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04 - 호텔 라피아 #3
부활동이 끝나기 30분 전에 모든 일을 끝내놓은 나는, 미리 나와 미유키를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이후 곧장 아카데미로 돌아와 몇 분간 대기하고 있으니, 렌카와 치나미가 교문을 나와 내 쪽으로 다가왔다.
덜컥.
“앗...?”
조수석 문을 열고 타려다가 옆에 있는 치나미를 보고 흠칫하는 렌카.
“느엣?”
치나미 또한 렌카와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둘 다 내 차에 탄 적이 많아서, 본능적으로 조수석에 앉으려 했나보다.
몇 초간 멈칫해있던 렌카가 무안한 표정으로 도어컵에서 손을 떼어냈다.
“네, 네가 거기 타...”
“아니에요...! 친우님께서 이곳에 타도록 하세요...”
“네가 타라니까...?”
“친우님께서 타시래두요...?”
“그럼 가위바위보로 할까...?”
“앗, 좋은 방법이네요...”
문을 열어둔 채 서로 양보를 하려는 게 보기 좋다고 해야 할까, 웃기다고 해야 할까. 누가 뭐랄 것도 없이 동시에 손깍지를 낀 손을 뒤집어 자신의 눈 앞에 가져다대는 모습이 마치 쌍둥이 같다.
결국 가위바위보의 승자는 치나미였다. 이기고도 렌카의 눈치를 보며 한 번 더 양보를 하려던 그녀는, 렌카가 됐다며 얼른 타라고 하자 그제야 조수석에 올라타 안전벨트를 매었다. 그리고는 날 보며 부자연스러운 웃음을 지어보였다.
“하나자와 후배님의 댁엔 잘 다녀오셨을까요?”
“예. 스승님이랑 부장이랑 카페에 간다고 하니까 자기도 나중에 데려가 달라고 하더라고요.”
“아앗, 그러면 다음번엔 네 명이서 함께 가도록 하지요.”
“좋습니다. 부장은 잘 탔어요?”
뒷좌석을 쳐다본 내 물음에, 렌카가 퉁명스레 대답했다.
“탄 거 안 보여?”
허허... 나한테만 삐딱한 저 노예를 어찌 해야 좋을까. 일단 볼기짝이 빨개질 때까지 때려주어야겠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스승님, 네비에 위치 좀 입력해줄래요?”
“넷.”
그렇게 두 사람과 도심 외곽에 있는 카페에 찾아간 나는 조용한 구석자리를 찾아 엉덩이를 붙였다. 그러자 렌카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누가 변태 새끼 아니랄까봐...”
“스승님이 옆에 없으니까 간이 부은 거예요? 왜 욕해?”
그 말에 주문을 하느라 여념이 없는 치나미를 곁눈질한 렌카가 내게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올렸다. 왜 저런 행동마저도 섹시하게 느껴질까? 손가락이 길어서인가? 뭐가 됐든 밤에 보여주는 허접한 모습과 지금의 캡 차이가 커서 깜찍해 보인다.
“왜 눈치없이 끼고 난리야... 짜증나게.”
내 맞은편에 앉아 팔짱을 낀 렌카의 중얼거림. 진심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그냥 투정인 걸 잘 알고 있었기에, 나는 그냥 가소로운 미소를 지어보이며 그녀의 가짜 불평을 넘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주문을 마친 치나미가 진동벨을 테이블 가운데에 놓았다. 렌카와 내 중간에 자리를 잡은 그녀가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물었다.
“무슨 얘기를 하고들 계셨나요?”
“아무 얘기도 안 했어.”
“아하. 마음으로 대화를 나누시는군요. 두 분이 너무 친해지셔서 언어를 통한 대화가 필요 없으시다는 뜻이네요.”
치나미는 가끔 보면 말을 참 예쁘게 한다. 자칫 무안해질 수 있는 분위기도, 긍정적인 마음가짐에서 우러나오는 말을 통해 환기를 시켜준다. 이래서 미유키도 치나미가 나와 관계를 가졌단 걸 알고 있으면서도 그녀와 친하게 지내는 거겠지.
