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모습을 본 순간, 나는 이성과 본능 사이에서 저울질하던 감정을 그대로 폭발시켰다.
“1... 2... 3... 4... 이, 이제 끝이야...”
중얼중얼, 빠른 속도로 초를 세는 그녀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간 나는,
“무, 뭐야...? 떨어지라고 했...”
정색을 하고 다가오는 내게 쫄았는지 뒷걸음질을 치는 그녀를 그대로, 와락 껴안았다.
“흐아앗!?”
렌카를 안으면서 내가 가장 먼저 느낀 점은, 그녀가 꽤나 여리여리하다는 거다.
팔다리는 물론 허리까지 얇다. 그러면서도 만져보니 운동을 한 사람 특유의 탄탄함이 살아있다.
터치하기 최적화된 몸매. 그야말로 완벽하다.
“아... 아아...”
훅 들어온 포옹에 헤롱거리는 렌카.
속절없이 뒤로 밀려나 벽에 등을 쿵 부딪친 그녀의 다리가 풀리려 하고 있다.
예상치 못한 포옹에 이성이 나가버린 모양이다.
나는 껴안지 않았다면 그대로 주저앉아버렸을 듯 온몸을 후들후들 떠는 렌카의 다리 사이에 내 한쪽 다리를 집어넣었다.
허벅지에서 느껴지는 그녀의 둔부.
의외로 치나미처럼 토실토실한 그 감촉을 느끼면서, 나는 렌카의 허리를 두른 팔과 골반에 얹은 손에 힘을 잔뜩 주며 그녀를 내 몸에 완전히 밀착시켰다.
그와 동시에 살짝 들렸다 내려가는 그녀의 하반신.
딸랑-!
그로 인해 몸이 힌들려 새어나온 방울소리에 정신이 들었을까?
“핫!?”
눈의 초점이 살아난 렌카가 고개를 한 차례 털어내더니, 내 쇄골 근처로 손을 가져가 있는 힘껏 밀었다.
하지만 그녀의 노력은 꿈쩍도 하지 않는 내 몸 때문에 수포로 돌아갔다.
“야...! 야! 너 지금 뭐하는 거야...!? 이거 놔...! 안 놔...?”
드라마의 여주인공이나 할 법한 대사를 내뱉으며 내게서 떨어지려는 그녀.
나는 이성을 완전히 잃어버린 척, 그녀의 기다랗고 가녀린 목에 후끈한 콧바람을 불어넣었다.
“흐으읏...!?”
그에 렌카의 온몸이 미세한 경련을 발했다.
솜털이 곤두서는 간질간질한 느낌에 모든 감각이 깨어난 모양.
날 밀어내던 팔이 추욱 늘어지는 것을 보며 렌카를 코와 입에서 나오는 바람만으로 애무하던 나는, 그녀의 목덜미에 내 입술을 가져다대고 위아래로 한 차례 스치듯, 왕복하면서 쓸었다.
“힛...!”
촉촉하고 미지근한 그 감촉에 쾌락을 느꼈는지, 내 허벅지 위에 올려만 놓아져있던 렌카의 엉덩이가 내려앉았다.
내게 완전히 몸을 맡겨버린 그녀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주먹을 꽈아악 쥐었다.
그리고는 당장에라도 내 뺨을 후려갈길 것 같은 사나운 어조로 경고했다.
“떨어져...! 개자식아...!”
여기서 순순히 떨어져준다면 앞으로의 주종관계에 차질을 빚는다.
렌카의 화를 더 돋우더라도, 다소 강하게 나가는 게 맞다고 본다.
평소에는 친절하지만, 이런 진한 스킨십을 할 때는 강압적으로.
그렇게 적절히 태도를 조절해나가자.
그리 생각한 내가 곧장 대답했다.
“시끄러.”
“무, 뭐...? 너 지금 뭐라고...”
“시끄럽다고. 조용히 해요.”
싸늘하기 그지없는 목소리에 위압감을 느꼈을까?
흠칫한 렌카가 숨을 흡 하고 삼키며 입을 다물었다.
그 틈을 탄 나는 렌카의 겨드랑이 사이로 손을 집어넣어, 그녀의 밑가슴과 갈비뼈 부근을 살포시 감싸 쥐며 손가락 첫 마디마디에 힘을 주었다.
