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소녀는 악에게 굴복하였습니다-69화 (69/172)

〈 69화 〉#17 마법소녀는 유대의 힘을 믿는다고 합니다(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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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냐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소머리 거인에게서 쏘아진 거대한 광파(光波)와, 우리 앞을 막아선 쿠키의 반투명한 보호막이 서로 맞부딪히고, 힘겨루기하듯 밀어내고, 길항했다.

불꽃이 튀기고, 질 수 없다는 듯 이를 악문 쿠키의 얼굴을 광파의 빛이 환하게 비추었다.

그러나 그 시간도 아주 잠깐.

“으아아아아아아아아!”

“꺄아아아아아아아아!”

쨍그랑-! 하는 높은 소리와 함께 보호막은 산산조각이 나 깨어져나가고, 거인이 쏘아낸 광파는 쿠키를, 우리를 집어삼켰다.

시야가 새하얗게 물들었다.

* * *

“아.......으.”

누군가의 신음소리가 들렸다.

어질어질한 시야 속에서 이곳이 복도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무래도 무시무시한 열량을 가진 광파는, 우리를 휩싼걸로도 모자라 뒤에 통로를 가로막던 돌더미마저 분쇄시킨 모양이다.

“야, 야, 괜찮냐?”

“...알파냐.”

지척까지 다가온 알파가 사양않고 내 뺨을 찰싹찰싹 두드려댔다. 아이고, 어지러워.

“......우리, 안 죽었네.”

알파나 블루도 쓰레기처럼 널브러져 있긴하지만, 멀쩡하게 살아남아 꿈틀거리고 있다.

알파는 『8』이라는 숫자가 나온 회중시계를 보여주었다.

“쿠키의 숭고한 희생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어. 아슬아슬하게 변신했거든.”

“그렇구나, 쿠키의 희생은 절대 잊지 않을 거야... 이틀 정도는.”

“대단한걸. 난 오늘 의 한정 굿즈를 구매하는 순간 잊어버릴 것 같은데.”

“언니들, 정말....”

널브러져있던 유라가 낑낑거리며 일어섰다. 팔을 내밀어, 근처 잔해와 함께 굴러다니던 쿠키를 쏙 빼냈다.

너덜너덜해진 쿠키는 몸의 절반이 새카맣게 그을린데다가, 한쪽 팔은 완전히 뜯겨나갔다. 정말 죽은 것인지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아니, 저번에 배를 꿰뚫렸을 때도 살았었고, 이 정도론 죽거나 하지 않을 거다. 그렇다고 믿고 싶다.

일단 혹시 모르니 합장, 그리고 묵념. 고마웠어, 쿠키. 덕분에 살았다. 잘가. 천국에 갈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기도해줄게. 근데 콱 지옥에나 떨어져라. 이러면 안 되겠지.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쿠키가 이래서야 도망치기도 힘드려나~.”

미로 같은 던전 길을 헤치며 바깥에 도달하기보다 먼저, 거인들의 손에 의해 이 던전이 무너져버리는 게 더 빠를 것 같다.

나는 유라의 손에 들린 쿠키를 다시금 매만져보았다. 너덜너덜해져서는, 상처투성이가 된 자그마한 몸을.

두통이라던가 최면이라던가, 요정이 왜 우리를 도와주느냐던가... 조금 전까지 쿠키의 태도를 보면 뭔가 숨기고 있는 건 명백했다. 애초에 숨기고 자시고, 내가 마법소녀 일을 시작하게 된 건 쿠키의 어처구니 없는 협박 때문이었으니까, 어차피 이래저래 원망하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마법소녀 일을 하는 거에 별로 불만이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수입원이 생기니 좋고, 남자로 돌아갈 수 없는 것도 아니다.

쿠키가 숨기고 있는 게 뭔지는 모르겠고.

우리를 어떻게 이용해먹으려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딱히 거기에 찡찡거리며 불평할 정도로 어린애인 것도 아니다.

『부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그워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잔해더미 너머, 대촬영장 안에서는 거인들의 울음소리와, 그들이 요란하게 날뛰는 소리가 여전히 들려오고 있다. 이쪽이 결사의 각오로 막아냈던 광파도, 던전을 무너뜨리고 있는 질릴 것 같은 육중한 폭력도 거인들을 지치게하는 일은 없는 모양이다.

날뛰는 거인들에 의해 진동은 계속해서 이어진다. 이대로 있으면 이 던전이 무너지는 것도 시간 문제. 그러나 거인들은 유유히 무너진 동굴의 잔해를 빠져나가 마을을, 지구를 마구잡이로 덮칠 것이다.

