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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코미디를 망가뜨리는 법-294화 (293/313)

Chapter 294 - 스팽킹에 적응되어버린

“그럼 안녕히 가세요! 다음에 뵐 수 있으면 또 봬용!”

히요리의 힘차고 발랄한 작별인사. 다소 경망스럽게 양손을 흔들려는 그녀를 말린 친구가 허리를 꾸벅 숙였다.

“안녕히 가세요, 선배.”

그러자 미유키가 어색하기 그지없는 미소를 지으며 가슴께에서 손을 흔들었다.

“네, 그래요. 다음에 또 봬요.”

그렇게 멀어지는 히요리를 본 미유키가 돌연 한숨을 내쉬었다. 근심이나 설움이 있어서가 아니라, 히요리의 높은 텐션에 지쳐서 저러는 것이었다.

“되게... 뭐라고 해야 하나... 태풍이 지나간 것 같은 느낌이야.”

그녀와 만났던 감상을 중얼거리는 미유키.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지쳤다는 표현을 한 그녀가 날 불렀다.

“마츠다 군, 아사히나 양이랑 면식이 있었나보네?”

미유키가 ‘양’이라는 요비스테를 쓰는 건 처음 본다. 히요리의 면전에서 저렇게 부르지는 않을 테지만, 은근히 올드한 느낌이 남과 동시에 어울리는 것도 같다.

“카페 알바할 때 몇 번 왔었어. 네가 말한 수학책 사러 갔을 때도 서점에서 만났고.”

“그렇구나... 가까운 데 사나?”

가깝지는 않다. 그렇다고 먼 것도 아니지만, 미유키와 렌카, 그리고 치나미의 집과 비교해보면 히요리의 집은 가장 외딴 곳에 있었다.

“글쎄. 그건 잘 모르겠네.”

“내가 아까 말했던 되게 예쁜 애가 저 친구였어.”

“그럴 것 같더라.”

“왜 그럴 것 같았는데?”

“앞에서 보니까 치마가 너무 짧더라고.”

“맨날 여자 다리만 보고 다니나봐?”

“이런 건 눈썰미가 좋다고 해야 하는 거지.”

“변태가 아니라?”

“진짜 변태가 뭔지 보여줘?”

“아 뭐래...!”

내 팔목에 자신의 손을 올리는 미유키. 애정 어린 그녀의 손길에 씨익 웃은 나는, 반대쪽 팔에서 기분 나쁜 감촉이 닿자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고 보니 테츠야도 옆에 있었구나. 존재감이 너무 옅어서 까먹고 있었다. 놈과 본의 아니게 부딪쳐버린 내가 말했다.

“미안하다. 고의 아냐.”

“응? 아, 그래... 괜찮아.”

방학 전엔 느낄 수 없었던 소외감이 솔솔 찾아오고 있음을 자각했을까? 테츠야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테츠야는 어떨 땐 어른스러운 것도 같은데, 지금처럼 찐따스러움을 풀풀 풍길 때가 있다. 대체 어느 쪽이 본연의 성격일까. 그딴 건 아무래도 상관없으니까 좀 멀리 갔으면 좋겠다. 러브 코미디는 이제 나 혼자만 즐기고 싶어.

“빨리 줄 서자.”

급식실을 가리킨 미유키의 활기찬 목소리. 그에 내가 대답을 하려는 찰나, 테츠야가 선수를 쳤다.

“알았어. 오늘 메뉴 뭔지 알아?”

“그건 나도 잘 모르겠어. 냄새 나는 거 보니까 조림 같은데?”

“그나마 괜찮네? 네가 좋아하는 생선 나오면 내 거 줄게.”

“응? 아냐. 그럴 필요 없어. 마츠다 군 거 빼앗아먹으면 되니까 괜찮아.”

“.... 그, 그래?”

“응. 테츠야 군은 나보다 훨씬 생선 좋아하잖아. 그러니까 많이 먹어.”

꼬마를 챙겨주듯 오구오구 하는 미유키의 말투. 평소의 테츠야였다면 굉장히 좋아했겠지만, 놈의 얼굴은 지금 펴질 줄 몰랐다. 미유키에게 점수를 따보려 챙겨주는 말을 해보았으나 본전도 못 찾게 되었으니까.

이젠 내가 뭘 하지 않아도 미유키가 알아서 척척 방어를 해주는구나. 테츠야는 슬슬 덜 신경 쓰고, 무시해도 될 것 같다. 생각을 마친 나는 장난스럽게 불만을 터뜨렸다.

“왜 내 걸 뺏어먹어?”

“뺏어먹고 싶으니까.”

“그럼 어쩔 수 없지.”

“응, 어쩔 수 없는 거야.”

“말 따라하지 마라.”

“따라하는 게 아니라 친절하게 대답하는 건데?”

“그럼 됐고.”

