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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코미디를 망가뜨리는 법-233화 (233/313)

Chapter 233 - 알찬 하루

렌카는 시도 때도 없이, 퇴근하기 직전까지 나와 깍지를 끼었던 자신의 손을 만지작거렸다. 하지만 그것을 자각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어디까지나 무의식적인 행동이었다. 만약 자신이 지금 뭘 하는지 인지했다면 내 눈앞에서 저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겠지.

“가게 아는 곳 있어?”

옷을 갈아입고 나와 함께 차에 탄 렌카의 물음. 조심조심 벨트를 매는 그녀를 바라본 내가 대답했다.

“있어요.”

“그래...”

“다 먹고 뭐할까요?”

“뭘 뭐해... 집에 가야지...”

“그냥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뜬금없는 협박조에, 렌카가 움찔하더니 고개를 내 쪽으로 홱 돌렸다.

“무, 뭐...?”

“농담입니다. 부장 동네 근처에 작은 공원이 하나 있던데 알죠?”

“알아.”

“저녁 다 먹고 거기서 산책이라도 조금 하고 가요.”

“.....”

“왜 뚱한 얼굴이에요? 저랑 있는 게 그렇게 싫어요?”

“당연한 거 아니야?”

“섭섭하네요.”

“거짓말하지 마. 맨날 섭섭하다고 하면서 표정은 정반대잖아.”

“진짠데. 어쨌든 출발하겠습니다.”

그렇게 도심의 파스타 전문점으로 차를 몬 나는, 그곳에 주차를 하고 내렸다. 이후 머뭇거리는 렌카에게 내 옆으로 오라며 손짓을 한 뒤, 가게 안으로 들어가 점원에게 자리 안내를 받았다.

“뭐 먹을래요?”

“나는...”

말끝을 흐린 렌카가 종이 메뉴판을 들여다보았다.

“그냥 나폴리탄.”

“고르곤졸라 피자도 시킬까요?”

“마음대로 해... 어차피 나한텐 선택권이 없잖아.”

음음... 자신의 처지를 자각한 채로 하는 자조적인 말투가 굉장히 꼴린다.

“뭘 먹겠냐고 선택권을 준 게 방금인데 없긴 뭐가 없어요?”

“.....”

“동정심을 유발하려다가 실패했네요.”

“.... 닥쳐.”

“음료수는요?”

“자몽 에이드.”

“굳이 자몽 에이드여야 하는 이유가 있어요?”

“먹고 싶으니까.”

“이래도 선택권이 없다고 할 거예요?”

“시끄러워...! 요리나 골라...!”

씩씩대는 모습이 귀엽다. 찔린 듯한 렌카의 반응을 즐긴 나는 점원을 불러 음식을 주문했다.

음식이 나오는 동안 애꿎은 냅킨만 주물럭거리고 있는 렌카. 그런 그녀를 향해 픽 하고 웃어보인 내가 말했다.

“왜 쓰지도 않는 냅킨을 만져요. 진상이네.”

“뭐래... 하나밖에 안 만졌거든? 그리고 꽂혀있는 걸 만진 것도 아닌데 왜 뭐라 하고 난리야?”

“챙겨주고 싶은 마음에 한 말이에요.”

“웃기시네. 놀리려는 의도가 다분한데...”

리액션이 재미있는데 어떻게 안 놀리냐? 라는 말을 삼킨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람들이 많네요.”

“퇴근 시간이니까 당연히 많지.”

“부장은 말하는 게 약간 밉상이네요. 편의점 점원이 봉투가 필요하냐고 물으면, 그럼 이걸 그냥 들고 가냐고 대답하는 스타일이죠?”

“전혀 안 그래. 오직 너한테만 이러는 거야.”

“그럼 다행이고요.”

“뭐가 다행인데?”

“절 특별하게 대한다는 뜻이잖아요. 저번에도 말했지만 기쁩니다.”

“미친놈이네 정말...”

질렸다는 듯 고개를 가로젓는 그녀. 렌카와의 톡톡 튀는 대화를 이어나가던 나는, 음식이 나오자 저도 모르게 입맛을 다신 그녀를 보며 킥킥거렸다. 이후 뭘 쪼개냐며 인상을 팍 찌푸리는 렌카와 함께 나름 오붓한 시간을 보냈다.

**

파스타를 먹고 렌카의 집으로 돌아가는 길. 파스타 가게에서 말했던 것처럼, 나는 곧장 렌카를 집에 데려다주지 않고 그녀의 집 근처에 있는 공원 주차장에 차를 대었다.

