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51 - 노예랑 호텔 가기
“뭐하는 거지 지금?”
다음날. 차에 탄 렌카를 훑어본 내 말에, 그녀가 어깨를 으쓱였다.
“뭐.”
펑퍼짐한 회색 조커팬츠에 같은 색의 후줄근한 후드를 입은 렌카는, 의기양양한 얼굴로 날 쳐다보는 중이었다. 저 모습을 보아하니 치마를 입으라는 내 말을 일부러 무시한 것임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이래서 노예한테는 잘해주면 안 돼. 매번 사정을 봐주니까 주인의 명령을 호구로 알잖아?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콧바람을 훅 내뱉은 내가 말했다.
“갈아입고 오세요.”
“왜.”
“분명히 치마 입고 오라고 말했을 텐데요?”
“내가 네 말을 들어야 할 이유는 없잖아.”
“그래서, 이대로 가겠다고?”
“그럴 거야.”
팔짱을 낀 채 도도하게 정면을 주시하던 렌카가, 돌연 자신이 갖고 온 쇼핑백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내기 시작했다.
“뭘 꺼내고 있는데 또.”
“샌드위치. 내가 먹을 거야.”
넘보지 말라는 듯 단호한 대답을 하는 그녀를 흘깃거린 나는 웃음을 감출 수 없었다. 그녀의 쇼핑백 안에 옷가지들이 들어있었기 때문이었다. 옷을 입은 상태로 내게 만져지면 곤란하니까, 갈아입을 것들을 챙겨 온 것 같았다.
치마가 있는지 없는지는 자세히 보지 않아 모르겠으나, 분명히 있을 것이다. 내 신경을 긁으면서 자신을 난폭하게 만져주기를 바란다면 원하는 대로 해드려야지. 렌카의 집이 있는 고풍스런 동네에서 빠져나온 나는 전방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한 입 줘요.”
“싫어.”
“나 주려고 갖고 온 거잖아요.”
“아닌데.”
“내놔요.”
고개는 똑바로 두고 입만을 벌리자, 무어라고 투덜거린 렌카가 포장지를 꼼꼼하게 벗겨내더니 마지못한 척 샌드위치를 내밀었다.
그 샌드위치는 부스러기가 잘 떨어지지 않게끔, 그리고 쉽게 먹을 수 있게끔 포장되어있었다. 이걸 직접 만들었을까? 아니면 렌카의 어머니가 만들었을까?
계란 샐러드 냄새를 풀풀 풍기는 그것을 한입 앙 베어 문 나는,
“흐아앗...! 아 왜 손가락까지 쳐먹으려고 하는데!”
본의 아니게 내 타액이 묻게 되어버린 자신의 손가락을 바라보며 기겁을 하는 그녀에게 히죽거렸다.
“부장이 갖다 댔잖아요.”
“네가 입을 너무 크게 벌려서 삼킨 거야...! 먹성은 좋아가지고...!”
“근데 방금 뭐라 했어요? 쳐먹으려고?”
“.....”
“말 예쁘게 다시.”
“쳐먹은 거 맞잖아...!”
“다시.”
“.... 먹은 거 맞잖아...”
“왜 꼭 두세 번 말하게 만들어요?”
훈육하는 기색이 다분한 목소리. 그에 자신이 문책이라도 당한다고 생각했는지, 욱한 렌카가 반발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내가 그녀의 허벅지 위에 손을 얹고, 마치 마사지를 하듯 느릿하게 주무르자 하려던 말도 못하고 흐끕! 하며 숨을 삼켰다.
“응? 왜 한 번씩은 꼭 대드냐고요.”
나긋나긋한 투로 말하고는 있지만, 렌카를 쳐다보지는 않는다. 그저 무관심한 듯 운전에 집중하는 척하며, 그녀가 간지러움과 뜨거움을 느끼게끔 바지 위로 손을 천천히 놀리기만 한다.
“내, 내가 언제 대들었다고...!”
