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화 〉#9 마법소녀는 버섯에게 굴복했습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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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흑, 흑, 으흐흐흐흐흑.......”
사람이 흘리는 눈물의 종류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슬플 때 흘리는 눈물이 일반적이라면, 분노를 참지 못하고 흘리는 눈물도 있고, 혹은 떼를 쓰며 억지를 부리기 위해 상대방의 감정을 뒤흔드는 방법의 하나로 우는 경우도 있다. 기쁨이 넘쳐서 우는 경우도 있으며, 넘쳐나는 감동에 눈물을 흘리는 경우도 있다.
지금 내가 우는 이유는 결단코 후자다. 넘쳐나는 감동을 주체하지 못하고 흐느껴울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것이다.
그만큼이나, 조금 전 의 7기 13화는 감동적이었다.
“으으으윽... 위치걸... 루비는 신의 선물이야... 이럴 수가....”
루비는 의 주인공으로, 붉은 머리가 인상적인 마법소녀다. 소녀스러움이 남은 외모를 가지고 있으면서 상대방의 은행 잔고를 없애버리거나 집을 불태우거나 적들의 항문에 딜도를 꽂아 넣는 등 철저하게 응징하는 그 모습은 말 그대로 붉은 악마에 필적했지만, 속이 여리고 친구를 구하기 위해 처녀까지도 바치는 그 모습은 순백의 천사로도 보인다.
그러나, 그 호쾌한 이중성에 잠재되어 있는 섬세한 심리를 알게 된다면... 그때부턴 그 누구라 할지라도 루비의 매력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된다.
정말이지, 루비는 신이 만든 캐릭터가 분명해... 이렇게나 완벽한 캐릭터가 세상에 존재한다니 말도 안 돼... 아아 이 기쁨을 전하고 싶어....
“커뮤니티... 커뮤니티... 이 감동이 식기 전에 전해야해...!”
최근 알게 된 커뮤니티에 서둘러 접속했다. 이런 감동이 담긴 리뷰 하나하나가 사람들의 마음을 풍요롭게 해주는 법이다. 무엇보다 감동도 기쁨도 혼자 묵히기 보단 나눌 때 배가 되는 법이다.
“정말이지 글러먹은 백수다냥....”
오랜만에 놀러온 쿠키가 힘없이 중얼거렸지만 무시했다. 나는 백수가 아니다. 마법소녀라는 엄중한 직책을 가진 어엿한 사회인인 것이다.
그러니 찔릴 것 없다!
암!
“어디보자... ‘위치걸 7기도 역시 최고였습니다. 역시 루비님은 천사예요’.... 다음은 뭐라고 쓰면 좋으려나....”
“대충 쓰면 안 되냥?”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내가 여기서 뭘 쓰냐에 따라 위치걸 7기 13화에 대한 내 평가가 평생 가버린다고! ‘그 때의 감동’을 떠올리려고 하는 순간 내가 대충 쓴 리뷰가 생각나서 푹 시들어버리면 어쩔 거야! 무엇보다 에 입문하려던 녀석들이 내 형편없는 리뷰를 보고 ‘아, 역시 아니야...’하고 떨어져 나가면 네가 책임질 거야? 앙?!”
“미, 미안하다냥... 그러니까 그렇게 살기 뿌리지 말라냥... 괴인한테도 보여준 적 없는 무시무시한 얼굴이냥....”
나는 표정을 풀지 않은 채 커뮤니티에 글을 마저 작성했다.
음...... 이 정도로도 부족하지만, 어쩔 수 없지. 이 정도 밖에 표현할 수 없는 내 글실력이 한탄스럽다. 대학도 이과 전공이었으니....
“만약 을 쓸 수 있다면 ‘글에 대한 재능’ 같은 걸 요구해볼까....”
“냥? 대작가가 되고 싶은 거냥?”
“딱히. 의 위대함을 전할 수 있기만 하면 충분해.”
“굳이....”
쿠키가 힘이 빠진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러고 보면 의 등장인물 중에 ‘소설가가 되고 싶어’라는 소원을 빌려고 마법소녀가 된 녀석이 있었지.
“......그런데 쿠키, 너네는 어떤 원리로 소원을 이뤄주는 거야?”
“냥?”
