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러브 코미디를 망가뜨리는 법-216화 (206/313)

[재미있게 봤다니 다행입니다. 그게 명작이긴 하죠.]

[그러게요. 혹시 추천해줄만한 다른 조교물이 있을까요?]

이래서 렌카가 아까 아사가오 씨의 가계사정 이야기를 꺼냈구나.

혹시라도 그 책을 언급하면 MK가 나인 게 특정되니까.

저번에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 우리 렌카는 참 허술한 짓을 잘한다.

[수위는 어느 정도?]

[스캇물 같은 것만 아니면 상관없어요.]

[한 번 찾아보죠.]

[감사합니다. 그런데 혹시 MK가 무슨 뜻이에요?]

[별 뜻 없어요.]

[본인 이니셜이에요? 맞으면 성씨만 알려주실 수 있어요?]

벌써 본색을 드러내는구만.

채찍과 당근을 주면서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려면 인내심이 필수인데... 너무 조급한 거 아닌가 모르겠다.

[돌았어요?]

[돌았냐니, 말씀이 너무 심하시네요. ಠ‸ಠ 원래 그렇게 예의가 없는 성격이신가요?]

[먼저 예의 없는 말을 한 게 누군데? 인터넷 상에서 성씨를 알려달라는 게 흔히 할 수 있는 질문인가?]

[물어볼 수도 있죠.]

[아닌데요.]

[맞는데요.]

[말장난하려고 쪽지했어요?]

[죄송해요. 친해지고 싶어서 그랬어요.]

인터넷 상의 렌카는 현실과는 다르게 애교가 있구나.

평범한 애교와는 다른 약간 톡톡 튀는 애교지만 꽤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약간 유치하다.

[여자에요?]

[네.]

[친해집시다 그럼.]

[성별을 말하자마자 태도가 바뀌다니 어이가 없네요. 여미새에요?]

[여미새가 뭔데요?]

[여자에 미친 새끼요.]

[방금 욕했어요?]

[단어 뜻을 알려드린 거예요. 그런데 몇 살이세요?]

[알 거 없어.]

[ㅗ]

이쯤 됐으면 렌카도 MK가 나인 것을 확신하고 저렇게 욕을 하는 거 아닐까?

지금까지 여러 질문을 던진 건 그 확신을 완전하게 만들기 위해서고.

[매력 있으시네요. 귀여워요.]

[여자라고 밝히니까 태도가 바뀌었네요. 진짜 추해요.]

[넷카마랑 놀아주는 게 재미있어서 그래요.]

[넷카마 아니에요.]

[그렇다고 칩시다. 리뷰나 올려요.]

[네. 다른 만화 추천해줄만한 거 생각해놓으세요.]

렌카의 마지막 쪽지를 씹고 어플을 끈 나는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빨리 내일이 왔으면 좋겠다.

렌카가 그녀 자신만의 방식으로 내게 점점 마음을 여는 것이 보여서 좋다.

그래서 더, 마구 괴롭히고 싶어.

다음날 출근했을 땐, 렌카는 한산한 카페 안에서 우두커니 서있었다.

휴대폰을 하고 싶은데 둘째 날이라 눈치를 보는 건가?

입구의 투명한 유리에서 비춰지는 도로를 멍하니 보고 있는 모습이 귀엽다.

“안녕요.”

그런 그녀의 뒤에서 인사를 건네자, 어깨를 움찔 떤 렌카가 뒤를 돌아보았다.

“안녕. 인기척은 좀 내고 오지?”

“아침부터 이러시네. 충분히 냈는데요?”

“그럼 말고. 옷이나 갈아입어.”

툴툴대는 렌카를 보니 아침부터 기분이 좋아진다.

출근카드를 찍고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내가 묵묵히 할 일을 하고 있는데, 렌카가 슬쩍 다가오더니 말했다.

“야.”

“왜요.”

“아까 한 30분 전에 어떤 손님이 어제 일했던 남자 없냐고 물어봤었어. 약간 넌지시 질문하는 느낌이었는데...”

“그래요? 혹시 직장인처럼 생긴 사람이에요?”

“그건 모르겠고 바빠 보였어. 아이스커피 한 잔 테이크아웃하고 가던데.”

어제 쿠폰을 추가로 찍어줬던 여자인가보다.

