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화 〉#8 마법소녀는 음탕한 무희가 되었습니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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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타난 거대한 사막.
말려 죽일 듯한 태양빛.
사람을 잡아먹는 절대 죽지 않는 괴수.
약탈과 노략을 일삼으며 상대가 누구든 무자비하게 칼로 썰어버리는 도적.
산이 솟아오르고 지진이 일어나고 화산이 터지고 벌레 떼가 습격하고 운석이 떨어지고.
마치 모든 게 꿈만 같은 광경이었다. 꿈이라곤 해도 악몽이지만.
그리고 케이의 마력이 끊기는 순간 모든 게 아무렇지 않다는 듯 원래대로 돌아왔다. 사라져버린 목숨 빼고는.
‘......이제는 뭔가 더 말하는 것도 웃긴다냥.’
이 모든 걸 공간에 뚫린 화면 너머로 지켜보던 쿠키는, 근심이 어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마법소녀의 힘의 원천은 마력이지만, 그 마력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코스튬이 필요하다. 아무리 좋은 탄환이 있어도 총이 없으면 쏠 수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케이에게 주어진 것은, 나름 최하급에 속한 코스튬이었는데... 이런 능력을 발휘할 리가 없었다.
‘이 이라는 마법은 원래 이 코스튬에는 없던 거다냥.’
최근에 개방한 가 코스튬에 맞춰 바뀌었다...고 보면 될 것 이다.
쿠키는 멈추지 않는 한숨을 막을 수가 없었다.
현실을 침범하는 공상이라니.
치트다.
불공평하다.
명백한 언밸런스 요소다.
세상의 위협이고, 인류의 위협이다.
그런 마법... 마법나라에서도 본 적이 없다. 본 적이 없다고 할까, 서적에 남아 있는 옛 기록에 그런 게 있었던 것도 같다. 어느 것이나 전설로 기록될 만큼 최상위급의 마법이나 가능한 일이었다.
도대체 왜 그런 힘이 지구인의 손에?
......모르겠다. 알 수가 없다.
쿠키는 잠시 고민하다, 마지막으로 포옥 한숨을 내쉬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 생각도 고민도 떨쳐버렸다.
그도 그럴 것이 쿠키는 단순한 밸런서니까.
‘진기한 괴물이든 미친 놈이든 알 필요 없다냥. 나는 메크라크 쪽에도 지구 쪽에도 일방적으로 기울지 않게 조정하는 것만 생각하면 된다냥.’
문제는 케이 단독으로 이 저울을 크게 기울인다는 거지만... 그만큼 케이는 다루기 쉬우니까 문제는 없다.
“그래도 역시 순수하게 감탄하게 된다냥. 마법나라에도 없을 인재가 지구에서 나타나다니....”
착잡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지만, 한 편으론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근본이 썩어버린 마법나라에 이런 힘이 있었다간 이런 연약한 은하 따윈 하루 아침에 쓰레기더미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니 만에 하나라도 케이의 정체를 마법나라에 들키면 안 되겠지.
‘문제는 그런 힘이 저 은근 바보의 손에 들려 있다는 건데냥.’
그 부분은 이러나저러나 자신이 잘 처신해야겠지.
이 모든 것은 마법나라, 메크라크, 지구까지... 세 개의 세계, 더 나아가서는 은하를 지키기 위해서다.
“일단 좀 더 케이를 막 굴려야 되겠다냥.”
쿠키는 느긋하게 다음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 * *
“흐음...... 훔쳐갈 게 있으면 좋겠는데.”
괴인들이 전멸한 걸 다시 한번 확인한 후, 나는 아지트 안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홀로 남은 연회장에서 음식을 되는 대로 집어먹어서 배는 빵빵했다. 소화시킬 겸 이렇게 산책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막상 뭐라도 뜯어갈까 싶어도 별 생각 드는 게 없네.”
비싸보이는 기계도 있었지만 메크라크의 것이라서 솔직히 어디에 어떻게 쓰는지도 모르겠고, 굳이 가져가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도적질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걸까.
쓸데 없는 짓은 하지 말자, 그래.
우두머리 비비의 방에서 시원한 맥주를 한 캔 꺼내어 마시면서, 나는 갱도 밖으로 나왔다. 코스튬은 해제한 채다.
