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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코미디를 망가뜨리는 법-271화 (270/313)

Chapter 271 - 순조로운 조교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손님에게 따뜻한 라떼를 내어준 나는 구석 자리로 눈을 돌렸다. 렌카와 치나미가 오랜 시간동안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건 확실한데, 뭘 하고 있는지는 잘 안 보인다.

한 번 엿들으러 가볼까 하는 생각을 하며 그곳으로 움직이려는 찰나, 렌카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성큼성큼 발을 놀려 카운터로 들어왔다. 그리고는 내 앞에서 팔짱을 꼈다.

“아무리 치나미가 좋다고는 하지만, 일하는 시간에까지 그러는 건 조금 오버 아니야?”

“부장한테도 자주 그러잖아요.”

“가, 갑자기 내 얘기는 왜 나오는데...! 그리고 그땐 오픈 전이고...”

당당히 날 훈계하려다가 순식간에 태도가 뒤바뀌는 그녀. 킥킥거린 내가 능청스레 말했다.

“오픈 후에도 카운터 밑에서 만졌는데?”

“그걸 자랑이라고 지껄이는 거야...?”

“지적이 아니라 틀린 사항을 수정해주는 거죠. 스승님이랑 얘기 다 끝났으면 교대할까요?”

“무슨 교대.”

“대화 교대요.”

“아, 안 돼...!”

다급히 고개를 가로저은 렌카가 치나미가 있는 방향을 흘깃거리더니, 내 앞을 가로막았다. 내가 치나미에게 온갖 음흉한 짓을 다 할까봐 걱정스러운 모양이었다.

“왜요? 나도 스승님이랑 대화하고 싶은데.”

“그냥 대화가 아니라 몸의 대화겠지...!”

“그건 나중에 할 겁니다.”

“무, 뭐...?”

당당하게 그렇고 그런 일을 할 예정이라고 답하자, 렌카가 눈에 띄게 당황해했다. 어이가 없는 기색도 조금은 보인다. 두 사람 사이에서 자지를 막 놀리려 하는 내가 황당했나보다. 뭐가 됐든 소심한 반응을 보여주는 게 귀엽다.

“스승님이랑 무슨 얘기했어요?”

“.... 알 거 없잖아.”

“설마 내 흉을 본 건 아니죠?”

“아, 안 봤어...!”

“찔린 표정인데?”

“아니야...! 진짜 아니라고...!”

격하게 부정을 하고 있는 렌카의 허리와 골반을 스윽 어루만진 나는, 움찔한 그녀가 본능적으로 치나미 쪽을 바라보자 실소를 터뜨렸다. 아직 치나미에게 나와의 관계를 말하지 못한 상황이라 눈치를 보는 게 티가 난다.

나도 미유키에게 말을 못하고 있는 건 마찬가지인 터라, 동질감마저도 느껴진다. 렌카와 내 상황이 상당히 닮아있는데, 물론 모든 원인제공은 내가 하긴 했지만 뭐... 같은 고충이 있는 사람들끼리 서로 위로하지 않으면 안 되겠지?

툭.

“햑!? 흡...!”

가볍게 렌카의 엉덩이를 때려준 나는, 신음을 터뜨리다 말고 입가를 가리는 그녀를 지나쳐 구석자리로 갔다.

빨대 끄트머리에 자신의 선홍색 입술을 대고 아이스티를 쪼옵 쫍 빨고 있는 치나미. 렌카에게 나와의 스킨십을 들켰던 것이 아직까지도 부끄러운 듯, 여전히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있다.

그녀의 옆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은 내가 물었다.

“부장이 뭐래요?”

“넷...? 아... 별다른 말씀은 안 하셨는데요...”

“그래요? 아이스티 맛은 어떤가요?”

“저번과 똑같아요...”

“보통?”

“네에... 한 모금 하실래요...?”

부끄부끄한 상황에 걸맞지 않은, 다소 올드한 대사다. 하지만 치나미가 하니까 어울린다.

“아뇨. 괜찮습니다. 몸이 찌뿌둥하지는 않나요?”

“넷...? 갑자기요...?”

“예.”

“아니요...?”

“그럴 텐데요?”

“으응...? 아하...!”

무언가 눈치챘다는 듯 탄성을 터뜨린 치나미의 눈동자가 주변을 훑었다. 손님이 전혀 없는 카페를 보고 안도한 그녀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 어깨가... 조금 결릴...”

“그런가요? 그럼 풀어줘야겠네요?”

“어허...! 말은 전부 들으셔야지요...! 어깨가 조금 결릴 기미가 보이긴 하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결리면 결리는 거지, 기미가 보이는 건 뭐람. 근무시간에 딴 짓을 하지 말라며 에둘러 표현하는 치나미의 뒷목을 살살 주무른 나는, 예전에 그녀를 마사지해주었을 때 일어났던 일을 떠올렸다.