“그래서 뭐라고 말했는데요?”

“1시간 뒤에 출근이라고 했... 야, 콧대 높이지 말지?”

“내가 언제 콧대를 높였다고? 망상증 있어요?”

“아님 말고.”

아까 인기척 이야기를 할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나랑 말장난을 하는 건가?

어제 MK한테 욕을 하고 나니 기분이 좋아져서 이러는 거야?

뭐가 됐든 이런 렌카의 반응은 아주 좋다고 할 수 있었다.

날 더 편하게 대하고 있다는 증거였으니까.

“부장.”

“뭐, 왜.”

“오늘 바지 예쁘네요.”

“.... 뭐라는 거야... 평범한 청바진데.”

“청바지가 예쁘다고요.”

“시끄러.”

우리 렌카는 칭찬을 해주면 꼭 이렇게 툴툴댄다는 말이지.

기분 좋으면서.

“알겠습니다. 이제 뭐할까요? 청소?”

“해놨어.”

“캐러멜 허니 라떼용 커피 큐브는 만들어놨어요?”

“어. 냉동실에 얼려놨어.”

“딸기청은 충분해요?”

“오전에 사장님한테 받아서 병에 옮겼어.”

“다 해놨네. 기특해요. 칭찬으로 머리 쓰다듬어줄까요?”

“하기만 해봐. 죽을 줄 알아.”

“왜 이렇게 폭력적이에요?”

“네가 폭력적으로 만들고 있잖아.”

“턱은 만져도 돼요?”

뺀질거리는 내가 얄미웠을까?

새초롬한 표정을 지은 렌카가 대답하지 않고 몸을 돌렸다.

예전엔 이런 대화는 꿈도 못 꿨었는데... 많이 발전했다.

흐뭇한 미소를 지은 나는, 날 피하려는 렌카와 여느 때처럼 티격태격거리다가,

스으윽-!

입구 문이 부드럽게 열리자 밝은 낯으로 인사를 했다.

“어서 오세요.”

“어서 오세요, 카페 24입니다.”

누가 뭐랄 것도 없이 동시에 손님을 맞이하는 우리.

닮은 구석이 있다고 느껴지는데, 렌카도 그렇게 생각했으면 좋겠다.

**

카페로 오는 손님들은 어제보다 많았다.

두 배 이상 차이가 난다거나 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눈에 띌 정도였다.

개중엔 어제 왔던 손님들도 꽤 있었고, 내가 어제 첫 음료를 만들어주었던 직장인 손님도 그 안에 있었다.

“또 오셨네요?”

알아봐줘서 기뻤는지 얼굴에 화색이 도는 그녀.

공손히 내게 인사한 그녀가 메뉴를 바라보며 말끝을 흐렸다.

“그...”

“모카 라떼 드릴까요?”

“아...! 네...! 기억해주셨네요...!”

“물론 기억하죠. 쿠폰 갖고 오셨습니까?”

“네, 여기... 돈이랑 같이 드릴게요.”

소심하게 구는 모습이 빵녀 같다고 생각하며, 나는 손님이 내민 쿠폰을 받았다.

쿠폰에는 도장이 3개 찍혀있었다.

렌카가 말한, 날 찾았던 손님이 이 여자가 맞았구나.

아이스커피를 시키고 도장을 찍은 모양이다.

“450엔 받았습니다. 주문해주셔서 감사해요. 금방 만들어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쿠폰에 도장을 찍어준 나는 모카 라떼를 만들기 위해 재료를 꺼내려 했다.

하지만 나와 손님의 대화를 듣고 모든 것들을 준비한 렌카가 이미 커피 머신 앞에서 우유를 스티밍하고 있었다.

“모카 라떼 만들려고요?”

“어. 주문 다 받아서 할 게 없잖아. 근데 좋냐?”

빈 테이블에 앉은 손님을 흘끗 쳐다본 렌카의 물음.

고개를 갸웃한 내가 반문했다.

“뭐가요?”

“관심 받아서 좋냐고. 딱 봐도 너한테 관심 있는 눈치잖아.”

“아무런 생각 안 드는데요.”

“잘난 척하는 거 봐... 으... 진짜 싫다.”

“아까부터 왜 자꾸 혼자 망상하고 혼자 결론을 내요? 이게 어딜 봐서 잘난 척인데?”

