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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코미디를 망가뜨리는 법-272화 (271/313)

Chapter 272 - 불청객과 반가운 손님

“하아... 하아...”

집 담장에 손을 댄 나는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러닝을 얼마 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힘들다. 이래서 운동은 쉬지 말아야 해. 적어도 이틀에 한 번씩은 꾸준히 달려줘야겠다.

찬바람으로 인해 식어가는 땀을 훔친 나는 열쇠로 대문을 열었다. 그렇게 안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

“마츠다 군? 거기서 뭐해?”

뒤에서부터 미유키의 어여쁜 목소리가 들려왔다. 몸을 돌려보니 자전거에 탄 미유키가 한쪽 발을 바닥에 대고 중심을 유지하며 날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이 늦은 시간에 자전거를 타고 오다니... 안전불감증이 심해도 너무 심한 거 아닌가?

“나 운동하고 왔지.”

“운동? 무슨 운동?”

“달리기.”

“아 정말? 나도 운동할 겸 자전거 타고 온 건데... 우리 통했다. 그치?”

“그렇다고 치고... 지금 몇 시냐?”

“11시.”

“근데 왜 이렇게 늦은 시간에 혼자 와? 올 때 연락하라고 했어 안 했어?”

“했어.”

“오고 싶었으면 전화나 문자를 하지 굳이 자전거까지 타고 여기 와야겠냐? 날도 추운데 손은 안 시려워?”

“응.”

너무나도 당당하게 대답하니까 할 말이 없어진다. 뻔뻔한 표정을 지은 채로 자전거에서 내리고 있는 그녀를 향해, 내가 말했다.

“다음부터는 연락해.”

“응.”

“이 말도 몇 번이나 하는 건지 모르겠다. 자전거 줘봐. 내가 끌고 갈게.”

“응.”

배시시 웃은 미유키가 순순히 내게 자전거를 내어주었다. 자신을 챙겨주는 내가 좋은가보다.

저 미소만 보면 독한 마음이 싹 사라진다. 렌카가 가끔 웃어주거나, 치나미가 천진난만하게 입꼬리를 올릴 때도 같은 기분이 든다. 세 사람이 동시에 내게 각자의 웃는 얼굴을 보여주면 어떨까? 상상만 해도 행복해지면서 아랫도리에 피가 몰린다.

자전거를 처마 밑에 놓아둔 나는 미유키와 함께 집 안으로 향했다. 이후 외투를 벗는 그녀를 놔두고 욕실로 걸음을 옮기려다가,

“기다려.”

미유키의 가라앉은 목소리에 발을 멈춰 세웠다. 뒤를 돌아보니 미유키가 정색을 한 채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뭐지? 왜 저러는 걸까?

그녀에게 찔리는 부분이 상당히 많았던 터라, 나는 마른땀을 흘리며 다가오는 미유키를 기다렸다. 표정이 무척 굳어있다. 그에 일순 불안한 마음이 들었으나... 그건 기우였다.

“냄새 좋아...”

얼굴을 단박에 헤벌쭉하게 바꿔버린 미유키가 내 허리를 꼬옥 붙잡더니, 저런 말을 하며 배에 얼굴을 파묻었던 것이다.

“무, 뭔데 갑자기...?”

“가만히 있어...!”

여왕님처럼 근엄한 투로 내 의지를 옭아맨 그녀는, 영역표시를 하는 강아지마냥 내 몸에 자신의 얼굴을 부비적거렸다. 아니, 이럴 땐 영역표시를 당하는 거라고 해야 맞나? 미유키의 얼굴에 내 체취가 잔뜩 묻고 있으니까.

이성의 체취를 향기롭다고 느낀다면 유전자가 서로 확연히 다르다던데, 이 두 사람의 아이는 두 유전자의 면역체계를 모두 가져오게 되어 면역력이 무척 강하다고 한다. 미유키와 내 아이는 튼튼하겠구나. 낭보가 따로 없다.

안도한 나는 미유키의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렸다.

“좋냐?”

“응.”

미유키가 이렇게 활기찬 모습을 보여줄수록 마음이 약해진다. 겁이 나서 렌카와의 관계를 말하지 못하고, 또 미루게 되는... 그런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쓰레기답게 굴어야하는데 그게 잘 안 된다는 말이지. 그렇다고 렌카와 치나미는 물론 히요리마저도 포기할 생각 따윈 전혀 없으니까, 내가 더 열심히 노력해야겠다.

