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70 - 예쁘니까 부드러운 걸까? 부드러우니까 예쁜 걸까?
“잘 다녀와.”
이른 아침, 자신의 집 앞에 내린 미유키의 말. 그녀의 얼굴은 퀭한 나와는 달리 생기가 넘치고 있었다.
어제 나보다 더한 오르가즘을 느끼면서 시도 때도 없이 가버렸던 사람치고는 너무 쌩쌩하다. 마치 내 정기를 다 흡수해버린 느낌. 스포츠 선수나 남자 연예인들이 신혼여행을 다녀온 사진을 보면 신부와는 다르게 죄다 얼굴이 죽어있는데, 왜 그런지 알 것만 같다.
“그래.”
힘없이 고개를 주억거린 나는, 사이드 미러를 통해 미유키가 손을 흔드는 모습을 바라보며 악셀을 밟았다. 오늘 새벽에 굉장히 만족스러워했는데, 오늘 또 하자고 하려나? 거절할 의사는 전혀 없지만, 복상사라도 당하는 건 아닌가 모르겠다.
그래도 미유키가 좋아해서 다행이었다. 보람차기도 하고.
그렇게 렌카의 집 앞으로 간 나는, 블랙진과 두터운 검은색 후드, 그리고 두꺼운 패딩을 입고 있는 그녀를 발견하고 코웃음을 쳤다. 방어력이 뛰어난 옷을 입고 내 화를 돋울 생각인가본데... 아주 같잖은 반항이다.
덜컥.
조수석 문을 열고 차에 올라타는 렌카. 정색을 하고 있는 나를 만족스레 쳐다본 그녀가 물었다.
“왜 눈 밑이 까매? 잠 못 잤냐?”
“예.”
“불면증이라도 생긴 거야?”
“그건 아니고요.”
“안타깝네.”
“뭐라고요?”
“아냐.”
왜 계속 매를 자처하니. 그렇게 원하는데 안 해주면 그건 그것대로 도리가 아니지. 스팽킹에 적응도 시켜줄 겸 슬슬 시작해줘야겠다.
차를 출발시킨 나는 렌카의 다리에 손을 올려놓고 그녀의 허벅지 전반을 살살 쓰다듬었다. 이후 그녀가 불편하다는 듯 헛기침을 하는 타이밍을 틈타, 손을 살짝 올렸다가 다소 강하게 스냅을 줬다.
찰싹-!
차 안을 울리는 찰진 소리. 그와 동시에 렌카의 온몸이 크게 들썩였다.
“히약!?”
본능적으로 맞은 부위에 손을 가져간 그녀가 날 죽일 듯 노려보더니 버럭 소리쳤다.
“야! 너 돌았냐!?”
“그니까 왜 까불어.”
“아이 씨... 아프잖아...!!”
“아이 씨?”
“.... 갑자기 때리니까 험한 말이 나올 수밖에 없잖아!”
“엄살이 너무 심한 거 아니에요?”
“아픈 걸 어쩌라고! 죽어!”
“진짜 아팠어요?”
“.... 어.”
대답을 망설인데다 눈을 한곳에 두지 못한 채 이리저리 굴리는 표정을 보아하니, 그렇게까지 아픈 건 아니고 놀란 게 더 큰 것 같다. 렌카의 손을 옆으로 휙 밀어버리고 때린 부위를 만지작거린 내가 말했다.
“그러니까 왜 까불고 그래.”
“내가 언제 까불었다고...”
“불면증 없다니까 안타깝다고 한 게 안 까분 거예요? 누가 봐도 조롱이었는데?”
“조, 조롱이 아니라... 아 어쨌든 가기나 해...”
“가고 있잖아요.”
“입 다물고 가라는 뜻이었어.”
“또 까분다.”
“.....”
렌카의 입이 앙다물어졌다. 대들었다가 본전도 못 찾을 거면서 자꾸 저러는 모습이 재미있다고 생각한 나는, 카페에 도착할 때까지 틈 날 때마다 렌카의 다리를 만져댔다.
“아 좀...! 그만 만지라고...!”
“가만히 있어요.”
“하... 변태 새끼...”
계속해서 튕겨보지만 쥐뿔도 먹히지 않자, 포기한 채로 축 늘어지는 렌카의 반응은 덤. 얌전히 손길을 받아들이며 얼굴을 붉히고 있는 그녀와 함께, 그렇게 나는 카페에 도착했다.
**
렌카는 오픈 준비를 하면서 종종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톡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만약 상대가 남자라면 대가를 치르게 해주어야겠다. 그러한 다짐을 하며 렌카의 뒤로 다가간 내가 물었다.
“일하다 말고 뭐해요?”
그러자 인기척을 느낀 렌카가 흠칫하더니 고개를 돌렸다.
“.... 신경 꺼.”
“뭐냐니까?”
“아 뭘 뭐야...! 톡하는 거지...”
“누구랑? 남자에요?”
“그건 알아서 뭐하게? 그리고 나는 남자랑 톡하면 안 되냐?”
“안 되지.”
“왜?”
“내 소유물이니까.”
