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38 - 한겨울의 후끈함 #2
“안녕요.”
“어.”
“인사 똑바로.”
“.... 안녕.”
“옳지, 잘했어요.”
“강아지 취급하지 말지?”
“그래요.”
평소와 다름없이 렌카와 티격태격 말장난을 한 나는, 그녀와 함께 카페로 향했다. 도착하자마자 출근카드를 찍고 탈의실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으려는 렌카. 자연스럽게 그 뒤를 따른 나는, 그녀가 욕지거리를 쏟아내기 위해 입을 벌리는 사이 사탕을 꺼냈다.
“오늘 사탕 주려고요.”
그러자 렌카가 멈칫하더니 반걸음 뒤로 물러났다. 이번엔 절대 먹지 않으려는 의지가 보이는 것 같은데... 그래봐야 렌카는 렌카지. 같잖은 반골 기질을 보여주는 그녀에게로 성큼 다가간 내가 말했다.
“아 해요.”
“시, 싫어... 이상한 짓 할 거잖아...”
“무슨 이상한 짓?”
“어제처럼...”
“안 할게요.”
“못 믿겠어...”
“그럼 믿지 말든가. 아 해요.”
“안 해...!”
“해.”
“반말... 흡!”
날 쏘아붙이려던 렌카가 숨을 삼켰다. 내가 그녀의 입술에 사탕을 대고 꾸욱 눌렀기 때문. 반항기 가득한 눈빛으로 입을 꾹 다물던 그녀는, 결국 저번처럼 반강제적으로 입을 벌리고 내가 넣어주는 사탕을 삼켰다.
꼭 이렇게 해야 말을 들어요. 언제쯤 스스로 ‘사탕 주세요...!’ 라며 입을 벌릴런지... 갈 길이 멀다. 혀를 끌끌 찬 나는 입 안에서 사탕을 굴리고 있는 렌카의 뺨을 살살 어루만졌다. 그에 경기를 일으킨 렌카가 사나운 눈으로 날 노려보았다.
“나쁜 새끼야...! 이상한 짓은 안 한다며...!”
“이게 이상한 짓인가요?”
“당연하지...! 너 같은 정신병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평범한 사람이라면 당연히 이상하게 생각할 거라고...!”
정신병자라니... 말이 너무 심하네. 자꾸 이러니까 내가 교육 강도를 높이려는 거 아니야.
“그래요? 그럼 하고 싶어졌다고 할게요.”
“미, 미친놈...!”
이젠 렌카의 욕이 고맙다는 감사인사처럼 들린다.
“시간은 비워놨죠?”
천연덕스럽게 화제를 돌리자, 입을 우물거리던 렌카가 마지못한 듯 대답했다.
“.... 비워놨어.”
“잘했어요.”
“넌 영화 예매했어?”
“예.”
“무슨 영환데...? 그때 본 것처럼 이상한 성인영화야...?”
“그런 거 아닙니다. 이번엔 무난한 걸로 예매했어요.”
“그래...? 못 미더운데...”
“의심 좀 하지 마요.”
“전적이 있으니까 안 할 수가 없잖아.”
“옷이나 갈아입고 나와요.”
“그럼 나가.”
알겠다고 대답한 나는 순순히 탈의실을 나왔고, 렌카가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오자 그녀에게 방긋 웃어주었다.
“뭘 웃고 난리야...?”
따박따박 기어오르는데, 오늘 저녁에도 그럴 수 있나 보자고. 헛웃음을 한 번 치는 것으로 렌카의 반항을 넘긴 나는 탈의실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었다.
**
“이거 무난한 영화 맞아...?”
그날 저녁, 도심의 영화관에서 예매한 영화 티켓과 벽면에 붙어있는 포스터를 확인해본 렌카의 물음이었다. 매점 번호표를 뽑고 호출을 기다리던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척 반문했다.
“왜요?”
“아니... 포스터가 너무... 로맨스 영화인데 왜 서로의 뺨을 때리는 포스터가 붙어있어...?”
“처음엔 사이가 안 좋았다가 서서히 마음을 여는 스토리일 수도 있잖아요.”
“그렇다고 하기엔 남녀 주인공 얼굴에 상처가 심한데...?”
“주먹다짐을 할 정도의 견원지간인가 보죠.”
“일반적인 일은 아니잖아.”
“그러니까 영화죠. 로맨스만 있는 게 아니라 코미디 장르까지 포함되어있으니까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봐요.”
“그런가...?”
미심쩍은 눈으로 포스터를 살펴본 그녀가 고개를 천천히 주억거렸다.
“뭐... 확실히 그럴 수도 있겠네.”
“그래요. 이 영화관의 일반 팝콘은 맛없다고 했죠? 그럼 캐러멜로 시킵니다?”
“어.”
“음료는요?”
