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러브 코미디를 망가뜨리는 법-286화 (285/313)

Chapter 286 - 처벌 #2

“많이 컸네요. 도망도 가려고 하고.”

“도망이 아니라... 화장실...”

“내려놔.”

“어...?”

“그거 내려놓으라고.”

렌카의 목젖이 크게 꿀렁이면서, 꼴깍거리는 소리가 났다. 쇼핑백을 계단창 구석에 고이 내려놓은 그녀는, 마치 잘못을 저질러 처분을 기다리는 노예처럼 안절부절 못하며 한쪽 손으로 늘어져있는 반대 팔의 팔꿈치를 잡았다.

“왜 도망가려고 한 건데?”

그런 렌카의 코앞까지 얼굴을 들이민 내가 추궁을 시작하자, 그녀가 아랫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그, 그야... 여기서는... 사람들이...”

“들킬까봐?”

“당연한 거 아니야...? 대체 머리에 뭐가 들었길래 여기서 하려고 하는 건데...?”

“하고 싶으니까.”

“미, 미친 새끼...! 너는 세상이 네 마음대로 쉽게 살아갈 수 있는 곳인 줄 알아...? 상식이란 걸 좀 가져봐...!”

방금 말투는 뭐지? 선생님이 학생을 강하게 훈육하면서 하는 충고 같다. 코웃음을 친 나는 재차 렌카의 바지허리에 손을 올렸다. 그러자 희번덕거리는 눈으로 날 노려본 그녀가 경고했다.

“풀기만 해... 진짜 죽을 줄 알아.”

허세부리기는... 포식자에게 잡아먹히기 직전의 뭣도 없는 피식자가 마지막 발악으로 꽥꽥거리는 것 같아서 하나도 안 무섭다.

렌카의 경고를 무시하며 단추를 툭 풀자, 그녀의 몸이 움찔했다. 지퍼를 내릴 땐 눈에 띄게 불안해하며 혹시라도 사람이 있나 주변을 두리번거렸고, 바지를 골반에 걸칠 정도로 내렸을 때는 발을 동동 굴러댔다.

“야...! 하지 말라니까...!”

내 팔을 팍! 하고 치는 렌카. 이런 장소에서의 관계가 은근히 기대되기는 하지만, 누구에게 들킬까봐 무척이나 우려스러운 것 같다.

“하지 마요?”

“어...! 시도 때도 없이 이러지 좀 마...!”

“할 건데.”

“그럴 거면 왜 물어보고 지...”

“왜 욕하려고 해요?”

“.... 아이 씨... 너 때문이잖아...! 네가 자꾸 화나게 하니...”

짜아악-!

“흐아아악!?”

투덜거리다가 엉덩이를 맞으니 기함을 하는 게 웃기다. 손바닥 스팽킹으로 렌카의 입을 다물게 한 나는, 그녀가 입고 온 팬티 색깔을 보았다. 골반에 걸쳐진 바지 위로 검은색의 팬티끈이 보인다. 속옷마저도 검구나. 렌카의 음흉하고 시커먼 속내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아파...!”

맞은 부위에 손을 가져가 싹싹 비비며 눈에 쌍심지를 켠 렌카가, 바지를 벗고 있는 날 보더니 다급하게 말했다.

“잠깐만...! 마츠다...! 내 말 좀 들어봐!”

“말해.”

“우리 샤워도 안 했고... 누가 보고 신고라도 하면... 경찰이 올 수도 있어... 그러니까 조금만 더 생각해보고...”

“누가 여길 온다고? 높은 층인데다 엘리베이터도 여러 대인데?”

“부, 불량한 애들이 담배 피우러 올 수도 있잖아...”

“그런 애들이 피규어 매장이 깔려있는 층에 올 것 같진 않은데.”

“그건 편견이야...!”

“그래도 다른 층보다 가능성은 확연히 낮잖아요.”

“.....”

무엇을 말하든 내 의지는 변함없으리라고 생각했을까? 할 말이 없어져 눈동자만을 데구르르 굴리던 그녀가, 바지를 내리려고 하는 내 손목을 덥석 붙잡았다.