“그건... 아니, 그래. 맞아.”
시종일관 뚱해있던 렌카 또한 치나미의 예쁜 말에 무언가 느끼는 바가 있었는지, 부정을 하려다 말고 수긍했다.
“후후. 그러면 케이크가 나올 때까지 담소를 나누어보도록 할까요? 아, 친우님께서도 오일 마사지를 받으시겠다니 의외네요.”
“응...? 오일 마사지...?”
일순 혼란에 빠진 렌카의 눈. 눈꺼풀을 빠르게 두어 번 닫았다 뜬 그녀가 멍한 표정을 짓자, 치나미가 의아한 투로 물었다.
“모르시고 계셨나요?”
그에 렌카가 무슨 말을 하려는 순간, 나는 테이블 밑으로 다리를 뻗어 그녀의 종아리를 톡톡 건드렸다. 이후 정색을 하며 치나미 몰래, 렌카만 볼 수 있게끔 고개를 가로저었다.
“.....”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는 눈빛으로 날 쳐다보던 그녀는,
“친우님?”
치나미의 부름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는 내 눈치를 흘끔흘끔 보며 말을 더듬었다.
“응? 아... 그... 알고는 있었는데...”
“그런데요?”
“그게... 오일... 인 줄은 몰랐어...”
“그냥 마사지인 줄 아셨던 것이로군요?”
“응... 그런 거지... 나 잠깐만... 화장실 좀...”
양해를 구하고 자리에서 일어난 렌카가 내게 눈짓을 했다. 화장실이 있는 코너로 따라오라는 것 같은 얼굴. 고개까지 까딱하는 그녀에게서 눈길을 돌려 치나미를 바라본 내가 말했다.
“저도 화장실에 가도 될까요?”
“물론이에요.”
“심심할 것 같으면 부장이 돌아오면 갈게요.”
“어휴... 심심하긴요. 생리현상은 제때 해결해주어야 질병에 걸리지 않는답니다. 어서 다녀오도록 해요.”
무시무시한 말을 하는 치나미에게 알겠다고 대답한 나는 렌카를 뒤따랐다. 그렇게 렌카의 뒤에서 코너를 도는 순간, 그녀가 코너 밖으로 얼굴을 빼꼼 내밀어 치나미의 자그마한 뒤통수를 보더니 내게 인상을 팍 썼다.
“야...! 내가 언제 마사지를 받겠다고 했어...!! 미쳤냐 이 새끼야...?”
“어디 같이 가자니까 알겠다면서요.”
“억지 부리지 마. 그런 곳인 줄 알았으면 절대 안 갔을 거야...!”
“약속했으니까 어쩔 수 없네요. 오늘은 같이 가도록 해요.”
“치나미 같은 말투 쓰지 마. 하나도 안 어울려. 한 대 패주고 싶어.”
“또 혼날래요?”
“.... 아무리 그래도 이건...”
“이상한 짓 안 할 거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정 못 미더우면 TV만 보든가.”
렌카가 반신반의한 표정으로 날 올려다보았다.
“그래도 돼?”
당연히 안 되지.
“그렇다니까.”
“치나미한테는...?”
“마사지만 할 거예요. 스승님이 다른 걸 원하면 모르겠지만.”
“다, 다른 거...? 그럼 나더러 너희 둘을 구경만 하고 있으라는 얘기야...?”
“제 말을 뭘로 알아들었길래 그런 얘기가 나와요?”
“읏...!”
“어쨌든 마사지를 받을지 말지는 부장 자유에요.”
“.... 그럴 거면 치나미랑만 가면 되잖아. 나까지 데려가는 목적이 뭐야?”
“부장한테도 마사지해주고 싶으니까.”
“난 안 해.”
“그럼 하지 마요.”
“진짜 안 한다? 진짜로?”
여전히 내가 못 미더운지 재차 여부를 물어보는 렌카. 거짓말을 하는지 안 하는지 확인해보려는 것 같다.
“알았다니까요?”
“.... 진짜지? 그럼 나 집에 가도 돼?”
“아뇨.”
“아이 씨... 장난하냐...!?”
