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50 - 렌카의 낯부끄러운 망상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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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녀왔습니다...”
렌카의 힘없는 인사에, 거실에서 자수를 뜨고 있던 그녀의 어머니가 의아한 듯 물었다.
“목소리가 왜 그래? 무슨 일 있었니?”
일이라... 일적으로는 없었다. 하지만 사적으로는 있다. 그런데 이걸 부모님께 말씀드리기엔 너무 낯부끄러웠다.
“아뇨... 그냥 오늘따라 피곤하네요. 손님이 많았어서요...”
“그러니? 내일 출근할 수 있겠어?”
“당연히 할 수 있죠...”
“널 태워다주는 애가 후배라고 했나? 마츠다 켄... 맞지?”
어머니의 입에서 그놈의 이름이 나오자, 렌카의 눈썹이 미세하게 꿈틀했다.
“네, 마츠다 켄 맞아요. 근데 걔는 왜요...?”
“왜긴. 널 항상 태워주는데 고맙다는 인사라도 하려고 그러지. 저번에 샌드위치는 잘 먹었대? 맛있었으면 또 만들어줘야겠다.”
고맙다는 인사라니...! 그건 안 된다. 어머니가 자신에게 호의적인 걸 알면 괴롭힘의 강도가 심해질 지도 모른다. 엄밀히 말하면 괴롭히는 게 아니라 끈적한 일을 하는 것이지만, 어쨌든 어머니가 허락하신 거 아니냐며 더욱 자신을 만져댈 우려가 컸다.
“잘 먹었다고 하긴 했는데... 그런 녀석한테 인사까지 하실 필요는 없어요...”
“친한 후배한테 그런 녀석이 뭐니?”
“치, 친하긴 누가 친하다고 그래요...!”
“그럼 안 친한 사람이 매일 여기까지 와서 선배를 태워다준다고?”
“.... 아니 뭐... 조금 친하긴 한데... 아직 그렇게까지 가까운 사이는 아녜요... 직장이 같고 집이 가까우니까 겸사겸사 태워주는 것뿐이지...”
‘아직’이라...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이미 충분히 가까워진 사이인 듯하긴 한데... 마츠다도 옆에 없으니까 괜찮겠지.
“그렇다고 해도 호의는 맞잖니.”
“그건 그렇지만... 어쨌든 안 돼요. 걔도 부담스러워할 거예요.”
“그런가?”
“그럼요. 그냥 샌드위치만 던져주면 좋아할 녀석이니까 아침에 하나만 만들어주시면 괜찮을 것 같아요.”
“던져주다니.... 말 예쁘게 하렴.”
렌카의 몸이 움찔했다. 방금 어머니의 훈수가 묘하게 마츠다를 닮았다고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마츠다의 마수가 여기까지 뻗어나갔구나. 그의 재수없고 잘생긴 면상이 눈앞에 아른거리기 시직한 렌카가 고개를 마구 털어냈다. 그리고는 뜬금없는 자신의 몸짓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 어머니에게 어색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죄송해요... 저 들어갈게요.”
“응.”
그렇게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렌카가 가장 먼저 한 것은, 샤워가 아니라 애니쉐어 어플을 키는 것이었다. 인터넷 상으로 마츠다에게 스트레스를 푸는 건 삶의 낙 중 하나가 되었다.
그가 이노쨩의 정체를 모르니 보복 걱정 없이 마음대로 욕을 하는 게 굉장히 시원했고,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MK 자체가 이노쨩이 뭘 하든 잘 받아주는 편이라 재미있었다.
[MK 님.]
쪽지를 보낸지 몇 분이 지났음에도, 답장이 오지 않는다. 알람은 분명히 갔을 텐데, 혹시 샤워를 하고 있나? 말하는 것만 보면 그냥 기분대로 사는 녀석인데 쓸데없이 청결하기는... 자신을 기다리게 한 대가는 욕으로 갚아주리라.
그러한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
[왜요 또.]
약간 신물이 나는 듯한 느낌을 풍기는 MK의 답장이 도착했다. 설마 질린 건가? 자신이 하도 싸가지 없이 대해서? 아니,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이 정도로 삐친다면 사람 자체가 쫌팽이지 아니하겠는가.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네요.]
[이노쨩 님.]
[네.]
[자꾸 저한테 까부시는데, 실제로 만나고 싶어지네요.]
[만나서 뭐하시려고요? 싸우게요?]
[아뇨. 조교요. 수갑으로 팔다리를 묶어놓고, 잘못했다고 울고불고 빌 때까지 채찍질을 하고 싶어져요.]
저 적나라한 쪽지를 본 순간, 렌카의 몸이 후끈하게 달아올랐다. 상상해버리고 만 것이다. 마츠다가 자신을 호텔로 데려가 그러한 일을 하는 것을.
마츠다가 정색을 하며 채찍질을 하는 모습을 상상하니, 몸이 따가워지는 기분이다. 설마 오늘 외박을 물어보고 늦게까지 놀고 싶다고 한 이유도 자신에게 저 짓을 하기 위함인가?