“에서는 일할수록 신이 내린 마법의 스탬프... 같은 게 쌓여서 무슨 소원이든 이룰 수 있게 되는 건데.”
그런데 단순히 포인트를 모으면 소원을 이뤄준다니, 매커니즘을 잘 모르겠다.
그 포인트란 것도 괴인을 쓰러트리는 것으로도 벌 수 있고, 범해지는 것으로도 벌 수 있고, 마법소녀를 도와주는 것으로도 벌 수 있고... 기준이 뭔지도 모르겠고, 그게 어떻게 쌓여서 소원을 이뤄주게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해가 안 가는 것 투성이다.
“글쎄... 설명할 수는 있지만냥.”
“있지만?”
“바보인 네가 이해할 수 있냥?”
“아주 사람을 우습게 본다...?”
설명해주고 싶어하지 않는 것 같아 보이는데다, 나도 귀찮아서 더 이상 묻지는 않기로 했다.
“너는 그런 거 하지마라냥.”
“응?”
“애초에 제대로 된 소원도 없지 않냥. 포인트샵의 같은 것 보단 네 힘으로 알아서 잘 살라냥. 그거, 제대로 된 거 아니니까.”
“아니, 그래도 난 빨리 마법소녀 그만두고 남자로 돌아가고 싶은데.”
“그 순간 백수가 되는 건데 괜찮냥?”
“.......”
“이렇게 자유롭고 벌이가 좋은 일이 쉽게 잡힐 거라고 생각하냥? 이렇게 에 푹 빠지는 나날이 허락될 거라 생각하냥? 야근이며 일에 찌들어서 취미 생활이고 뭐고 없는 좀비 같은 나날이 될 가능성은 생각 안하는 거냥? 세상에 야근 없고 네 생활을 존중해주는 그런 직장이 얼마나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거냥?”
“.......”
“그래도 자본이 좀 있고 시간도 좀 남아서 그 사이에 공부도 좀 하면 바라는 기업에도 취업할 수 있을 거다냥? 거기다 마법소녀는 공무원이라 기업에서 경력으로 인정해준다니까냥? 오래할수록 창창한 미래가 있는 데 굳이 포기해야하냥?”
“어.......”
“이 중요하냥 그까짓 취업이 중요하냥.”
궁극의 양자택일 앞에 머리가 아득해지고 어질어질해지는 게 느껴졌다.
취업은 중요하다. 취업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인생을 말아먹는다.
하지만... 은, 인생이다.
인생 그 자체다.
포기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답은 나오지 않았냥. 가끔 출동해서 괴인들을 물리치고, 가끔 삐끗해서 몸 몇 번 대주면 짜잔, 돈이 나오잖냥.”
“그래... 그러... 어, 아니, 잠깐만. 그러니까 그게 싫다고!”
“그런 종류의 직업도 있지 않냥. 너 같은 아무것도 못할 쓰레기 인간을 그나마 의미 있게 써준다는 데 감지덕지하지는 못할망정.”
“너 나한테 뭔가 감정있지?! 왜 그렇게 나에 대한 평가가 야박해?!”
“아무리 노력해봐야 세상은 결과를 내지 못하는 인간을 쓰레기라고 부른다냥.”
“사과해! 세상에 열심히 노력하고 있을 모든 사람들한테 사과해 이 싸이코 요정아!”
씩씩거리며 외쳐봤지만 쿠키는 태연하게 선반에서 과자를 꺼내서 멋대로 아작아작 씹을 뿐이다.
남의 과자 멋대로 먹지 말라고....
“응? 코멘트 달렸네?”
혹시 내가 올린 리뷰에 뭔가 잘못된 부분이 있진 않나 확인하려는데, 댓글이 달린 게 보였다. 내가 글을 올린 것과 거의 같은 시간이었다.
은 청소년 관람금지, 즉, 19세 이상만 시청할 수 있다. 자연스레 커뮤니티를 이용하는 것도 성인들뿐. 그리고 지금 시간은 이제 막 점심이 지난 시간이다.
직장에서 이런 커뮤니티를 이용할 것 같진 않고... 어지간히 한가한 한량이나 백수 같은 인간인 모양이네. 아니면 수업 없는 대학생이거나.
“뭐......야 이거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언?!”
