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91 - 개학 #2
“므음... 후배님... 자꾸 그러시면 뺨이 떡처럼 늘어나버리고 말겠어요...”
집게손가락으로 치나미의 뺨을 잡아당기던 나는, 그녀의 쑥스러운 목소리를 듣고 손을 놓아주었다. 하지만 스킨십이 아예 끝난 건 아니었다. 치나미에게 어깨동무를 한 채로 목을 살살 간지럽히자, 기분이 이상해진 듯한 그녀가 좌석에 등을 깊게 파묻었다.
“후아... 복숭아... 드실래요...?”
“하나 남았잖아요. 스승님 드세요.”
“후배님께 드려도 괜찮은데요...”
“나중에 먹을게요.”
“앗, 네에... 그러면 이건 어떠신가요...?”
내게 붙들린 채로 좌석 안에 놓아둔 검은 비닐봉지에서 자그마한 페트병 하나를 꺼내는 치나미. 분홍색의 귀여운 포장지로 감싸진 [젤리뿌요]라는 음료였다. 복숭아 젤리가 들어있는 것 같은데... 치나미답다. 그녀가 내미는 음료를 받아든 내가 말했다.
“역시 우리 스승님은 마음씨가 너무 착하네요. 누구랑은 다르게.”
“그 누구가 누구인가요...?”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한 번 맞춰보세요.”
“으으음...”
깊은 고민에 빠진 치나미와 말랑말랑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옆에서 내 말을 듣고 발끈한 렌카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화법이 엄청 졸렬하네. 쓰레기 아니랄까봐.”
마음대로 말해라. 나중에 다 받아내면 되니까. 렌카의 투덜거림을 상큼하게 무시한 나는, 치나미가 내민 복숭아를 먹으며 씨익 웃었다. 그러자 배알이 꼴렸는지, 렌카가 아랫입술을 잘근 깨물며 내게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올렸다.
“어허...! 친우님...! 그런 제스처를 취하시면 어떡하시나요...! 게다가 쓰레기라니요...! 어떻게 사람한테 그렇게까지 심한 말씀을 하실 수 있으신가요?”
그러다 치나미에게 들키고는 호되게 혼난 건 덤. 찔끔한 그녀가 시선을 피하는 모습을 보며 속으로 낄낄거린 나는, 계속해서 치나미에게 스킨십을 해나갔다.
“므앗... 후배님...! 지금은 이럴 때가 아닌...”
“왜요.”
“왜냐니요... 공공장소에서 이런 행위를... 심지어는 밀폐된 곳도 아닌데...”
“그럼 여기선 이쯤하고, 버스에서 내리고 부실에 잠깐 들러서 마저 할까요?”
“낫...!? 아니요...? 부실에는 부원들이 많을 텐데요...? 씻고 뒤풀이를 가야하니까요...”
“그런가요? 그럼 돌아갈 때 연락해요. 태워줄게요.”
“네? 후배님은 뒤풀이를 안 가시나요?”
“예.”
“어째서일까요?”
“일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감독한테도 말씀드려놨어요.”
“아하... 아쉽게 되었네요.”
치나미가 수긍을 하며 안타깝다는 탄성을 터뜨리자, 렌카가 어김없이 훼방을 놓았다.
“일은 무슨... 그냥 귀찮으니까 쉬고 싶은 거겠지.”
작은 목소리로 나눈 이야기인데 전부 알고 있는 것도 모자라 치나미의 표정까지 알고 있는 것으로 보아, 우리의 애정행각을 유의 깊게 봤던 것 같다. 관심 같은 건 없는 척해놓고 신경을 쓰고 있다니... 역시 변태답다.
“왜 시비 걸어요?”
“사실을 말한 것뿐인데?”
“전혀 아닌데?”
“유치하네.”
“이게 뭐가 유치해?”
“그냥 유치했어요.”
“억지 부리지 말지?”
“억지는 부장이 부리고 있는 거 아닌가?”
“.....”
계속 말해봐라. 어떻게 되나. 라는 눈빛으로 렌카를 쳐다보자, 그녀가 움찔하더니 시선을 돌렸다.