갑작스레 끈적하게 바뀐 내 분위기에 당황하는 렌카. 자신의 비부와 점점 가까워지는 손을 그녀의 목에서, 침이 꼴깍 삼켜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스윽.
안쪽 허벅지 사이로 파고들어간 손을 우뚝 멈춰세운 나는, 정색을 하고 있던 얼굴을 조금 펴며 렌카를 불렀다.
“야.”
낮게 깔리는 억양. 렌카가 좋아하는 톤이었다.
“읏... 바, 반말하지 마...”
예상대로, 렌카의 뺨에 금세 홍조가 돌았다. 싸가지 없이 자신을 부른 건 마음에 들지 않지만, 내 목소리 때문에 화를 내기가 애매해진 모양이었다.
자신의 허벅지를 만지고 있는 건 이젠 신경 쓰지 않게 된 건가? 아니, 의식은 하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아주 예민하게.
내 손길에 부담이 없어진 그녀를 보니 왠지 뿌듯하다. 몸을 자주 만진 노예가 버릇이 든 것 같은 느낌이야.
“야.”
방금과 같은 억양으로 재차 렌카를 부르자, 그너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좋아하고 있는 것이다. 귓가에 파고드는 내 목소리를.
“예, 예의 지켜...! 난 선배야...!”
우리 렌카는 어떻게 항상 저런 꼴리는 대사를 하는 걸까. 예전에 했던 것들도 그렇고, 죄다 NTR, 조교물에서나 나오는 말이다. 그녀가 드문드문 보는 야한 만화가 대부분 그런 장르인 건가 싶다.
“싫은데.”
“넌 검도인이잖아...! 예의를...”
“지금은 죽도 안 잡았는데.”
“죽도랑은 관계없어...! 검도인은 도복을 받는 순간부터 상호존중하는 게 덕목이야...! 감독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이 모범을 보여줬으니까 너도 따라야지...!”
“너는 나한테 안 보여줬잖아. 맨날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었지.”
“너, 너...? 방금 나한테 너라고 한 거야...!?”
“그럼 이노오라고 부를까?”
“마, 마츠다! 예의 지키라고 했어...!”
“아니면 이름으로 불러도 되나?”
“미친놈아!!”
버럭 소리를 지르는 렌카. 놀리는 맛이 있어도 너무 있어서 계속하고 싶은 충동이 인다. 하지만 참자. 지금 렌카와 통통 튀는 꽁냥거림을 즐기기에는 장소가 별로 좋지 않다.
간단하게 고개를 끄덕인 나는 렌카의 허벅지에서 손을 떼어냈다.
“알았어요.”
다시 자연스레 튀어나온 존대. 이에 헛웃음을 친 렌카가, 내가 손을 대었던 자신의 허벅지를 만지작거렸다. 본능적인 행동 같았다. 약간 아쉬워하는 기색이 담겨있는.
어차피 카페 안에서도 많이많이 만져줄 텐데, 너무 서운해하지 마라. 라는 말을 삼킨 나는 씩씩대며 날 노려보는 그녀를 무시하며 차를 몰았다.
**
“.... 너 먼저 옷 갈아입어.”
쇼핑백을 구석에 내려놓은 렌카의 말. 고개를 갸웃한 내가 물었다.
“왜요? 항상 부장이 먼저 갈아입었잖아요.”
“.....”
“혹시 제가 또 만질까봐 그래요?”
“자, 잘 아네...”
“그럼 누가 먼저 갈아입든 상관없지 않나? 어차피 부장이 탈의실에 들어간다는 건 변함없잖아요?”
“닥쳐...! 사실 편의점에 다녀오려고 했을 뿐이야...”
노골적으로 만지겠다는 뜻을 전하였음에도 반발이 그리 거세지 않다. 기대하고 있는 표정은 아니지만 거부감 또한 별로 없다. 훌륭하게 익었다.
“편의점은 왜?”
“네가 알 바 아니잖아...”
“또 이러네?”
무언가를 할 듯 의미심장한 말을 하며 렌카에게로 성큼 다가가자, 주춤하며 물려나려던 그녀가 눈을 부릅떴다.