댓글을 확인한 나는, 분노하며 탁자를 쾅! 두드렸다.
“뭐, 뭐냥?!”
“이, 이, 이, 이 썩을... 뭐 이런 놈이 다있어!?”
댓글의 내용은 완벽하게 내 주장을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아니, 객관적인 비판이라면 화를 낼 이유가 없다. 그런 거에 화를 내는 건 속좁은 속물들 뿐이지, 나 같은 관대한 사람은 어떤 의견이든 존중하고 더 나은 내일을 위한 밑거름으로 삼는다.
그러나...... 댓글에는,
『루비 그 년, 그냥 이중성 싸이코 아님?』
이딴 개소리와 함께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코멘트가 주르륵 달려있었다. 대부분 루비를 깎아내리는 내용이다.
사랑스러운 루비를!
용서 못해!
“쿠키! 그 으로 이 녀석 주소도 알려줄 수 있지?!”
“어.......“
“반드시 붙잡을 거야! 붙잡아서 생각이 바뀌도록 설교해 줄 거야! 이 놈의 주소를 알아내기 위해 포인트를 벌겠어!”
쿠키가 골이 아프다는 듯 한숨을 내쉬는 앞에서, 나는 업화와도 같은 분노를 활활 불태웠다.
유라에게서 전화가 온 것은, 그로부터 10분 뒤의 일이었다.
* * *
유라의 전화를 받은 나는 초조함에 손톱을 물어뜯었다. 큰일... 큰일이다!
[언니, 왜 안 왔어요? 오늘 ‘그 날’이잖아요.]
이 말을 듣고서야 기억난 것이다. 오늘은 의 수량 한정 캐릭터 상품 출시일이었다!
“불찰...! 나라는 사람이 깜빡 잊고 있었다니...! 이럴 수가...!”
밤새 7기를 감상하는 바람에 날짜가 하루 바뀌었다는 것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어휴, 분명 케이 언니도 올 줄 알았는데, 안 와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다니까요.]
그렇게 말하며 내게 보내준 사진에는, 안경을 쓰고 부스스한 머리의 유라가 캐릭터 상품들을 한가득 끌어안은 채 찍은 사진이 있었다. 입고 있는 옷도 일러스트 티셔츠다.
평일인데 수업 없는 날이냐고 물었더니,
[말이라고 해요? 쨌죠! 인데 어떻게 수업을 듣고 있어요?!]
라는 훌륭한 답변이 날아왔다.
저번에 갱도 앞에서 만난 뒤로 내가 착실하게 포교한 결과였다. 이미 훌륭한 빠가 된 유라는 위치걸의 마수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한 명의 인생을 나락의 구렁텅이로 빠뜨린 기분은 들지만, 뭐.... 괜찮아... 난 이 편이 더 취향인 걸!
[어쨌든 이쪽 지점은 거의 다 팔렸어요. 이제 와서 온다고 해도 구매할 수는 없을 걸요?]
“크윽...... 그럴 수가!”
그러면 이미 구매한 사람들을 뒤에서 쳐서 기절시키고 뺐는 수 밖에 없잖아!
[강도짓은 안 돼요....]
“크윽....... 그 사람들도 위치걸의 신도니까... 어쩔 수 없지....”
[종교가 되었나요.]
그러면 어떻게 할까, 고민하던 중에 커뮤니티에서 새로운 정보를 입수했다.
B시의 전문몰은 이벤트 시간이 다른 곳보다 한시간 늦다는 것!
시간을 맞추지 못한 사람은 이곳에서 사면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B시까지는 지하철로도 1시간은 넘게 걸려...! 환승이 늦어지면 더 걸리기도 하고. 그럼 택시를.......’
“무슨 생각을 하냥? 갑자기 나를 보고.”
아. 그렇네.
생각해보니 왠만한 대중교통보다 빠른 이동 수단이 있었지.
“!”
“냥......?”
나는 서둘러 변신한 후, 창문을 통해 전속력으로 집 밖으로 뛰쳐나왔다.
좋아. 괴인들을 상대할 때도 보이지 않았던 진심을 보여줄 때다!
* * *
택시를 이용하면 37분 정도 걸린다는 거리를, 단 7분만에 주파했다. 지도를 잘못보지 않았다면 더 빨리 도착했을 것이다.