“후음~ 오랜만에 느끼는 바깥 공기....”
이게 얼마만이냐 정말....
밤공기가 이렇게나 기분 좋았구나.
“당신...... 무사했군요.”
“응? 어라?”
밤공기를 만끽하며 맥주를 쭈욱 들이키자니, 아는 얼굴과 마주쳤다.
보랏빛 단발. 머리에 달린 뿔 장식에 선정적이게 보이는 검은 코스튬. 무엇보다 눈에 띄는 커다란 가슴.
그 블루 사파이어 씨의 팀 동료... 였던 것 같다.
“안녕~ 여긴 무슨 일?”
“......당신이 잡혔다고 들어서요.”
“응? 아, 구해주려고 했어?”
“필요 없었던 모양이지만요.”
아아, 그래, 이름 기억 났다. 유라였지.
“노먼이 도와줘서, 입구까지는 어떻게 어떻게 쳐들어갔는데... 생각 이상으로 비비들이 강해져서요. 덕분에 안쪽까지는 들어가지도 못하고 가까스로 도망치고... 그랬었네요. 당신이라면 강하니까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며칠째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니 걱정 되어서....”
“고마워. 안 그래도 꼼짝달싹 못하고 있었거든.”
“이렇게 스스로 빠져나오셨지만요.”
그래도 나를 신경 써 준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면 고마울 따름이다.
“그래서 유라 혼자야?”
“어제까진 노먼도 있었어요. 블루 사파이어랑 리네는 오지 말라고 했어요. 둘 다 의욕은 넘쳤지만.... 아, 그리고 노먼은 저번에 붙잡혔을 때 포인트를 꽤 많이 벌었거든요. 충분히 포인트가 모여서... 그게.......”
“‘소원’?”
유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사람들이 마법소녀를 하는 이유는, 대부분 그 소원이란 것 때문이겠지.
도 소녀다운 소원을 위해 계약하는 게 대부분이었고.
포인트 샵에서 을 구매할 수 있는 충분한 포인트가 쌓였다면, 더 이상 싸울 이유가 없기도 했을 것이다. 노먼이 리타이어한 것은 그런 이유겠지.
“하, 하지만 노먼은 이것저것 최선을 다해 도와줬어요! 도움을 받았는데 아무 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다고... 괴인 레이더라던가, 함정이라던가 아지트 구조의 매핑이라던가... 노먼이 할 수 있는 건 다 해줬어요.”
“응? 아. 신경 안 써도 되는데... 응. 그 쪽도 고맙다고 하지 않으면 안 되겠네.”
너털 웃음을 흘리자니, 유라가 허리를 깊게 숙였다.
“저번에는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처음 뵀을 때, 무례한 말을 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유라의 드러난 어깨가 살짝 떨리고 있었다.
너무 그렇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데, 이 여자애는 상당히 고지식한 성격인가....
“붙잡혔던 것도 저흴 도와드리는 바람에 그렇게 된 것 같고... 그래서 최소한 탈출이라도 도우려고 했지만 이렇게 스스로 나오시고... 죄송함도 감사도 어떻게 하면 좋을지... 포인트는... 드릴 수 없지만... 다른 거라면, 뭐든 해드릴 수 있어요. 해드리고 싶어요.”
“그렇군. 그렇구만.”
뭔가 해주겠다고 하는 데 거절하는 것도 좀 그렇잖아?
나는 잠시 고민하다, 유라에게 제안했다.
“가슴.”
“......네?”
“가슴 만지게 해 줘.”
꼬물꼬물 손을 움직이며, 유라에게 싱글싱글 웃어보였다.
“....................................헤?”
유라가 얼빠진 표정으로 입을 헤 벌렸다.
“우웃... 훗...... 너, 너무해....”
유라는 바닥에 등을 댄 채 쓰러져, 가슴을 두 손으로 가린 채 몸을 움찔움찔 떨고 있다.
“후우, 만족만족.”
정말, 상상 이상의 거유구나, 유라는.
한 손에 다 들어가지 않는 크기에 부드러움과 탄력... 이 감촉, 여자여도 감동할만큼 놀라웠다. 원더풀이다. 환상향, 혹은 도원향을 본 것 같은 감격스러움이 내 안에 넘쳐흘렀다.