발을 동동 구르며 내게 안아달라고 했던 치나미가 머릿속에 그려진다. 그때 그녀는 그 누구보다도 귀엽고 예뻤다. 항상 수동적이던 그녀가 적극적으로 애교를 부렸던 그 모습은 아마 평생 잊지 못하겠지.

“왜 그렇게 쳐다보시는 건가요...?”

쑥스럽기 그지없는 표정으로 날 흘깃거리는 치나미의 물음. 그녀를 향해 방긋 웃어보인 내가 물었다.

“안아줄까요?”

“네엣...? 왜요...?”

“안아주고 싶어서요.”

“그, 그러신가요...? 그러면 안아주세요...”

치나미의 대답을 들은 내가 양팔을 좌우로 넓게 벌리자, 그녀가 잠깐 머뭇거리더니 내 가슴팍에 자신의 얼굴을 묻었다.

품 안으로 쏘옥 들어오는 그녀의 아담한 체구. 안아주기에 완벽한 몸집이다. 그때와 같은 맛은 느껴지지 않지만 이것도 좋구나. 약간 힐링이 되어가는 느낌이야.

콧속으로 솔솔 들어오는 달콤한 복숭아 향을 맡으며 치나미를 안고 있던 나는,

“마츠... 으익...!”

무방비하게 자리로 다가온 렌카가 아까처럼 얼굴을 가리는 모습을 보며 헛웃음을 쳤다. 왜 자꾸 엄한 타이밍에 렌카가 오는 걸까? 질투에서 비롯된 행동인가? 벌써부터 그러지는 않을 텐데... 그냥 순진한 마음으로 왔구나 싶다.

그나저나 렌카가 답지 않게 소녀소녀한 감성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는 건 알았지만, 고작 포옹 가지고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건 조금 웃기다. 렌카의 인기척을 알아차리고 내게서 벗어나려는 치나미의 몸을 꼬옥 붙든 채로, 고개만을 돌린 내가 대답했다.

“왜요?”

“그... 전화... 왔는데...”

“전화?”

“.... 카운터에 휴대폰... 있어서...”

“그래요? 누구한테 왔는데요?”

“몰라... 저장되어있지 않은 번호라...”

“대출 광고 같은 건가?”

“나야 모르지...!”

“왜 짜증을 내요.”

“내가 언제...! 아, 아무튼 난 간다... 슬슬 손님들 몰려올 시간대니까 적당히... 흐흠... 알아서 해.”

나와 치나미가 끌어안고 있는 게 낯간지럽다고 생각했는지, 렌카가 황급히 걸음을 놀리며 멀어졌다. 카운터 안에서 일을 하다가 이곳을 흘끔거리는데, 내가 치나미와 무얼 하는지 굉장히 궁금한 듯했다.

“후아...! 저, 저는 이만 가봐야겠네요... 스토어 오픈 시간이 다 됐어요...”

그 사이 내게서 떨어진 치나미가 자신의 얼굴에 손부채질을 하며 아이스티를 쫍쫍 빨아댔다. 후끈한 몸을 식히려는 듯한 행동. 그런 그녀의 등을 약하게 토닥인 내가 말했다.

“굿즈 사고 다시 올 거예요?”

“아니요. 집으로 갈 생각이에요...”

“왜요? 어깨가 결릴 예정이라면서요?”

“그, 그건 오늘이 아니라, 아마 내일이나 모레쯤일 것 같군요...! 어쩌면 사나흘 뒤일 수도 있어요...!”

우리 치나미는 미래를 예지하기까지 하는구나. 아주 훌륭한 인재다. 나와 엉뚱한 대화를 나눈 그녀는 재빨리 남은 아이스티를 마셨다. 그러다가 돌연 오만상을 다 쓰더니 자신의 전두엽을 손바닥으로 마구 누르기 시작했다.

“므아앗...!”

차가운 액체를 급격하게 마셔서 머리가 띵해져온 모양이었다.

“우, 웃지 마세요...!”

그 장면을 보고 간신히 웃음을 참고 있는 내 얼굴을 흘깃거리더니 창피해하는 건 덤. 짧은 시간 안에 온갖 귀여움을 보여준 치나미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렌카와 작별인사를 나누는 그녀를 대신해 카운터 위에 트레이를 올려놓았다.

“그럼... 두 분 모두 힘내세요.”

그 사이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카페를 나가는 치나미. 나와 렌카에게 손을 마구 흔든 그녀는 곧 종종걸음으로 멀어졌다.

그녀와 함께했던 잔잔한 분위기를 곱씹은 나는, 콧바람을 길게 내뿜으며 카운터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는 렌카의 둔부를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이제 일할까요?”

“.... 그래. 일해야지... 하는데...”

“하는데 뭐요.”

“자꾸 엉덩이 만져대지 마.”

난 또 치나미한테는 사근사근 대해주면서 왜 자신한테는 강압적으로 구냐며 서운함을 토로할 줄 알았네. 언제쯤 그 시간이 올까? 쓰리섬 정도는 해야 하나 싶다.