“뭐...! 뭐 어쩔 건데 네가...!”
“잘했다고요. 부장이 그런 식으로 하는 거 좋아해요.”
렌카의 뺨에 홍조가 감돌았다. 내 말이 마냥 듣기 좋았던 모양이다.
“시끄러...! 아무튼 다녀올게...”
“그래요. 혹시 가는 김에 뭐 하나만 사다줄 수 있어요?”
“말해. 사올 테니까.”
“콘돔 하나만 사오세요. 초박형으로.”
그 말에 렌카의 사납던 얼굴이 순식간에 벙 쪘다.
“어, 어...? 뭐라고...? 콘돔...?”
“예.”
“코, 콘돔은 뭐하려고...?”
“그냥 갑자기 하나 갖고 싶어져서요.”
“말이 되나... 그게...?”
“안 될 건 뭐 있어요? 어쨌든 사와요. 알았죠?”
부드러운 말로 렌카를 달랜 나는, 그녀의 허리를 살살 토닥이며 방긋 웃어보였다. 그러자 퍼뜩 정신을 차린 그녀가 단칼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시, 싫어...!”
“왜요?”
“내가 왜 네 콘돔을 사야 하는데...!? 그런 건 네가 개인적으로 사...!”
“같이 쓸 건데 누가 사면 뭐 어때서?”
“가, 같이...? 아...”
짤막한 탄성을 터뜨린 렌카의 신형이 일순 비틀거렸다. 느닷없이 훅 들어온 말에 어질어질했나보다.
렌카는 얼핏 보면 할 말 못할 말 다 하는 여장부처럼 보이지만, 속은 무척 여리다.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소녀소녀한 감성을 가지고 있다. 그런 그녀에게 콘돔 이야기를 꺼내니 저런 반응이 튀어나오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기가 완전히 막혀버린 듯 어이없어하는 렌카의 등을 부드럽게 토닥거린 내가 말했다.
“농담입니다. 사오지 마세요.”
“.... 지, 진짜 농담 맞아...?”
당연히 농담이다. 렌카와의 관계 때 콘돔을 쓸 생각 따윈 전혀 없으니까.
“예.”
간결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안도감이 담겨있는 한숨을 내쉰 렌카가 화를 냈다.
“너는 농담을 왜 그딴 식으로 해...!!”
“미안해요. 많이 화났어?”
“화나고 자시고, 친하지도 않은 이성한테 그런 얘길 하면 엄청 실례잖아...!”
“우리가 안 친했어요?”
“.... 무, 물론 예전보다 친해지기는 했지만... 그렇게까지 가까운 건 아니지...!”
웃기지도 않은 렌카의 핑계를 들은 나는 콧방귀를 꼈다. 그리고는 입술을 삐쭉 내밀고 있는 렌카가 반응할 틈도 없이, 그녀의 허리를 팔로 확 휘감고 내 품으로 당겨왔다.
“힉...!”
여느 때처럼 숨을 삼키며 온몸이 굳어버리는 그녀. 그녀과 입술이 맞닿을 정도로 얼굴을 가까이 가져간 내가 진지한 투로 물었다,
“그렇게까지 가깝지 않은 사이인데 이런 짓도 해요?”
“.....”
“빼지도 않네?”
“빼, 빼고 싶은데 힘으론 너한테 안 되니까...”
“포기했던 거였어요?”
“그냥... 뭐...”
일부러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로 대답을 피하고 있다. 힘으론 내게 안 된다는 말은 마음에도 없는 얘기였다는 뜻.
여전히 솔직하지 못하다. 그래서 더 앙칼지게 느껴진다. 표정을 더욱 굳힌 나는, 우물쭈물하고 있는 렌카의 귓가에 입술을 가져갔다. 이후 내 숨결을 느낀 그녀의 몸이 움츠러드는 사이 본론을 꺼냈다.
“오늘 혹시 밤 늦게 들어갈 수 있어요?”
“....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