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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코미디를 망가뜨리는 법-222화 (212/313)

막무가내 식 우기기에 치를 떨던 렌카가 가만히 있는다는 건 승낙이라고 봐도 되겠지?

만약 안 나오면 엄벌을 내려주마.

밖에 오래 있어 추웠기에, 나는 후다닥 집 안으로 들어갔다.

이후 따뜻한 요 위에서 세상모르고 꿈나라로 떠나있는 미유키를 조심스럽게 흔들었다.

“미유키. 일어나.”

“.....”

“미유키.”

“.....”

“야. 일어나라고.”

규칙적인 숨소리만 내쉬며 자고 있던 미유키는, 내가 그녀의 몸을 몇 번을 더 흔들고 나서야 반응을 보였다.

자신의 손을 더듬거리며 내 발목을 붙잡은 그녀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 시러어...”

“밥 먹자.”

“새벽에... 라멘집에서 먹었잖아...”

“그럼 일어나기라도 해. 지금 점심이야.”

“아 진짜아...!”

애교 섞인 짜증을 부린 미유키가 가장 먼저 한 행동은, 자신의 아랫배를 부여잡고 오만상을 쓰는 것이었다.

그런 그녀의 허벅지 안쪽을 살살 주무른 내가 말했다.

“많이 아파?”

“응...”

어제 기분 좋게 마사지를 받고 멀쩡하게 걸어다니며 샤워까지 한 미유키를 생각해보면, 많이 아픈 건 아니다.

근육통이 밀려왔을 수도 있겠지만 심하지는 않을 것이고.

종합하자면 지금 미유키는 엄살을 부리고 있다는 뜻이다.

내숭을 떠는 미유키의 등으로 손을 집어넣고 힘을 준 나는, 그녀의 상체를 일으켜 세우고 안쪽 눈꺼풀을 살살 눌러주다가,

톡, 톡.

막 잠에서 깨어나 말라있지만, 여전히 도톰말랑한 미유키의 입술을 손가락으로 건드리며 물었다.

“공부는 안 하냐?”

“공부...? 해야지...”

얼굴을 보니 귀찮은 건 아니지만 내키지 않는 기색이 보인다.

목적을 이뤘구나. 여기서는 미유키의 등을 조금만 떠밀어주면 된다.

“오늘은 그냥 하지 말고 쉴까?”

“.... 안 되는데...”

“야, 기말고사도 딱 10등 했는데 방학 첫 번째 주는 넘어가줄 수도 있는 거 아니냐? 미우라도 11등이었잖아. 발전 속도가 빠른데다 결과도 눈에 보이는데 너무 몰아세우는 건 아니라고 본다.”

“그런가...?”

“그렇지. 오늘은 푹 쉬고, 다음에 날짜 잡아보든지 하자. 미우라한테는 지금 전화해.”

“그럼... 다음엔 꼭 하는 거다...?”

“알았다니까.”

꼬물거리며 아빠다리를 한 채 앉아있는 내 위로 꼬물꼬물 올라오는 미유키.

내게 안긴 상태로 흐물흐물한 팔을 움직여 휴대폰을 집어든 그녀가 테츠야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 귓속으로 미세하게 들려오는 신호음.

그것이 두 번도 채 가기 전에 끊기자, 미유키가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응... 테츠야 군... 아, 그게 아니라... 오늘 내가 조금 힘들어서 공부는 다음에 해야 할 것 같아... 응? 많이 아픈 건 아니고... 조금 쉬면 괜찮아질 거야... 걱정해줘서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응, 응... 그래. 알았어... 나중에 아주머니네랑 같이 밥 먹자...”

또 또 같이 가족식사를 하자고 떼를 쓰고 있구만.

테츠야 이 새끼는 언제쯤 자신의 주제를 알아차릴까?

아마 미유키나 내가 대놓고 말하기 전까진 영원히 모르겠지? 원래 그런 놈이니까.

“연락할게... 응...”

테츠야와의 통화를 끝낸 미유키는, 일어나려는 내게 매미처럼 달라붙어 떨어질 줄 몰랐다.

그녀의 허리를 붙잡고 바깥쪽으로 밀어낸 내가 말했다.

“잠깐 떨어져봐. 양치질 하러 가게.”

“나도 해야 돼... 같이 가...”

“떨어져야 일어나서 같이 가지.”

“매달고 갈 수 있잖아... 바보...”

떨거지 소꿉친구와의 공부 약속을 어긴 죄책감 따윈 하나도 없이 이렇게 마구 애교를 부릴 정도면, 어제 아주 많이 만족했었나보다.

못 말리겠다는 듯 혀를 찬 나는, 미유키의 엉덩이 아래에 팔을 받치고 하반신에 힘을 주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내 몸에 대롱대롱 매달린 그녀와 함께 욕실로 향했다.

더없이 평화로운 하루다. 기분 좋게 보내고, 내일 렌카와 투닥거려야지.

[일어났어요?]