순식간에 쭈글쭈글해진 그녀의 태도에 실소를 터뜨린 나는, 나와 렌카를 번갈아 쳐다보며 보기 좋다는 미소를 짓고 있는 치나미의 옆머리를 살살 쓰다듬었다.
“왜요?”
“사이좋게 지내시는 모습이 보기 좋아서요.”
지금 대화를 듣고 사이가 좋아 보인다는 생각을 했다고? 하긴, 미운 정이 든 친구끼리 다투는 것처럼 보일 것 같긴 하다. 뭐가 됐든 치나미가 저렇게 생각해준다면 고마운 일이다. 두근두근 마사지 시즌3... 조만간 시작해야겠지?
**
다음날 아침. 개학을 코앞에 두고 빈둥거리던 나는, 미닫이 창문이 열리면서 미유키가 모습을 빼꼼 드러내자 상체를 일으켰다.
“뭐야? 언제 왔냐? 대문 열리는 소리도 안 들렸는데.”
“열려 있던데? 운동 같은 거 하고 방금 들어온 거 아니야?”
“아니? 어제 저녁부터 집에 계속 있었는데?”
“뭐야...? 그럼 어제 저녁부터 대문을 열어놓고 있었다는 뜻이야? 잘 때도?”
“그런가보네.”
대수롭지 않은 말투에 엄청난 황당함을 느꼈는지, 미유키가 기가 찬 듯 헛웃음을 쳤다.
“대체 어떻게 그렇게 태평할 수가 있어? 도둑 들었으면 어쩌려구?”
“안 들었잖아. 여기 치안 좋아.”
“.... 진짜 웃기지도 않아서 말이 안 나오네... 그거 안전불감증이야. 알아?”
“알아.”
“아는데 왜 대문을 열어놓냐구. 하... 어쨌든 대회 수고했어. 제복은 안 다려놨지?”
“어.”
“그럴 줄 알았어. 다려줄 테니까 단정하게 입고 가.”
아아... 가정적인 미유키... 너무 좋다. 미유키의 알뜰한 모습에 헤실거리고 있던 나는, 이어지는 그녀의 말에 미간을 구겼다.
“옮기는 거 도와줘. 다리미판 갖고 왔더니 힘들어.”
“갖고 왔다고? 그걸?”
“응.”
“어떻게?”
“엄마가 태워다줬어.”
“아주머니가? 그런 일이 있으면 나한테...”
“연락하라고 한 거 아는데, 그냥 왔어.”
내가 뭐라 할지 예상하고는 잽싸게 말을 이어받는 미유키. 할 이야기가 없어진 나는 입맛을 찹찹 다시다가 미유키를 나무랐다.
“무슨 다림질할 것들 가져온답시고 그러냐. 나 집에 있는데 전화를 하지.”
“마침 엄마도 나간다길래 태워달라고 한 거야.”
“그래도 다음부터는 전화해.”
“알았어.”
“제발 좀 그래라.”
“응.”
대답은 똑바로 하고 있지만 눈을 하도 땡글땡글하게 뜨고 있어서, 한 귀로 흘리는 건지 경청하는 건지 가늠이 안 된다.
“내 말을 듣고 있긴 하는 거지?”
“듣고 있어. 마츠다 군이야말로 대문이나 잘 잠가.”
미유키의 반격에 말문이 턱 막혀버린 나는 대문으로 나가 다리미판을 들고 들어오려고 했다. 그때 익숙한 차가 문 앞에 서자 눈을 동그랗게 뜨며 허리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아주머니.”
“안녕, 마츠다 군. 검도대회 참가했다면서?”
“예.”
“MVP 트로피까지 탔다던데, 축하해.”
어제 미유키가 내 연락을 받고 다 말했나보다. 미래 남편의 잘난 모습을 부모님에게 자랑하는 것 정도는 자연스러운 일이긴 하지.
“감사합니다.”
“요새는 집에 자주 오지도 않고 서운하네?”
“그... 죄송해요.”
무안해진 내가 옆머리를 긁자, 미도리가 입가를 가리며 웃더니 물었다.
“미유키는 집에 있니?”
“있어요. 부를까요?”
