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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코미디를 망가뜨리는 법-283화 (282/313)

Chapter 283 - 목격

“그래서 여긴 어떻게 하냐면...”

샤프를 들고 열심히 설명을 하던 미유키의 고개가 돌연 테츠야에게로 향했다. 시종일관 집중을 못하는 것 같은 놈의 모습을 본 그녀가 말했다.

“테츠야 군.”

“.....”

“테츠야 군...!”

“.... 어? 어?”

미유키가 엄한 목소리를 내자 그제야 정신을 차리는 테츠야. 입을 살짝 벌린 채 띨빵한 얼굴을 한 그가 대답했다.

“불렀어?”

생각할 거리가 많은 듯하기도 하고... 진짜로 졸린 것 같기도 하다. 보면 볼수록 참 알 수가 없는 놈이다. 알아갈 마음 같은 건 전혀 없지만 말이다.

“방금 내가 뭐라고 했게?”

장난기가 섞여있는 미유키의 물음에, 테츠야가 자신의 옆머리를 벅벅 긁었다.

“방금...? 그... 답이 3번이라고?”

“전혀 아닌데.”

“그, 그래...?”

“아까부터 왜 이렇게 정신을 못 차리는 거야?”

“미안... 졸려서... 집중할게.”

기지개를 편 테츠야가 팔을 가슴께까지 세우고 몸을 좌우로 돌렸다. 테이블 가장자리에 잔이 놓여있는 건 알긴 하는 건가? 왠지 쏟아질 것 같다.

툭.

라고 생각하던 찰나, 테츠야의 팔꿈치가 잔을 건드렸다. 기우뚱하더니 테이블 아래로 떨어지려는 잔.

우려가 현실이 되었음을 직감한 나는, 미유키의 시선이 기울어지려는 잔으로 향하는 사이 냅다 팔을 뻗었다. 그리고는 잔의 몸뚱이를 덥석 잡아챘다.

“마, 마츠다 군...! 괜찮아?”

기함을 하는 미유키. 테츠야가 주문한 것이 아이스가 아닌 일반 커피인데다, 내 손에 일부 쏟아진 상황이었기에 화상을 입었을까 걱정스러운 모양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커피가 나오고 시간이 꽤나 지난 시점이었기에 아주 약간 뜨겁다는 감각 외엔 느껴지지 않았다. 미유키에게 괜찮다고 말해보인 나는 있는 티슈를 죄다 갖고 와 테이블은 물론, 책에 일부 스며든 음료의 흔적을 닦아내었다.

“조심해라.”

열심히 손을 놀리며 책을 닦아내는 내 말에, 움찔한 테츠야가 사과를 했다.

“미, 미안하다.”

내가 테츠야를 증오하는 건 사실이긴 하지만, 저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멘탈이 나간 상황이든 아니든 비몽사몽한 상태였다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생활적 실수인데다, 사과 또한 진정성이 느껴졌기에 딱히 뭐라 할 생각은 없었다.

“둘 다 정말 미안.”

실수한 건 그렇다 쳐도 자신으로 인해 벌어진 일이면, 사과만 하지 말고 휴지를 갖고 오려는 시늉이라도 해라. 저놈한텐 저래서 정이 안 간다니까. 착한 척은 다 해놓고 사실은 지가 제일 이기적이다.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옷에 안 묻었어?”

“어? 응...”

“다행이네.”

미유키 또한 테츠야를 나무랄 생각은 없는 듯 방긋 웃었다. 이후 뻘줌해하는 테츠야에게 한 번 더 괜찮다고 말해주더니, 카운터에서 물티슈와 티슈를 가져와 바닥에 묻은 커피의 흔적을 닦았다. 그러더니 돌연 내 손목을 붙잡고 자신의 가슴께로 당겨와 새 물티슈로 닦아주기 시작했다.

“화장실 가서 찬물에 손 담그고 와. 나는 커피 다 닦고 뒷정리 하고 있을게.”

“화상 입은 것도 아닌데 귀찮게 뭐하러 가냐?”

“말 들어, 바보야.”

물에 씻으면 그만인데 손가락을 하나하나, 정성스레 닦아주는 그녀. 타박하는 말투조차도 애정이 가득 묻어나와 있어서, 날 생각하는 마음이 드러나는 게 느껴져 기쁘다.

“알았다.”

“얼른 다녀와.”