이제 어쩔 거냐고, 눈빛으로 묻는 유라에게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알파는 어쩔 거야?”

“나? 음... 네가 하자는 대로 할게. 그보다 빨리 나가자, 여기. 가게 문 닫기 전에, 아니, 상품 다 팔리기 전에 가야 해.”

“...난 솔직히 쿠키가 마음에 들지는 않거든.”

나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런데, 당하기만 하고 그냥 도망치는 건 성격에 안 맞아. ――솔직히 말하자면, 조금 빡쳤어, 나.”

“하고 싶은 대로 하라니까. 뭐가 됐든 좋으니까 빨리 돌아가자. 블루문 상품은 인기 많아서 가장 먼저 팔린단 말야.”

조금 전까지 머리를 아프게 했던 두통은 사라져 있었다.

쿠키며, 요정들을 의심할 생각도 사라졌다. 저 거인도 사라지고, 할 일 없이 빈둥거릴 시간이 되면 그때쯤 심심풀이 삼아 물어보자.

멋진 남자라면 사사로운 것에 매여서 고민하는 건 어울리지 않는다.

멋진 여자라면 묵직한 비밀을 가지되, 어둡지 않는 법이다.

그리고.

당한대로 갚아주는 것이 남자이며,

당한것의 10배로 되돌려주는 것이 여자다.

그러니까, 저 거인들은 혼쭐을 내주겠어.

“자.......”

그런 우리들의 심중을 읽었는지, 유라는 눈을 연신 깜박이더니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소리쳤다.

“잠깐만요!? 무슨 소리에요?! 제정신이에요?! 저걸 어떻게 한다고요! 요정님이 이렇게 희생해가면서 지켜주셨는데, 굳이 뛰어들겠다고요?!”

“유라야, 어쩔 수 없어. 남자는 도망쳐선 안 될 때가 있는 법이니까.”

“무슨 소린데요?! 그보다 언니들이 남자예요?!”

“그럼, 여자는 물러서선 안 될 때가 있는 법...이라는 건?”

“말장난하지 말고요!”

“훌쩍, 혼났어. 위로해줘, 알파.”

“옳지, 옳지. 내 품에 안기렴.”

“언니들 진짜아~~~~~~~~~~~~!”

소리를 빽 지르는 유라에게 안심하라며 어깨를 토닥여주고는, 우리는 자리에서 선선히 일어나 잔해를 해쳤다.

알파가 걱정말라는 듯 유라를 위로해주었다.

“유라는 걱정 말도록. 의 블루문께서는 말씀하셨으니까. 『인생이란 거, 대충 해보면 어떻게든 된다』고.”

“걱정밖에 안 되는 데요, 알파 언니....”

“늘 심신을 안정시키고, 고요한 수면처럼 잔잔한 마음으로, 어떤 현실이라도 받아들이는 부동(不動)의 마음을 품으라는 거지.... 감동이야, 역시 블루문님....”

“그런 뜻이 아닌 거 같은데요....”

“알파, 알파. 그런데 저번에 통계에서 봤는데, 한정 상품은 블루문보단 루비가 더 잘 팔리더라.”

“앙~~~~~~?! 뭐라고 했냐 이 시끼가?! 개소리할 거면 죽여버린다?!!”

“부동의 마음은 어디갔나요...!”

* * *

『부워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콰앙! 쾅! 콰과과과과과과과과과!

거인은 던전의 벽이며 바닥을 마구 깨부수고 있다.

심상치 않은 흔들림과 함께 금이 가기 시작하는 던전은 대들보가 뽑힌 가옥과도 같아서, 금방이라도 무너져내릴 것 같았다.

거인들의 반신은 여전히 호수 안에 잠겨져 있는 채다. 빠져나오고 싶지만, 블랙의 불완전한 조작으로 아직 구속이 완전히 풀리지 않았다. 아마 이 던전이 무너져내리면, 그제서야 자유롭게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이다.

거인들은 밖으로 나가길 갈망하고 있었다.

병기로서 만들어진 그들에게 주어진 사명. 지구를 침략해라. 마법소녀들을 격퇴해라. 유린하고, 빼앗고, 파괴하고, 하고 싶은대로 날뛰어라――주입된 그러한 욕구에 따라, 한시라도 빨리 이 지긋지긋한 감옥과도 같은 던전을 벗어나 그들의 원료가 될 마법소녀들을 잔뜩 포획하고 잡아먹기 위해, 거인들은 날뛰었다.

열량과 질량을 가진 광파가, 육중한 주먹과 팔이 먼지와 파편을 일으키며 마구잡이로 헤집는 가운데, 먼저 이상을 발견한 것은 소머리의 거인쪽이었다.

