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34 - 또 알찬 하루
다음날 아침. 출근을 하기 위해 샤워를 마친 나는, 이불을 포옥 덮은 채로 자고 있는 미유키를 깨웠다.
“미유키, 일어나. 요새 너무 늦잠 자는 거 아니냐?”
“아 왜 깨워어...! 피곤해...”
앙탈을 부리며 몸을 비트는 미유키. 나는 그런 그녀의 엉덩이를 가볍게, 여러 번 토닥였다. 그러자 기다란 콧바람을 내쉰 미유키가 느릿하게 상체를 일으켰다.
“지금 출근해...?”
“아니. 조금 있다가.”
“응...”
막 잠에서 깨어 꺼벙한 미유키의 눈은, 전날 밤에 와서 먹은 짠 야키토리 때문인지 띵띵 부어있었다. 오랜만에 먹는다면서 허겁지겁 입으로 가져가던데, 이렇게 될 줄 알았다.
잘 올라가지 않는 눈꺼풀을 억지로 뜨며 날 바라보는 미유키. 아빠미소를 지으며 그 깜찍한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나는, 그녀가 돌연 내 무릎에 자신의 머리를 들이밀자 실소를 터뜨렸다.
“뭐하냐?”
“.... 더 잘래...”
무릎베개를 넘어 거의 사타구니 안쪽까지 자신의 머리를 들이민 그녀는, 내 허리를 꼬옥 끌어안고 가랑이 사이에 후끈한 바람을 불어넣었다. 그리고는 간질간질한 감각에 꿈틀대는 내 반응을 즐기면서 고개를 들었다.
“내일 휴일 맞지...?”
“맞아.”
“공부할 거지?”
“그래, 하자.”
“응... 그러면 테츠야 군한테도 연락한다?”
“걜 굳이 포함시켜야하냐?”
“방학 전에 약속한 거잖아... 같이 해야 성적도 같이 늘지...”
“알았다. 출근 전에 태워다줄 테니까 세수해.”
“응...”
순순히 고개를 끄덕인 미유키가 양반다리를 하고 앉더니, 자신의 얼굴을 손으로 문질렀다.
“세수하라니까 마른세수를 하고 앉아있으면 어떡하냐?”
“마른세수도 세수인데... 애초에 물세수라고 말을 했어야지... 바보.”
“까분다. 오늘 뭐할 건데?”
“언니랑 영화 보기로 했어...”
자매가 오붓하게 영화라? 나도 가고 싶다. 카나와 미유키 사이에 앉아 받는 핸드잡 봉사를 상상해보던 나는, 이어지는 미유키의 말에 정신을 차렸다.
“아, 그리고 엄마가 한 번 들르래. 얼굴 못 본지 오래 됐다고...”
“알았어. 조만간 뵙겠다고 말씀드려.”
“아니면 내일 공부를 우리 집에서 할까?”
“그것도 괜찮은 것 같긴 하네. 일단 상황부터 보고 결정하자.”
“알았어. 나 양치할 시간은 돼?”
“돼. 하고 와.”
미유키가 자신의 양팔을 내 쪽으로 뻗었다. 일으켜달라는 뜻. 점점 애교가 많아지는 미유키를 보며 기분 좋은 미소를 지은 나는, 그녀의 겨드랑이 사이에 손을 넣고 힘을 주어 들어올렸다.
그제야 흐느적흐느적 욕실로 향하는 그녀. 요와 이불을 잘 정리한 나는 양치를 마치고 나온 미유키를 집에 내려다주고, 곧장 렌카가 있는 동네로 향했다.
근처에 차를 대어놓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대문이 열리면서 렌카가 나왔다. 오늘 렌카의 코디는 청바지와 후드, 그리고 파카구나. 간단하게 입었지만 여전히 예쁘다.
“안녕.”
문을 연 렌카의 아침인사. 간만에 먼저 인사를 건네주는 그녀를 향해 방긋 웃어보인 나는 한손을 들어올렸다.
“안녕요. 오늘부터 공식적으로 같이 출근하게 됐네요.”
“어.”
“좋죠?”
“아니.”
“그래요. 저도 좋습니다.”
“아니라니까?”
“알았어요. 출발합니다.”
“아니라고, 아니야. 아니랬잖아.”
따박따박 말대꾸를 하는 렌카를 무시한 나는 사이드 브레이크를 해제했다. 아침부터 기분이 좋다. 오늘도 힘내서 렌카를 조교하자.
**
카페 오픈 준비시간은 나와 렌카가 오붓한 시간을 즐길 수 있는 타이밍이었다. 후문으로 들어가기 직전에 꿍얼거리는 렌카와 투닥거리거나,
“내가 먹을게...! 내가 직접 먹으면 되는 거잖아...!”
지금처럼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온 직후의 그녀를 다시 불러 사탕을 먹여주려는 거나.
