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러브 코미디를 망가뜨리는 법-230화 (220/313)

“그런 적은 없는데... 오늘 뭐할 거예요?”

“몰라.”

“할 게 없다는 소리로 들리네요. 같이 저녁 먹고 들어갈까요?”

“아니.”

“파스타 좋아하죠?”

“별로.”

왜 자꾸 튕기냐. 어차피 갈 거면서.

렌카를 향해 가소롭다는 미소를 지어보인 나는, 그녀가 욱하는 틈을 타 손을 슬쩍 뻗었다.

“흣!?”

큼지막한 손이 다가와서 겁을 집어먹은 걸까?

아니면 아까와 같은 일이 벌어질 거라고 생각해서 두근두근한 걸까?

짤막한 탄성을 터뜨린 렌카의 눈이 질끈 감겼다.

반사적인 행동을 보여주는 그녀가 웃기다.

최대한 속내를 감춘 내가 의아하다는 말투로 물었다.

“뭐해요?”

그리고는 한쪽 눈을 게슴츠레 뜨려 하는 렌카의 앞머리에 조금 묻어있는 생크림을 집게손가락으로 빼냈다.

“무, 뭐야...?”

“뭐긴요. 앞머리에 생크림 묻어서 닦잖아요.”

“.... 커피에 올리다가 묻었나보네.”

“그러게요. 칠칠치 못하게 뭡니까? 부장도 스승님을 닮아가나 보네요.”

“아, 아니거든...?”

“아니긴 무슨. 움직이지 좀 말고 가만히 있어요. 사춘기야? 반항하게?”

“반말하지 말라고...!”

“알았다고.”

능청스런 반말에 쌍심지를 켠 렌카를 무시하며, 나는 휴지를 한 장 뽑아 앞머리에 남아있는 흰 생크림을 전부 닦아내주었다.

세상에 이런 주인이 어디 있을까. 렌카는 나한테 잘해야 한다.

“다 됐습니다.”

“.....”

“감사인사 안 해요?”

“안 해. 닦아달라고 한 적 없으니까.”

“진짜 안 해요?”

“어.”

스윽.

새침하게 구는 렌카의 옆으로 간 나는, 그녀의 등허리에 은근슬쩍 손을 올렸다.

“햑...!”

살쾡이 같은 소리를 내며 몸을 움찔 떠는 렌카.

휘둥그레진 눈으로 날 바라본 그녀는, 이내 마른 침을 꼴깍 삼키며 어쩔 줄 몰라 하는 반응을 보였다.

그런 그녀의 옆구리까지 바싹 달라붙은 내가 재차 물었다.

“진짜로 안 해요?”

“그... 고, 고마워...! 고마우니까 달라붙지 마...!”

“억지로 말하는 거 아니죠?”

“아냐...! 진짜 고마워서 그래...!”

“저녁은 파스타로 괜찮고요?”

“응...! 파스타 좋아해...!”

허겁지겁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안절부절 못하면서도 손을 떼라고는 안 하고 있다.

그저 당황하기만 했을 뿐, 내 손길이 싫지는 않다는 증거다.

저 약속까지 잡아버린 나는 만족스러운 듯 히죽 웃으며, 렌카의 등을 두세 차례 토닥였다.

“그럼 같이 퇴근하면서 먹는 걸로 해요.”

“알았어...! 손이나 떼...!”

“왜요?”

“왜냐니...! 누가 내 몸을 막 마음대로 만지라고 했는데...?”

“제가요.”

“.....”

천연덕스런 대답이 황당했는지, 렌카가 경황이 없는 와중에서도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녀의 골반과 허리가 이어지는 굴곡진 부분을 한 차례 쓸듯 어루만지면서,

“흐익...!”

자신의 양팔을 갈비뼈에 바싹 붙이는 렌카의 반응을 즐기다가 손을 떼어냈다.

이후 전력질주라도 한 사람처럼 거친 호흡을 내쉬는 그녀를 놔둔 채, 마침 카페 안으로 들어온 손님을 맞이했다.

**

우웅-!

점심시간, 렌카를 먼저 보내고 일을 하던 나는 주머니에서 울리는 진동에 휴대폰을 꺼냈다.

애니쉐어 어플의 알림이 떠있다.

뭔가 싶어 들어가보니, 달려라 이노쨩의 쪽지가 와있었다.

[( ·`⌓´·) 쓰레기 님, 계세요?]

그것을 본 나는 새어나오는 미소를 감출 수가 없었다.