그러자 그쪽에 야릇한 자극을 받은 렌카의 몸이 크게 들썩였다.
“아흑...!”
긴장, 그리고 흥분으로 인해 인해 배어나온 땀이 렌카의 뽀얀 피부를 더욱 윤기 나게 만들어주는 게 보인다.
렌카 특유의 달콤한 체취마저도 더더욱 강해지고 있다.
그녀는 지금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새삼 궁금해지기도 한다.
“진정해... 마츠다...! 진정해봐...!”
방법을 바꾸기로 했는지 한층 온화한 목소리로 날 만류하는 렌카.
여기서 놓아주면 렌카가 그대로 도망가버릴 것 같았기에, 나는 말없이 그녀의 허리를 더욱 끌어안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야...! 그만해...! 진짜 그만...!”
렌카의 목소리가 간드러져가고 있다.
아마 여기까지가 현재의 렌카가 허용할 수 있는 최대치의 범위겠지.
끝까지 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다.
하지만 렌카는 아직 준비가 안 됐다.
심지어 사전 준비조차도 미흡했다. 고작 러브호텔에 관한 주제가 나왔을 때 묘한 기류를 풍긴 게 끝.
그녀는 내게 마음이 있긴 하지만 아직 그걸 자각하지 못한 상태여서, 여기서 수위를 더 높였다간 성배에 독이 들게 된다.
호감이 비호감으로 변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오늘 렌카가 집으로 돌아가면 날 향한 마음을 어느 정도 알게 될 테니, 지금은 수위만 높이지 말고 다른 스킨십을 하자.
빠르게 생각을 정리한 나는 마지막으로 렌카의 가슴에 손을 올릴 듯 말듯 망설이는 척하다가, 어떻게든 욕구를 참아내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포옹을 풀었다.
렌카의 가랑이 사이에 끼운 다리는 그대로 놔두었다.
힘이 돌아오지 않은 그녀가 쓰러지지 않게끔 말이다.
이후 그녀의 호흡이 돌아오길 기다렸다.
“하아...”
큰 폭풍이 지나가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렌카.
파리하게 떨려오는 자신의 입술을 저도 모르게 핥은 그녀가 날 쏘아보았다.
“너 진짜 정신 나갔어...?”
“모르겠고, 이거 다음에 또 해요.”
“이, 이거라니...? 뭘...? 설마 코스프레를 말하는 거야...?”
“예.”
“미, 미쳤어...? 약속했잖아...!”
톡.
나는 렌카의 이마에 내 이마를 맞댔다.
영화관에서 했던 것과 똑같은 행동. 그러나 장소부터 상황까지 그보다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야릇해서, 이를 받아들이는 렌카의 기분 자체가 다를 것이었다.
“그, 그거 하지 마...!”
나는 여기서 한 술 더 떠, 렌카의 얇은 손목을 붙잡고 들어올렸다.
그리고는 그 손목을 그녀의 머리 위에서 교차시켜 벽에 밀착하도록 만들고, 한손으로 꽉 누르면서 고정시켰다.
“야아...! 뭐해애...!!”
렌카의 목소리에 앙탈이 묻어나오고 있다.
본능적인 건가? 렌카의 표정을 보니 스스로 그런 목소리를 냈다는 걸 모르는 것 같았다.
귀에 확 꽂히는 그 뇌쇄적인 음색을 들은 내가 나지막이 말했다.
“미안해요.”
“뭐가...?”
“갑자기 안은 거요. 많이 놀랐어요?”
“.... 당연히 놀랐지...! 그리고 미안하면 이 손 좀 풀어...”
“또 한다고 말하면 풀어줄게요.”
“안 된다니까...? 이건 약속이야...! 더 이상 코스프레 가지고 뭐라 하지 않기로 합의한 거라고...!”
“그럼 부장이 내킬 때는 할 수도 있다는 거겠네요?”
“.... 그럴 일은 없는데... 그렇게 될 수도 있긴 하지만...”
렌카치고는 순종적인 대답이었다.
그에 고개를 끄덕인 나는 렌카의 손을 풀어주었다.