“슈가 버블 티.”
“요새 단 걸 많이 먹는 느낌이네요.”
“너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래.”
“미안하네요.”
“전혀 미안하지 않은 거 다 알아. 가식 그만 떨어.”
“미안한데?”
“아니잖아.”
팝콘과 음료를 받고 옥신각신 떠들다 보니 곧 상영시간이 되었다. 사이좋게 상영관 안으로 들어간 나와 렌카는 미리 예매해둔 좌석에 앉았다. 안 그래도 텅텅 빈 상영관 중에서도 가장 구석자리였다.
“너는 꼭 이런 곳엘 앉아야 돼? 아무리 취향이라도 그렇지... 너무 음침해.”
내가 이런 자리를 선호하는 걸 기억해줬구나. 포상으로 고양이 꼬리가 달린 플러그를 사놔야겠다.
“싫으면 가운데로 가든가.”
“그럼 간다?”
“한 번 가보세요.”
“그런 식으로 협박할 거면서 왜 선심 쓰듯 말하는데?”
“오늘 왜 이렇게 삐딱해요?”
“네가 삐딱하게 만들잖아.”
“또 내 탓하는 거예요?”
“탓이 아니라 팩트를 말했을 뿐이야.”
새침하게 굴며 상영관 안을 둘러본 렌카가 고개를 갸웃했다.
“뭐야...? 이 영화 평가가 별론가?”
“왜요?”
“상영시간도 다 됐는데 관객들이 없잖아. 중앙에 조금 있는 사람들이 다야.”
“개봉한지 꽤 돼서 그런 거 아니에요?”
“포스터엔 2주 전에 개봉이라고 쓰여 있던데? 게다가 지금은 피크타임이잖아.”
“그러네요.”
“재미없으면 죽을 줄 알아.”
진심이 전혀 담겨있지 않은 경고. 그에 실소를 터뜨리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 나는 팔걸이 위에 올라간 렌카의 팔을 눈짓했다.
“팔이나 좀 치워봐요.”
“싫은데? 내가 먼저 선점했으니까 내 거야.”
“유치하네요.”
“팔걸이에 집착하는 너야말로 유치... 흐익!?”
내게 지지 않으려는 듯 말대꾸를 하던 렌카가 돌연 까무러치는 듯한 탄성을 내뱉었다. 렌카의 팔 위로 손을 뻗은 내가 손깍지를 껴왔기 때문. 대놓고 들어온 스킨십에 정신을 못 차리는 렌카를 바라보며, 나는 볼록하게 튀어나온 그녀의 엄지 마디마디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내 손길이 렌카의 손허리뼈에서부터 첫 마디를 지나 중간, 끝마디를 스쳐지나갈 때마다, 그녀가 자신의 몸을 움찔움찔 떨었다. 마치 정전기라도 온 것 같은 그녀의 모습에 픽 하는 웃음을 터뜨린 내가 태연스레 말했다.
“치우기 싫으면 이러고 있던가.”
“치, 치울게...!”
“아뇨. 부장 손이 부드러워서 그냥 이렇게 있으려고요.”
“야...! 이건...”
“시끄러워요.”
방금과는 전혀 다른 냉랭한 명령조. 이에 침을 꼴깍 삼킨 렌카의 입이 다물어졌다. 그녀의 반응에 만족스런 미소를 흘린 나는, 상영관의 조명이 꺼지자 배급사 로고가 나오고 있는 스크린을 턱짓했다.
“이제 조용히 하고 영화 봐요.”
“보긴 보는데... 손...”
“조용.”
“그...”
“조용히 하라니까?”
“.....”
계속해서 말을 끊으며 엄한 목소리로 렌카를 나무라자, 아랫입술을 잘근 깨문 그녀가 결국 스크린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런 내 행동이 싫었다면 발버둥을 쳐서라도 어떻게든 깍지 낀 손을 풀었을 텐데, 저항 아닌 저항만 조금 하다 마는 것을 보니 기분이 나쁘지 않나보다.
그렇게 나는 렌카와 손을 꼬옥 붙들고 영화를 감상했다. 그리고 그녀의 손은, 영화가 시작된 지 5분여가 지나자 땀으로 흥건해진 상태였다. 긴장을 무척 많이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스크린에서 새어나오는 빛이 렌카가 뭘 하고 있는지 드러내주고 있다. 이쪽을 계속해서 흘끔거리며 몸을 꼼지락대고 있는데, 영화가 눈에 전혀 들어오지 않는 것 같았다.
계속해서 영화를 보는 척 렌카의 손을 쓰다듬던 나는, 그녀의 코에서 기다란 바람이 새어나오자 고개를 돌리며 조용히 물었다.
“어디 불편해요?”
“다, 당연하지... 네가 이러니까 팝콘을 먹기 힘들잖아...”