내 앞에서 개기면 보복을 당할까봐 두려워 이렇게 반항을 하는구나.

이젠 완전히 MK를 나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웃기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다.

나중에 달려라 이노쨩의 정체를 이미 알고 있었다는 말을 들으면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상상만 해도 미칠 것처럼 즐겁다. 아끼고 아끼다가 빵 터뜨려야지.

그리 생각한 나는 휴대폰을 두드려 답장을 보냈다.

[왜 또 욕질이세요?]

[그냥요. 수고하세요.]

[미친 사람이네.]

더 이상의 메시지는 오지 않았다.

렌카의 소심한 복수에 킥킥거리던 나는,

“누가 일하는 시간에 휴대폰 보래?”

뒤에서부터 들려오는 렌카의 비아냥이 담긴 목소리에, 속으로 헛웃음을 쳤다.

타이밍이 굉장히 공교롭다.

우연의 일치일까? 아니면 렌카가 날 트집 잡기 위해 쪽지를 보내자마자 안으로 들어온 걸까?

전자일 가능성이 높긴 하지만 만약 후자라면 귀엽다고 해야 할지, 찌질하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잠깐 본 거예요.”

“뭐하고 있었는데?”

“몰라도 됩니다.”

“말 못할 비밀이 있나보네?”

능글맞은 투로 날 캐보려 하는 게 웃기다.

“그건 아닙니다.”

“그럼 말해봐.”

“싫어요.”

“왜 넌 내가 뭔가를 하려고 하면 꼬치꼬치 캐물으면서 자기 일은 숨기려고 해? 너도 내가 물어보면 솔직하게 말해야 공평한 거 아니야?”

억울하다는 듯 따지고 드는 렌카.

약간 집착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게 무척 사랑스럽다.

“억울해요?”

“그건 아니지만 불합리하잖아.”

“그게 억울한 거 아닌가?”

“안 억울한데...? 멋대로 판단하는 거 진짜 추하네.”

“추하다고?”

“어. 엄청 추해.”

“섭섭하게 말하네 또.”

“어쩌라고.”

손을 대기만 해도 쩔쩔매는 주제에 꼭 이렇게 기어올라요.

그래도 매번 순종적인 것보다는 이렇게 틱틱대는 게 훨씬 재미있지.

미유키는 물론 치나미보다도 손길에 내성이 없어 보이는 렌카를 어떻게 능욕할까 고민하던 나는,

스으윽.

카페 문이 열리면서 한 남자손님이 들어오자 문 쪽을 향해 방긋 웃었다.

“어서 오세요. 카페 24입니다.”

“안녕하세요. 아이스커피 한 잔...”

간단하게 주문을 하던 남자의 시선이 렌카 쪽으로 돌아갔다.

외모에 눈이 절로 이끌린 모양.

거의 매일 일어나는 상황이라 이제는 욕을 하기도 지친다. 빨리 결제하고 보내버려야지.

그런 생각으로 포스기에 찍힌 금액을 말하려던 나는,

“어... 이노오?”

남자가 렌카에게 아는 체를 하자 멈칫했다.

렌카 또한 마찬가지. 에스프레소를 준비하려던 그녀는 자신의 성씨가 불리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남자를 쳐다보았다.

“누구세요...?”

“맞네...? 나 몰라?”

“글쎄요... 저는 잘... 아...!”

고개를 갸웃하며 남자의 얼굴을 이리저리 뜯어본 렌카가 돌연 높은 톤의 탄성을 터뜨렸다.

“요시다...? 오이케 중학교 다니던 요시다 켄이치?”

이름을 기억해낸 렌카의 말에, 남자의 안색이 환해졌다.

“맞아! 알아봐주네?”

“엄청 오랜만이다...! 잘 지냈어?”

“나야 잘 지냈지. 너는?”

“나도 뭐... 잘 지내. 진짜 반갑다.”

꽤나 익숙한 대화의 흐름이다.

도키아카에서도 이와 비슷한 이벤트가 일어났었다.

완전히 똑같지는 않았지만 질투심 유발 클리셰가 거기서 거기지 뭐.

렌카가 저놈의 이름을 순간 떠올리지 못할 정도라면 친한 사이는 전혀 아니다.

그렇기에 그냥 그러려니 하면서 넘기면 그만이긴 한데, 막상 실제로 겪어보니 짜증이 난다.

이래서 이 흔해빠진 클리셰를 많이들 써먹는구나. 이제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니 근데 도키아카는 남성향 게임 아닌가?