렌카는 평소보다 과하게 긴장을 하고 있었다. 사실 그럴 만도 했다. 마사지라고는 하지만, 렌카는 분명히 무언가 야릇한 일이 일어날 거라고 확신할 터였으니까.
마사지를 표방한 진하기 그지없는 스킨십. 아마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텐데, 그 생각은 정확했다.
그걸 보거나 듣느니 차라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을 테지? 굳이 자신을 데리고 가는 나는 물론, 함께 호텔로 가는 것에 나름 태연스러운 치나미도 이해되지 않을 테고.
쉽게 말하자면, 렌카의 입장에선 억지도 이런 억지가 없다는 뜻이다. 납득도 안 되고 말이다.
내 진의를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한 번 받아보면 육체적으로는 마음에 들 거다. 발을 동동 구르는 그녀의 머리를 사근사근 쓰다듬은 내가 말했다.
“잘해줄게요.”
“무, 뭐...?”
“저는 먼저 테이블로 가볼 테니까, 30초만 있다가 오세요.”
“야...! 야...! 뭘 잘해주겠다는 건데...!?”
다급하게 날 붙잡으려던 렌카였으나, 이미 거리가 멀어진 터라 그녀의 손은 허공을 갈랐다. 아연한 얼굴을 하고 있는 그녀를 놔두고 자리로 돌아온 나는 치나미와 사적인 이야기를 나누었다.
**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카페를 나온 우린, 차를 타고 곧장 호텔로 향했다. 그리고 아까까지만 해도 웃고 있던 치나미의 표정은, 호텔 주차장에 차가 진입하자 급속도로 굳어갔다.
정확히 말하자면 굳었다기보다는 부끄러워졌다고 해야 옳았다. 뺨에 서린 홍조가 무척이나 빨간데, 만지면 톡 하고 터질 것만 같다. 그리고 그런 반응은 비단 치나미뿐만이 아니라, 렌카도 마찬가지였다.
“하아... 미치겠네...”
나나 치나미가 듣든 말든 연신 미치겠다는 말을 반복적으로 중얼거리던 그녀는, 내릴 때가 되자 안절부절 못했다.
“꼬, 꼭 내려야 돼...?”
“싫어요? 난 부장이 꼭 같이 갔으면 좋겠는데.”
나긋해진 말투에, 렌카의 눈빛이 더더욱 미심쩍어졌다. 마음의 준비라도 하는 것인지 잠깐 눈을 질끈 감았다 뜬 그녀는, 될 대로 되라는 얼굴을 하며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는 검지를 내 쪽으로 치켜세우며 경고했다.
“난 말했어...”
자신은 마사지를 받지 않겠다고 했던 것을 말함이었다. 고개를 끄덕여 수긍한 나는, 두 사람과 함께 호텔 로비로 들어갔다. 두 사람 모두 이곳에 왔던 전적이 있어서인지, 딱히 낯설어하는 기색 없이 날 따랐다.
자신의 친구가 해매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것을 보고 이미 갈 때까지 가버렸으리라고 생각하였을까? 치나미의 뒷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렌카가, 소리 내지 않고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쁜 새끼...”
내게 다가와 들리지도 않을 정도의 목소리로 욕을 하는 그녀. 치나미 몰래 그녀의 등허리를 만지작거리는 것으로 대신한 나는, 키오스크에서 카드키를 받고 두 사람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다. 이후 곧장 방 번호가 적인 룸으로 이동해 키를 대었다.
삐빅-!
경쾌한 소리와 함께 잠금이 풀린 문. 문고리를 잡고 둘을 안으로 들여보내자, 미세하게 떨리는 렌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 여기가 마사지 룸이야...?”
둘의 뒤를 따라 방 안으로 들어온 내가 대답했다.
“예.”
“.... 그래... 그렇구나...”
“저는 바로 준비하러 가보겠습니다. 스승님이 선배니까, 제가 준비하는 동안 부장한테 어떻게 받는 건지 설명해줄까요?”
그 말에 치나미의 온몸이 흠칫했다.
“앗, 네...”