“싫어.”

렌카의 경고를 간단하리만치 무시하며, 나는 설거지거리가 꽤나 쌓인 싱크대로 가 고무장갑을 꼈다. 이후 뒤에서 느껴지는 따가운 시선을 즐기며 수전을 돌려 물을 틀었다.

**

해가 지며 어둑해지기 시작한 하늘. 근무를 끝마치고 차에서 렌카를 기다린 나는, 샤워를 마친 그녀가 문을 열고 조수석에 앉자 휴대폰을 들이밀었다.

“무, 뭐야 이건...?”

갑작스런 내 돌발행동에 움찔한 렌카의 시선이 휴대폰으로 향했다. 잘록한 허리를 가진 여자의 기립근이 유연하게 움직이는 벨리댄스 동영상. 그것을 본 렌카가 인상을 구기더니 물었다.

“뭐 어쩌란 건데...?”

“혹시 벨리댄스 배워볼 생각은 없어요?”

“벨리댄스...?”

“부장이 추면 되게 좋을 것 같아서.”

“뭐 이 새끼야...!? 이거 완전 또라이 아니야...?”

“왜요?”

“왜 나한테 그걸 배우라고 하는 건데...! 내가 무슨 네 노리개야!?”

“그냥 물어만 본 건데.”

“싫어...! 안 배워...!”

“알았어요. 알바도 이제 슬슬 그만둘 때가 됐네요. 곧 개학이라.”

갑작스런 화제 전환에 벙 찌는 렌카. 잠깐 자신의 큰 눈을 끔벅이며 날 살핀 그녀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수긍했다.

“.... 그러게.”

“아쉽다.”

“네가 그렇게까지 일에 열정이 있는 줄은 몰랐는데.”

“부장이랑 같이 못 있는 게 아쉽다고요.”

“.....”

맥락을 파악하지 못해 무안했는지, 렌카가 입가에 손을 가져가더니 기침을 하며 목을 가다듬었다. 그런 와중에도 내 에두른 고백이 은근히 기분 좋은 듯, 자신의 목덜미를 쓰다듬었다.

분위기가 살짝 가라앉으려고 하는 것을 느낀 나는, 손을 들어 렌카의 허벅지를 살포시 쳤다. 찹! 하는 소리와 함께 찰지게 감기는 손바닥.

“흐악!!”

뜬금없는 스팽킹에 놀란 렌카가 기함을 하더니 날 노려보았다.

“아 왜 또 때리고 지랄이야...!! 죽을래 진짜?”

“이번엔 소리만 컸지 하나도 안 아팠잖아요.”

“그건 그렇지만 때린 건 맞잖아...! 넌 왜 나한테만 폭력적인 건데!”

“뭐가 폭력적이에요 이게? 애정표현인데.”

“그래? 그렇다 이거지?”

잘 걸렸다 싶은 표정을 지은 렌카가 내 팔에 주먹을 휘둘렀다. 퍽! 하는 묵직한 감각이 느껴졌지만 고통은 단 하나도 없었다.

“나도 이렇게 때리면 되냐? 애정표현이니까?”

“지금 부장 입으로 애정표현이라고 말한 거예요?”

“.... 네가 좋다는 게 아니라, 가정을 해본 거잖아...!”

“그렇다고 쳐줄게요. 그리고 앞으로 이렇게 굴지 마세요.”

“왜? 네가 때리는 건 괜찮고, 남이 때리는 건 싫냐? 이중잣대가 너무 심한 거 아니야? 이 이기적인 놈아?”

“아뇨. 그 이유 때문이 아닙니다.”

“그럼 뭔데!”

“노예가 주인한테 손찌검을 하면 안 되잖아요.”

진중하기 그지없는 말투에, 렌카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목소리에서 진심을 느낀 렌카가 황당해하고 있는 사이, 그녀의 허벅지에 대어놓고 있는 손을 느릿하게 움직인 내가 말을 이었다.

“이번만 넘어가주겠습니다.”

“무, 뭐라는 거야 이 미친...”

“욕도 자제해요. 예쁜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면 돼요?”

“.... 네가 욕이 나오게 만드니까...”

말대꾸를 하는 렌카를 바라본 나는 공기를 강하게 빨아들이며 스읍! 하는 소리를 냈다. 그러자 찔끔한 렌카의 입술이 굳게 닫혔다. 할 말은 많지만 엄한 표정의 날 보고 일단 물러서기로 결정한 것 같은 모습이었다.

조교는 계속 잘 되어가고 있구나. 만족스럽다. 조만간 치나미랑 셋이서 만나봐야겠다. 쓰리섬은 아직 시기상조겠지만 은근히 야한 장면을 연출하는 것 정도는 괜찮겠지?

딱 달라붙어있는 렌카의 허벅지 사이로 손을 들이민 나는, 말랑한 살결에서 오는 야릇한 촉감을 느끼면서 차를 출발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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