손을 나름 꼼꼼하게 닦아준 미유키가 마치 말을 잘 듣지 않는 어린아이를 달래듯, 자리에서 일어난 내 엉덩이를 톡톡 두드렸다. 내가 많이 하던 행동인데, 그새 배웠나보다.

그나저나 왜 미유키가 이런 스킨십을 하면서까지 내게 애정을 드러내는 걸까? 아무리 우리 사이를 숨길 마음이 없어졌다고는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민감하게 여기는 엉덩이를 두드렸다는 건 예상외다.

혹시 테츠야가 미유키 자신에게 관심이 있다는 걸 알아서 마음을 접으라 표현하는 건가? 아니면 렌카가 날 대할 때의 행동을 의식해서?

둘 다 아닌 것 같다. 미유키가 이런 행동을 하는 이유는 분명히 내게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참을성 따윈 전혀 없는 불량학생이었던 내가, 이런 것쯤은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던 것이 기특해서겠지.

화장실로 가면서 슬쩍 테츠야의 얼굴을 살펴보니, 굉장히 구겨져있었다. 표정관리가 아예 안 되는 수준. 금세 평범한 표정으로 돌아오긴 했지만, 미유키의 행동이 멘탈을 상당히 긁었던 듯하다.

이제는 미유키가 나와 만나고 있다는 걸 완전히 알아차렸는데, 어떤 반응을 보여주려나? 미유키에게 마음이 있는 상태에서도 렌카에게 집적거렸던 걸 보면, 질질 짜지는 않을 것 같긴 하다.

**

미유키가 바랐던 공부는 얼마 못하고 흐지부지되었다. 테츠야가 도저히 집중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커피 쏟은 일이 그렇게 신경 쓰여?”

결국 책을 덮어버린 미유키의 물음. 그에 찔끔한 테츠야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으, 응...? 맞아.”

그렇다고 수긍은 하지만, 누가 봐도 실연당한 사람의 모습이다. 그런 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미유키가 피식하더니 말했다.

“오늘 어렸을 때 모습을 자주 보여주는 것 같네?”

“어렸을 때?”

“응. 그때의 테츠야 군은 실수를 하면 지금처럼 안절부절 못했잖아.”

“그, 그랬나...? 기억이 잘 안 나.”

“이해해. 원래 자기 자신의 어린 시절 모습은 남들이 더 잘 기억하는 법이라잖아.”

“아, 그런 것 같기도 하네. 나는 내 어린 시절이 잘 기억나지 않지만, 네 어린 시절이 어땠는지는 지금도 선명하니까.”

미유키가 옛날 추억을 꺼내자 공감대라도 형성된 줄 알았는지, 금세 활발해지는 게 어이가 없다. 미유키는 추억에 젖은 게 아니라 그저 위로를 하고 있을 뿐인데 말이다.

“그럼... 오늘 공부는 여기까지만 하자. 보충은 내일 할까?”

그건 아니 될 말이다.

“내일은 안 한다고 약속했잖아. 왜 깨냐?”

“그건 두 사람 모두 집중을 했을 때의 조건이었지.”

“그런 얘긴 없었어. 오늘 공부하면 내일은 쉬겠다고만 했지.”

“기억이 안 나는데 어떡하지?”

뻔뻔한 거 봐라. 아까 엉덩이를 두드린 것도 그렇고, 진짜로 내게서 옮은 것 같다. 기가 찬 듯 헛웃음을 치자, 깔깔거린 미유키가 한손을 내저었다.

“농담이야. 그래도 오늘 제대로 못한 건 사실이니까, 문제집 사진 찍어서 각자 풀어. 그 다음 나한테 검사 받아.”

막말로 공부에 집중을 못한 건 내 탓이 아닌데... 잔인하구나. 그래도 미유키답다.

“그렇게까지 해야 되냐?”

“응. 테츠야 군도 좋지?”

테츠야를 바라본 미유키의 사근사근한 물음에, 그가 얼떨결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어? 나야 뭐... 상관없어.”

“그럼 그렇게 결정된 걸로 하고... 조금만 쉬었다가 갈까? 음료 각자 하나씩만 더 시키자. 뭐 먹을래?”

“난 괜찮아. 아까 디저트까지 먹었더니 배불러서.”

“그래? 알았어. 나는 말차 라떼로 할 테니까 마츠다 군은 체리 에이드로 마셔.”

두 사람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내가 반박했다.

“왜 나한텐 선택권을 안 주냐?”

