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러브 코미디를 망가뜨리는 법-229화 (219/313)

심한 정전기가 흘렀다고 표현하는 게 가장 적당할 듯싶은 감각.

그것은 오르가즘이었을까? 아니면 싫은 사람의 손길에 돋아난 소름이었을까?

허락한 적 없는 손길임에도 기분이 나빠지지 않고 체온이 올라갔던 걸 생각해보면...

“읏...!”

갑자기 아래가 간지럽다.

성인만화적 표현으로 바꾸자면 약간 큐웅 하는 느낌.

본능적으로 다리를 오므린 렌카는, 잘 맞닿지 않는 허벅지를 위아래로 비비다가 몸을 뒤척였다.

왜 자신은 허락 없이 몸을 만진 파렴치한 마츠다의 행동을 그냥 넘어가버린 것일까?

심지어는 아주 웃기게도, 무척 마츠다답다는 생각까지 품었었다.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인데... 정신머리가 나가버렸나보다.

그래도 마츠다가 기특하긴 하다.

자신이 그만하라고 할 때 욕정을 참아낸 것 같아서.

분명히 더 깊게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을 텐데도, 자신의 말을 들어준 게 왠지 기껍다.

‘아니지, 대체 뭐가 기특하다는 건데?’

그런 생각을 하던 렌카가 고개를 마구 털어냈다.

좋게 봐줄 이유가 전혀 없는데 왜 또 이런 바보 같은 생각을 한다는 말인가.

이러면 완전히... 개조가 완료된 노예인형이잖은가.

마치 자신도 모르게 조교당한 것 같다.

마츠다가 좋아하는 조교물의 히로인처럼.

확실히 그는 조교물을 좋아한다.

지금까지 애니쉐어에서 렌카 자신에게 추천해준 만화나, 현실에서 아사가오 씨의 가계사정이라는 만화를 보는 걸로 생각해보면, 그의 성향은 아마 도미넌트 쪽일 것이다.

여자를 지배하길 좋아하는.

마츠다가 쓴 소원들은 전부 조교와 관련된 것들이기도 하다.

자신을 주인이라고 부르도록 했고, 감옥 같은 컨셉의 러브호텔에서 명령을 따르도록 만들었다.

렌카 자신을 좁은 철창 안에 가둬놓은 적도 있었으며, 메이드복까지 목에는 목줄까지 채운 채 그것을 잡고 감상을 하기까지 했다.

그렇다면 마츠다는 자신을 조교하려는 걸까?

그가 추천해주었던 만화에 나오는 서브미시브 성향의 여자처럼?

치나미와는 풋풋한 관계를 갖고, 렌카 자신은 노리개로 삼아 순수한 치나미에게는 할 수 없는 욕구를 풀 생각인 것인가?

거기까지 생각이 이른 렌카의 입에서 욕지거리가 터져 나왔다.

“나쁜 새끼...!”

감히 자신을 그렇게 보다니...!

더 이상 마츠다의 더러운 손에 놀아나지 말자.

라고 생각한 렌카는 애니쉐어에 들어가 MK에게 푸짐한 욕을 박아주려다가, 방 구석에 놓인 쇼핑백을 쳐다보았다.

바니걸이 그렇게 좋은 걸까? 이성을 잃고 돌진할 정도로?

물론 노출도가 많아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욕구를 일으키는 건 맞긴 한데...

저번에 마츠다가 그런 적이 있었다.

코스프레는 렌카 자신이 해줘서 좋은 거라고.

당시 그 말을 들었을 땐 뭐 저런 놈이 다 있나 싶었지만, 지금은 의외로... 나쁘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자신을 특별하게 여기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어쨌거나 저걸 가져와서 천만다행이다.

안 가져왔다면 지금쯤 마츠다는 자신의 체취가 묻어있는 저 복장에 코를 박고 있었겠지.

아니면 설마...

“흐아아악!”

스타킹 안으로 손을 집어넣고 자신의 남성기를 만지작거리는 마츠다를 상상해본 렌카가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무슨 일이니? 피규어가 망가졌어?

방 밖에서부터 렌카의 어머니의 걱정스런 물음이 들려왔다.

그에 자신의 실책을 알아차린 렌카가 황급히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렇게 어머니를 돌려보낸 렌카가 자신의 가슴을 쓸어내렸다.

진정하자. 마츠다는 심한 변태가 맞긴 하지만, 그 정도까지 타락할 사람은 아니다.

‘잘생기지나 말든가... 짜증나...’

푹 들어간 눈두덩과 굵은 눈썹... 그리고 오똑한 코. 심지어 피부마저도 좋다.

코앞에서 보았던 그의 이목구비를 되새겨본 렌카는 입술을 푸르르 떨며 이불을 코까지 덮었다.

오늘 정말 큰일이 있었다.

치나미에게 뭐라고 말해야할까? 눈앞이 막막하다.

이제 자신은 어떻게 되는 거지?

모르겠다. 머리가 아파진다. 지금은 아무런 생각도 하고 싶지 않으니 피규어를 보면서 마음을 달래자.