“그냥 가고 싶은데...”

꿍얼거리는 렌카를 엄한 눈으로 쳐다본 내가 말했다.

“조금만 걸어요.”

“.... 날이 이렇게 어두운데 무슨 산책을 해...?”

“아직 해가 다 진 것도 아닌데 어둡긴 뭐가 어둡다는 거예요? 잔말 말고 내려요.”

“싫어.”

“사춘기에요? 왜 이렇게 틱틱대?”

“추운데 어쩌라고.”

“그래요? 알겠습니다.”

꽤나 흔쾌히 투정을 받아주는 내가 의외였을까? 렌카가 의심스럽다는 눈으로 날 쏘아보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안전벨트를 푼 내가 그녀에게 상체를 쭈욱 뻗으려고 하자 기겁을 하며 조수석 문을 열었다.

“내릴게...! 내리면 되잖아...!”

“말 좀 빨리 들으면 얼마나 좋아요?”

“닥쳐...! 하... 진짜 미쳐버리겠네...”

욱한 렌카가 욕지거리를 하다 말고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반사적으로 꼬리를 말아버린 자신이 한심한가보지? 그렇게 렌카를 차에서 내리도록 한 나는, 싫은 티를 팍팍 내는 그녀와 함께 공원으로 들어갔다.

공원엔 중년 부부나 노부부 몇 명만 제외하면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원체 조용한 동네인데다 바쁜 현대인들이 공원에 잘 오려고 하지 않아서 인적이 뜸한 모양.

알몸산책은 젊은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해야 더 짜릿한 법인데... 다른 장소를 찾아봐야겠다. 아카데미 안에서 시켜도 괜찮을 것 같긴 하다.

나름 관리가 잘 된 산책로를 렌카와 나란히 걷던 내가 물었다.

“분위기가 괜찮네요. 여기 자주 와봤어요?”

“아니.”

“부장이 어렸을 때도 이 공원이 있었어요?”

“있었어.”

“그때도 똑같았고?”

“잘 몰라.”

“왜 단답만 해요?”

“그냥.”

어쩌면 그녀는 내가 강압적으로 나가주길 바라서 이렇게 까부는 게 아닐까? 그러한 생각을 해본 나는 주변에 벤치가 보이자 그 가운데에 앉았다. 그리고는 앙칼진 모습을 보여주는 렌카에게도 앉으라는 듯 옆을 툭툭 쳤다.

“.....”

내키지 않는다는 듯 미간을 구기고는 있지만, 그래도 얌전히 내 옆에 엉덩이를 붙이는 렌카. 자신이 입은 회색 트렌치 코트 주머니에 손을 푹 찔러 넣는 그녀를 바라본 나는 카페에서 있었던 일을 언급했다.

“앞으로 처신 똑바로 하겠다고 약속한 거 잊지 마세요.”

그에 탈의실에서 있었던 일을 상기했는지, 렌카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으락푸르락해졌다.

“그, 그건 협박이라서 무효야.”

“협박이라고요?”

“완전 협박이지. 신고하지 않은 걸 다행으로 알아...”

“이상하네요. 원만하게 합의한 걸로 알고 있었는데.”

“누가 봐도 강제성이 있었는데 합의? 착각이 너무 심한 거 아니야?”

“그래서 이 약속은 파기다?”

“그런 거지. 네가 아무리 이상한 짓을 한다 해도 난 무너지지 않아.”

이거 타락물이나 네토라레물 전용 대사 아닌가? 조금만 더 하면 무조건 무너지겠다는 뜻으로 들린다.

가소롭다는 미소를 지은 나는 렌카의 골반에 내 골반을 딱 붙였다. 그리고는 놀란 렌카가 무어라고 말을 하기도 전에, 벤치 구석까지 그녀를 몰고 팔걸이에 손을 짚어 빠져나갈 공간이 없도록 만들었다.

“이딴 짓 좀 그만하지?”

그러자 렌카가 의연한 투로 날 나무랐다. 그새 이런 내 행동에 적응을 한 건지, 아니면 애써 침착한 척을 하는 건지는 조금 더 깊게 들어가 보면 알겠지.

근데 깊게 들어가고 자시고 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렌카의 표정에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기 때문이다. 저 불그스름해진 뺨에 손을 대면 차가울까? 따뜻할까? 아마 후자 쪽일 것이다.

“머, 머리 치워줘...”

