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47 - 예의 없이 굴어서 죄송해요
“부장.”
“.....”
“부장.”
“.....”
일부러 대답을 하지 않는구나. 부끄러운 마음이 큰가보다.
“야.”
“.....”
싸가지 없이 불러 봐도, 렌카는 날 모르쇠로 일관했다. 아무것도 듣지 못한 척 설거지를 시작하는 렌카의 뒤로 간 나는, 살랑거리는 치마 밑쪽으로 손을 스윽 내밀었다.
“햑...?”
자신의 맨다리에서부터 느껴지는 손길에 깜짝 놀라는 렌카. 한쪽 손을 뒤로 뻗어 내 팔을 쳐낸 그녀가 흠흠 하며 목을 가다듬더니, 여전히 날 무시하며 수세미에 세제를 묻혔다.
“장갑 끼고 하랬는데 왜 말을 안 듣지?”
“.....”
“청개구리인가?”
“아... 쫑알쫑알 더럽게 시끄럽네... 입 좀 다물었으면 좋겠다...”
들으라는 듯 중얼거리는 모습이 왜 이렇게 귀여울까. 미유키나 치나미였다면 이런 사건을 겪고 나서 내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했을 텐데, 렌카는 톡톡 튀는 반응을 보여줘서 웃기다. 소심한 렌카의 반항에 조용히 킥킥거린 내가 말했다.
“나한테 하는 말이에요?”
“귓구멍이 막혔나...? 눈치가 하나도 없네...”
“지금 나 욕하는 거예요?”
“.....”
“욕하는 거냐고 묻잖아.”
“개 짖는 소리가 들려... 이비인후과라도 가봐야 하나...?”
“다리 예쁘네요. 만지고 싶다.”
노골적인 말에 움찔하는 그녀. 코웃음을 친 나는 렌카의 바로 뒤로 가, 그녀의 허리를 붙잡았다.
“힉...! 소, 손님...! 손님 있잖아...!”
그러자 렌카가 드디어 나와 대화의 물꼬를 텄다.
“없는데.”
“없어...? 그럴 리가...”
“방금 나갔어요. 한 명.”
“그, 그래...? 어쨌든 이거 놔... 일하는 시간까지 이러면 어떡해...! 사장님이 보시면 우리 둘 다 아웃이야...!”
“‘예의 없이 굴어서 죄송해요 주인님’이라고 말하면 놔드릴게요.”
“마,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말고...! 놔...!”
“말해요. 말하면 편해져요.”
“미친 새끼야... 좀 놓으라고...!”
“말하면 돼요. 어려운 거 아니잖아.”
“충분히 어려워...!”
죽어도 말하지 않으려는 의지를 보이는 렌카의 허리를, 나는 더욱 강하게 끌어안았다. 그리고는 그녀의 어깨 위에 턱을 올려놓고 완전한 백 허그를 했다.
“으아아아...! 치워...! 치우라고...!”
누가 볼 수 있는 장소에서 이러는 게 무척이나 쪽팔렸는지, 아니면 자신의 엉덩이와 등허리에서부터 느껴지는 내 사타구니 감촉에 낯부끄러워졌는지, 렌카가 마구 발버둥을 쳤다.
야채를 먹기 싫어 떼를 쓰는 다섯 살배기 어린아이 같은 모습. 이대로 가만히 있어보고 싶다. 반응이 얼마나 더 격해지나 궁금해진다.
나는 그녀의 뺨에 의도적으로 콧바람을 천천히, 그리고 기다랗게 내뿜었다. 그러자 간질간질한 감각을 느낀 듯한 렌카가 히이익 하는, 귀신이라도 본 듯한 탄성을 터뜨리며 온몸을 움츠렸다.
“말해요.”
“시, 싫어...!”
“그럼 말해줘요.”
명령조에서 부탁조로 바뀌자 멈칫한 렌카가 침을 꼴깍 삼켰다. 고개만을 살짝 돌려 자신과 바짝 붙어있는 내 얼굴을 흘깃거린 그녀가 물었다.
“마, 말하면 이딴 짓은 안 할 거야...?”
“오늘은 안 할게요.”
“앞으로 안 하겠다고 해도 모자랄 판에 뭐가 오늘은이야...! 말 안 해...!”
“그럼 이대로 있든가.”
