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43 - 노예 애무하기
“.... 오늘은 어디 가자고 안 하네...?”
퇴근시간, 렌카의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 창밖과 룸미러를 번갈아 쳐다보던 렌카의 물음에, 고개를 돌린 내가 반문했다.
“휴식 주려는 건데 왜요?”
“아, 아니... 제발 오늘처럼 조용히 있었으면 좋겠어서 하는 말이야.”
“자꾸 섭섭하게 말할래요?”
“네가 서운하든 말든 내가 알 바는 아니잖아.”
그에 반박하지 않고 묵묵히 운전을 하자, 렌카가 괜히 무안해졌는지 말을 이었다.
“근데 저번에 샀던 책은 다 읽었어?”
“뭐요? 황녀 출신 노예가 살아남는 법?”
“그래... 그거.”
“아직 다 안 읽었어요. 왜? 빨리 읽고 빌려줘요?”
“굳이 그럴 필요는 없어. 그냥 물어만 본 거니까.”
“그래요.”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
“예.”
“.....”
렌카가 무언가를 더 말하려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내 단답형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자신도 항상 그래왔기에 따질 수는 없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지금쯤 렌카의 머릿속엔 온갖 상상의 나래가 펼쳐지고 있을 것이다. 혹시 자신이 계속 툴툴대서 짜증이 난 걸까, 키스까지 했으니 이젠 질려버린 걸까, 뭐 이런 남녀관계에 관한 생각들이 마구 샘솟고 있겠지.
‘아니면 말고.’
속편하게 생각하기로 한 나는 렌카의 동네에 차가 진입하자, 인적이 뜸한 구석에 정차를 해놓았다. 자신의 집은 보이지도 않는 한참 먼 거리에서 차가 멈춰 선 것을 본 그녀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뭐야...? 여기서 내리라고?”
“아뇨.”
“그럼 왜 멈췄는데?”
“이야기나 좀 하다 가려고요. 부장 집엔 오래 정차를 못하니까 여기다 세웠어요.”
“이야기...?”
“예. 이야기도 하고, 다른 것도 좀 하고.”
“다, 다른 거...?”
렌카의 눈이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렸다. 목에서 꿀꺽 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은데 착각일까? 바짝 긴장하는 그녀에게 씨익 웃은 나는 조교의 첫 걸음을 내딛었다.
“내일 치마 입고 오세요.”
“무, 뭐...? 치마?”
“예, 치마요.”
“진짜 미쳤냐...?”
“보고 싶어요.”
“선 넘지 마...! 내가 왜 너한테 코디까지 통제받아야하는 건데?”
“싫은 거예요?”
“죽어도 싫어...!”
렌카가 저렇게 나오리라는 것을 예상한 나는, 안전벨트를 풀자마자 그녀가 있는 위치로 넘어갔다.
자동차가 커서 좋은 점은, 공간이 넓어 이동이 수월하다는 거다. 물론 운전석에서 조수석으로 가는 게 편하지는 않지만, 다른 차들보다는 상대적으로 쉬웠다. 더군다나 시트 자체의 크기도 크기인지라 넘어갔을 때 렌카가 기댄 등받이의 양옆을 짚을 수가 있어서 좋았다.
“야!! 뭐하는 거야!!”
버럭 소리를 지르는 렌카를 무시하며 그녀의 위에 자리한 나는, 능숙하게 시트 조절기에 손을 대고 시트를 내렸다. 그러자 렌카의 몸이 시트와 함께 느릿하게 뒤로 넘어갔다.
그 사이 나는 준비를 끝마친 채였다. 한쪽 무릎을 시트 끝자락에 얹어놓고, 렌카의 어깨 위에 팔을 짚어 상체만 내리면 그대로 그녀와 진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상태.
다소 불편하긴 하지만 뭐 어떠한가. 렌카와 오붓한 시간을 보낼 수 있으면 된 거지.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렌카를 그윽하게 내려다본 나는, 무릎을 살짝 올리며 그녀에게 코디를 강요했다.
“치마 입어요.”
“싫다고 했잖아...!”
스윽.