“또 그 소리하네... 이젠 안 통해.”
“내성이 생겼나보네요?”
“닥... 핫...!”
닥치라고 말을 하려던 렌카의 온몸이, 마치 잠에 들기 직전에 뜬금없이 근육이 경련하듯 크게 꿈틀했다. 내가 그녀의 도톰한 둔부 사이로 손을 집어넣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가랑이 아래쪽에 닿아 앞뒤로 사근사근 움직이기 시작하는 손길을 느낀 그녀는, 쾌락이라도 찾아온 듯 다리를 오므리며 아랫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제발 좀...! 여기서는 만지지 마...!”
‘여기서는’이라... 다른 곳에서는 마음껏 만져도 된다는 소리로 들린다. 렌카의 뒤에 바짝 붙어 새하얗고 기다란 목에 콧바람을 불어넣자, 숨을 헉 삼킨 그녀가 다급히 나와 거리를 벌렸다.
카운터에 양손을 짚고 전력질주를 한 사람마냥 거친 숨을 몰아쉬는 그녀. 벌써부터 흥분하기 시작한 것 같은 그녀를 향해, 내가 재차 물었다.
“누구랑 톡하냐고.”
“.... 미우라랑...”
“미우라? 왜?”
“오늘... 온다길래 다음에 오라고 했는데...”
테츠야가 카페의 위치를 알게 된 건 분명히 어젯밤이었을 텐데... 행동력이 참 대단하다. 원래 그런 놈도 아닌 주제에. 오늘도 놈을 향한 혐오감을 가득 채운 나는 그러려니 했다.
“그래요?”
“어... 아, 근데 미우라는 너랑 내가 알바하는 거 몰라? 어제 전화했었는데 모르는 눈치여서...”
“딱히 말하진 않았는데.”
“왜?”
“뭘 왜에요? 그걸 굳이 말해야하나?”
“아니 뭐... 그건 아니지만...”
“어쨌든 남자랑 전화까지 했다는 소리네요?”
“했어. 그게 왜...? 하면 안 돼? 날 억압하려고 들지 마.”
사춘기 소녀 같은 렌카의 말투에 피식한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억압하려고 들진 않습니다. 다만 후환은 생각하면서 처신하는 게 좋을 거예요.”
“혀, 협박하지 마...! 그게 억압이라는 거야...!”
“용서해줄까요?”
“내 자유의지로 행동한 건데 용서고 자시고 할 게 있어...!? 이 뻔뻔한 새끼야...?”
“노예한테 자유의지가 있어야하나?”
“하... 너랑 백날 말해봤자 소용없는 거 아니까, 여기까지만 하자.”
어제 봉사도 열심히 해줬으니까, 지금은 풀어준다. 다만 나와의 비밀스런 보금자리를 테츠야 같은 혐오스런 놈에게 알려준 건 보상을 받아야겠다.
최소한 펠라는 받아야겠다. 그렇지 않으면 수지타산이 맞지 않을 것 같아.
“무, 뭘 그런 눈으로 쳐다봐...?”
음흉한 눈빛을 읽어낸 렌카가 반걸음 물러나는 모습을 보며, 나는 입꼬리를 쓰윽 올렸다.
“아닙니다.”
“그... 야.”
“왜.”
“요새 검도 연습은 좀 해...?”
“그냥 심심할 때 틈틈이?”
“그래...? 아예 안 하는 건 아니네? 다음에 한 번 봐줄게.”
“갑자기요?”
“뭔 갑자기야... 다음 대회도 있는데 연습해야지... 내일이나 모레 죽도 갖고 와. 오픈 전에 잠깐 테스트할 테니까.”
“뭐래... 여기까지 죽도를 갖고 올 필요는 없잖아요. 그냥 스승님한테 알려달라고 할게요.”
“안 돼. 치나미가 사람을 가르치는 실력은 좋긴 하고, 너와 같은 상단세를 사용하긴 하지만... 너랑 단둘이 있으면 이상한 짓만 할 것 같아...”
틀린 말은 아니라서 반박을 못하겠다. 치나미는 보면 볼수록 만지고 싶은 마음이 드는, 마성의 매력을 가진 사람이긴 하지.
“부장한테 했던 것처럼?”
“아이 씨...! 이상한 소리하지 말고 갖고 오라면 갖고 와...!”
“부장이 나한테 지시를 내릴 입장인가요?”
“그럼 당연하지. 난 부장이고 넌 부원인데...”
“그렇게 말하니까 할 말이 없네요. 그러면 차라리 부장 집에 가는 건 어때요? 거기서 봐주세요.”
그 말에 렌카의 눈이 큼지막하게 뜨였다.
“뭐...? 우리 집...?”
“예. 여기서 어떻게 봐준다고 그래요? 일해야 하는데. 게다가 가게 안에서 죽도를 휘두르는 건 위험하고, 밖에서 하기에도 모양이 그렇잖아요. 아예 퇴근할 때 부장 집에 들러서 제대로 하는 게 낫지 않아요? 부장 집에는 장비나 훈련장도 있을 거 아니야.”