[생크림, 우유, 새우, 베이컨, 양송이, 스파게티면, 토마토소스, 소금, 후추]

렌카의 기묘한 답장을 본 내가 고개를 갸웃했다.

혹시 다른 사람한테 톡을 보내는 타이밍에 내가 대화를 걸어서, 대화방을 착각이라도 한 건가?

그러한 생각을 하고 있던 찰나, 렌카의 메시지가 이어서 도착했다.

[스파게티 면에 소금을 조금 넣고 삶는다. 면이 익는 동안 프라이팬에 양파와 베이컨, 양송이와 다진마늘을 넣고 달달 볶아준다. 이후 재료가 충분히 익으면 새우를 넣는다.]

[뭐하는 거예요 지금?]

[새우가 붉은 빛이 감돌기 시작하면 면을 넣고, 면을 삶은 물을 네 스푼 넣고 볶아준다. 그 뒤 생크림과 우유를 넣고,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한 다음 토마토소스를 넣어 알맞은 농도로 졸여준다.]

얘 지금 설마... 나와의 대화함을 메모장으로 사용하는 건가?

물론 진심으로 저러는 건 아니고, 날 도발하기 위해서일 가능성이 크긴 하지만... 많이 컸다.

헛웃음을 친 나는 곧바로 렌카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자 신호음이 두 번도 채 가기 전에,

-아이 씨...

전화를 받은 렌카가 다짜고짜 격한 감정을 드러냈다.

요즘 내가 많이 편해졌나보구나.

방금 파스타 레시피를 적었던 것도 그렇고, 지금 이렇게 나온 것도 그렇고...

기어오르는 수위가 높아졌다. 이번에 칭찬으로 혼쭐을 내줘야지 안 되겠다.

“뭐라고요? 씨?”

-.... 왜 연락했는데?

“영화 예매했으니까 연락했죠. 갑자기 스파게티 레시피는 왜 써요?”

-내 마음이야.

“짜증나네요. 어제 근무는 혼자 잘 했어요?”

-혼자가 아니라 사장님이랑 같이 했어.

“아 그래서 잘 했냐고.”

-당연하지. 너 없으니까 능률이 올랐어.

“그래요? 심심하진 않았고요?”

-전혀. 행복하기만 했지.

“서운하네. 어쨌든 1시간 뒤에 집 앞으로 나와 있으세요.”

-1시간...? 그렇게 빨리?

“예. 빨리 보고 싶어서요.”

휴대폰 너머에서 렌카가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짜고짜 훅 들어간 관심 표현에 당혹스러운 모양.

작게 킥킥거린 내가 통보하듯 말을 이었다.

“준비하고 있어요.”

-.... 혼자 보면 되지... 짜증나게.

빈말로 투덜거리는 렌카에게 대답하지 않고 전화를 끊은 나는, 꼼꼼하게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이후 차를 타고 렌카의 집으로 향했다.

그 앞에서 비상등을 켜고 대기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대문이 열리면서 렌카가 나왔다.

다리에 딱 달라붙는 블랙 진, 그리고 종아리 아랫부분까지 덮는 워커와 흰 털이 군데군데 있는 검은 무스탕까지.

예전에 렌카가 조카 핑계를 처음 대었을 때 보았던, 전체적으로 어둡고 어른스러운 코디를 하고 있다.

그때는 어른스럽고 색기가 가득하다고 느꼈었는데, 지금은 조금 다르다.

왠지 귀여움이 한두 스푼 추가된 것처럼 보인다.

지퍼를 끝까지 올려 복실복실한 무스탕의 옷깃 털이 목을 감싼 상태라 그렇게 보이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최근 렌카가 하는 짓을 여러 번 봐왔던 게 크다.

렌카가 허당 기가 있는 모습을 여러 번 보여줘서 귀엽다고 느끼는 거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렌카를 감상하고 있던 나는, 자신의 길쭉한 다리를 놀리며 다가온 그녀가 조수석 문을 열자 히죽 웃어보였다.

“안녕요.”

“출발이나 해.”

“인사 먼저 해요.”

“안 해.”

“기본적인 예의는 갖춰야한다고 누가 그랬더라?”

“.... 안녕.”

“꼭 이렇게 한 번씩 튕겨야겠어요? 순순히 인사하면 얼마나 좋아요?”

그에 렌카가 목을 두른 옷깃 안으로 자신의 하관을 쑥 집어넣었다.

더 이상의 대화는 싫다는 듯한 어린아이 같은 모습에 피식한 나는, 깃 밖으로 나와 있는 그녀의 오똑한 코를 건드려보고 싶다고 생각하며 차를 출발시켰다.

그리고는 지나가는 투로 말했다.

“오늘 예쁘네요.”

“.....”

그러자 코까지 깃 안으로 집어넣어버리는 그녀.

내가 자신을 놀리는 줄 알고 그냥 무시를 하려는 걸까?

아니면 부끄러워하고 있는 걸까?