“내가 중간중간에 뺏어먹고 싶어서. 혹시 다른 마시고 싶은 거 있어?”

“아니.”

“거 봐. 마츠다 군이 아무거나 마시겠다고 할 게 분명했으니까 내가 고른 거야.”

“방금은 중간중간에 뺏어먹고 싶다며.”

“여기 카드 줄게.”

아무 말이나 하다가 불리해지니 화제를 돌리는 게 웃기다. 실소를 터뜨린 나는 됐다고 말하며 카운터로 향했다. 그러자 렌카와 담소를 나누고 있던 치나미가 웃는 낯으로 날 맞이했다.

“티슈 더 드릴까요?”

“티슈?”

“바닥에 커피를 쏟은 게 아니었나요? 제가 닦는다고 말씀드렸는데 하나자와 후배님께서 한사코 거절을 하셔서 걱정하고 있던 참이에요.”

“아... 그건 잘 해결됐습니다. 깨끗하게 닦았어요. 지금은 음료를 주문하려고요.”

“그러신가요? 어떤 음료로 드릴까요?”

“말차 라떼랑 체리 에이드요.”

“복숭아 아이스티는 안 드시나요?”

내가 주문을 하러 올 때마다 저러더니, 어김없이 같은 말을 하고 있다. 치나미가 슬슬 서운해하는 것 같은데... 잘 달래줘야겠다.

“좀 있으면 갈 생각인데, 그때 두 잔 시킬게요.”

“앗, 알겠어요. 그나저나 공부가 벌써 끝났나요?”

“예.”

“왜일까요?”

“그냥 뭐... 정신이 산만해져서 그런 거죠.”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며 계산을 마친 내가 자리로 돌아가려는데, 치나미에게 양해를 구한 렌카가 돌연 날 불렀다.

“기다려.”

“왜요?”

“.... 그...”

머뭇거리는 렌카. 구석 자리와 치나미를 곁눈질한 그녀가 날 바라보며 고개를 까딱거렸다. 탈의실 근처로 오라는 뜻. 뭔가 할 말이 있는 모양이었다.

탈의실 문을 열고 들어간 렌카를 바짝 뒤따라간 나는, 그녀가 팔짱을 낀 채로 날 노려보자 어깨를 으쓱였다.

“왜? 사탕 줄까요?”

심각했던 렌카의 얼굴이 순식간에 황당하게 물들었다.

“.... 갖고 왔어 그걸?”

“갖고 왔지. 보여줘요?”

바지 주머니로 손을 집어넣자, 그 안에서 포장지 특유의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들은 렌카가 기겁을 하더니 날 막았다.

“아, 안 먹어...!”

“그럼 다음 출근 때 두 개 줄게요.”

“안 먹는다고 했어. 그리고 줄 거면 넌 내일까지 휴무니까 오늘 거, 내일 거, 모레 거까지 세 개를 줘야지. 머리가 그렇게 안 돌아가?”

“세 개 먹고 싶어요?”

“아니... 그게 아니라 네 머리가 나쁘다고 하는 거잖아.”

“알았어요. 세 개 줄게. 저번처럼 아침, 점심, 저녁 나눠서 주면 되죠?”

“아이 씨...! 안 먹는다니까...!”

“그렇다고 치고, 왜 불렀는데?”

그 말에 내게 휘둘리던 렌카가 다시금 분위기를 잡았다. 잠깐 날 지그시 쳐다본 그녀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야.”

“말해.”

“.... 난 봤어.”

“뭘요?”

“하나자와가 너한테... 그거 한 거...”

‘그거’라고 뭉뚱그려서, 아리송하게 말했지만 렌카의 의미는 명확했다. 그녀는 미유키가 내 엉덩이를 두드리는 걸 보고, 그에 대한 일을 캐묻고 있는 것이었다. 잘 봤구나. 구석 테이블을 자주 살피던데 못 보는 게 이상하긴 하다.

“그게 뭔데요?”

“모르는 척하지 마...! 너네 일반적인 친구 관계 아니지...?”

저렇게 말할 줄 알았다. 렌카는 내가 치나미와만 만나고 있는 줄 아는 상태였으니까. 갑작스런 미유키의 스킨십이 무척이나 혼란스러웠겠지.

일단 렌카가 그 장면을 본 건 내가 원하는 바였다. 여기 오면서 생각했던 목표 중에서 하나는 달성했다. 자, 이제 어떡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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