“땀 묻어서 어떡하냐?”

“씻으면 되지... 바보.”

“씻고 온 거 아니야? 샴푸 냄새 나는데.”

“아닌데? 아침에 샤워한 건데?”

“오늘 친구 만났다며. 나갔다 왔는데도 이렇게나 냄새가 강해?”

“그럴 수도 있지.”

눈에 훤히 보이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미유키. 내 입에서 먼저 같이 샤워를 하자는 말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미유키의 여우같은 행동에 코웃음을 친 나는, 내 허리를 붙든 채 대롱대롱 딸려오는 그녀와 함께 욕실로 향했다. 같이 탕 안에 들어가게 되면 분명히 하게 될 텐데, 미유키도 이걸 알고 있을 터다. 그럼에도 빼지 않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들이댄다는 건, 그녀 또한 관계를 바란다는 뜻.

요즘 미유키의 성욕이 나날이 느는 느낌이다. 이러다 불알이 텅텅 비어버리는 건 아닌가 모르겠다. 무리했다고 무정자증이 생기진 않겠지?

**

“야...”

다음날. 한창 일을 하고 있던 렌카가, 카페가 한산해진 틈을 타 날 불렀다.

“왜요?”

“.... 그... 아니다.”

말을 얼버무리고는 내 앞치마 주머니를 곁눈질하는 그녀. 뭐라도 묻었나 싶었던 내가 고개를 숙여 앞치마를 살펴보았으나 깨끗했다.

“왜 그렇게 안절부절 못해요?”

“내가 언제 안절부절 못했다고...”

“그럼 뭔데?”

“아니라고 했잖아...”

“이상하게 구네...”

“뭐래...”

렌카가 왜 저렇게 화장실이 가고 싶은 강아지처럼 굴까. 뭔가 바라는 게 있어 보이는데... 머뭇머뭇 날 지나쳐 블렌더를 씻기 시작한 렌카를 바라보며, 나는 그녀가 왜 저러는지 깊게 고민해보았다.

아침인사는 했다. 오늘 치마를 입고 온 렌카에게 잘했다는 칭찬을 곁들이며, 맨다리를 사정없이 만지작거리기도 했다. 툴툴거리며 반항을 하는 그녀의 목에 진한 흔적을 남겨놓으면서 주인에 대한 위대함을 각인... 은 아니고, 어쨌든 이런저런 스킨십을 했다.

뭐 빠진 게 있나 과거를 되짚어본 나는, 오늘 렌카에게 사탕을 주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카페에 오자마자 옷을 갈아입고 곧장 일을 시작했었구나. 어제 정력을 너무 많이 쓰느라 정신이 없어서 까맣게 잊어버렸었나보다.

렌카는 내가 왜 사탕을 주지 않는지 궁금해서 저런 반응을 보였던 거다. 방금 앞치마를 보았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나는 항상 외투의 겉주머니에서 사탕을 꺼냈었으니까, 앞치마 주머니에 들어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겠지.

어제 미유키도 그렇고, 오늘 렌카도 그렇고... 하는 짓들이 왜 이렇게 예쁠까. 꽉 깨물어주고 싶다.

재빨리 탈의실로 들어간 나는 외투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역시 사탕이 있었다. 아침 루틴을 빼먹다니... 내 실책이다.

탈의실에서 나온 나는 감시카메라가 비추지 않는 구석 공간으로 갔다. 이후 거기서 렌카를 불렀다.

“부장.”

“뭐.”

“이리 와봐요.”

“왜 또...”

투덜거리면서도 몸은 내 쪽으로 움직이고 있는 렌카. 겉과 속이 전혀 다른 모습에 킥킥거린 나는, 그녀가 가까이 다가오자 사탕 포장지를 벗겼다.

“미안해요. 이걸 까먹고 있었네.”

“.... 뭐라는 거야... 어쩌라고...?”

대수롭지 않은 척을 하고 있지만 기뻐하는 게 티가 난다. 아니, 기뻐하는 건 오버고 그냥 적당히 만족하는 것 같다.

“아 하세요.”

“싫어...”

“빨리.”

“아 싫다니까...?”

“안 먹을 거예요? 내일 두 개로 줘?”

“.....”

계속되는 재촉에, 렌카가 마지못한 듯 연기를 하며 입을 살짝 벌렸다. 우리 노예의 마음을 아프게 했으니까, 오늘은 특별히 손가락 포상을 줘야겠다.