“.....”

전혀 달래지지가 않는다.

그냥 잘까? 아니, 잠이 오지도 않는데 눈을 감았다가는 마츠다 생각만 더 날 것이었다.

이러다 밤을 지새워버리는 건 아닌가 모르겠다.

스윽.

복잡한 심경을 어떻게든 지워내보려 노력하던 렌카는 저도 모르게 자신의 목덜미로 손을 가져갔다.

마츠다의 입술이 이곳을 스치듯 지나갔었다.

그 느낌은 꽤나 간질간질했고, 촉촉했으며, 미지근했다.

‘좋았었나...?’

돌발행동을 해왔던 마츠다 때문에 경황이 없어져서, 당시 자신이 어떠한 감정을 가졌는지 기억이 안 난다.

허나 부정적인 쪽은 아닌 것 같다.

왜? 마츠다가 밉지 않으니까, 그저 짓궂다는 생각만 들었으니까.

그런데 그때 자신의 아랫배와 가랑이 중간에서 딱딱한 감촉이 느껴지지 않았었나?

확실치가 않다. 하지만 맞다면 그건 아마도 마츠다의...

팡! 팡!

발칙한 상상을 해본 렌카가 이불을 강하게 걷어찼다.

‘혹시 나도 변태인가...?’

상상하지도 못한, 예전이었다면 거부감이 느껴졌을 일을 겪고도 이런 성적 호기심만 생기다니.

어쩌면 자신은 마츠다처럼... 아니, 마츠다보다 더 변태일 수도 있겠다.

숨겨진 본능 같은 게 깨어나버렸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아...”

심란해지는 마음을 어떻게든 다스리려 하며, 렌카는 자신의 천성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해보았다.

그러면서 동시에, 마츠다가 자신을 안아주었을 때의 느낌을 되살려보려고 노력했다.

어디까지나 무의식적으로.

**

다음날 오전.

출근시간 30분 전에 렌카의 집 앞에 도착한 나는 그녀에게 메시지를 남겨놓았다.

그러자 몇 분 뒤 대문이 열리면서, 렌카가 흐느적흐느적 다가와 차 문을 열었다.

덜컥.

“안녕요.”

“.... 어...”

영혼 없는 목소리로 인사를 받아준 렌카의 눈 밑이 무척 퀭하다.

예상대로 잠을 제대로 못 잔 모양.

나는 내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도 못한 채로 피곤해하는 그녀의 얼굴 앞에, 내 얼굴을 불쑥 들이밀었다.

“흐악?”

그리고는 놀라선 경기를 일으키는 그녀를 걱정스런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잠 못 잤어요?”

“잘 잤어. 얼굴이나 치... 읏!?”

짜증을 내려던 렌카가 움찔하며 입을 닫았다.

내가 그녀의 이마에 손등을 얹어놓았기 때문.

잠깐 그렇게 그녀를 당황시킨 내가 중얼거렸다.

“열은 안 나는데.”

“여, 열이 왜 나...?”

“얼굴 빨개져서요.”

“내, 내가?”

“예. 어쨌든 어디 아픈 건 아니죠?”

“.... 안 아파... 그리고 아프든 말든 신경 꺼.”

“어떻게 신경을 꺼요? 노예가 아프면 큰일 나는데. 내가 일을 해야 되잖아.”

“이런 개...”

“출발하겠습니다.”

버럭 화를 내려는 렌카의 말을 끊은 내가 곧장 차를 출발시켰다.

무어라고 꿍얼거리는 렌카의 투정 아닌 투정을 받아주며 카페에 도착한 나는, 잠긴 후문을 열고 카페 불을 켰다.

“옷은 부장 먼저 갈아입어요.”

“갈아입어...? 아... 유니폼...”

사소한 말 하나하나에도 저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면 어쩌냐.

앞으로 더한 말이 수두룩한데.

“그러려고 했어.”

기가 죽기는 싫었던 건지, 아니면 변명을 하려는 건지.

사족을 덧붙인 렌카가 탈의실 안으로 들어갔다.

찰칵 하고 잠기는 문. 나름 철저하게 보안을 유지하려는 렌카에게 피식한 나는 싱크대에서 손을 씻고, 잠자코 그녀가 나오길 기다렸다.

끼익...

얼마 지나지 않아, 렌카가 유니폼과 앞치마를 입고 나왔다.

목소리를 가다듬은 나는 애써 태연한 척, 무신경한 척 나를 지나치면서 카운터로 가는 그녀를 불렀다.

“부장.”

“힛!? 왜...?”

방금 추임새는 뭐야?

굉장히 귀여웠다.

“잠깐만 이쪽으로 와보세요.”

“어디...?”

“여기요.”

탈의실 안을 가리키자, 렌카의 고개가 도리도리 저어졌다.

“뭔 짓을 하려고...? 안 가...!”

“아 이상한 짓 안 할 테니까 오라고요.”

“.....”

자신의 기다란 속눈썹을 늘어뜨리더니 조심조심 다가오는 렌카.