“아니었어? 그럼...”

“말고?”

“.....”

“레퍼토리가 똑같네. 에스프레소는 제가 뽑을게요.”

그렇게 가벼운 다툼을 하며 만든 모카 라떼를 받아든 손님이 나가자마자, 카페 안이 거짓말처럼 한산해졌다.

슬슬 점심시간이 다가와서 그런가보다.

30분 정도 뒤면 다시 바빠지겠지.

한 명 남은 손님이 주문한 디저트와 음료를 가져다준 나는, 설거지를 하고 있는 렌카에게 다가갔다.

고무장갑도 없이 맨손으로 컵을 닦고 있는 그녀를 어깨 너머로 지켜보던 내가 말했다.

“장갑 끼고 해요.”

“설거지거리 얼마 없잖아. 번거롭게 뭘 껴.”

“그래도 껴요. 맨손으로 하면 주부습진 걸려요. 검도하는 사람인데 손 관리는 꼼꼼하게 해야지.”

“.... 알았어. 잔소리는...”

투덜거리면서도 수건으로 손을 닦는 렌카.

렌카의 새하얗고 길쭉한 손가락 하나하나를 살펴본 나는 고무장갑을 집어들고 그녀에게 내밀었다.

“손가락이 굉장히 예쁘네요.”

뜬금없는 칭찬에, 렌카가 손을 닦다 말고 멈칫했다.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날 올려다본 그녀가 당혹스런 투로 물었다.

“뭐...?”

“예쁘다고요. 손가락.”

“가, 갑자기 뭔 이상한 소리를 하고 난리야...? 어이가 없어서...”

“보통 죽도를 오래 잡고 있는 사람이라면 손바닥에 굳은살 정도는 있지 않나요? 부장한테서는 안 보이네요. 가만 생각해보면 스승님한테도 없는 것 같고.”

“굳은살...? 있는데?”

“어디요?”

“여기... 왼손 중지부터 소지까지...”

렌카가 왼손바닥을 내게 내밀어 보여주었다.

고개를 내려 렌카가 말한 부위를 빤히 쳐다본 내가 미심쩍은 듯 말했다.

“안 보이는데...”

“자세히 보면... 흐억...?”

렌카가 말을 하다 말고 숨을 헉 삼켰다.

내가 돌연 그녀의 손을 잡고 내 쪽으로 당겨왔기 때문.

놀라선 눈이 두 배나 더 커져있는 렌카를 못 본 척한 나는, 그녀가 말한 부위를 손가락으로 살살 만져보았다.

“아, 있네요.”

확실히 손바닥과 손가락이 이어지는 마디 부분이 다른 곳보다 단단했다.

자세히 느껴보지 않으면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로 미세하긴 하지만 말이다.

“야...! 야...!!”

갑작스런 스킨십에 굳어있던 렌카가 정신을 차리고는 다급하게 날 불렀다.

손님이 있어 목소리를 크게 내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 웃기다고 생각하며, 나는 그녀의 손을 놓아주었다.

그와 동시에 렌카의 몸 쪽으로 홱 당겨지는 손.

마치 못 볼 걸 보인 사람마냥 양팔을 교차한 채 가슴께에 얹은 그녀가 시뻘개진 얼굴로 날 나무랐다.

“누, 누가 말도 없이 함부로 만지래...?”

여기서는 뺀질대지 말고, 그저 습관처럼 행동한 듯 보이는 게 좋다.

나는 거친 콧바람을 훅훅 내뱉고 있는 렌카를 보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미안해요. 버릇이라...”

“손버릇이 아주... 아주 나쁘네...? 조심해주면 좋겠는데...?”

“그럴게요.”

“너 치나미한테도 이러니...?”

치나미와는 수위가 훨씬 높은 일들을 한단다.

이쪽과 관련해선 아무것도 모르는 네가 들으면 눈앞이 아찔해질 만큼.

“아니라고는 말 못하겠네요.”

“치나미는 뭐라고 안 해?”

좋아하기만 하던데.

치나미 이야기가 나오니까 보고 싶어진다.

오늘 영상통화 해야지.

“그건 스승님이랑 제 사이에 관한 일인데.”

“아, 그래... 앞으로는 조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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