내 안에 있는 게 남자다, 이런 것을 떠나 그냥 순수하게 사람으로서 감탄했다.
이것이야말로 지고의 가슴인가.
“으으으으... 이, 이 거로 괜찮은 건가요...?”
“.......”
“손을 꼬물거리면서 뭘 그렇게 생각하는 건데요!”
“아니... 이 감촉과 감동을 잊지 않기 위해 머리에 철저하게 박아넣는 중이라....”
“하지마요!”
돌맹이를 던지기에 목을 꺾어 피했다. 콰드득! 하는 무시무시한 소리와 함께 돌의 절반이 벽에 박히고, 그대로 쪼개져 떨어지는 게 보였다.
......저런 걸 사람 머리에 던진다고? 미쳤나, 이 여자가.
“이것으로 충분해. 다른 건 더 필요 없어. 그보다 나도 너... 라고 할까 너희 팀한테 도움을 받았었는 걸. 그 왜, 버스에서 노멀들에게.”
“......그래서 블루 사파이어나 리네한테는 오지 말라고 한 거예요. 당신의 속을 상하게 할 말을 한 건 저랑 노먼이니까.”
아아. 그렇구나.
조금 전에도 생각했지만, 진짜 고지식한 성격의 여자였다.
내가 남자였다면 내 타입이었을 것 같다.
“유라.”
“네.”
“내가 남자가 된다면 사귀지 않을래?”
“네?!”
유라가 당황하는 게 눈에 보였다.
하긴... 갑자기 이런 말을 들어도 당황할 수 밖에 없겠지.
“잠깐만. 너무 갑작스러웠지. 실수야. 잊어 줘.”
“아, 예....”
“내가 남자가 된다면... 그래, 내 아이를 낳아줘.”
“네?!”
“책임은 질 거야! 결혼하자!”
“......아아. 괴인들한테 붙잡혀서... 이렇게나 머리가 이상해져버리고... 죄송해요... 이럴 수가....”
나는 매우 정상인데....
이상한 놈 취급 받았다....
* * *
“그런데 노먼은 무슨 소원을 빌었을까?”
“그녀만의 회사를 하나 차리는 게 꿈이었대요. 마법소녀 일 하면서 빚도 다 갚았고, 절대 실패하지 않을 사업을 하고 싶었다네요.”
“과연... 괜히 돈 계산이 철저한 게 아니었네.”
“뭐랄까, 저는 아직 학생이니까... 노먼 같은 경우는 ‘능력 있는 어른’ 같은 느낌이라 살짝 동경했달까요... 작은 일도 열심히 하시고.”
“......마음이 찔린다.”
“네?”
“아무 것도 아냐. 그렇지만 잘 됐으면 좋겠다. 노력하는 사람은 잘 돼야지.”
“그렇죠.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유라 너는 무슨 소원을 빌 거야?”
“글쎄요... 아직 잘 모르겠네요. 전 대학교 등록금 벌려고 시작한 거라.”
“그렇구나.”
“하지만 저번에 괴인들한테 범해지면서 포인트가 많이 쌓여서... 슬슬 고민해봐야겠어요.”
“어째 쓰러뜨리는 것보다 범해지는 쪽이 포인트 벌기가 더 쉬운 것 같네....”
“정말 그런 것 같기도 하네요....”
* * *
“언니~ 나 왔어.”
마법소녀 명 노먼, 본명 김혜연.
그녀는 능력 있는 여자였지만, 안타깝게도 주변 환경이 좋지 않았다.
부친은 그녀가 어릴적 빚만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고, 모친은 빚의 무게를 견디면서 딸 둘을 키우느라 건강이 많이 나빠졌다.
그러나 사랑받았다.
그것을 알고 있었기에 혜연은 최선을 다해 가족을 지키자고 결심했다.
돈을 버는 법, 쓰는 법, 관리하는 법을 배우고, 학생 시절부터 한 푼이라도 더 벌려고 노력하고, 스스로는 매일 똑같은 수수한 옷차림을 하면서 동생한테는 용돈 한 푼이라도 더 쥐어주려 하고....
그렇게 노력하던 그녀에게 굴러들어온 것이, 마법소녀라는 일.