『..............?』

소머리의 거인, 의 눈에 보인 것은, 잔해를 밀어내며 다가오는 두 명의 마법소녀.

마법소녀다운 착 달라붙은 드레스슈트를 입은 두 여성. 한 명은 흑발에 흉흉한 분위기를 품은 적안. 그리고 다른 한 명은 금발에 금안.

분명 조금 전에 자신이 뱉어낸 광포로 섬멸했다고 생각했지만, 두 사람은 너덜너덜 먼지투성이일 지언정 멀쩡해보였다.

잔해를 밀어내고, 자신들을 발견했다는 것을 깨달은 두 사람은――단번에 가속해, 거인들을 향해 시위를 벗어난 화살처럼, 혹은 탄환처럼 달려오기 시작했다.

――적이다.

――마법소녀다.

――격퇴해야해.

――아니, 집어삼키자.

――아무래도 좋아.

――파괴는 즐거우니까.

거인은 파괴를 행할 대상이 있다는 사실에 히죽 웃었다.

최초에 병기로서 프로그래밍된 것이 아닌, 하나의 자아라고 불러도 좋을 본능.

단순히 짜증을 부리듯 그들을 가둔 감옥을 부숴버리는 것에선 느낄 수 없는, 그들이 태어난 이유라고 해도 좋을 를 파괴한다는 것에 거인은 희열을 느끼고 있었다.

소머리 거인의 입에 푸르고 흰 입자가 모여들었다.

몸 안쪽에 비축해두었던 마력을, 한차례, 두차례 정제하고 모아, 조금전보다도 강한 공격을 준비한다.

이번에는 적을 확실하게 분쇄할만한, 어쩌면 이 일격을 마치고 거인 자신의 안쪽이 텅 비어버릴지도 모를 정도로, 온 힘을 다한 일격을, 오로지 눈 앞의 마법소녀들을 분쇄하기 위해 준비한다.

“저거 막을 수 있는 거 맞지?!”

“블루문의 명언! 『진짜로 멋있는 여자는 한 입으로 두 말 안하는 법』! 절대로 뚫어보일테니까 걱정마!”

그렇게 말한 알파는, 거인에게서 조금 떨어진 위치에서 우뚝 멈춰섰다. 물리 공격을 가하는 말머리 거인의 팔은 이 거리에서는 닿지 않는다.

말머리 거인보다 먼저 우릴 발견한 소머리 거인은, 조금 전부터 미동도 않고 푸른빛을 입 안에 모으고 있다. 조금 전보다도 훨씬, 훨씬 강대해진 빛이 그 입에 모이고 있어서,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것은 빛으로 된 불멸마저 불사하는 나무의 가지】.”

그리고 알파는 그 무시무시한 위압감을 앞에 두고, 조용히 영창을 시작했다.

, 쿠키가 죽을 힘을 다해 광파를 막았던 그 한순간 겨우 뽑아낸 회심의 카드.

오로지 운에 의존하는 만큼, 잘못하면 상태보다도 훨씬 약해지고 무쓸모해지기 때문에 가능한 조심하던 알파가 체념하듯 돌린 룰렛으로, 나온 숫자는 분명 상당히 높은 수준인 『8』.

과 함께 바뀐 그녀의 코스튬은 녹색을 기조로 한, 숲의 요정을 연상케 하는 부드럽고 웅장한 느낌의 드레스로, 그녀의 영창을 따라 그녀의 몸을 감싼 몇 겹이나 되는 반짝이는 베일이 심하게 펄럭였다.

“【알브의 이름을 빌려 청하건대, 기생수 숲의 동포여, 부디 이곳에 손을】.”

우지지지지직-! 콰드득!

발치에 나타난 것은, 시간을 빨리 감은 듯 무시무시한 속도로 자라나고, 퍼져나가고, 휘감듯 일어나는 나무의 줄기.

“【기초는 생명을 품는 개념. 공포를 이기고 불사를 멸하라. 과거는 미래로. 미래는 영원으로. 닿지 않는 하늘의 신을 향해 팔을 뻗자, 대지의 팔】.”

알파의 마력과, 대지의 힘을 양식으로, 나무는 계속해서 그 크기를 비대하게 키워갔다.

우리를 휘감듯 커져나가는 나무의 줄기는, 이제는 무시무시할 정도로 커져갔다. 시야마저 완전히 가릴 정도로 커져가는 그것은, 줄기의 끝을 정면으로 향했다.

그 끝이 가리키는 것은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소머리의 거인, .