어쩌면 둘 다일 수도 있을 것 같다.

**

렌카는 키가 크다.

그래서 다른 히로인들에 비해 어깨동무를 하기 딱 좋다.

내 팔이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않을 적당한 높이였다.

자신의 어깨만을 빤히 보는 내가 부담스러웠는지, 엘리베이터 안에서 팔짱을 끼고 있던 렌카가 날 노려보았다.

“뭘 그렇게 쳐다봐? 죽을래?”

“왜 또 난리에요? 보면 안 돼요?”

“안 돼.”

“하지 말라는 게 왜 이렇게 많아? 독재자에요?”

“시끄러.”

“시끄럽게 만들지를 마요.”

투닥거리는 사이 매표소에 도착한 엘리베이터.

그 안에서 내린 나는 한산한 로비를 가로질러 키오스크로 갔다.

이후 예매한 영화표를 뽑고 매점 메뉴를 살펴보았다.

“팝콘은 뭘로 먹을래요?”

“캐러멜.”

“단 거 먹으면 이빨 썩는데.”

“내가 무슨 어린애야? 그리고 이 영화관에서 파는 레귤러 팝콘은 짜기만 하고 맛없어.”

“그래요?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치나미랑 많이 와봤으니까.”

“스승님이랑 오면 복숭아 가루를 뿌리지 않나?”

“그렇긴 한데...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저도 스승님이랑 왔었으니까요. 어쨌든 캐러멜 팝콘으로 먹자는 거죠?”

“어.”

“음료는요?”

“아이스 커피. 넌?”

“그냥 콜라.”

“알았어. 이건 내가 살 테니까 넌 저리 가있어.”

손을 휘휘 젓는 렌카.

그런 그녀의 옆에 더욱 찰싹 달라붙은 내가 말했다.

“왜 저리 가야 되는데요? 같이 있어요.”

“그럼 그러든가.”

콧방귀를 낀 렌카는 자신의 길쭉한 다리를 움직여 카운터로 갔다.

그리고는 망설임 없이 커플 세트를 주문해, 팝콘을 사이즈 업 했다.

미유키와 썸을 탈 때 커플 세트를 주문하면 어쩔 줄 몰라 했는데, 렌카는 당당하구나.

‘커플’이라는 부분에 딱히 큰 의미를 두는 게 아니고, 그저 세트 할인만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팝콘과 음료를 플라스틱 캐리어에 챙긴 우린 곧장 표를 보여주고 상영관 안으로 들어갔다.

내가 예매한 좌석은 뒷부분의 좌측 구석.

상영관이 컸다면 영화를 감상하는데 애로사항이 있었겠지만, 작은 터라 한눈에 들어와서 상관없었다.

“좌석도 많은데 왜 하필 여기로 온 거야?”

왜긴, 여기서 은근하게 꽁냥대려고 그러지.

불만을 터뜨리는 렌카의 옆에 앉은 내가 대답했다.

“원래 이런 자리를 좋아해요. 어차피 스크린을 보는데 불편하지도 않잖아요.”

“이상한 힙스터 기질이 있네.”

“힙스터 기질이 아니라 개인 취향이죠. 부장은 중앙에서 보는 게 좋아요?”

“어.”

“그건 좀 실망인데.”

“네가 실망했다니까 기분이 좋아지네.”

앞으로 구석자리가 좋아지게 될 거다.

내가 그렇게 조교할 거야.

톡톡 튀는 대화를 나누며 스크린 광고를 본지 얼마나 지났을까?

상영관 안에 켜져 있던 은은한 전등이 암전되면서, 얼마 없는 손님들의 쑥덕거리는 소리가 잦아들었다.

오프닝 음악과 함께 스크린 중앙에 나타나는 배급사 로고.

그것을 본 렌카가 돌연 내 쪽으로 얼굴을 가까이 가져오더니 물었다.

“근데 이거 무슨 장르래? 포스터만 보면 로맨스 같던데 맞아?”

귓속으로 파고들어오는 렌카의 목소리에 간질간질한 기분을 느낀 나는, 달콤한 향을 풀풀 풍기고 있는 그녀의 귓가에 입술을 가져갔다.

그리고는 일부러 입바람이 약간 섞이도록 속삭였다.

“몰라요.”

“힉...!”

한쪽 어깨를 쭈욱 올리며 몸을 움츠리는 렌카.

소름이라도 돋았는지 자신의 팔을 마구 비빈 그녀가 짜증을 냈다.

“아 뭐해...!”

“왜요?”

“바람 불었잖아...!”

“말하다 보면 어쩔 수 없는 거 아닌가?”

“뭐가 어쩔 수 없는데...! 다분히 의도적으로 바람을 섞은 거면서...!”

“조용히 해요. 다른 사람들한테 민폐 끼치지 말고.”

“조용히 말하고 있잖아...! 이 쓰레기야...!”

“바람 한 번 불었다고 쓰레기라니 너무하시네. 난 숨도 쉬지 말라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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