늘 생활고에 찌들리던 그녀였지만, 마법소녀의 일은 벌이가 쏠쏠해서 좋았다. 포인트를 잘만 이용하면 본래보다 훨씬 많은 돈을 벌 수 있기도 했다.
빚은 금방 갚을 수 있었다. 원래부터 모친과 함께 열심히 줄여나가던 빛이었다. 빚이 사라진 그 날은 정말 하늘을 날 것 같이 몸도 마음도 가벼워졌던 것을 기억한다.
그리고 행운인지 불행인지, 괴인들에게 붙잡혀 범해진 것으로 생각 이상으로 포인트가 많이 벌렸다.
범해진 거야 뭐... 개한테 물렸다고 생각하면 된다. 애초에 마법소녀 계약을 하기 전에 그런 일을 당할 수 있을 거다, 라는 얘긴 들었고 각오하고 있던 바다.
어차피 괴인은 언제 어디든 튀어나오고, 마법소녀가 아니더라도 언제든 당할 수 있는 것이 지금의 세상이다.
그런 것보다, 소원.
드디어 포인트를 모은 노먼은, 기쁘게 소원을 빌었다.
“【절대 흔들리지 않을, 내 회사를 가지고 싶어.】”
연 매출은 얼마가 되었으면 좋겠다느니, 어떤 업종이었으면 좋겠다느니, 어떤 부하들이 있으면 좋겠다느니... 바라는 이상을 전부 담은 소원을 빌었다.
소원은 이루어졌다.
지금 노먼은, 김혜연은 세계적인 글로벌 기업의 사장이 되어, 능력 있는 여자로서 이름을 떨치고 있는 중이다.
“......언니, 아직 안 일어나네.”
김혜연의 동생, 김주희는 아쉬운 듯 들고 온 가방을 내려놓았다.
혹시 몰라 죽이며 환자식을 가져와봤지만, 필요는 없을 것이다.
“언제쯤, 일어나는 거야...? 응...? 언니.......”
노먼은 사장이 되고, 능력 있는 여자로서 이름을 떨치고 있다.
다만, ‘꿈의 세계에서’.
현실의 그녀는, 죽은 듯이 잠들어 있을 뿐이다.
원인은 모르고, 병세도 모르고, 죽는 것도 아니며, 배가 고파지지도 않고, 머리카락도 더 길어지지 않고, 숨만을 색색 쉬고 있을 뿐... 완전히 시간이 멈춰버린 공주님처럼, 숨을 쉬고 심장이 뛰는 것을 빼면 아무 것도 바뀌지 않은 채 그저 잠들어만 있을 뿐이다.
“언니, 언니이......!”
김주희는 잠들어 있는 김혜연의 손을 붙잡고, 눈물을 뚝뚝 흘렸다.
사랑하고, 동경하던 언니의 모습에 마음이 아파올 뿐이다.
도대체 무엇이 원인이 되어서 이렇게 된 걸까.
왜 갑자기 이렇게 잠들어버린 걸까.
이유는 모른다.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제발요... 신님... 하나님... 언니만 구할 수 있다면... 뭐든지 할게요.......”
그런 그녀의 물음에,
“언니를 구할 수 있다면, 뭐든지... 라고 했뾰?”
신도 사람도 아닌, 어느샌가 방 안에 나타난 앙증맞은 인형 같은 생김새의 요정이 답했다.
“뭐......?! 어, 어디서?!”
“나는 마법나라의 요정이뾰. 저기, 무슨 소원이든 이룰 수 있다고 한다면 어떻뾰?”
최면 음파가 실린 요정의 말은, 단숨에 주희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그, 그거... 언니를 구할 수 있어?”
“물론이다뾰.”
요정은 안심하라는 듯 자애롭게 웃었다.
“다만, 마법소녀가 되어서 메크라크를 무찔러야하지만... 괜찮겠냐뾰? 싸우는 건?”
주희는 잠시 고민하다, 끄덕, 고개를 끄덕였다.
“잘 선택했다뾰.”
요정은 웃으며 주희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이제 마법소녀로서의 힘이 그녀에 내려질 것이다.
그러나 주희가 붙잡고 있던 혜연... 노먼의 손은, 그러지 말라는 듯 살짝 힘이 들어갔다는 것을, 주희는 깨닫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