저번에 내가 입 안으로 엄지를 들여보낸 사건이 생각났는지, 렌카가 자신의 눈앞에 있는 블루베리 맛 사탕을 집으려 했다. 하지만 내가 인상을 살짝 찌푸리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로 발만 굴렀다.
“아 하세요.”
“아 싫어...! 또 손가락 넣을 거잖아...!”
다른 데에 안 넣는 걸 다행으로 알아. 라는 말을 속으로 삼킨 나는, 싫증을 팍팍 내는 그녀의 입술에 사탕을 톡 대었다.
“훕...!”
본능적으로 입을 약간만 벌리며 사탕을 안으로 집어넣는 그녀. 씨익 웃는 것으로 만족감을 표출한 나는, 이번엔 렌카의 입에 사탕이 완전히 들어가는 것을 보자마자 손가락을 떼어냈다.
“.....”
그러자 렌카가 나를 수상쩍은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얌전히 사탕만 먹여주는 것이 이상했던 모양. 그 눈빛 안에 왠지 모를 아쉬움이 들어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착각일까 아닐까?
얼떨떨한 표정으로 사탕을 이리저리 굴리는 렌카를 본 내가 물었다.
“맛있죠?”
“그, 그다지...”
“하루에 하나씩 줄게요. 이빨 썩으면 안 되니까.”
“.... 무슨 강아지를 키우는 것도 아니고...”
“부장은 강아지 과가 아니라 고양이 과죠. 맨날 앙칼지게 굴잖아요. 이제 나가줄래요? 옷 갈아입게.”
“이런 쓰... 히약!?”
눈을 부릅뜬 렌카가 내게 대들려다 말고 황급히 자신의 얼굴을 가렸다. 그녀에게 손을 휘휘 저은 내가 곧바로 상의를 벗었기 때문. 거의 꺾이겠다 싶을 정도로 고개를 빠르게 돌린 그녀는, 신발조차 신지 않고 탈의실을 나가려다 문지방에 발을 찧고 말았다.
“악!”
그에 깜짝 놀란 나는, 아파하는 렌카에게 재빨리 다가가 그녀를 부축했다.
“괜찮아요?”
“괜찮... 야...! 이거 놔...!”
고개를 주억거리다가 아직 맨몸인 내 상체를 보고는 질겁하는 렌카. 아픈 와중에도 창피한 건 아는 모습이 가상하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안쓰럽다고 해야 하나...
한숨을 푹 내쉰 나는 발버둥을 치려는 렌카를 반강제로 탈의실 바닥에 앉혔다.
“마, 만지지 마...!”
“가만히 좀 있어요.”
내 목소리 안에 담긴 걱정과 진중함을 느꼈을까? 자신의 발을 들어올리는 내게서 벗어나려던 그녀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그 사이 렌카의 흰 양말을 벗긴 나는, 아예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그녀의 발꿈치를 잡아 고정했다. 이후 뽀얗고 기다란 그녀의 발가락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그러자 렌카가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살짝 돌렸다. 저도 모르게 발가락을 꼬물거리는 건 덤. 아픔을 중화시키려는 행동인지, 탈의한 상체를 보니 부끄러움을 느껴서 튀어나오는 행동인지는 모르겠지만 귀엽다.
그나저나 발이 굉장히 예쁘다. 상처라도 났다면 마음이 정말 아팠을 텐데, 충격으로 인해 빨개지기만 해서 다행이다.
“엄지발가락만 조금 빨갛고 찢어지거나 하진 않았네요.”
“.....”
“건드리면 아파요?”
그리 말한 내가 남색으로 칠해진 렌카의 엄지발톱을 쥐고 살포시 힘을 주어 누르자, 그녀의 눈썹이 꿈틀했다.
“아, 안 아파... 그냥 찡하기만 해...”
“그게 아프다는 거 아닌가요?”
“.... 찧은 직후보다는 덜한 것 같은데...”
“그럼 다행이고요. 근데 뭘 그렇게 도망치듯 나가려고 해요?”
“네, 네가 갑자기 옷을 벗으니까 그렇지...!”
“미안해요.”
“.....”
렌카의 입이 꾸욱 다물렸다. 가라앉은 목소리로 진심어린 사과를 하니 이상한 기분을 느낀 모양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조심스레 양말을 다시 신겨준 내가 말했다.
“혹시 모르니까 오늘은 슬리퍼 신고 일해요. 나중에도 아프면 같이 병원가고.”
“.....”
렌카의 입 안에서부터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 사탕만 굴리고 있는 것이다. 경황이 없었음에도 사탕은 떨어뜨리지 않아서 기특하구나. 특별히 퇴근할 때 하나 더 줘야겠다.
“대답 안 해요?”
“아, 알았어... 옷... 옷부터 입어...”
매서운 기세가 팍 가라앉은 렌카의 대답을 듣고 포근한 미소를 지은 나는, 그녀의 발을 조심조심 내려놓고 와이셔츠를 집어들었다. 이후 쪼그려 앉아있는 렌카가 나가려고 하자, 거기 있으라고 말하며 탈의실 밖으로 나가 셔츠를 갈아입었다.