단호한 거절에 렌카의 종아리를 스쳐지나가면서 허벅지 아래쪽에 닿은 무릎. 그 감촉을 느낀 렌카의 동공이 커졌다.
“야...! 야...!!”
“치마.”
“싫어...! 싫다니까...!?”
“치마.”
이제는 가랑이에 닿을 듯 말 듯할 정도로 다리가 올라온 상황에, 렌카가 흠칫하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눈치챈 것이다. 자신이 거부를 하면 할수록 나와의 수위가 조금씩 더 진해진다는 것을.
더 이상 이대로 가다가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을까? 렌카가 세이프 워드를 말하려고 했다.
“규... 므믑!”
하지만 그녀의 행동을 예측한 내가 그대로 입술을 맞부딪치자, 치나미가 생각날 정도의 귀여운 탄성을 터뜨리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 사이 내 혀는 이미 렌카의 입술 안으로 들어간 상태였다. 저번과는 다르게 꽤나 쉽게 열리는 이빨 사이로 파고들어가는 혀 끝. 치약 특유의 강한 박하 향을 맛보며, 나는 일부러 긴 콧바람을 내쉬어 렌카의 피부를 간질이며 혀를 얽혀나가기 시작했다.
“우읍...!!”
눈을 질끈 감으며 혀를 받아들이면서도, 렌카는 내 머리카락을 있는 힘껏 잡아당기고 있었다. 세이프 액션에 대한 대화가 오갈 때 머리채를 잡으라고 했던 걸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당시 흐지부지되어 액션은 아직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나는 마음 놓고 렌카의 입을 능욕했다. 어차피 액션이 있다고 해도 들어주지 않을 거였지만 말이다.
그렇게 잠깐 렌카와의 진한 키스를 한 나는, 얼굴을 떼어내고 그녀의 상태를 보았다.
“하아... 하아...”
시뻘개진 얼굴, 그리고 거친 숨소리와 타액으로 윤기가 흐르는 입술. 굉장히 외설적인 모습이다. 색기가 풀풀 흐르는 것 같다. 렌카의 입술을 엄지로 한 차례 스윽 닦은 내가 말했다.
“치마 입어요.”
“아, 안 돼... 난... 아, 알았어...! 입을게! 입으면 되잖아...!!”
거부를 하는 순간 재차 키스를 하려고 하자, 다급하게 날 만류하며 원하는 바를 들어주는 렌카. 그에 만족스런 미소를 흘린 나는 렌카의 목에 얼굴을 파묻고, 숨을 크게 빨아들였다.
“흐읏...!!”
그러자 흥분상태에 접어든 렌카의 고개가 바짝 당겨지더니, 몸이 부르르 떨렸다. 솜털이 곤두선 듯한 렌카의 목에 입술을 가져다대어 한 차례 쪼옵 빨아들이는 것으로 스킨십을 마무리한 나는, 눈이 풀려버린 그녀의 뺨을 사근사근 어루만져주었다.
“짧은 걸로 입고 오세요.”
“.... 그건 너무 심하잖아... 애초에 집에 짧은 치마가 없는데...”
“있는 거 다 알아요.”
“다, 다니기 불편해...”
“어차피 제가 태워다주는데다 알바하는 동안에는 카운터에서 나갈 일이 없잖아요.”
“.....”
“그럼 결정된 겁니다.”
“쓰레기 같은 놈...”
“알아요.”
이를 드러내며 웃은 나는 시트를 다시 올려주고 운전석으로 향했다. 이후 옷매무새를 가다듬는 렌카의 허벅지에 손을 올려놓으려다가, 그녀가 손등을 찰싹! 소리가 나도록 때리자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내일 만지면 되지. 그리 생각한 나는 빨리 출발이나 하라는 렌카의 성화에 고개를 끄덕였다.
**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마치고 나오니, 애니쉐어 어플에서 달려라 이노쨩의 쪽지가 와있었다.
[MK 님, 뭐하세요?]
오늘도 소심한 복수를 할 생각이구나. 어디 한 번 들어나 보자.
[여자 생각요.]
