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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코미디를 망가뜨리는 법-275화 (274/313)

Chapter 275 - 색다른 장소에서의 밀회 #2

“마츠다 아니냐? 오랜만이구나.”

아카데미 정문을 지키고 있던 경비원의 안부. 눈을 동그랗게 뜬 내가 물었다.

“아저씨? 왜 여기 계세요?”

“왜긴. 일하고 있지.”

“요새 별 일 없으시죠?”

“없다. 걱정 고맙구나. 헌데 여긴 무슨 일로 온 거냐?”

“검도부실에 들르려고요.”

“왜?”

“잠깐 연습하려고 합니다.”

“그래...? 아홉 시 전까지는 나와야한다.”

“예.”

방학 때 동아리실을 쓰는 건 종종 있는 일이었다. 더군다나 나와 인사를 했던 경비원은, 내가 교내봉사를 할 때 친하게 지냈던 사람이었다. 내가 얼마나 달라지고 있는지 옆에서 지켜본 사람 중 한 명이었기에, 그는 큰 의심 없이 렌카의 학생증만 확인하고 우릴 안으로 들여보내주었다.

“.... 저분이랑 친한가보네?”

휑한 주차장으로 차가 진입할 시점 들려오는 렌카의 물음. 무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인 내가 대답했다.

“예.”

“왜?”

“교내봉사할 때 많이 친해졌어요.”

“그래...? 몰랐네...”

“몰랐다고요?”

“응. 몰랐어.”

“왜요?”

“왜냐니...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또 무슨 트집을 잡냐는 듯 오만상을 다 쓰는 렌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눈썹을 구긴 내가 말했다.

“정문에서 많이 마주치면서, 제가 경비원 아저씨랑 살갑게 대화하는 거 봤잖아요.”

“뭐라는 거야... 그런 걸 기억해야 돼?”

“기억해야지.”

“억지도 이런 억지가 없네... 어이없어...”

이런 모습 한두 번 보나? 이제 적응하고, 순응과 복종을 할 때가 되지 않았니? 속으로 그러한 말을 남긴 나는 주차장에 차를 대고 렌카와 함께 내렸다.

그렇게 그녀와 함께 한산한 교정을 가로질러가고 있는데,

투둑.

안 그래도 어둑했던 하늘이 더욱 흐려지면서, 빗방울이 떨어졌다.

“어...? 비 온다...”

“그러게요. 빨리 갈까요? 그거 저한테 줘요.”

“자, 잠깐...”

내 박스 위에 렌카가 들고 있는 박스를 반쯤 억지로 올려놓은 나는, 빠른 걸음으로 부실을 향해 갔다. 비는 오랜만에 오는 것 같다. 신께서 내가 렌카와 그렇고 그런 일을 할 때, 로맨틱하게 하라고 말씀하시는 듯한 느낌이었다.

우리가 부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을 때쯤, 빗줄기가 거세졌다. 타이밍이 참 좋다. 역시 난 신이 점지해준 주인공이라니까. 부실 창문 밖에 있는 나무가 비바람에 흔들리는 장면이 꽤나 운치가 있다고 생각하며, 나는 상자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이제 뭐할까요?”

“.... 스트레칭 해...”

“뭘 위한 스트레칭인데요?”

“당연히 검도지...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있어...”

“무슨 이상한 생각?”

“아 시끄러...! 스트레칭하고 호구 입어...”

“나 호구 입을 줄 모르는데.”

“.....”

전혀 믿지 못하겠다는 눈빛. 그에 억울하다는 듯 어깨를 으쓱인 내가 말을 이었다.

“진짜에요. 맨날 스승님이 입혀줬어.”

“갑이랑 갑상도 혼자 못 입어?”

“아뇨. 그건 알아요.”

“그럼 못 입는 게 아니잖아...! 호면만 도와주면 되겠구만 어디서 거짓말이야...!”

“호면도 호구의 일종이니까 거짓말은 아니죠.”

“하... 너랑 대화하느니 차라리 동물이랑 소통하는 게 낫겠어.”

“왜? 답답해요?”

“어. 이제 준비해.”

바로 시작하려고? 성격도 급하다. 아니면 빨리 연습을 끝내버린 뒤 나와 야릇한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저러는 걸까? 그렇게 믿어야겠다. 그래야 기분도 좋으니까.