‘아냐...’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아무리 마츠다가 변태라지만 실제로 그러겠는가? 그러나 지금까지 자신에게 했던 행동을 보아, 왠지 할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외박은 절대 안 된다. 음흉한 목적이 대놓고 드러나는데, 다 알면서도 외박을 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어디 백날 찍어봐라. 자신이 넘어가나.
[역시 쓰레기답네요.]
[시끄럽고, 바쁘니까 이 영양가 없는 대화는 이쯤하죠.]
[왜 바쁜데요? 자위행위라도 하시려고요?]
[예.]
진짠가? 진짜로 그것을 하려는 것인가? 눈이 커다래진 렌카가 다급히 휴대폰을 두드렸다.
[정말인가요?]
[사진이라도 보내줘요?]
MK의 쪽지를 보는 순간, 렌카의 머릿속에 호기심이 가득 채워졌다. 마츠다의 남성기...? 궁금해진다. 어떻게 생겼을까? 아주 흉물스럽기 짝이 없을 테지?
마츠다가 성기와 관련된 얘기를 하니, 문득 어제 있었던 일이 떠오른다. 자신의 가슴에 입을 대고 후 불어넣은 것도 모자라 아래까지 손을 댄 그.
직접 그 부위를 만진 건 아니지만 팬티 위로 스멀스멀 기어올라온 손가락이 무척이나 예민한 부위를 쓰다듬고, 만지작거렸었다. 그때 자신은 생전 처음 느껴보는 엄청난 쾌감에, 천박한 사람마냥 물을 뿜었다.
얼마나 창피했던지... 기억에서 지워버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생각나니 얼굴이 화끈해진다. 몸도 찌릿찌릿한 것 같다. 불쾌하지 않고 좋은 쪽으로 말이다.
헌데 정말 웃기게도, 마츠다는 허락조차 받지 않고 자신의 몸에 손을 대었는데 싫은 감정이 들지 않았다. 마츠다를 향한 자신의 마음이 그렇게나 큰가?
한두 달 전까지만 해도 그가 정말정말 싫었는데... 그런 마음이 송두리째 사라져있는 게 어이가 없다. 그냥 자연스럽게 없어진 것 같다. 눈치채지도 못하는 사이에. 그게 가장 신기했다.
“하아... 앗...!?”
저도 모르게 후끈한 숨결을 토해낸 렌카가 화들짝 놀랐다. 지금... 마츠다의 손길과 그의 얼굴을 상상하면서 흥분한 건가? 아니, 절대 아니다. 그저 쪽팔려서 이러는 것뿐이다.
[으... 보나마나 혐오스러울 테니까 신고할게요.]
[그럼 먼저 자위 얘길 꺼내지를 말든가. 이제 야동 봐야하니까 이만 줄일게요.]
[쓰레기.]
욕을 하였음에도 오지 않는 답장. 보통 이러면 발끈해선 뭐라고 하는데, 그냥 무시로 대화 자체를 끊는 것으로 보아 정말 자위행위를 하려는 건가보다.
그런데 갑자기 왜? 무슨 이유로? 혹시 오늘 자신을 만지면서 흥분하기라도 했나...? 그렇다면 자위의 반찬은 렌카 자신인 것일까...?
‘아, 아니겠지...?’
꿀꺽.
렌카의 목젖이 크게 꿀렁거렸다. 기분이 굉장히 나쁘리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괜찮은 것 같다. 그래서 황당하다. 본래라면 치를 떨어야 할 일인데 말이다.
‘전화... 해볼까...?’
전화하면 받기는 하는 건지 모르겠다. 그리 생각한 렌카가 수화기 모양이 그러진 아이콘에 손을 가져갔다.
“.....”
자신의 호흡이 거칠어져있다는 것도 모른 채로 굉장한 심적 고민을 하던 그녀는,
우웅-!
휴대폰 화면이 확 바뀌면서, 눈앞에 [쓰레기 마츠다]라고 저장해놓은 이름이 뜨자 깜짝 놀라고야 말았다.
“흐앗...!”
자위를 하겠다고 했으면서 갑작스럽게 전화를 건 그의 저의가 궁금하다. 혹시 자신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막... 자신의 물건을 만지려는 심산인 걸까? 그러면 어떻게 반응을 해줘야하지? 그냥 모른 척하는 게 맞나? 아니면 푸짐하게 욕을 쏟아낼까?
짧은 시간에 온갖 고민을 해본 그녀가 조심스럽게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 여보세요...?”
-뭐해요.
그 짓거리를 하고 있다면 음정에 힘이 들어가거나 빠져있을 텐데... 목소리가 평온하다. 마침 질문 또한 되묻기 좋았기에, 목소리를 가다듬은 렌카가 대답했다.
“그냥 누워있는데... 넌 뭐해?”
-드디어 대화를 이어가네요.
“그게 무슨 소리야?”
-매번 제가 뭘 하냐고 물으면 단답만 했잖아요. 이렇게 되묻는 건 처음 아닌가?