어깨를 으쓱인 내 말에 배시시 웃은 미유키가 먼저 줄을 서자며 발걸음을 서둘렀다. 사랑스러운 그녀의 뒤를 따라가던 나는, 테츠야를 슬쩍 보려고 하다가 이내 그만두었다. 방금 생각했듯, 이젠 일부러 저놈의 반응을 보려 하지 말자.

**

“후배님, 후배님. 어서 이쪽으로 오세요.”

오후수업이 끝나고 혼자 부실로 향한 나는, 도복을 입은 치나미가 부실 외곽 구석에서 내게 손짓을 하는 걸 보았다.

“왜요?”

“빨리요...!”

다급한 치나미의 말투를 들은 내가 경보로 가까이 다가가자, 그녀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옆에 있는 자그마한 나무 사이에 쪼그려 앉았다. 그리고는 들고 있던, 예쁘게 포장된 분홍색 떡을 내밀었다.

무심코 그것을 받아든 내가 물었다.

“이게 뭡니까?”

“복숭아 가루를 묻힌 모찌에요. 희귀한 건데 후배님께 드리려고 가져왔어요.”

복숭아 가루를 묻힌 모찌라... 굉장히 달 것 같다. 사람이 있나 없나 확인하면서까지 굳이 이걸 줄 필요가 있었을까? 다른 사람들은 이게 희귀한 건지, 아닌지도 모를 것이거니와, 알아도 딱히 먹으려 들진 않을 텐데... 엉뚱한 치나미답다.

“그렇게나 희귀한 거라면 스승님이 드시지 그랬어요.”

“저는 아까 하나 먹어서 괜찮아요.”

“그래도요.”

“저도 몇 번이고 먹을까 말까 고민했었는데 후배님을 위해서 참은 거예요. 얼른 드셔요.”

마음씨 고운 우리 치나미에게, 모찌를 입으로 건네주고 싶어진다. 포장지를 뜯은 나는 모찌를 한 번에 입 안으로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턱을 우악스럽게 움직이며, 맛이 어떠냐고 눈으로 묻는 치나미를 향해 웃는 것으로 평가를 대신했다.

“후후... 만족하신 것 같아서 다행이군요.”

왠지 내일도 갖고 올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솔직히 맛은 있으나 또 먹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어쩌랴. 치나미가 준 음식에 부정적인 평가는 내리기 싫은데. 내일 갖고 오면 주는 대로 받아먹어야겠다.

입 안에 짝짝 달라붙는 찐득한 모찌를 꼭꼭 씹어 삼킨 내가 말했다.

“이제 일할까요?”

“그럴까요? 후배님께서는 학기 중 부원들이 사용할 호구만 놓아두세요. 진열대 청소는 해놓았지만 후배님의 눈으로 한 번만 더 점검해주시구요.”

“알겠습니다.”

“목이 메어오지는 않나요? 복숭아 우유 드실래요?”

“.... 아뇨. 물 먹겠습니다.”

“어째서일까요?”

“그야... 물은 몸에 중요한 영양소니까...?”

“그렇군요. 납득했어요.”

하마터면 꼼짝없이 복숭아 밭에 빠질 뻔했다. 안도한 나는 탈의실을 점검하겠다는 치나미와 헤어지고 도복을 갈아입은 뒤 보관실로 향했다. 이후 진열대을 면밀히 살피고 있는데,

“야.”

어느새 보관실 문을 열고 들어온 렌카가 날 불렀다. 진열대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내가 대답했다.

“왜.”

“.... 불렀으면 좀 쳐다보기라도 하지? 너 뺨에 모찌 가루 묻은 건 알아?”

뺨으로 손을 가져가니, 과연 렌카의 말마따나 보슬보슬한 분홍색 가루가 손가락에 묻어나왔다. 허리를 펴고 렌카를 바라본 내가 물었다.

“이게 모찌 가루인 건 어떻게 알았어요?”

“나도 먹었으니까. 치나미가 반 잘라서 나눠줬어.”

“역시 스승님은 착하네요.”

“무슨 의미야? 줄 필요도 없는 사람한테 호의를 베풀었다고 날 깎아내리는 거야?”

“피해망상이 또 도진 것 같군요.”

렌카의 방어적인 태도에 혀를 찬 나는, 그녀에게 한걸음 성큼 다가갔다. 거리가 확 가까워지자 움찔하는 그녀. 그런 그녀에게 히죽 웃어보인 내가 포옹을 하자,

“아 좀...! 왜 난리야 또...! 저리 가...!! 꺼져...!”

렌카가 손발을 비롯해 머리까지 마구 흔들며 발버둥을 쳤다. 온몸을 비틀며 내 손길을 거부하는 모습이 약간... 신경쇠약에 걸린 치와와 같은 느낌이다.

렌카를 꽉 붙든 손을 풀자, 내게서 떨어진 그녀가 마치 주변에서 벌이라도 본 사람마냥 발악을 하다가 우뚝 멈췄다.

“다 했어요?”

“.....”