내키지 않아 하면서도 말은 잘 듣는 모습이 웃기다고 생각하며, 나는 렌카가 탈의실로 완전히 들어오자 주머니를 뒤적거려 무언가를 꺼냈다.

“이거 먹어요.”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나온, 작은 포장지에 담겨있는 보라색 알사탕.

그것을 본 렌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뭔데 이게?”

“사탕이잖아요.”

“그러니까 이걸 왜 주냐고.”

“어제 돌아가면서 편의점 들렀는데 블루베리 맛 사탕을 팔고 있더라고요. 부장한테 주고 싶어서 하나 가져왔어요.”

그리 말한 나는 포장지를 까서 사탕을 꺼내, 렌카의 선홍색으로 빛나는 입술 앞에 내밀었다.

“자요.”

“.... 그냥 줘. 내가 먹을게.”

“또 말 안 듣네. 입 벌려요.”

“미쳤냐? 싫어.”

“아 하라고.”

“그렇게 나오면 벌릴 줄 알아? 꺼져!”

욕을 쏟아내고선 입술을 안쪽으로 오므리는 그녀.

웃긴 모습을 보여주는 렌카를 향해 가소롭다는 미소를 지은 나는, 그녀의 입술 가운데에 사탕을 대고 점진적으로 힘을 주어 밀었다.

“으읍!”

그에 렌카의 눈이 질끈 감겼다.

죽어도 입을 열지 않겠다는 듯 안간힘을 쓰는 게 보인다.

평소의 렌카라면 내가 이랬을 때 정강이를 후드려 깠을 텐데, 그저 이런 깜찍한 반항만을 하고 있다니...

어제 일이 크긴 컸나보다.

나는 아예 렌카의 뒷목까지 잡은 채로 일을 계속해나갔다.

톡.

그러자 내 힘을 버티지 못한 렌카의 입이 살며시 벌어지면서, 사탕이 그녀의 꽉 닫힌 이빨에 닿았다.

거기서 더욱 더 힘을 주자, 렌카의 이빨이 서서히 벌어지면서 그 사이로 사탕의 완만한 끄트머리가 들어가다가 걸렸다.

그 상태에서, 나는 사탕의 반대쪽 면을 엄지로 밀어 렌카의 입에 반쯤 강제로 사탕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엄지도.

“헤웁...!?”

자신의 입에 쏘옥 들어와버린 낯선 손가락에, 렌카의 감겨있던 눈이 번쩍 뜨였다.

눈동자를 내려 자신이 무엇을 빨아들였는지 확인한 그녀의 어리둥절한 눈빛이 가라앉았다.

내 개구쟁이 같은 표정을 보고 자존심이 상했는지 눈매가 사납게 변한 그녀는,

꽈악...!

입 안으로 들어온 내 엄지의 첫 마디를 깨물었다.

그런 와중에도 살갗이 뚫리지 않도록 힘을 적당히 조절하기까지 하는데, 그 모습을 보니 렌카와 노예 플레이를 할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느껴진다.

예전의 렌카가 강제로 팔려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스스로의 처지를 인정 못하는 귀족이었다면,

지금의 그녀는 노예로서의 입장은 자각했지만 아직 귀족의 습관이 남아있어 자존심과 반항기가 남은 상태.

딱 이 정도로 생각해도 될 것 같다.

“깨물지 마세요. 아파.”

나름 따가운 고통을 느끼는 와중에서도 천연덕스럽게 렌카의 뒷목과 잔머리를 살살 쓰다듬어주자,

“.... 읍!?”

그제야 자신의 뒷목에 내 손길을 허용했음을 눈치챈 렌카가 눈을 크게 뜨더니, 다급하게 내 가슴을 밀어냈다.

“이... 이...! 죽어!”

그리고는 터질 것처럼 벌개진 자신의 뺨을 만지작거리며, 내게 저주를 퍼붓고는 도망치듯 탈의실을 빠져나갔다.

그런 와중에도, 그녀는 내가 넣어준 블루베리 맛 사탕을 입 안에서 굴리고 있었다.

쾅!

강하게 닫힌 탈의실 문을 바라보며, 나는 입맛을 다셨다.

렌카의 따스한 타액이 묻은 이 엄지를 내 입으로 가져가 쪽 빨아들이는 것까지 보여주려고 했는데...

아쉽게 됐다.

“감사합니다, 맛있게 드세요!”

손님에게 커피를 건네주는 렌카의 인사.

렌카에게 가까이 다가간 나는, 손님이 카페 밖으로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그녀를 불렀다.

“부장.”

“.... 왜.”

“왜 제가 부르면 목소리가 그래요?”

“뭐가.”

“불친절하잖아요.”

“그걸 말이라고 해!? 네가...”

“사탕은 맛있었어요? 또 줄까요?”

“읏...!”

탈의실에서 있었던 일을 상기했는지 곤란한 표정을 짓는 렌카.

그녀의 고운 미간이 찌푸려지는 것을 본 내가 말했다.

“싫어요?”

“.... 싫어. 그리고 애 다루듯 말하지 마. 기분 엄청 나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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