“다리 사이에 통 끼워서 먹으면 되지.”
“그럼 자세도 불편해지는데...”
“알았어요.”
소녀소녀해진 렌카가 불편하다는데, 안 도와줄 수는 없지. 고개를 끄덕거린 나는 렌카의 손을 얌전히 풀어주었다.
“.....”
그러자 안도인지 아쉬움인지 모를 한숨을 기다랗게 내쉰 렌카가, 가져온 티슈로 손을 닦아내었다. 그리고는 좌석 등받이에 자신의 몸을 깊숙이 묻으며, 숨을 느릿하게 마셨다 내쉬길 반복했다.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안심하면 어떡하니. 한시름 덜었다는 듯 긴장을 풀고 있는 렌카를 한 차례 쓰윽 쳐다본 나는, 우리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팔걸이를 올렸다.
이후 의아스럽고 수상한, 그리고 불안한 눈빛으로 날 쏘아보는 렌카의 시선을 못 본 척하며, 엉덩이를 움직여 그녀의 곁에 딱 달라붙었다. 이어서 좌석 등받이와 딱 달라붙어있는 그녀의 어깨 위로 손을 쑤욱 뻗었다.
“으힉...!?”
어깨와 목 아랫부분을 살짝 스쳐지나가는 느낌이 이상하고 당황스러웠을까? 기괴한 감탄사를 터뜨린 렌카의 온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 틈을 탄 나는 렌카에게 어깨동무를 하고는, 그녀의 가다랗고 가녀린 목을 손가락으로 살며시 누르며 좌우로 밀고 당기기를 반복하기 시작했다.
“앗...! 흣...!”
렌카의 입에서부터 새어나오는 묘한 신음. 그제야 렌카를 돌아본 나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목을 풀어주었다.
“이러면 먹기 편하죠?”
“무, 뭐...?”
“팝콘요.”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히약...!”
피부층이 얇은 쇄골과 목 사이를 손가락 끝으로 살살 간지럽히자, 렌카가 정색을 하려다 말고 오만상을 다 쓰며 눈을 질끈 감았다.
“흡...!”
그러다 자신의 목소리가 꽤나 큰 것을 자각하고 입을 틀어막더니, 얼마 없는 관객들이 이쪽을 쳐다볼까 몸을 잔뜩 움츠리는 건 덤. 날것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렌카를 향해 따스하게 웃어준 나는, 계속해서 점점 뜨거워지는 그녀의 살결을 어루만져나갔다.
“흐아아...”
얼마 지나지 않아 진이 죄다 빠져버린 신음을 토해내는 렌카. 감기몸살에 걸린 사람마냥 온몸을 부르르 떠는데, 손길에 내성이 없어도 너무 없는 게 아닌가 싶다.
렌카는 이 생소한 스킨십에 적응을 하면, 내게 온갖 욕을 쏟아낼 것이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애석하게도, 난 여기까지만 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렌카가 이성을 되찾으려고 할 때쯤 다음 스텝으로 넘어갈 생각이었다. 영화의 내용 따윈 전혀 모르게끔 만들어줘야지.
아직은 더 깊게 들어가면 안 된다. 여기서 급발진을 하면 지금까지 쌓았던 공든 탑이 완전히는 아니지만 상당부분 무너지게 된다.
영화는 아직 초반부다. 시간은 굉장히 많았다. 그러니 인내심을 갖고 점진적으로 수위를 높여나가자. 그게 렌카의 성향에도 맞다.
강하게 풍겨오는 달콤한 블루베리 향을 맡으며, 나는 렌카의 상태를 면밀히 살피면서 그녀의 몸을 내 쪽으로 더욱 바짝 끌어당겼다. 그에 흐리멍덩해진 눈의 초점이 돌아온 렌카가 자신의 고운 미간을 찌푸렸다.
“야...! 너 지금 뭐하는 거야 이...”
이럴 때, 렌카가 반발심을 보이려고 할 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면 된다. 판단을 마친 나는 성을 내려는 렌카를 가만히 응시했다.
여태까지 렌카는 내가 자신을 정면으로 쳐다보는 것을 어려워함과 동시에 은근히 좋아했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써먹으면 딱 알맞았고, 그 예상은 그대로 적중했다.
“윽...!”
렌카의 표정이 곤란하게 바뀌면서, 입이 순간적으로 닫혔던 것이다. 그 타이밍에 맞춰, 나는 렌카의 쇄골 윗부분을 중지 끝으로 꾸우욱 눌렀다.
“햣...!”
그러자 렌카의 몸이 격하게 튕겼다. 팝콘 통이 크게 들썩이면서, 팝콘이 바닥에 후두둑 쏟아질 정도.
그녀의 반응에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보인 나는, 다시 스크린으로 눈을 돌리면서 렌카가 이 터치에 익숙해지길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