“아, 알바 잘리면 어쩌려고 그래...!”
“이렇게도 주문 받을 수 있어요. 그리고 저번에도 말하지 않았나? 잘리면 내가 메이드로 고용한다니까?”
“장난 좀 그만 쳐...!”
“장난 같아요?”
“.....”
진중한 어투에 어이가 없어졌을까? 벙 찐 렌카가 날 쳐다보다가, 정신을 차리려는 듯 고개를 마구 털어냈다. 그런 그녀에게 입꼬리를 올려보인 내가 말했다.
“말 안 할 거예요?”
“.... 이거 어디서 본 것 같아...”
“뭐가요?”
“아, 아냐...”
혼잣말을 하던 렌카가 제풀에 놀라더니 말을 얼버무렸다. MK가 추천해준 조교물 만화에 이런 비슷한 장면이 몇 차례 나오는데, 그걸 기억해냈나보다.
들키면 어쩌려고 저러는지... 조심 좀 하지. 속으로 혀를 끌끌 찬 나는 은근슬쩍 렌카의 하복부로 손을 가져다대었다. 그러자 다리에서부터 얼굴에 이르기까지, 순차적으로 경련을 일으킨 렌카가 다급하게 외쳤다.
“기, 기다려...! 하지 마...!!”
“그럼 말해요.”
“.... 야.”
“왜요.”
“너 선 넘어도 한참 넘었어. 그러니까 당장 놔.”
정색을 해도 왜 하필 이런 타이밍에 하니. 여기서 벗어나기 위한 연기로밖에 안 보이잖아. 떨리는 목소리나 조절하고 지르든지 하지... 우리 렌카는 배우하면 안 되겠다.
“말하면 편해진다니까?”
“애초에 내가 왜 너한테 그런 말을 해야 하는지 이해를 못하겠어...!”
“주인한테 대들었는데 사과해야 정상 아닌가?”
“개소리 집어치워...!”
“그래서, 안 하겠다고요?”
“할 이유가 없어.”
렌카의 대답을 듣고 짧게 한숨을 내쉰 나는, 그녀의 배꼽 바로 아랫부분을 꾸우욱 눌렀다.
“흣...!”
그에 정전기라도 온 사람마냥 몸을 부르르 떤 그녀의 둔부가 뒤로 살짝 빠지더니, 내 사타구니와 완전히 밀착했다.
“아...!”
당황스런 탄식을 터뜨린 렌카가 어쩔 줄 몰라 하는 사이, 내 손은 그녀의 서혜부와 가까운 허벅지로 향하고 있었다.
치마 위에서부터 느릿하게 움직여 Y존 바로 아래쪽을 쓸면서 지나가는 손길. 그 느낌이 굉장히 야릇했는지, 렌카의 입이 절로 벌어지면서 후끈한 숨결이 새어나왔다. 눈이 확 풀려버리는 건 덤. 탈의실에서 있었던 일 때문에 몸 자체가 예민해진 상태인 것 같았다.
그렇게 잠깐 동안 내 손길을 오롯이 받아들이던 그녀는,
“핫...!?”
나가버리려는 자신의 정신을 억지로 부여잡는 것 같은 감탄사를 내뱉으며 이를 악물었다.
“그, 그만해... 할게... 말하면 되잖아...!”
“생각해보니까 말하지 않아도 괜찮은 것 같아요. 이대로 있는 것도 좋아서요.”
“난 싫어...! 그러니까 말한다니까...!?”
“해봐요 그럼.”
“.....”
말한다고 해놓고 망설이는 기색이 다분한 렌카. 꽤나 오랜 시간동안 침묵하고 있던 그녀는 자신의 몸에서 느껴지는 짜릿짜릿한 감각을 버티기가 힘들었던 건지, 혹은 가게에 민폐를 끼치면 안 된다고 생각한 건지 눈빛을 굳혔다.
“.... 예의... 없이... 굴어서...”
“굴어서?”
“죄, 죄송해요...”
굴욕감과 창피함이 가득 담겨있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은 나는, 상냥한 투로 렌카를 재촉했다.
“그 다음은?”
“.... 더 이상은 못해...”
“저번에도 말했었잖아요. 소원 빌었을 때.”
“그땐 소원이었으니까... 했던 거지...! 지금은 못해...”