“자, 잠깐!”

“왜 또.”

“.... 귤.”

“뭐?”

“귤...! 귤이라고...!”

“어쩌라고?”

“이, 이런 플레이를 진심으로 멈추고 싶을 때 정해놓은 세이프 워드잖아...! 지금 네 이런 강압적인 면모도 BDSM에 포함되는 건 알지...? 도미넌스인가 도미넌트인가 그거...!”

“BDSM 플레이라는 건 일종의 역할극인데, 지금의 부장은 그 역할극을 하지 않는 것 같은데요. 그래서 무효입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진짜 BDSM이 뭔지 보여줘요?”

“.....”

내가 눈을 빛내자 흠칫하는 그녀. 침까지 꼴깍 삼킨 그녀가 주먹을 꽈아악 쥐더니 물었다.

“꼬, 꼭 여기서 해야겠어...?”

“정 껄끄러우면 반성해봐요.”

“반성...?”

“아까 도망치려고 해서 미안하다고,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말해요. 그럼 봐줄게.”

“.... 진짜로?”

“예.”

렌카의 시선이 내 눈으로 향했다. 진의를 파악해보려는 듯 가라앉은 눈빛으로 날 쏘아보던 그녀는, 이내 자신의 바지를 올리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내, 내가 잘못했어... 다신 안 도망갈게...”

반응이 무척이나 귀엽다. 당장에라도 품에 안고 싶지만, 교육은 여기서 끝내면 안 되지. 단호히 고개를 가로저은 내가 말했다.

“존댓말로.”

“읏... 시, 싫어...! 애초에 내가 왜 너한테 사과를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

짜악-!

“햐앙!? 흡...!”

또 다시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스팽킹을 당한 렌카가 온몸을 크게 튕기더니 자신의 입을 콱 틀어막았다. 계단을 울릴 정도의 목소리로 신음을 내뱉은 터라, 누군가가 들었을까 걱정스러운 모양이었다.

툭.

그런 렌카의 골반을 살짝 건드리자,

“햣...!?”

신음 같은 탄성을 터뜨린 그녀의 몸이 정전기라도 온 사람마냥 부르르 떨렸다. 반복적인 학습을 통한 두려움의 각인... 이라고 하기엔 너무 거창하고, 그냥 굉장히 예민한 상태라 저러는 건가보다.

“존댓말.”

“.... 싫어.”

또 한 차례 거절의 의사를 밝힌 렌카에게 인상을 구겨보인 나는, 새침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녀의 입술에 키스를 하고는 혀를 밀어 넣었다.

“후읍...!”

돌발적인 행동에 깜짝 놀란 렌카의 입 안을 탐하며, 나는 카페 탈의실에서 종종 했던 것처럼 그녀의 다리 사이에 내 다리를 들이밀었다.

쿵-!

그와 동시에 둔탁한 소리가 나더니, 무릎에서부터 얼얼한 고통이 느껴졌다. 고압적인 척을 하느라 다소 강하게 다리를 밀었는데, 무릎이 벽에 세게 부딪쳤기 때문이었다.

그냥 살짝 할 걸... 너무 아프다. 하지만 참자. 렌카의 떨림이 강해진 것을 보니 효과가 있는 것 같았으니까.

나는 렌카의 검은 목티 자락을 젖혀, 그 안으로 손을 넣었다. 이후 부드러운 허리라인을 쓰다듬듯이 만져대자, 순종적으로 혀를 받아들이고 있던 렌카가 안간힘을 쓰며 내 몸을 밀어냈다.

“으읍...! 그, 그만...!!”

“왜 또.”

“여기서 이런 거 하지 마...”

입술에 묻어있는 내 타액을 스스로 핥으며 고개를 젓는 렌카. 자신의 행동을 인지하지 못한 것 같은데, 방금 제 자신이 엄청 섹시했다는 것을 그녀는 알까?

“그럼 똑바로, 공손하게 사과해요.”

“.....”

“얼른.”