그러자 재빨리 치나미의 앞으로 움직여 그녀를 가린 렌카가 말했다.
“나, 나는 안 궁금한데...?”
“혹시나 마음이 달라질 수도 있잖아요.”
“그럴 일은...”
“그래도 들어요.”
렌카에게 통보를 한 후 어둑한 마사지 룸으로 들어간 나는, 타올을 스팀기에 넣어놓고 문에 귀를 대어보았다. 방음이 나름 잘 되는 곳이긴 하지만 문을 닫고 살짝 열어놓았기에, 조금만 집중을 하니 두 사람의 대화 소리가 들렸다.
“으음... 음...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할지는 모르겠는데요... 일단 옷을 갈아입으셔야 해요.”
“옷...?”
“네. 마사지 전용 속옷이 따로 있어요.”
“소, 속옷 차림으로 마사지를 받는다는 거야...?”
“오일 마사지니까... 당연한 부분이지요... 그리고 맨살이 보여질까 걱정하시는 거라면 괜찮아요. 후배님께서 매너타올을 해주시거든요.”
“매너타올은 또 뭐야...?”
“마사지사가 타올을 길게 펼쳐서 머리 위로 드는 거예요. 그러면 제가 무엇을 하든 마사지사가 볼 수 없게 된답니다.”
“그건 마사지사가 누구인지에 따라 달라지는 거 아니야...? 마츠다는 분명히... 아, 아니다...”
저 저 고얀 지고... 마사지를 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보게 되거늘, 그것도 이해해주지 못하다니. 얼버무리긴 했지만 뒷담화를 시도한 대가는 꼭 치러 주리라.
“그... 어떻게 되는 거야? 처음에는 뭘 해...?”
이어지는 렌카의 물음에, 치나미가 쑥스러운 목소리로 설명을 해주려고 했다.
“처음에는...”
여기까지면 족하다. 나머지는 렌카가 직접 몸으로 체득하는 걸로 하자. 그리 생각한 나는 잽싸게 문을 열고, 틈 사이로 머리를 내밀었다.
“스승님, 설명은 다 했어요?”
“앗, 아직 다 안 했어요...”
“준비 다 됐는데 들어올까요?”
“버, 벌써요...? 옷을 아직 안 갈아입었는데요...”
“저는 잠깐 나가있을 겁니다. 설명은 제가 마저 할게요.”
“아하... 네... 그럼... 친우님. 나중에 뵈어요.”
허리를 꾸벅 숙인 치나미가 머뭇머뭇 마사지 룸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를 그곳에 놔두고 다시 밖으로 나와 문을 닫아준 나는, 계속해서 혼란스러워하고 있는 렌카에게 다가갔다.
“괜찮아요?”
“.... 괜찮아 보여? 난 널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어...! 대체 여긴 왜...”
음음... 삐딱한 태도가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현재 렌카의 마음이 복잡한 것을 감안해서 참작해주도록 하마.
“조금 누워있어요. 긴장 풀고.”
“기, 긴장은 누가 했다고...! 그리고 설명을 해줘야지...! 네가 마저 한다며...!”
“부장한테는 다른 마사지를 할 거라서, 직접 받아보면 될 겁니다.”
“다른 마사지...?”
“야한 건 아니에요.”
단호한 내 반응을 본 렌카가 이마를 짚었다. 이젠 자포자기한 듯 침대에 누워 리모컨을 드는 그녀를 지켜보던 나는, 휴대폰에서 진동이 울리자 말을 이었다.
“한 시간쯤 걸릴 것 같으니까 자고 있어도 돼요. 깨워줄게요.”
“하, 한 시간 씩이나...?”
“원래는 두세 시간동안 하는데, 부장이 와서 짧게 하기로 한 겁니다.”
“난 괜찮은데... 그냥 나가있을 테니까 원래 하던 대로...”
“도망가면 진짜 혼날 줄 알아요.”
렌카의 몸이 움찔 떨렸다. 마음을 제대로 읽혀 찔린 것이다. 그런 렌카에게 히죽 웃어준 나는, 구경하고 싶으면 언제든지 말하라고 한 뒤 치나미가 있는 방 문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