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러브 코미디를 망가뜨리는 법-303화 (302/313)

Chapter 303 - 호텔 라피아 #2

“무릎 더 들어. 힘이 안 들어가잖아.”

“예!”

쿵-!

“또 그러네. 대회 때 버릇 들었나본데, 이거 고치지 않으면 무조건 빈틈이 생겨버릴 거야.”

“알겠습니다!”

테츠야를 가르치고 있는 렌카의 말투를 들으니 왠지 웃기다. 진지하게 검도를 가르칠 땐 냉정한 그녀지만, 내 앞에선 그저 신경쇠약 치와와가 따로 없어서였다.

“칼자루부 헐렁하게 잡지 말라고 했지? 똑바로 잡아.”

“예, 부장!”

분명 동아리 설명회 때 딱딱한 곳이 아니라 하지 않았나? 지금 하는 짓을 보면 그 누구보다도 돌덩이 같아 보인다. 아니지, 렌카는 평범하게 조언을 해주는 건데 괜히 기합이 들어간 테츠야가 오버를 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맞춤 과외를 해주고 있는 렌카와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나는 그녀를 불렀다.

“부장.”

“힛!?”

그러자 얼음 같던 태도가 온데간데없어진 렌카가 어깨를 움찔 떨더니 고개를 홱 돌렸다.

“왜...!”

목소리를 듣자마자 놀란 자신이 창피했는지 말투를 싸악 굳히는 그녀. 속으로 대소를 터뜨린 내가 물었다.

“잠깐 건조실로 와줄 수 있어요?”

“.... 뭐하러?”

“도복 빨래했는데 실밥이 터진 게 몇 군데 보여서요. 어떻게 처분할지 물어보려고.”

“그래...?”

“예.”

“매니저 일을 한 지가 얼마인데 그것도 몰라?”

다른 사람들 앞에서 나와의 특별한 관계를 알려주기 싫은 듯 더욱 강하게 쏘아붙이려는 기색이 보인다. 또 벌을 받고 싶어서 난리를 치는데, 원하는 대로 해주지 않으면 예의가 아니겠지.

“모르는 게 아니고, 상태가 애매해서 물어보려는 거예요.”

“치나미는?”

“지금 죽도에 기름칠하고 있어요.”

“.... 먼저 가있어. 이것만 가르쳐주고 갈 테니까.”

“흠.”

카페에서 종종 보여주었던 감탄사를 내뱉자, 렌카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나와 단둘이 있을 때의 깨갱한 모습은 보여주기 싫은 듯, 눈에 쌍심지를 키며 날 노려보았다.

“거기 우두커니 서서 뭐하는 거야? 이따가 간다니까? 지금 부원 가르쳐주는 거 안 보여?”

이 자리에서는 내가 아무런 짓도 못할까봐 평소보다 더욱 틱틱대고 있구나. 그 증거로 렌카 주변에 있던 몇몇 부원들은 물론, 테츠야까지 어리둥절해하고 있다. 저들은 내가 무슨 실수라도 했나 싶겠지?

앙칼진 것. 여기서는 넘어가주도록 하마.

“알겠습니다.”

건조실로 돌아온 내가 하던 일을 마저 하며 렌카를 기다리고 있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가 들어왔다.

“뭐.”

팔짱을 낀 채 퉁명스런 목소리로 용건을 묻는 렌카. 코웃음을 친 나는 느릿하게 렌카에게로 다가가, 그녀의 뒤에 있는 건조실 문을 잠갔다. 그러자 렌카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무, 뭐하는 거야 지금...?”

“버릇없게 굴길래 교육을 조금 해주려고.”

“버릇이라니...! 그럼 내가 거기서 너한테 알랑거리기라도 해야 됐었다는 말이야...!?”

“다른 사람들한테 평상시에 대하는 것처럼 사근사근 대해줄 수는 있었잖아요.”

“내가 왜 그렇게 해야...”

팡-!

“힉...!”

골반을 맞자마자 반사적인 반응을 보여준 그녀가 이를 악물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누가 접근하기 힘든 냉랭함을 풀풀 풍기고 있었는데, 곧장 무장이 해제되는 게 웃기다.

“오늘 스승님이랑 카페 가기로 했다면서요.”

“.... 맞아.”

“근데 왜 나한테는 아무 말도 안 한 거예요?”

“굳이 해야 돼...?”

“해야지. 설마 나만 빼놓고 가려 했어요? 일부러 피하는 거야?”

