 꺼내더니, 나더러 마시고 있으라며 말하고는 문을 열고 나갔다.

이후 어리둥절한 표정의 렌카를 데려와 내 옆에 앉히고는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그렇게 묵묵히 사장의 모든 이야기를 들은 렌카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저는 카페 일을 한 번도 해보지 않았는데요...?”

“배우면 되지. 어려운 거 없어. 어떻게, 카페로 바꿀 생각 있어?”

“어... 저는...”

렌카의 눈동자가 슬쩍 내 쪽으로 향했다.

같이 한다니까 부담스러운 건지, 아니면 관심이 있는 건지 헷갈린다.

깊은 고민에 빠진 듯 애꿎은 자신의 뒷목을 만지작거리던 그녀는, 이내 결심을 마쳤는지 고개를 들었다.

“네... 바꾸고 싶어요.”

그 말에 사장의 고개가 크게 끄덕여졌다.

입꼬리도 올라가있었다. 장밋빛 미래를 그리고 있는 건가?

기대감이 굉장히 큰 것 같은데... 렌카가 부담스러워하겠다.

“좋아. 결정됐지? 근로계약서는 마츠다 것만 쓰면 되겠네. 카페 유니폼 갖고 올게.”

“아, 네...”

사장이 유니폼을 챙기러 다시 사무실에서 나간 사장.

그의 뒷모습을 쳐다보던 렌카는, 사무실 문이 닫히자마자 고개를 홱 돌려 날 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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