“허, 허공답보냥......?”
“응? 해보니까 되던데?”
빨리 움직여야 된다고 생각했더니, 허공에서 공기를 박차고 2단 점프도 무리 없이 가능했다. 정말 뭐든 되는 구나, 마법소녀.
어쨌든 혜성처럼 애니메이션 전문몰의 앞에 낙하한 나는, 곧바로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지금 입고 있는 코스튬은 으로, 그냥 교복이다.
그러나 교복이라고 하기 참 민망할 정도로 기장이 짧았다. 미니스커트에 가까운 치마는 아슬아슬하게 팬티가 보일락말락하고, 속이 비쳐 보이는 셔츠도 마찬가지로 짧아서 배꼽이 그냥 보이는 정도다.
성인의 몸으로, 이런 야한 교복 코스튬을 입고, 평일 대낮에 한정 캐릭터 굿즈를 구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달려들어가다니... 내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뭔가 굉장할 정도로 안타까운 기분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을 위한 당연한 희생으로 받아들여야지....
솔직히 도착하자마자 변신은 풀고 싶었는데,
라는 안내 음성이 들려왔다.
아직도 이 코스튬이란 시스템은 잘 모르겠다만, 지금은 벗을 수 없는 모양이었다. 쪽팔려 죽겠지만 어쩔 수 없다. 그리고 변신 중에는 ‘인식 장애’가 걸리는 모양이니까.... 괜찮아... 응....
“있다!”
사람들이 기이하게 보는 시선도 아랑곳 않고 서둘러 안으로 들어가니, 염원하던 루비 캐릭터 상품이 보였다. 그 외에도 루비를 마법소녀로 변신시켜주는 개 같은 요정 ‘타타라 도그’ 인형도 있었다.
먼저 루비 관련 한정 상품들을 눈에 보이지 않을 속도로 품에 안고, 마지막으로
‘타타라 도그’를 집어들려던, 그 순간이었다.
“뭐.......”
‘타타라 도그’ 위에서, 그만 손이 겹쳐버렸다. 새하얗고 섬세한 손가락이 눈에 띄는 예쁜 손이었다.
“......저기요, 제가 먼저 잡았는데요?”
나는 가능한 웃으려 노력하며 말했다.
“아니아니지. 내가 먼저 시선으로 찜해둔 걸, 네가 뺏어가려하는 거잖아.”
말도 안 되는?!
황당하고 어이없는 의견을 내는 불청객이 누군가 싶었다. 나는 분노와 함께 고개를 들고, 그리고 말을 잃었다.
“허.......”
흠 잡을 곳 없는 미녀가 거기 있었다.
나보다 키는 살짝 작고, 폭신폭신해보이는 금발에 신기하게도 금색 눈에다, 새초롬한 붉은 입술이 매력적인 미녀였다.
여자가 된 내 외모에 나는 상당히 자신감이 있었지만, 그런 나에게도 꿇리지 않을 정도의 미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놀란 건 그 부분만이 아니었다.
상대도 아마도 같은 이유로 놀란 모양이었다.
내가 교복 코스튬을 입고 있었던 것처럼.
눈 앞의 상대도 묘한 프릴이 달린 드레스 같은 이상한 옷을 입고 있었던 것이다.
틀림 없다. 이 여자도 분명――
““마법소녀?!””
두 사람의 경악에 찬 목소리가 겹쳤다.
* * *
“어디보자... 그런데 이걸 어디다 쓸까냥.”
케이가 달려나간 후, 쿠키는 집 한구석에 처박힌 거대한 마석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저번 갱도의 아지트에 방치해둘 수는 없을 것 같아 케이가 번쩍 들고 온 마석이다.
어중간한 놈들한테 넘긴다면 오히려 위험할테지만, 이대로 두는 것도 아깝다. 무엇보다 그 치트인 케이라던가, 그런 비슷한 마법소녀가 또 있다면 메크라크 쪽에도 비장의 카드가 필요하겠지.
“......‘박사’한테 보내볼까냥.”
쿠키는 허공에 게이트를 열어, 그대로 마석을 어딘가로 전송시켰다.
원래 마석이 있던 자리에는 마석과 똑같이 생긴 모형을 남겨두었다.
이것으로 완전범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