“아냐. 이것만 좀 전해줄래?”
미도리가 조수석 시트에서 무언가를 집어 내밀었다. 그건 미유키의 휴대폰이었다. 미유키가 내리면서 주머니에 있던 게 떨어졌던 모양. 휴대폰을 받아든 나는 다시금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갈게. 재미있게 놀아.”
“예. 미유키는 늦지 않게 보낼게요.”
“응.”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손을 흔든 미도리는 곧 차를 몰고 떠났다.
딸과 결혼하지도 않은 남자친구 집에 찾아와서 이토록 자연스러운 행동을 하는 게 흔한가? 다리미랑 판을 직접 옮겨다준 것도 그렇고... 나는 미유키의 첫 남자친구라서 보수적일 법도 한데...
어쩌면 미유키의 은근한 무대뽀 기질을 알고 있어서 자포자기했을 수도 있겠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마인드가 조금 많이 오픈되어있는 것 같다.
이러면 미도리도 공략하고 싶어지잖아. 자꾸 여지를 주니까 아랫도리에 피가 확 몰리면서, 미도리를 향한 충동이 커진다. 농염한 그녀와의 관계를 상상하니 상상만 해도 꼴려서 미쳐버릴 것 같다.
자신의 가슴으로 내 것을 파이즈리해주다가, 검지를 세워 손톱으로 귀두를 콕콕 찔러주면서 자극을 주고, 혀끝을 앞뒤로 움직이며 강제로 허여멀건한 액체를 빼내려는 그녀... 사정감이 찾아온 내가 움찔거리자, 외설적인 눈웃음을 치고는 귀두 밑부분에 혀를 대어놓고 입을 앙 벌리는 모습...
그저 이런 간단한 생각만 했는데도 정신이 아득하게 나가버리는 기분이다. 와타루에겐 정말정말 미안하지만 비밀스런 파트너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아니다. 참자... 참아야한다. 스멀스멀 올라오는 악의 유혹을 정의로운 마음으로 억누른 나는 다리미판을 번쩍 들어 집으로 옮겨놓았다. 그리고는 어느새 내 옷으로 갈아입은 미유키에게 휴대폰을 건넸다.
“이거 놓고 갔어.”
“내 거네? 땅에 떨어져있었어?”
“아니. 아주머니가 오셔서 갖다 주라고 하시던데.”
“아 진짜? 엄마 다시 왔었어?”
“어.”
“고마워. 다리미판은 TV 옆에 설치해줄래?”
미유키도 미도리가 우리 집에 왔었다는 걸 딱히 쑥스러워하는 눈치도 아니다. 이젠 완전히 부부처럼 된 것 같은 느낌이라서, 오히려 내 기분이 묘해진다. 렌카와 치나미와의 관계도 이 정도로 발전해야 마땅한데... 지금보다 더 적극적으로 나서볼까 싶다.
“지금 다리려고?”
“응. 아, 그리고 나 내일 아침 일찍 나가서 정문 지켜야 돼.”
“왜 지키는데?”
“학생들이 제복 제대로 입었나 확인해야 하거든. 지각생이 있는지 없는지도 살펴야하니까 마츠다 군은 시간 맞춰서 와.”
그렇다면 저번처럼 체육관 창고 안에서 이런저런 일을 해볼까? 이런 내 생각을 알아차렸는지, 미유키가 딱 잘라 말을 이었다.
“이상한 생각 하지 말구.”
“아쉽네. 근데 나 혼자 가라는 거냐?”
“심심하면 테츠야 군이랑 같이 오면 되지.”
“그건 싫은데.”
“왜?”
“차에 남자 태우기 싫으니까.”
“.... 정말 어지간하네...”
질렸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은 미유키가 장롱을 열더니, 걸려있는 내 와이셔츠를 꺼냈다. 이후 능숙한 솜씨로 다리미판에 셔츠를 올려놓고 다리미의 전원을 켰다.
“도와줄까?”
“아니.”
“왜.”
“다림질에 도와줄 게 어디 있어? 괜찮으니까 가만히 있어.”
“심심한데.”
“영화 볼 거 있나 찾아봐 그럼.”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