말없이 가만히 자신의 눈을 쳐다보고만 있는 내가 부담스러웠는지, 렌카가 또 다시 꼬리를 말았다. 그녀의 허벅지는 어느 샌가부터 딱 달라붙은 채였고, 종아리는 바깥으로 빠져나와있었다. 야릇한 기분을 느낀 건가? 아니, 부끄러워서 저러는 것일 가능성이 크다.

기가 죽어버린 렌카를 향해 히죽거린 내가 말했다.

“지금 다시 합의할까요? 앞으로 절 제외한 남자들이랑 대화하는 건 금지인 걸로 해요.”

“무, 무슨 미친 소리야...! 그럼 난 아빠랑도 대화하지 말라는 거야...?”

“그건 봐줄게요.”

“알바는...!? 알바는 어떻게 하라는 건데...?”

“남자손님은 제가 받으면 되죠.”

“그, 그럼 여자손님은 내가 받아?”

“아뇨. 여자는 둘 다 받는 거지.”

“.... 나는 남자랑 대화하면 안 되고, 너는 여자랑 대화해도 돼?”

“그런 거죠.”

렌카의 눈매가 무척 사납게 찡그려졌다. 부담스러운 와중에서도 불합리한 제약에 반발심이 드나보다.

“뭐 이딴...”

“이기적인 놈이 다 있냐고요?”

“.....”

“주인과 노예라는 관계가 원래 그런 법입니다. 그래도 제가 일정수준의 자유는 보장해주잖아요. 좋게좋게 생각해요.”

“자, 자유를 주는 게 아니라 제한하는 걸 왜 좋게 포장하고 난리야! 그리고 누가 노예라는 건... 햣!?”

렌카가 따지다 말고 몸을 크게 달싹였다. 벤치 팔걸이를 잡고 있던 내 손이 그녀의 코트 안으로 살며시 들어갔기 때문.

렌카가 입고 있는 검은색 기모 폴라티를 스치듯 쓸면서 부드러운 감촉을 느끼며, 나는 그녀의 골반 라인에 손을 대어놓았다. 그러자 과호흡이라도 온 사람마냥 숨을 여러 번, 짧고 빠르게 삼킨 렌카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손 떼...!! 때린다...?”

“마음대로 해보세요. 어떻게 되나.”

“읏...! 대, 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건데...! 좀 꺼지라고...!”

말로는 당장에라도 날 칠 것처럼 반항을 하고 있지만 몸은 얌전하다. 이대로 렌카의 허리에 팔을 두르고 그녀를 내 무릎 위에 앉히고 싶지만, 너무 빠르게 스킨십 강도를 높여나가면 우리 노예가 정신을 못 차릴 테니까 참아준다.

“부장이 약속을 파기하잖아요. 그러면 제가 화가 날까요? 안 날까요?”

“방금도 말했지만 그건...”

“약속이 아니고 강제였다고요?”

“그렇지...!”

“억지도 어지간히 부려야 들어주는 건데... 고집이 너무 세네요. 더 이상 왈가왈부하는 것도 지겨우니까, 부장이 알아서 잘 처신할 거라고 믿겠습니다.”

“미, 믿든지 말든지...! 난 내 마음대로 할 거야...”

말은 저렇게 했지만, 렌카는 나와 했던 약속을 분명히 신경 쓸 것이다. 이쯤이면 됐다고 판단한 나는 렌카의 골반을 한 차례 툭 건드리는 것을 마지막으로 손을 떼어냈다. 이후 큰 재난이 지나간 사람마냥 안도하는 렌카에게 말했다.

“돌아갈까요?”

“.... 네가 말하지 않아도 가려고 했어...”

쓸데없는 사족을 붙이기는.

“알겠습니다. 집에 가면 10분 뒤에 전화해요.”

“내가 왜...?”

“그때쯤이면 저도 집에 도착할 시간이니까요.”

“그거랑 무슨 상관...”

“부장이랑 통화하고 싶으니까 하라면 해요.”

“.....”

넌지시 드러낸 관심에 입을 꾹 다무는 그녀. 그것이 승낙임을 확신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가죠.”

그에 고개를 홱 돌리며 스스로 일어난 그녀가 자신의 길쭉한 다리를 움직여 성큼성큼 앞서가기 시작했다. 오늘도 알차게 관계를 발전시켜나갔구나. 내일은 또 무슨 일이 일어날지 기대된다.

나는 거의 도망치듯 걸음을 놀리고 있는 그녀의 뒤를 따랐다. 아까 여기로 오는 길에 포장마차가 보이던데... 돌아가면서 미유키가 좋아하는 야키토리를 한가득 사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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