그랬던가? 마츠다의 말마따나 매번 뾰로통하게 답했던 것만 기억나니 그럴지도.
“뭐래... 뭐하냐고 묻잖아.”
-집에서 TV 보는데.
귀을 기울여보니 확실히 TV 소리가 나긴 난다. 하하호호 웃는 소리가 들리는데, 코미디 프로라도 보고 있는 듯하다.
“그래...?”
-예.
“무슨 프로그램?”
-그건 저도 잘 모르겠네요. 채널 돌리고 있다가 부장한테 전화한 거라서.
“채널 편성하는 창에 이름 써져있잖아.”
-이름이 중요한가? 캬베쿠리라고 하네요.
캬베쿠리라면 개그맨들과 게스트들이 나와서 이런저런 코너를 하는 건전한 프로그램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언어적으로 건전하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야한 건 아니다. 그렇다면 마츠다는 이노쨩을 놀리려고 거짓말을 한 셈이 되는 건가? 괘씸한 놈이구나.
“뭐 어쩌라고...”
-방금 어쩌라고라고 한 거예요?
“.... 했는데.”
-지가 물어봐놓고선.
“무, 뭐...? 너 뭐라고 했어...? 지가...?”
-예.
“사람이 왜 그렇게 예의가 없어...!”
-부장보단 바를 겁니다. 어쨌든 내일 뭘 해야 하는지 알죠?
“뭐가...?”
-또 제 말을 잊어버린 거예요?
마츠다가 뭐랬더라? 아침에 오늘 입었던 것보다 기장이 짧은 치마를 입으라고 했었다. 그걸 얘기하는 건가보다.
“너도 알다시피, 내게 있어 네 말은 그렇게까지 중요한 게 아니라서...”
-그래서, 잊어버렸다고?
“그래도 상관없잖아?”
-벌 받고 싶어서 안달이 난 것처럼 보이네요.
“버, 벌이라니...? 내가 무슨 네 딸인 줄 알아...? 잘못하면 혼내게...?”
말을 실수했다. 이러면 자신이 잘못한 건 인정하고 있다는 소리로 들릴 터잖은가. 게다가 딸이라니... 비유를 해도 참 이상하게 해버렸다.
-음... 많이 혼내야겠네요.
보라. 벌써부터 마츠다의 목소리가 신이 난 듯 바뀌었잖은가. 내일 보자마자 온갖 싫은 소리를 할 것이 눈에 훤하다.
“뭐래...”
-외박은 생각해보고 있어요?
“선 넘지 마. 절대 안 할 거니까.”
-그건 내일 다시 물어보죠.
“마, 마음대로 해. 네가 뭐라고 하든...”
-부장은 넘어가지 않을 거라고요?
“.....”
-레퍼토리 좀 바꿔봐요. 다 예상이 가잖아.
이렇게 진한 데다 야릇하기까지 한 대화는 남자랑 처음 해보는데 뭐 어쩌라고. 라는 말을 삼킨 렌카가 작게 헛기침을 했다.
“시끄럽고, 용건 다 끝냈으면 끊을게.”
-아직 용건 남았는데.
“.... 뭔데 또?”
-지금 잠옷 입고 있어요?
“아니...? 난 딱히 잠옷 같은 거 안 입어.”
-그럼 속옷차림으로 자요?
“무, 뭐라는 거야...! 편한 티셔츠랑 바지를 입는 거지...! 끊어...!”
버럭 성을 낸 렌카가 잽싸게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는 화가 잔뜩 담긴 한숨을 내쉬었다.
왜 마츠다는 저렇게 가벼운 말만 지껄여대는지 모르겠다. 매사에 진중하다면 한층 더 멋있었을 텐데. 그래도 그러면 재미가 없긴 할 테니까... 현상 유지도 나쁘지는 않으리라 본다.
‘외박...’
외박을 한다고 치면, 다시 그 감옥 같은 러브호텔에 가게 되는 것인가? 마츠다가 자신을 케이지 안에 넣어두었던 그곳으로? 상상만 해도 끔찍... 하지는 않나?
처음 그걸 당했을 땐 소름이 끼칠 정도로 싫었는데, 지금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그때보다 마츠다와의 사이가 무척 많이 가까워져서 이렇게 느껴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코스프레, 가두기, 목줄... 뭐 이런 것 없이 그냥 건전하게 같이 TV만 보는 정도라면 괜찮을 듯도 하다. 마츠다는 그런 건전한 일을 할 생각 따윈 전혀 없는 게 문제긴 하지만.
천장을 향해 팔을 뻗은 렌카가 다섯 손가락을 쫙 폈다. 눈을 게슴츠레 뜬 채 손가락 사이로 보이는 밝은 전등을 주시하며 의미없는 시간 때우기를 하던 그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샤워실로 향하려고 했다.
그러다 문 옆에 자리한 옷장이 보이자 발걸음을 멈추었다.
‘내일... 뭐 입지...?’
마츠다가 좋... 아니, 싫어하는 쪽으로 선택을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