**
“카푸치노... 맞으시죠?”
“네, 맞아요.”
“아, 네... 잠시만요... 결제 도와드릴게요...”
남자손님의 주문을 받은 렌카가 포스기를 만지작거리며 내 눈치를 보았다. 어제 내가 했던 말이 걸리는 것 같다.
예상한 그대로의 반응에 속으로 쾌재를 부른 나는, 렌카가 결제를 마치자마자 자연스럽게 커피를 만들었다. 그리고는 그것을 건네받은 손님이 카페를 나가자마자, 깨끗한 싱크대를 닦고 있는 렌카를 불렀다.
“부장.”
“.... 왜?”
“누가 남자랑 말 섞으라고 했어요?”
“마침 내가 카운터에 있었으니까 당연히 주문 받아야지... 아니 근데 내가 왜 이런 변명을 대는 건지 모르겠네...”
왜겠냐. 나한테 마음이 있으니까, 그리고 밉보이기 싫으니까 그런 거지. 무의식적으로 새겨진 노예로서의 마음가짐이 발전하는 모습... 아주 보기 좋다.
“오늘은 첫날이니까 경고만 주고 넘어가는데, 다음부터 이러면 진짜 혼날 줄 알아요.”
“.... 너한테 경고를 받아야할 이유가 전혀 없는데? 그리고 남자랑 말을 못 섞으면 어떻게 일을 하라는 건데? 나 잘리면 네가 책임질 거야?”
“당연히 책임지죠. 우리 집에 메이드로 고용하면 되지.”
렌카의 얼굴이 팍 일그러졌다. 목줄을 찬 채 짧은 치마가 달린 메이드복을 입고 일을 하는 자신을 상상해보기라도 했나보지?
“시급 만 엔을 줘도 안 해.”
“만 엔이면 해야 정상 아닌가?”
“안 해.”
“그래요 그럼. 내일 휴일인데 뭐해요?”
“집에 있을 거야.”
“저도 아쉽네요. 약속이 있어가지고.”
“아쉽긴 뭐가 아쉽다는 거야? 귀가 안 좋니? 집에 있을 거라니까?”
“그렇다고 쳐줄게요.”
“하... 됐다. 말을 말자...”
“왜요? 더 말하지.”
“시끄러. 근데 무슨 약속이 있는데?”
언짢은 듯 말하고는 있었지만 말투 안에 호기심이 서려있다. 은근히 신경 쓰이나보다. 내 사생활이.
“알려줘야 해요?”
“넌 맨날 나한테 뭐할 거냐고 꼬치꼬치 캐묻는데, 나도 이런 질문은 할 수 있는 거잖아.”
“노예 주제에?”
“야...! 내가 그런 말 하지 말랬지...!”
“하지 말라고 한 적은 없는 것 같은데.”
“이제부터 하지 마 그럼...!”
“억지 부리기는. 발은 괜찮아요?”
“.... 괜찮아. 방금 전에 눌러봤는데 안 아팠어.”
방금까지는 씩씩대다가, 지금은 조금 수줍어하고 있다. 탈의실에서 보았던 내 몸이 생각난 모양이었다. 확확 바뀌는 그녀의 태도가 웃기다고 생각한 내가 말했다.
“다행이네요.”
“응... 근데 약속 뭐냐니까?”
“궁금해요?”
“안 궁금한데 난 대답했으니까 너도 대답해야 맞지.”
“그건 무슨 심보에요?”
“심보가 아니라 이게 공평한 거야.”
“이번만 대답해줄게요. 공부하기로 했어요.”
그 말에 렌카의 눈이 크게 뜨였다.
“뭐...? 공부?”
“예. 미유키랑 미우라랑.”
“아 진짜...?”
“왜 그렇게 놀라요? 안 어울려서?”
“아니 뭐... 어울리지 않는다는 건 아니고...”
“아니긴 뭐가 아니에요? 얼굴에 다 드러나는데. 내일 저녁쯤에 연락할 테니까 나와요.”
“.... 저녁에? 뭐할 건데?”
“아직 정하진 않았습니다.”
“뭐... 생각해볼게.”
어제보다는 덜 튕기면서 받아주려 하는구나. 아까 탈의실에서 있었던 사건 때문에 호감도가 조금 올랐나보다. 이러면 진도를 더 많이 빼 봐도 괜찮을 것 같다.
“그럼 내일 보는 걸로 하고, 오늘 집에 들어가면 발 사진 보내요.”
“발 사진...? 나 괜찮다니까?”
“아뇨. 그게 아니라 그냥 감상하려고요. 아까 보니까 발 모양이 예뻐서.”
렌카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예상치 못한 말에 넋이 나가버린 것이다.
장난기가 가득한 표정으로 낄낄거린 나는, 정신을 차린 그녀가 화를 내려는 타이밍에 맞춰 손님이 들어오자 카운터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