선홍색으로 윤기가 흐르는 렌카의 입술 사이로 사탕을 집어넣은 나는, 덩달아 엄지를 집어넣었다. 아랫니를 건드리며 쑤욱 들어가는 손가락. 이에 놀란 렌카의 입이 순간적으로 확 닫혔다.

“우읍...!?”

오랜만에 당하니 대비를 못한 모양이었다. 자신의 두 손으로 내 손목을 붙잡고 빼내려 하는 그녀를 향해, 내가 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거기서 굴려봐요.”

“.... 으믑...?”

“그렇지. 그렇게.”

새끼 고양이를 우쭈쭈 해주는 것 같은 아빠미소를 지은 채 렌카의 입 안에서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는 엄지의 촉촉함을 느끼고 있는데,

“우읏...!”

렌카가 내 몸을 있는 힘껏 밀어내며 엄지를 빼냈다. 그녀의 얼굴은 꽤나 사나웠다. 손가락이 들어온 직후, 순간적으로 내 굴려보라는 말을 따른 것에 자존심이 상한 듯했다.

그런 렌카를 정면으로 쳐다보면서, 나는 엄지를 내 입에 쏘옥 집어넣고 빨았다. 그러자 마침 근처에 있는 기름종이로 자신의 입가를 닦아내고 있던 렌카가 기겁을 하며 날 쏘아보았다.

“그, 그 짓 좀 안 하면 안 돼...?”

“무슨 짓?”

“.... 남의 침 묻은 손가락을 왜 빨아먹어...! 더럽게...”

“우리가 남인가? 그리고 뭐가 더러워요? 이게 더러운 거면 키스하는 것도 더럽다고 생각하겠네?”

“그, 그건...!”

“사탕은 어때요? 맛있죠?”

“.....”

“맛없어요? 다음부터 주지 마?”

“주, 주지 마...”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기는. 진심이 전혀 들어가 있지 않은 렌카의 대답에, 나는 능청스레 어깨를 으쓱였다.

“싫어요. 내일도 줄게요.”

“유치하게 뭐라는 거야... 네가 무슨 초등학생이냐?”

“토 달 거예요?”

“.... 하... 일단 손부터 씻어. 그리고 그만 빨아...! 짜증나게 진짜...!”

“알았어.”

“아 대답만 하지 말고 씻으라고...!”

계속해서 노골적이고 야릇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낯부끄러웠는지, 렌카가 고개를 옆으로 돌린 채 내 몸을 싱크대로 밀었다.

“왜 밀어요? 내가 간다니까?”

“웃기지 마...! 갈 생각 없었잖아...!”

렌카와의 시간은 약간 독특한 썸을 타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풋풋해서 좋다.

낄낄거린 나는 그녀와 나름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일을 했다. 기분은 아주 좋았다. 하지만 불청객이 등장해 훼방을 놓자 올라가있던 텐션이 순식간에 쭈욱 내려가고야 말았다.

“어... 안녕하세요?”

꼴 보기 싫은 테츠야가 카페에 온 것이다. 새침하게 구는 렌카와 대화를 나누다가 눈썹을 꿈틀한 나는, 카페 입구를 막고 서선 얼빵하게 안을 둘러보는 테츠야에게 말했다.

“야, 일단 나와. 거기 입구잖아.”

“아, 미안. 여기서 알바해?”

보면 모르냐 씨발아? 저 새끼는 당연한 걸 캐물어서 사람을 짜증나게 하는 재주가 있다.

대충 고개를 끄덕인 나는, 반가운 낯으로 테츠야를 반기는 렌카를 보며 인상을 구겼다. 내게는 자주 보여주지 않는 미소를 저놈에게 짓는 대가를 치르게 해줘야겠다.

“어서 와.”

“안녕하십니까, 부장. 한 번 들렀습니다.”

“잘 왔어. 뭐 마실래? 오늘은 내가 살게.”

“예? 아닙니다. 저 돈 있어요.”

“됐어. 내가 불렀는데 계산하게 하는 건 예의가 아니지. 메뉴 보고 천천히 골라.”

나름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두 사람을 보던 나는, 익숙하고 그리운 얼굴이 카페 문을 열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나 여기 쿠폰 써야 돼. 3번만 더 찍으면 음료수 하나 무료야.”

히요리가 친구들을 대동하고 왔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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