“근데 곧장 대련하려고요?”

“어.”

“왜?”

“실력이 무뎌졌는지 아닌지 확인해봐야지.”

음... 저걸 핑계로 지금까지 겪어왔던 수모를 갚아주려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건 착각일까? 아니,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을 보아하니 착각은 아닌 듯하다. 신성한 검도 대련을 사적인 복수에 이용하다니... 렌카도 많이 타락했구나. 그래서 더 좋다.

**

“아 가만히 좀 있어...!”

호면 밑으로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린 렌카의 타박에, 바닥에 앉아 몸을 좌우로 천천히 흔들고 있던 내가 고개를 들었다.

“왜요.”

“면수건 둘러야하는데 그렇게 움직이면 어쩌자는 거야...!”

“그런가? 몰랐어요.”

“.... 검도부에 꽤 있었던 애가 이걸 모른다는 게 말이 돼? 일부러 나 엿먹이려고 모른 척하는 거잖아.”

“엿먹이려고가 뭡니까. 말 예쁘게 해요.”

“가만히 있기나 해.”

단호하기 그지없는 투로 날 나무란 렌카는, 내 머리에 면수건을 둘러주고 호면을 씌웠다. 그리고는 윗부분을 주먹으로 콩콩 두드렸다.

“됐어. 일어나 이제.”

“왜 때려요?”

“잘 씌워진 건지 확인해봤어.”

“밉상이어서 때린 게 아니라?”

“오늘 왜 이렇게 뺀질거려?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고 호완 껴.”

“살살할 거죠?”

“어.”

목소리를 들어보니 전혀 살살할 것 같지가 않다. 왠지 합숙훈련 때처럼 털릴 듯한 느낌. 투덜거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호완을 착용하고 죽도를 들었다. 그 사이 렌카는 이미 바닥에 그려진 선에 준거해있었다.

“앉아.”

벌써부터 준비만전인 그녀의 맞은편에 쪼그려 앉은 내가 말했다.

“진짜 살살할 거예요?”

“그렇다고 했잖아. 그리고 이제부터 조용히 해. 대련 직전이니까 호흡부터 골라. 준거 끝나면 바로 시작할 거야.”

“이렇게까지 해야겠어요?”

“조용.”

대련에 돌입해서 진중해진 건지, 아니면 날 놀리려는 건지 모르겠다. 호면의 면금 사이로 렌카의 눈을 보면서 생각을 읽어내보고 싶은데, 부실 불을 일부만 켜둔 데다 비까지 오는 상황이라 안이 굉장히 어둑해 분간이 잘 안 된다.

“일어난다.”

이어지는 렌카의 말에 상념에서 벗어난 나는, 접었던 무릎을 펼치며 천천히 일어남과 동시에 죽도를 머리 위로 치켜들었다. 그리고,

“합!”

기합을 내지른 렌카가 내게 짓쳐오는 것을 보며, 재빨리 죽도를 휘둘렀다.

따닥-!

대나무끼리 부딪치며 피어나는 경쾌한 소리. 목찌름을 위해 쭉 내뻗은 렌카의 죽도를 옆으로 튕겨낸 나는 반격을 위해 발을 크게 구르며, 그녀의 내려가 있는 손목을 치기 위해 공격을 감행했다.

딱-!

허나 닿지 못했다. 호완통이 자리한 격자부위를 노렸는데 코등이를 쳐버렸다. 심지어는 격자부도 아니어서, 만약 호완통에 닿았다 하더라도 유효격자로 인정받지 못했을 것이다.

죽도가 내려쳐지는 순간, 렌카가 일부러 손을 뻗어 타격점을 앞당겼기에 일어난 결과였다. 과감한 플레이었다. 반사신경이 조금만 느려도 죽도가 호완머리를 때리게 되어 손가락이 아팠을 텐데... 감탄이 나온다.

자연스럽게 코등이싸움이 되어버린 상황. 서로의 검을 맞대고 가까이 붙어있으니 렌카에게서 풍겨오는 블루베리 향이 강해진다. 음음... 향기롭다. 왜 예쁜 사람들은 항상 냄새가 좋은 지에 대한 연구 같은 건 없나? 갑자기 논문 같은 걸 찾아보고 싶은 기분이다.