더 밀어붙인다면 호칭까지 말하게 할 수 있을 듯하긴 하지만 봐주자. 이 정도도 충분히 만족스럽다.
나는 렌카의 바깥쪽 넓적다리를 한 차례 쓰다듬는 것을 마지막으로 스킨십을 끝냈다.
“하아... 하아...”
그리고는 몸의 자유를 되찾은 렌카가 싱크대에 팔을 기댄 채 심호흡을 하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그녀의 등을 부드럽게 쓸어주며 온화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요. 이번만 봐줄 테니까 앞으로 조심해요.”
“네...”
방금 대답은 뭐지? 본의 아니게 한 건가? 음음... 우수한 노예가 될 자질이 있구나. 아주 기특하다.
“아, 아니...! 헥...?”
자신의 실책을 알아차린 렌카가 흠칫하더니 요상한 추임새를 넣었다. 이제를 그럴 필요가 없음에도 존대를 해버린 자신이 놀랍고 창피한 듯했다. 콧등에 주름이 질 정도로 얼굴을 구긴 그녀는, 방글방글 쪼개고 있는 내가 얄미웠는지 욕을 퍼부었다.
“개, 개새끼...!”
“욕은 이제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어요?”
“네가 이딴 식으로 구는데 어떻게 욕을 안 해...!”
“방금은 부장이 혼자 실수한 것 같던데.”
“.... 이건 다 너 때문이야.”
“내 탓으로 돌리면 부장 마음에 편해져요?”
“사실을 말했을 뿐이니까 닥쳐. 그리고 약속대로 이제 이런 짓 하지 마.”
“오늘만이라는 약속이었던 건 알죠?”
“.....”
“대답 안 해요?”
“아, 알아...”
자포자기한 기색이 묻어나오는 투로 수긍을 하는 렌카에게 방긋 웃어준 나는, 컵을 닦느라 물기가 묻어있는 손을 붙잡고 깍지를 꼈다. 그러자 소스라치게 놀란 그녀가 눈을 부릅뜨며 날 노려보았다.
“야, 야...! 뭐해...! 안 하겠다고 했잖아...!”
“포옹만 하지 않겠다고 한 건데.”
“무슨 그런 억지가...!”
“손톱 예쁘네요.”
“.....”
뜬금없이 훅 들어오는, 장난기 하나 없는 진심어린 칭찬에 렌카의 입이 다물렸다. 그런 그녀의 연보라색으로 빛나는 손톱을 살살 만져본 내가 물었다.
“직접 칠한 거예요? 저번엔 검은색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바꿨어요?”
“무, 뭔 상관이야...”
“대답 똑바로.”
“.... 바꿨어...”
“부장이랑 잘 어울리긴 하는데, 진한 파란색이 더 좋을 것 같네요.”
“시끄러...! 네일까지 이래라저래라 하지 마...!”
“왜요?”
“왜냐니... 그걸 몰라서 물어?”
“서운하네.”
“뭐 맨날 서운하대... 하나도 안 서운한 거 아니까 쓸데없는 가식은 집어쳐...!”
나와의 대화가 싫은 듯 퉁명스레 굴고 있음에도, 렌카는 깍지 낀 손을 풀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마주 깍지를 끼지 않고 손가락을 핀 건 흠이지만, 그녀의 성격을 생각하면 이 정도는 충분히 넘어가줄만하다.
“부장.”
“왜... 뭐...”
“휴일에 뭐할 거예요?”
“휴일까지 아직 많이 남았는데 그걸 왜 물어보고 앉아있어? 나도 잘 모르지만 확실한 건 너랑은 안 만난다는 거야. 그리고 이거 놔. 이제 진짜 일해야 돼.”
“알겠어요.”
나는 깍지를 풀고 렌카에게서 떨어져, 선반에서 여러 일회용 용품들을 꺼내 카운터 이곳저곳에 채워놓기 시작했다. 그리고 렌카는 순순히 자신을 놓아주는 내가 의외였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약간 아쉬워하는 것 같아 보이는데 맞나? 그녀와의 관계가 여기서 한층 더 발전되면 이런 식으로 해봐도 괜찮을 것 같다. 항상 질척대면서 달라붙던 내가 무심한 듯 변하는 걸 보고 발을 동동 구르는 그녀... 상상만 해도 그림이 재미있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