“【꿰찔러라, 겨우살이의 가지――】”

전승이자, 전설로 빛의 신을 죽였다는 창의 끝이, 얄궃게도 같은 ‘신(神)’의 이름을 달고 있는 병기를 향하고 있다.

“【미스틸테인】!!”

그대로 내뻗으며, 살아있는 것처럼 신살(神殺)의 창이 쏘아져나갔다.

동시에, 의 입에서도, 이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무시무시한 질량의 광파가 쏘아져나갔다.

* * *

――――――――――――――――!

무시무시한 소리와, 그리고 섬광.

혼신의 일격이라는 듯이 쏘아진 알파의 창과, 의 광파는 맞부딪치고, 커다란 섬광과 폭발을 일으키고, 그리고 금방 그 처참한 결과를 드러냈다.

『―――.......!』

섬광과, 폭염이 걷히고 드러난 것은, 깊게 뻗어나간 나무줄기의 끝에 머리 일부와, 오른쪽 상반신이 완전히 날아가버린 .

몸의 일부와 머리를 잃어버린 소머리 거인은, 그대로 힘을 잃은 듯 천천히 쓰러져내렸다.

촤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육중한 몸이 물에 잠기자, 커다란 물줄기가 위로 치솟아오르고, 호수에서 튀어오른 물이 대촬영장에 비처럼 뿌려졌다.

『―――――――――?』

그 옆에 서 있던 말머리 거인, 은 눈 앞의 광경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계속 이어가던 파괴의 행위도 그만둔 채 가만히, 이 쓰러진 장소를 내려다보고 있다.

그리고 나는.

“......터치.”

“오케. 수고링.”

알파가 힘없이 내민 손에 짝! 하니 손뼉을 마주쳐주고는, 그 틈을 타 잽싸게 호수를 향해 달려들었다.

* * *

솔직히 말하자면 저 정도의 괴물을 어떻게 할 수 있을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아니, 칼 한자루 들고 몸집이 산만한 괴물을 상대하라니, 어디의 무협지에서도 그런 건 안 나오지 않을까? 기본적으로 검이니 총이니 하는 건 사람을 상대하라고 만든 거지 괴물을 없애라고 만든 건 아니잖아. 그렇지?

그래도 어쨌든 해야만 하기 때문에, 열심히 방법을 고민하던 나는 자본주의의 권능을 이용하기로 했다.

즉, 을 이용해 닥치는 대로 구매하는 것.

S 때문에 을 사느라 포인트를 대량으로 낭비하긴 했지만, 그나마 아직 남아있는 포인트를 몽땅 새로운 이며 을 개방하는 데 쏟아부었다.

아까운 내 포인트.

아까운 내 보너스...!

여기에 다 써버리면 굿즈를 사는데 지장이 생기겠지만, 저 쓸데없이 커다란 거인을 격퇴한다면 틀림없이 소비한 것 이상의 포인트를 벌 것이다. 그렇게 믿었다. 믿지 않으면 도저히 정신을 유지할 수가 없다. 안 된다면 은행이라도 털어야지. ...그건 역시 좀 아니겠지?

어쨌든.

그렇게해서 을 이용해 막무가내로 개방한 스킬이며 마법 중에... 쓸만한 것을 겨우 하나 찾아내었다.

『크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벌새처럼 쏜살 같이 다가오는 나를 발견하고는, 쪽은 정신을 차렸는지 나를 견제하기 시작했다.

그 굵직하고 긴 팔을 휘둘러, 마치 벌레를 쳐내듯 나를 쓸어버리려 한 것이다.

“훗...!”

나는 근처에 있던 잔해를 밟고, 짐승처럼 유연한 몸놀림으로 높게 뛰어올라 거인의 팔을 피해냈다.

팔을 피하는 것과 동시에, 스쳐지나가는 순간 손에 든 장식 없는 칼로 슬쩍 그어봤지만, 무언가에 밀려나가듯 검날이 튕겨나가기만 할 뿐 거인의 팔은 멀쩡했다. 이게 쿠키가 말한 보호막인가 뭔가인걸까.

제대로 된 상처를 주려면, 알파가 그러했듯 보호막 째로 날려버릴만한 파괴력이 있어야되는 모양이다.

쾅! 콰광! 쿠르르르릉!

쿠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세 쌍이나 되는 거인의 팔이 이리저리 휘둘러지며 나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하지만 조금 전 을 이용해 개방한 스킬 덕분에, 나는 눈을 감고서도 어디로 어떻게 팔이 날아올지 전부 알 것 같았다. 어떻게 피하면 좋을지도.