“자, 잘못...”

치욕스럽기 그지없는 얼굴로 입을 우물거리는 모습이 왜 이렇게 예쁠까. 한쪽 입꼬리를 올린 나는 모기만도 못한 목소리로 우물쭈물하는 렌카의 골반을 한 차례 더, 약한 힘으로 때렸다.

파앙-!

“햣!?”

“안 들려.”

“.... 잘못... 잘못했어요...”

“잘못했어?”

자신은 존댓말을 하는데 나는 반말로 받아치는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까? 렌카가 눈에 힘을 빡 주며 날 노려보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내가 엄한 눈으로 그녀를 내려다보자 이내 기가 죽었는지 시선을 피했다.

“.....”

“잘못했냐고.”

“.... 네... 잘못했다고 했잖아요...! 다시는... 안 그럴게... 요...”

굉장한 모멸감을 느낀 듯 화를 내긴 했고, 말까지 더듬긴 하였으나 이 정도면 충분히 만족스럽다. 훌륭한 마조노예가 될 자질이 보여.

기꺼운 듯 고개를 끄덕인 나는 말투를 나긋하게 바꾸며 렌카를 칭찬했다.

“잘했어요.”

그에 두 눈을 끔벅인 렌카가 조심스레 물었다.

“끝났냐...? 이제 됐어...?”

“됐어요.”

“그래... 이 개새끼야. 죽어.”

“왜 그렇게 심한 말을 해요?”

“네가 심한 짓을 한 건 왜 쏙 빼먹고 난리야?”

“그렇게 싫었어요?”

“.....”

입을 다물고 고개를 홱 돌려버리는 렌카. 싫은 건 아니었나보다.

렌카의 반응에 픽 하는 실소를 터뜨린 나는, 삐친 채로 바닥에 놓인 쇼핑백을 집어드는 그녀의 허리에 팔을 두르고 내 품으로 당겨왔다.

“하지 마...! 안 한다고 했잖아...!”

내가 또 이상한 짓을 한다고 생각한 듯한 렌카의 반발. 나는 렌카의 등허리를 일정한 리듬으로 부드럽게 토닥거리며 그녀를 진정시켰다.

단순한 포옹만을 하겠다는 의지가 전해졌을까? 내게서 벗어나려던 렌카의 몸이 안정을 되찾고 순해졌다.

“쓰, 쓰레기 같은 새끼...”

애교가 살짝 섞인 목소리로 욕을 내뱉는 건 덤. 역시 노예교육에는 채찍과 당근이 가장 좋은 효과를 발휘한다고 생각한 내가 말했다.

“잠깐 이렇게 있다가 나가요.”

“.....”

“대답.”

“아, 알았어... 앗!? 엉덩이 만지지 마...!”

“그래, 그래.”

“만지지 말라니까! 죽인다...!?”

“알았다고.”

“알았다고 하면서 왜 계속... 핫...!”

렌카가 신은 롱부츠의 굽이 살짝 들렸다. 가랑이 사이를 우악스럽게 움켜잡으며 그 가운데에 손가락이 닿으니 쾌락을 살짝 느낀 모양. 어느새 내 가슴팍에 자신의 얼굴을 묻은 그녀를 만지작거리며 애무를 하던 나는,

덜컥.

한 2층 정도 아래에 있는 비상구 문이 열리는 소리에 화들짝 놀란 렌카가 내 몸을 밀어내자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거, 거봐...! 누가 올 것 같다고 했잖아...!”

“안 들켜.”

“안 들키긴 뭐가 안 들켜...! 여기서 했으면 공연음란죄 같은 걸로 경찰서 갈 뻔했어...! 다시는 이런 곳에서 한다고 하지 마...!”

나름 속닥거린답시고 소리를 낮추며 날 나무라는데, 다 들리겠다. 노발대발하는 렌카의 이마에 조용히 키스를 해주는 것으로 스킨십을 마무리한 나는, 포옹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듯 비틀거리는 그녀를 부축하며 비상구를 나갔다.

다음에는 진짜로 넣어야지.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