그리고 그녀가 한시름 덜었다는 듯 한숨을 내쉬는 틈을 타 다리까지 뺐다.
“아...!”
그러자 렌카의 신형이 휘청거렸다.
구두 굽 때문에, 그리고 방금 내 행동에 적응이 덜 되어 중심을 잡기 힘들어하고 있는 모습.
그런 렌카의 팔을 조심스레 잡고 부축한 나는, 그녀를 침대에 앉혀놓았다.
나는 지금까지 다소 강압적으로 나왔다.
그녀의 몸에 입술까지 대었고, 예민한 가슴을 직접적으로는 아니지만 넌지시 만지기까지 했다.
심지어는 더욱 예민하다고 할 수 있는 가랑이 사이에 다리까지 끼워 넣고 밀착시켰었다.
그럼에도 렌카의 반발이 예상외로 크지 않다는 건, 그녀가 내 성격이 이러리라는 것을 진즉 파악했던 것고 있겠지만... 이런 식으로 나오는 게 싫지는 않다는 뜻.
애초에 할 필요가 없는 코스프레를 해준 것 자체도 내게 마음이 있어서다.
역시 강한 여기사는 더 강하게 나오면 되는구나.
앞으로 철저하게 내 색으로 물들여줘야겠다.
라고 생각하며 렌카가 했던 토끼 율동을 되새겨보던 나는,
“.... 야.”
렌카가 가라앉은 투로 날 부르자 고개를 돌렸다가,
“예... 헉!”
렌카가 포장지에 싸인 바이브레이터를 들고 날 때리려 하자, 기겁을 하며 그녀의 팔을 잡았다.
“뭐하는 거예요 지금?”
“죽어...! 죽어!”
많이 놀랐나보다. 이렇게까지 격한 감정을 보일 정도면.
방금 했던 생각은 조금 앞서나갔던 거였나?
아니, 그렇지 않을 거다. 렌카는 분명히, 무의식적으로라도 내가 보였던 모습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정복욕이 마구 솟아난다.
오늘은 여기서 물러나지만 내일부터는 조교 수위는 물론, 스킨십 수위까지 더 높여나가면서 함락시켜야지.
빌런이나 할 법한 다짐을 한 나는, 버둥거리며 내 손을 떼어내려는 렌카에게 말했다.
“지금 부장이 들고 있는 게 뭔지는 알아요?”
“알 바 아니잖아...!”
“그건 그렇긴 한데... 일단 진정해요.”
“닥쳐! 넌 내가 진정하라고 했을 때 들었어...?”
“그래서 때리기라도 하겠다는 거예요?”
“당연하지...! 때리는 것만으로 넘어가는 걸 다행으로 알아, 이 쓰레기... 어, 어딜 봐...! 눈 안 깔아!?”
드러난 가슴골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내 시선을 느끼고는, 한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가리는 렌카.
새빨개진 얼굴로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이 무척이나 예쁘다.
그녀의 바이브레이터를 들고 있는 팔을 놓아준 내가 물었다.
“조금만 쉬었다가 갈래요?”
상황이 다소 묘해지자 전의를 상실했는지, 렌카가 허탈한 탄성을 터뜨리며 바이브레이터 포장지를 침대에 휙 던졌다.
이후 벌떡 일어나 탈의실로 향했다.
무언의 대답을 들은 나는 레오타드가 미처 감싸지 못한 그녀의 엉덩이를 바라보면서, 나갈 준비를 하기 위해 외투를 챙겨 입었다.
**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선 침묵만이 맴돌았다.
렌카는 생각할 거리가 많은지 창밖만을 바라보며 연신 한숨을 토해내고 있었다.
그런 렌카를 배려해 말없이 운전만을 하던 나는, 그녀의 집에 도착할 때쯤 입을 열었다.
“부장.”
“.... 왜.”
“오늘 정말 좋았어요.”
“어, 어쩌라고... 기억에서 지워.”
“다음 휴일 때 같이 밥 먹어요.”
“싫어.”
“선택권은 없습니다.”
“아 그러면 내 의견은 대체 왜 물어보는 건데!”
“의견을 물어보는 게 아니라 통보에요.”
내 철면피 같은 행동에 기가 찬 듯 헛웃음을 친 렌카가 중얼거렸다.