나는 마치 물이 흐르는 것처럼, 거인의 손을 요리조리 피해가며 착실하게 지척까지 다가갔다.

그러나 어떻게 해도 잡히지 않는 내게 열이 받았는지, 거인의 움직임이 변했다. 그대로 세쌍의 손을 서로서로 맞잡아, 세 개의 거대한 덩어리로 만들더니.

그대로, 인정사정없이 바닥을 향해 내리찍었다.

『쿠워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앙!!!!!!

“우오옷...?!”

대지진.

거인의 괴력과 중량으로 떨어진, 대지에 내리쳐진 폭력의 철퇴.

어마어마한 지진과도 같은 흔들림을 낳으며, 이미 파괴될대로 파괴되었던 바닥은 그대로 균열과 함께 무너져내렸다. 고여있던 호수의 물이 무너진 바닥을 통해 넘쳐나듯 빠져나가고, 아래층이 드러났다.

거인은 만족한 듯 웃으며, 빠져나가는 호숫물에서 차츰 몸을 빼내려 하고 있었다.

“【이제는 또 어디로 가볼까... 『무』가 있는 칼의 산봉우리도, 고락이 있는 세상의 흐름도 즐길거리는 많다꾸나】.”

그리고 나는.

토독, 하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거인의 앞에 우뚝 솟은 바위 위에 올라탔다.

한 손에 쥔 채 가볍게 늘어뜨린 칼은, 내 마력을 받아 은은한 빛을 발하고 있다.

“【남자를 알고 술맛을 알고, 세상을 알고 고락을 알고, 혼자임을 알고 함께임을 알고, 이것도 저것도 어찌 즐겁다 하지 못하랴.】.”

거인이 나를 발견하고는, 다시금 찢어질 듯이 포효했다.

그토록이나 쩌렁쩌렁하게 울리던 포효소리였지만, 고요하게 선 내 앞에선 바람 한 점 없는 수면처럼 잠잠해졌다.

거인의 팔이 올라오고, 다시금 나를 깔아뭉개기 위해 휘둘러졌다.

그에 반해, 나는 느긋하게 칼의 끝을 아래로, 거인의 중심점 아래를 가리키듯 늘어뜨렸다.

“【검의 길도, 인생의 길도 결국은 같은 것임을 알았네】.”

읊조리는 것은 영창도 뭣도 아닌, 단순한 자기암시의 말.

의 상품을 있는대로 구매해 개방한 것 중 고른 것은, 알파와 같은 이 아닌 단순한 .

가 로 변하고, 이를 조건으로 만족할 시에만 열리는 을, 나는 잠잠한 마음으로 준비한다.

“【일획(一劃)에 마음을 담고, 휘두름에 시야를 담고, 그 너머에 생을 담았으니, 이격(二擊)이 무슨 필요가 있으리요】.”

거인의 주먹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다가오고 있지만, 이 눈에는 멈춰있는 것처럼, 하품이 나올 정도로 느릿느릿하게 다가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희미하게 웃으며, 천천히 다가오는 거인의 주먹에 아랑곳 않고, 그대로 손에 든 장식 없는 칼을 휘둘러올렸다.

“【――부디 이곳에, 단 한치의 극의(極意)를】.”

스킬의 이름은 . 사용자에게 검의 길, 그 끝을 보여주는, 단순한 이정표이자 편도티켓.

칼이 휘둘러졌다. 날이 부드럽게 헤엄친다.

그러나 의 응용이 들어간 그 일격은, 나를 망가뜨리고 파괴하기 위해 달려드는 거인의 주먹보다도 빠르게, 휘둘러져.

쩌억-! 하고.

칼끝이 파고들 여지를 주지 않던 거인을.

방대할 정도로 거대한 호수를.

넓은 바닥을.

던전의 벽을.

높은 천장을.

층을 넘어서, 던전을.

그리고 공간을――

말 그대로 어긋나도록, 두쪽으로 갈라버렸다.

* * *

촤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두쪽으로 갈라져, 점차 물이 빠져나가는 호수에 잠겨든 거인의 시체를 내려다보았다.

“뭐야, 쿠키 녀석. 어쩌지도 못할 거라더니.”

의외로 시시했네~ 같은 감상을 품는 시야 저편에서, 유라가 쿠키를 끌어안은 채 달려오고 있었다.

어쨌든, 지긋지긋한 의 일도, 이걸로 일단락이 난 모양이다.

끝이다.

드디어.

......지금부터 전력을 다해 여기서 빠져나갈 테니, 아직 한정 상품 판매 시간에 늦지 않았길, 전심전령으로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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