“그럴 의도는 없었는데... 치나미랑은 평소에도 자주 단둘이...”

“시끄럽고, 나 껴요.”

“무, 뭐라는 거야... 싫어...!”

파앙-!

“햐읍...!”

신음을 터뜨리려다 말고 다급하게 입을 막는 모습... 퍽 귀여웠다.

“나 끼라고.”

“.....”

어깨를 완전히 위로 올려 자신의 목을 감춘 렌카의 고개가 도리도리 저어졌다. 장소도 그렇고, 렌카의 반응도 그렇고... 꼭 내가 선량한 학생을 희롱하는 기분이다.

“스승님은 승낙했습니다.”

“어, 어쩌라고. 난 싫어.”

대회 이후로 예전의 순종적인 맛이 상당부분 사라져버렸어. 약간 귀족 영애로서의 본능이 되살아나서, 반항기가 찾아온 것 같은 느낌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눈썹을 구긴 나는, 내 명령에 거역하는 노예의 허리를 다소 강하게 움켜잡았다.

“흐익...! 뭐하는 짓이야...! 아파...!”

“엄살 피우지 마세요.”

“엄살이 아니라...”

“엄살 맞네. 표정도 아픈 표정이 아니잖아요.”

“우, 원래 피부가 약해!”

렌카의 얼굴이 순식간에 불그스름해졌다. 웃기지도 않은 핑계를 대어 창피한 모양. 낄낄거린 나는 그런 그녀의 바깥쪽 허벅지를 한 차례 쳤다.

파아앙-!

공기가 빠져나가는 소리와 함께 크게 펄럭이는 렌카의 도복 바지. 비명을 참아내며 훅! 하는 콧바람을 내뱉은 그녀가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아 왜 자꾸 때리는데...! 아까 그거 때문에 이래?”

“그거?”

“너한테 쌀쌀맞게 대한 거...!”

제 입으로 저런 말을 하는 걸 보니, 날 쌀쌀맞게 대했던 걸 잘 인지하고 있었구나. 그녀 나름의 복수였겠지만 허술하기 짝이 없다.

“버릇이 덜 들었으니까 교육하는 거죠.”

“버릇이라니... 난...”

파앙-!

“히이익...! 그만하라니까...!”

“그럼 어떻게 해야 될까요?”

“그걸 내가 어떻...”

여전히 자존심을 세우는 렌카의 도복 바지를 풀어버릴 것처럼 손을 가져가자, 기겁한 그녀가 재빨리 사과했다.

“미, 미안해... 잘못했어...”

이제야 조금은 노예로서의 마음가짐이 돌아온 것 같다.

“뭘 잘못했는데.”

“너, 너한테 막... 싸가지 없게 군 거...”

“또.”

“.... 또?”

정말로 모르겠다는 렌카의 표정. 혀를 찬 나는 그녀의 등허리 쪽으로 손을 뻗어, 허리끈 안쪽에 넣은 바지를 고정하는 고리를 뺐다. 그에 침을 꼴깍 삼키며 내 손목을 붙잡은 렌카가 말했다.

“지, 진짜 모르겠으니까 설명해주면 내가... 잘 생각해서 사과할게...!”

“됐어요. 그냥 사과하지 말고 벌이나 받아.”

“아 제발... 여기서는 하지 마...!”

“그럼 카페에서 케이크 다 먹고, 같이...”

“잠깐만... 뭐라는 거야. 난 케이크를 같이 먹겠다고 한 적이 없... 으아아...! 같이 먹어...! 먹으면 될 거 아니야...!”

상의까지 벗기려고 하자 냅다 알겠다고 대답하는 렌카. 만족스런 웃음을 흘린 내가 재차 물었다.

“다 먹고 같이 어디 좀 갈래요?”

“어디...?”

“갈래요? 안 갈래요?”

“아, 안 갈래.”

일단 거절을 하고 보는데, 예상했다. 불안한 듯 파리하게 떨리고 있는 렌카의 남색 눈동자를 바라보던 나는, 그녀의 의사를 듣자마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반쯤 풀린 렌카의 도복 바지 끈을 마저 풀기 시작했다.

“야! 야...!! 나 금방 나가봐야 된단 말이야...! 부원들 가르쳐줘야 돼...!”

“그건 내가 알 바 아니잖아요.”

“무슨 그런 소리가... 그, 그만...!”