“후, 훈련장은 따로 없는데...”
“그래도 연습은 제대로 할 수 있잖아요.”
“그건 그렇지만... 아, 퇴근하고 검도부에 들르는 건 어때? 거기라면...”
“상관은 없는데, 난 부장 집이 더 가고 싶네요. 피규어도 구경하고 싶고.”
“.... 피규어만 구경하게...?”
렌카가 굉장히 수상쩍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거기서 야릇한 일이라도 할까 걱정되었나보다. 은근히 기대하고 있는 것도 같다. 변태답게.
“피규어 구경도 하고, 검도 연습도 하고. 뭐 그런 거죠.”
“아, 아닌 것 같은데... 어쨌든 안 돼.”
“나중에 천천히 얘기해봐요.”
“아니... 안 된다고 했잖아. 마음대로 결정하지 말지...?”
“그니까 천천히 얘기해보자고. 이제 일할까요? 오픈 시간 다 됐네. 물건 정리할게요.”
“아, 그래...”
바삐 움직이는 척을 하자, 렌카가 그 분위기에 그대로 휩쓸렸다. 잠깐 허둥지둥하다 소모품을 가지런히 정리하기 시작하는 렌카를 본 나는, 조만간 그녀의 집에 방문할 수 있길 기대하며 창고로 들어갔다.
**
“안녕하세요, 친우님. 후배님도 안녕하세요.”
카페를 오픈하자마자 반가운 인삿말이 들려왔다. 안으로 들어와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치나미. 그런 치나미에게 재빨리 다가간 나는, 추위로 인해 벌겋게 상기되어있는 그녀의 뺨을 꾸욱 꾹 누르며 말했다.
“여긴 어쩐 일로 왔어요?”
“무후후... 근처에 모모님 굿즈를 판매한다기에 스토어가 오픈할 때까지 여기서... 앗, 근데 손은 좀 치워주실래요? 말을 하기가 불편하군요.”
“이제 됐나요?”
“네. 모모님 브랜드와 콜라보를 한 스토어가 있는데, 그곳이 오픈할 때까지 여기서 아이스티를 마시려고 왔답니다.”
“그래요? 콜라보 스토어라면 줄이 길 텐데, 미리 기다리고 있어야하는 게 아닌가요?”
“아, 그건 괜찮아요. 제가 이번에 구매할 굿즈는 상대적으로 인기가 없는 종류라서... 느긋하게 가도 남아있을 거예요.”
“다른 건 왜 안 사요?”
“다른 상품은 집에 다 있어요. 저번에 콜라보했던 것들을 재판매하는 거라서요.”
치나미의 모모님 사랑은 알면 알수록 대단하다. 그래도 뭐... 모모님이 귀엽긴 하니까 이해는 간다. 아헤가오 굿즈가 있다면 나도 줄을 서서 샀을 텐데, 그게 조금 아쉽다.
렌카와 화기애애한 대화를 나누는 치나미를 데리고 카운터가 간신히 보일 정도의 구석진 자리에 앉힌 나는, 그곳에서 그녀의 앞머리를 정리해주었다. 이후 렌카가 아이스티를 만들기 시작하자, 치나미의 외투 단추를 하나하나씩 풀었다.
그에 내가 뭘 하려는지 알아차린 치나미가 당황해하더니 말을 더듬었다.
“후, 후배님...! 지금은 근무시간...”
“손님이 없잖아요.”
“어허...! 그렇다고 해도 이래서는...”
“카메라도 없어서 괜찮아요.”
“아하... 근데 카메라 문제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게 아닌데요... 믕앗...!”
다짜고짜 자신의 후드 안으로 파고들어오는 내 손에 놀랐는지, 치나미의 몸이 잔뜩 움츠러들었다. 찬바람을 많이 맞은 얼굴과는 달리, 그녀의 복부는 무척이나 따스하고 맨들맨들했다.
예쁜 여자의 피부는 왜 이렇게 부드러울까? 아니, 부드러우니까 예쁜 건가? 진지한 고찰을 해봐야할 것 같다.
“후앗...!”
일자로 앙증맞게 쭉 찢어진 배꼽 부근과 허리를 만지작거리는 손길에 움찔거리던 치나미의 신음. 귀여움이 가득 묻어나오는 특유의 탄성에 킥킥거린 나는 계속해서 그녀의 몸에 내 체취를 묻히다가,
“치나미, 아이스티 다 됐... 앗!”
우리가 앉은 자리로 찾아온 렌카가 고개를 홱 돌리자 그녀를 바라보았다.
“다 만들었어요?”
“.....”
그녀는 답지 않게 양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나와 치나미가 끈적한 키스를 하고 있는 장면이 낯부끄러운 모양. 치나미의 후드 속으로 집어넣었던 손을 빼는 것으로 스킨십을 마무리한 내가 말했다.
“스승님. 아이스티 가지고 올게요.”
“넷...? 넷...!”
치나미 또한 렌카만큼 당황했는지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재미있는 그림이 나왔구나. 이제부터는 렌카와 치나미가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아이스티만 가져다주고 자리를 피해주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