“진짜 어이없어... 뭐 저런 애가 다 있어...?”
“칭찬 감사합니다.”
“들으라고 한 소리 아니거든?”
“그럼 속으로만 생각했었어야죠. 아, 그리고 내일 저 일찍 출근할까요? 스케줄 맞춰지는 김에 같이 해봐요.”
“.... 맞춰질지 안 맞춰질지 모르잖아. 사장님은 아직 결정하시지 않았어.”
“제가 밥을 먹으러 갔을 땐 다음 주 중으로 바꿔준다고 하셨었는데요? 부장은 그런 얘기 못 들었어요?”
“.....”
찔끔한 표정으로 고개를 살며시 돌리는 그녀.
딱 보니 들은 게 분명하다. 게다가 사장이 의견을 물어봤을 때 긍정적으로 말하기까지 했겠지.
감정부터 잘 조절하고 츤츤거리든가 하지... 쯔쯔...
속내가 다 드러나는 렌카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작게 코웃음을 친 나는, 그녀의 집 앞에 도착하자 브레이크를 밟았다.
그리고는 무덤덤한 투로 말했다.
“내일 출근시간 전에 올게요.”
“.... 같이 출근하자는 얘기야?”
“예. 부장은 대중교통 안 타도 돼서 편하고, 전 아침부터 부장을 봐서 좋고... 이러면 일석이조 아닌가요?”
넌지시 튀어나오는 고백에, 렌카의 목젖이 크게 꿀렁거렸다.
이런 식으로 마음을 드러내면 항상 기대이상의 반응을 보여주네.
가벼운 웃음을 터뜨린 나는 불이 켜져있는 렌카의 집을 턱짓했다.
“들어가요.”
“.....”
왜인지 잠깐 머뭇거린 렌카는, 뒷좌석에 놓인 바니걸 복장을 주섬주섬 챙기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차에서 내린 나는 트렁크를 열어, 빈 쇼핑백을 하나 꺼내 렌카에케 내밀었다.
그러자 뭐하냐는 눈빛으로 날 쏘아본 그녀가 물었다.
“뭔데...?”
“편하게 담으라고요. 저거 빨아서 줄 거잖아요. 제가 냄새 맡을까봐 불안해서.”
“읏...!”
“아니에요?”
마음을 제대로 읽혀버렸는지, 렌카가 씩씩거리며 옷과 액세서리를 쇼핑백에 담았다.
이후 도망치듯 자신의 집으로 뛰어갔다.
중간에 다리가 풀려버린 듯 휘청거린 건 덤.
렌카의 위태로운 뒷모습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던 나는, 대문이 쾅 하고 닫히자 피식했다.
오늘 그녀가 잠을 제대로 잘 수 있을까?
난 아니라고 본다.
@@
머어엉...
입을 헤 벌린 채로 천장을 바라보고 있던 렌카의 머릿속에서, 오늘 있었던 일이 복기되었다.
치욕스러운 복장을 입고 거지같은 토끼 율동을 하는 자신...
그리고 그런 자신을 덮쳐온 마츠다...
이어지는 진한 터치, 짜릿해지는 몸, 그리고 피부에 스며드는... 남성미를 물씬 풍기는 포악한 수컷의 체취...
꼴깍.
자신의 몸에 아직까지 남아있는 마츠다의 사내 냄새를 맡은 렌카는, 마츠다를 만류할 때 그가 보여준 태도가 생각나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나긋한,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압박감이 느껴지는 중저음의 반존대.
그것을 듣는 순간 심장이 크게 뛰었고, 정신이 나가버릴 뻔했다.
솔직히 설레지 않았다는 건 거짓말이다.
그만큼 듣기가 좋았고, 마츠다라는 사람에게 어울리는 목소리였다.
‘미친년... 진짜 미쳤어...’
능욕당하는 와중에서도 그런 생각을 해버리다니 어이가 없다.
자기 자신에게 욕을 하며 마음을 다스린 렌카는, 이번엔 마츠다의 손길을 되새겼다.
자신의 다리 사이에 우람한 허벅지를 끼우고 맨살을 손가락 끝으로 꾸욱 꾹 눌렀을 때, 순간 기묘한 감각이 찾아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