어떻게든 몸부림을 치며 날 막아보려고 노력하지만, 이미 렌카의 도복 바지 끈은 거의 다 풀리고 흘러내리려 하는 상태였다.

내 진심이 담겨있는 눈빛을 보고 꼼짝없이 관계를 가져야한다고 느꼈을까? 렌카가 급하기 그지없는 목소리로 작게 소리쳤다.

“갈게...!”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도복 바지를 벗기려던 손을 우뚝 멈추었다. 미친놈의 말은 그냥 들어주는 게 낫다고 판단했나보지? 아주 좋은 자세다.

“갈 거라고 했죠?”

“간다고... 가...!”

“좋습니다. 약속한 거예요.”

“.... 유치한 새끼...”

꼭 마지막에 이렇게 욕을 하는 게 렌카의 매력 중 하나다. 내가 무슨 말을 하든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치나미, 그리고 의심을 하고 보는 렌카... 서로 다른 성격을 지녔지만 무척 잘 맞는 두 사람은 호텔에서 어떤 반응을 보여줄까? 그런 기대감을 품은 채로, 나는 렌카의 도복 바지를 잘 동여매주었다.

“이, 이제 가도 되지?”

“가요.”

자신의 바지가 잘 고정되었는지 몇 번이고 확인한 렌카가 문 잠금을 풀더니 연신 뒤를 흘깃거렸다. 혹여 내가 덮치기라도 할까 우려스러운 듯했다.

마치 몰래 집을 나가려는 철부지 딸처럼 조심조심 문을 연 그녀는, 내가 가만히 있자 잽싸게, 도망치듯 건조실을 빠져나갔다. 그리고는 부원들의 시선이 집중되기 전에 태연한 듯 걸음걸이를 늦추었다.

렌카의 허접한 연기에 피식한 나는 건조실을 나가려다가, 때마침 보관실에서 나오는 치나미를 보았다. 문틈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어 치나미와 눈을 마주친 내가 조용히 손짓을 했다.

“스승님. 잠깐 이쪽으로...”

그에 종종걸음으로 다가온 치나미가 여느 때처럼 활기차게 물었다.

“빨래는 다 널어놓으셨나요?”

“예.”

친절하게 은밀한 마굴로 치나미를 안내하는 나를, 렌카가 노려보는 것 같은데 착각일까? 어깨 뒤에서 느껴지는 눈총을 무시하고 건조실 문을 닫은 나는, 빨래 상태를 확인해보는 치나미의 어깨를 콕콕 찔렀다.

“스승님, 부장이 같이 카페에 가도 된대요.”

“앗, 그런가요? 잘 되었네요?”

“그렇죠. 아, 그리고 부장도 마사지를 해주기로 했습니다.”

“네에엣...? 그, 그래요...?”

렌카에게는 그냥 마사지가 아니라 자지 마사지를 할 거예요. 라는 말을 삼킨 내가 대답했다.

“예.”

“렌카가요...?”

렌카와 함께 마사지를 받는 게 놀랍다기보다는, 렌카가 승낙을 했다는 게 더 놀라운 것 같은 모습이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정확한 장소나 그곳에서 뭘 할 건지는 전혀 얘기하지 않았지만, 이건 상황을 보면서 해결하자.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어떻게든 되겠지.

“예.”

“그, 그러면 저는 렌카와 함께 마사지를 받게 되나요...?”

“물론 따로 해야죠.”

“아하... 좋아요...”

안도한 치나미가 어색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마사지를 받게 되면 분명히 가버릴 거라 생각하고 있을 텐데, 자신의 그런 모습을 부끄러워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

헌데 렌카와 호텔에 간다는 것 자체엔 거부감이 덜한 건가? 렌카와 같이 마사지를 해주겠다고 틈틈이 말했던 게 도움이 되었던 듯하다. 아니면 미유키와의 쓰리섬을 겪어보았기에 저러는 것일 수도 있겠다.

“그럼 이 얘기는 다 됐고... 복숭아 케이크는 맛있나요?”

“넷...! 아이스크림도 먹을 예정이니 기대하셔도 좋아요.”

“그때 그 아이스크림을 말하는 거죠?”

“맞아요. 새해를 맞아 새롭게 리메이크돼서 나왔는데, 전보다 맛이 더 좋아졌답니다.”

“알겠습니다.”

치나미에게는 요새 소홀했지. 미안한 마음을 담아, 그녀가 충분히 좋아할 만큼 마구마구 만져줘야겠다.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