자신이 무슨 행동을 하였는지 자각한 렌카의 얼굴이 빨개졌다. 산발이 된 자신의 앞, 그리고 옆머리를 정리한 그녀가 머리끈을 다시 묶으며 슬쩍 시선을 피했다.

“다 했냐니까?”

“닥쳐.”

“방금 귀여웠어요.”

“입 닥쳐.”

“다시 해봐요.”

“닥치라고...! 죽을래?”

“부장.”

“뭐...!”

“부장한테 줄 선물이 하나 있어요.”

“선물...? 안 받아.”

“보지도 않고 거절하면 어떡해요?”

“보나마나 변태 같은 거겠지.”

항상 느끼는 거지만, 렌카는 이런 쪽의 눈치가 빠르다. 그럼 마음의 준비도 잘 할 수 있겠지?

“무, 뭐야 그 이상한 눈빛은...?”

내게서 반발자국 물러난 렌카의 겁먹은 물음. 내 표정이 굉장히 음흉했나보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근데 오늘 부활동 해요?”

“.... 부활동 하려고 온 거 아니야?”

“아니, 그 말이 아니라... 검도 하냐고.”

“대회도 끝난 지 얼마 안 됐고, 막 개학한 상황이라 쉬게 할 거야. 연습이나 대련을 하고 싶으면 나나 치나미, 야마자키를 비롯한 3학년들이 개인적으로 따로 봐줄 예정이고.”

“그래요?”

“넌 쉴 생각하지 말고 연습해.”

“왜 그래야하는데?”

“뭐가 그렇게 말이 많아? 부장이 하라면 그냥 해야지.”

꼰대 같은 소리를 하는데, 혼쭐을 내줘야겠지? 팔짱까지 낀 채 도도하게 날 노려보는 렌카에게 다가간 나는,

“무, 뭘 봐?”

센 척을 하는 그녀의 허벅지를 손바닥으로 쳤다.

파앙-!

“햐앙!?”

펑퍼짐한 도복이 피부와 밀착하며 바람이 빠져나가는 소리, 그리고 렌카의 입에서 본능적으로 튀어나온 다소 높고 야릇한 비명. 두 소리가 만들어내는 화음을 만끽한 나는, 렌카가 맞은 다리의 발가락이 앙증맞게 오므려지는 모습을 보며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덜컥.

그러다가 보관실 문이 세차게 열리며 고로가 들어오자 재빨리 걱정스런 표정으로 바꾸었다.

“뭐야! 무슨 일이지!?”

렌카가 낸 비명소리가 꽤나 컸던 터라, 듣고 달려온 모양이었다. 고로의 높은 어조에 찔끔한 렌카가 냅다 대답했다.

“너, 넘어질 뻔했어요... 그... 바닥이 미끄러워서...”

그 말에 고로의 얼굴이 아리송하게 변하며, 시선이 바닥으로 향했다. 검도부실은 맨발로 다녀야하는 터라, 바닥재가 쉽게 미끄러지지 않는 재질로 되어있었다. 지금껏 미끄러진 부원을 본 적이 없을 텐데 렌카가 저러니 미심쩍어하는 것이다.

“그게... 문턱 밑에 마른 행주가 깔려있었는데... 그걸 밟고 발을 밀듯 움직여버려서요. 지금은 올려놔서 괜찮아요...”

자신의 실책을 알아차린 렌카가 재빨리 말을 정정하며 진열대를 가리켰다. 그 위에 놓인 행주를 본 고로가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조심 좀 해라. 마츠다, 청소에 정신이 없는 건 이해하겠다만 행주 정도는 잘 정리해서 놓는 게 좋겠다.”

본의 아니게 타박을 받게 된 내가 렌카를 흘끗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다시 고로에게로 눈을 돌리며 얼빵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주의하겠습니다.”

“그래. 수고들 하고, 청소 끝나면 감독실에 들러서 음료수 하나씩 받아가라.”

“예, 감독.”

그렇게 고로가 보관실에서 떠나자, 렌카가 조심조심 문을 닫더니 날 쏘아붙였다.

“너 미쳤냐 진짜...!? 여기서까지 그러면 어떡하자는 건데...!”

“그것보다 왜 날 팔았어요? 부장 때문에 혼났잖아요.”

“.... 나, 나 때문이라고는 할 수 없지...! 네가 갑자기 때렸으니까...”

“인과응보다?”

“그냥 뭐... 어쩔 수 없었던 거지... 그리고 판 게 아니라 어떻게든 상황을 넘기려고 한 거잖아...!”

“다른 핑계로 넘길 수도 있었던 거 아닌가?”

“아 시끄러...! 청소나 해...! 짜증나게 진짜...”

“짜증나?”

“안 나...! 안 난다고...!”

소리를 최대한 절제하며 온몸으로 성질을 부리는 렌카. 분한 듯 빨개진 얼굴로 씩씩거리는 모습이 귀엽지 않을 수가 없다.

오늘 돌아가면 이노쨩의 욕 메시지가 폭풍 같이 날아오겠구나.

미래가 훤히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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