이럴 경우 보통 질투심 유발 이벤트는 내가 주체가 돼서, 히로인이 질투를 하도록 만드는 게 정상인데... 역시 똥겜답게 반대로 일어나고 앉아있다.

이대로 렌카와 저놈이 대화를 하도록 놔둘 수는 있지만 그러기 싫다.

테츠야처럼 옆에 우두커니 서있으면서 전전긍긍하는 건 성향에 안 맞아.

빠르게 판단한 나는 렌카가 남자에게 무어라고 말을 하려는 타이밍에 먼저 선수를 쳤다.

“아이스커피 결제 도와드릴게요. 테이크아웃이죠?”

그러자 남자가 흠칫하더니 돈을 꺼냈다.

“아, 네.”

눈치가 없다고 해도 상관없다.

내 노예한테 친근하게 구는 저놈을 빨리 치워버리는 게 더 중요하다.

쿠폰도 안 줄 거다. 다신 오지 마라.

또 오면 네 주변에 있는 여자란 여자들은 죄다 네토라레해버리는 것은 물론, 네게 네토라세 취향을 심어주어서 자발적으로 여자친구를 바치게끔 만들어주마.

여자친구가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겠지만.

**

“왜 표정이 썩어있어?”

간단한 작별인사로 동창을 보낸 렌카의 물음.

고개만 까딱 돌려 그녀를 쳐다본 내가 반문했다.

“내 표정이 썩어있다고요?”

“어.”

이런 웃기지도 않은 클리셰가 일어난 게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그래도 몰입은 해줘야 맞지.

이참에 스킨십도 할 겸, 렌카가 내 소유물이란 것을 자각할 수 있도록 교육을 해줘야겠다.

“부장.”

“왜.”

“이리 와보세요.”

나는 렌카의 손목을 잡아채 탈의실로 들어갔다.

이후 렌카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그녀의 코앞까지 다가가 정색을 했다.

“무, 뭐야...? 왜 또 이래...?”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날 올려다보는 렌카를 지그시 노려보며, 내가 물었다.

“저 사람이랑 친했어요?”

“.... 그건 왜 물어보는데?”

“대답이나 해요. 짜증나게 하지 말고.”

“싫은데...?”

저런 대답이 나올 줄 알았다.

근데 은근히 기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착각인가?

코웃음을 친 나는 샐쭉한 표정을 짓고 있는 렌카의 손을 잡았다.

“햑!?”

그리고는 렌카가 소스라치게 놀라는 틈을 타 깍지까지 끼고, 그녀의 손등을 라커에 대고 꾸욱 눌렀다.

“무, 무무무무슨 짓이야 지금...!?”

말을 엄청나게 더듬고 있다.

기겁에 기겁을 거듭하는 걸 보니 내 행동을 전혀, 예상치도 못했나보다.

약간 차가운 렌카의 손 감촉을 오롯이 느끼며, 나는 어제처럼 그녀의 이마에 내 이마를 톡 하고 대었다.

더 나아가 남은 한손은 그녀의 골반에 살포시 올려놓고, 목소리를 최대한 낮추었다.

“친했냐고요.”

“그, 그냥 같은 반 친구였을 뿐이야...! 대화도 별로 안 했어...!”

그제야 솔직하게 실토를 하는 그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눈썹을 찌푸린 내가 말했다.

“이걸 내가 믿어야 돼요?”

“내가 왜 이걸 너한테 설명해야하는지는 모르겠는데... 그저 동창일뿐이지 아무 사이도 아니었어...! 진짜야...!”

귀까지 빨개진 채로 다급한 설명을 하고 있는 렌카의, 나와 손깍지를 끼고 있는 손이 심하게 꼼지락거렸다.

어떻게든 벗어나고 싶지만 힘 차이가 너무 커서 곤란한 것 같다.

렌카는 이런 내 행동을 익숙하게 느끼고 있을 것이다.

왜? 여성향 로맨틱코미디 만화에서 많이 나오는 장면 중 하나니까.

쉽게 말하자면 이건 렌카의 입장에서도 흔한 클리셰라는 거다.

그녀는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얼굴색을 보아하니 아무 생각도 못하고 있는 것 같긴 하다.

“힉...! 그, 그만...! 그만해...!”

렌카의 골반에 올려놓은 손에 힘을 주자, 그녀가 간드러지는 느낌이 살짝 서려있는 신음을 토해내더니 몸을 꿈틀했다.

익숙하지 않은 남자의 손길에 적응을 못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조금만 더 강압적으로 나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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