라는 생각을 하며 거리를 벌리려는 찰나, 렌카가 선수를 쳤다. 순식간에 뒤로 빠지면서 손목을 튕기는 그녀. 식겁한 내가 팔을 위로 쭈욱 들어올리려 했지만, 이미 그녀의 죽도는 내 호완통에 닿아있었다.

쩍!

손목에서부터 이는 나름 묵직한 감각. 한판을 따낸 렌카가 바닥에 그어진 흰 선으로 물러나며 말했다.

“한판이야.”

“.... 그러네요.”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으니까 이렇게 쉽게 점수를 내어주는 거야. 방금 이상한 생각했지?”

“부장 냄새가 좋다고 생각했어요.”

“아이 씨...! 집중 안 해...!?”

당황하는구나. 렌카답다. 그나저나 렌카와의 관계가 크게 발전한 상태에서 대련을 하니 감회가 무척 새롭다. 렌카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지, 괜히 평소보다 더욱 씩씩대고 있었다. 앞으로는 심리적인 공격을 조금 해봐야겠다.

“제자리로 가.”

이어지는 렌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나는, 선으로 돌아가 그녀를 마주보며 무릎을 굽혔다. 그리고는 물었다.

“언제까지 할 거예요?”

“5점 먼저 날 때까지.”

“3점만 내면 안 돼요?”

“안 돼. 그리고 조용히 해.”

“3점만 해요. 빨리 휴게실 들어가고 싶어요.”

“.....”

렌카의 몸이 미세한 휘청임을 발하는 게 보인다. 의미심장한 말에 당혹스러워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경기 경험이 많은 렌카는 이런 트래시 토크에 내성이 많겠지만, 대련상대가 관계를 가졌던 나인데다 성적인 농담까지 하니 마음을 추스르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속으로 킥킥거린 나는 먼저 무릎을 폈고, 움찔한 렌카가 마주 일어나는 타이밍에 맞춰 발을 굴렸다.

**

호면을 벗은 나는 답답했던 시야가 넓어지면서 생기는 개방감을 만끽하며 렌카를 바라보았다. 머리와 아주 가깝게 묶어놓았던 머리끈을 풀고 있는 그녀. 나와 시선을 마주친 그녀가 인상을 팍 찌푸리더니 말했다.

“치사한 새끼...”

“뭐가 치사한데?”

“무슨 그런 말까지 하고 난리야...! 실전에서 그런 천박한 말을 하는 검도인은 없어...!”

첫 대련 이후 끝날 때까지 내내 지속된 트래시 토크에 휘말려, 이기긴 이겼지만 2점을 내어준 터라 자존심이 많이 상했나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대련은 렌카의 입장에선 이겼지만 졌고, 내 입장에선 졌지만 이겼다.

“천박했어요?”

“그걸 말이라고 해...?”

“별로였어?”

“엄청 별로였어. 쓰레기 같았지.”

항상 듣던 욕이라서 감흥이 전혀 없다. 그러려니 한 나는 호구를 전부 벗고 있는 렌카를 지나쳐 휴게실 문을 열었다. 그리고는 문도 닫지 않고 매트리스를 깔기 시작했다.

“무, 뭐하는 거야...”

이제부터 일어날 일을 예상했는지, 렌카의 목소리가 떨려왔다. 그런 그녀를 돌아보지도 않은 내가 대답했다.

“누울 자리 깔잖아요.”

“.... 그니까 그걸 왜...”

“샤워는 지금 할 거예요?”

“아직 교습이 끝난 것도 아닌데 뭔 샤워야... 빨리 이쪽으로 와...”

“수건 있어요?”

“있긴 한데... 아직 안 끝났다니까...?”

“알았어요.”

시종일관 능글맞은 내 태도에, 렌카의 입이 다물렸다. 피할 수 없을 것 같다고 직감했는지, 더 이상 따져오지 않고 애꿎은 바닥을 발로 차면서 이쪽을 흘끔흘끔 보고 있다.

대련할 때는 여장부 같더니 지금은 초야를 치르는 귀족영애 같다. 그 갭이 무척이나 꼴린다고 생각한 나는, 애꿎은 죽도를 허공에 휘두르며 시간을 때우는 렌카에게 다가가 팔로 그녀의 허리를 둘렀다.

“햣!?”

이후 깜짝 놀라선 몸을 크게 튕기는 그녀의 도복 겉끈을 스르륵 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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