[( ¯⌓¯)]
[뭐요.]
[아뇨. 재활용조차도 안 되는 쓰레기다운 생각이어서 어이가 없었을 뿐이에요. 정말 개자식이네요.]
[여자 생각하는 것도 욕을 얻어먹어야 됩니까?]
[MK 님은 분명히 변태새끼 같은 생각을 하고 계실 게 뻔하니까요.]
[그걸 어떻게 아는데요?]
[당신 같은 사람은 딱 보면 답이 나오죠.]
[편견이 심하시네요.]
[¯\_(⊙︿⊙)_/¯ 어쩌라고요.]
살짝 열 받는 이모티콘이다. 뭐라 해주고 싶지만 반응을 해버리면 렌카가 계속 저것만 쓰겠지? 지금은 그러려니 하고, 내일 현실에서 교육을 해주면 되지.
대신 이번엔 슬쩍 눈치를 줘야겠다. 어차피 렌카는 MK가 나임을 완벽하게 확정짓고 있는 수준까지 왔으니까... 이렇게 한 마디 해주면 안절부절 못하겠지.
[말투가 조금 밉상이네요? 제가 아는 사람이랑 조금 닮은 것 같은데...]
예상대로, 칼 같이 답장을 보내던 이노쨩의 쪽지가 오지 않았다. 의미심장한 쪽지에 심장이 벌렁거리는 모양이지? 예전에 성씨와 사는 곳을 캐려고 했던 것을 내가 연관지을까봐 노심초사하는 게 눈에 보이는 것 같다.
[아는 사람? 누군데요?]
약 1분여의 기다림 끝에 온 답장. 정체를 들킬까봐 우려스럽긴 하지만, 내 속마음을 들여다보고는 싶나보다. 여기서는 그냥 얼버무리자.
[알 거 없어요. 이노쨩 님이랑 대화하면서 낭비할 시간이 없으니까 쪽지는 그만하죠.]
[화났어요?]
[아뇨.]
[화났네요 ㅎㅎ]
[비웃는 거예요 지금?]
건방진 것... 업보가 너무 빨리 쌓이는 건 아닌가 모르겠다. 렌카가 답장을 보내기 전에, 나는 재빨리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자 신호음이 두 번도 채 지나지 않아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 여보세요...?
눈에 띄게 당황해하는 목소리다. 갑자기 렌카가 확 귀여워지는 느낌. 속으로 큭큭거린 내가 물었다.
“뭐하고 있어요?”
-나...? 밥 먹고 TV보려 했는데...?
스피커폰으로 해놓았나? 목소리가 조금 울리는 듯하다.
우웅-!
그런 생각을 하자마자 진동이 울리는 휴대폰. 뭔가 싶어 확인해보니, 이노쨩에게서 [쪼잔하네요.]라는 쪽지가 와있었다.
전화를 하는 중간에 재빨리 쪽지를 보내, 이노쨩과 자신이 동일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어필하고 있는 것이다. 나름 잘 해내고 있구나. 멀티태스킹 능력이 좋아. 연기력은 여전히 별로지만.
-왜 전화했어...?
이어지는 렌카의 국어책 읽기에, 새어나오려는 웃음을 참아낸 내가 대답했다.
“별 건 아니고요, 내일 약속 잘 지키라고 전화했습니다.”
-기억은 하고 있는데...
“그럼 됐고요.”
우웅-!
[왜 답장 안 해요?]
또 다시 온 쪽지. 이를 악 물고 나랑 통화하랴, 동시에 쪽지를 보내랴 고생이 많다.
이 이상으로 렌카와 대화를 이어나가면 웃음보가 터질 것 같았기에, 간신히 마음을 다스린 나는 그녀와 몇 마디 더 이야기를 나누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는 이노쨩에게 답장을 보낼까 하다가, 이내 그만두기로 했다.
렌카는 내가 그냥 화가 나서 쪽지를 씹었다고 생각하겠지. 승리했다는 기쁨에 취해선 콧대가 높아지는 건 아닌가 모르겠다. 어차피 내일이면 그대로 무너져 내릴 거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