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5화 〉#2-3 단비는 분노했다고 합니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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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아무나 빨리 와 이 새끼들아아아아~~~~!!!!”
미쳐서 날뛰기 시작하는 단비.
그 서슬퍼런 기색에 나와 단애는 서로 손을 맞잡은 채 구석탱이에 찌그러져 있었다.
감옥 철창을 탕탕탕탕 두드리는 모습이 동물원에서 화가 잔뜩 난 원숭이 같다는 말은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오래 살려면 입을 조심해야하는 법이다.
뭐지, 뭐가 저렇게 화가 난 걸까.
“드, 드디어 갇혀있는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 걸까...?”
“원래부터 흉포한 아이니까~... 진짜로 터져버린 걸까. 도적들을 어떻게 못한다고 우리한테 화풀이 하면 어떡하지~?”
단비가 마운트를 잡고 폭행하는 모습을 상상하고, 나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덜덜 떠는 사이, 험상궂은 기색의 똘마니 도적 한 명이 다가왔다.
“하, 뭐야... 왜 갑자기 난동이야?”
머리에 쓰고 있는 바이저가 쓸데 없이 멋있는 놈이다. 바이저의 렌즈에서 레이저라도 쏠 것 같았다.
“뭐냐, 마법소녀? 죽고 싶어? 앙? 팍 씨――”
쾅!
단비가 철창을 세게 걷어찼다. 맨발이라 피부가 찢어져 피가 나는데도 아랑곳 않고.
“너야말로 뒤지고 싶냐? 응?”
“......아뇨....”
무시무시한 단비의 음색에, 잔뜩 겁을 주려던 도적이 되려 겁먹고 쭈그러들었다.
이제는 머뭇거리면서 단비의 눈치를 보기 시작한다.
“저기... 왜 그렇게 화가 나셨나요....”
쾅!
“히익?!”
단비가 주먹으로 철창을 콰앙 때리자, 흠칫거리며 뒤로 물러서는 도적.
단비가 당장에라도 빛이 번쩍-! 날 것 같은 흉흉한 눈으로 도적을 노려보았다.
“............요리.”
“네?”
“요리하게 해 줘, 개X끼들아!! 주방으로 보내 씨X놈들아아아아아!!!!”
도적은 어리둥절.
우리도 저리둥절.
도적이 무슨 뜻이냐고 묻듯 바이저 너머로 우리를 쳐다보고, 우리도 무슨 일인지 몰라 도적을 마주봐주었다.
그 미묘한 분위기 속에서, 단비가 분노로 활활 타오르며 말했다.
“도저히 용서 못해! 이 좋은 재료들을 가지고, 이딴 식으로 요리해서 처먹는다니, 재료에 대한 모욕이야! 용서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아아아!!!!”
“아, 저기... 우리들의 요리가 입맛에 안 맞으신다는....”
“닥쳐! 이게 요리냐?! 개밥이지!”
“하윽.”
“재료가 아까워, 재료가... 그냥 맛 없는 음식이면 용서할 수 있어... 포로 생활이니까 사치는 안 바래... 그치만 눈앞에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고기나 아무리 봐도 싱싱하니 질 좋은 채소가 있는데, 여러 가지로 써먹을 수 있는 좋은 재료들이 있는데, 그냥 생으로 먹고 날로 먹고 구워먹고 끼워먹고 끝나는 게... 재료에 대한 모욕이란 말이다 씨X것들아!!! 당장 꺼내줘! 나를 주방으로 데려가아아아아아아아!!!!!”
아아, 그렇구나.
그러고 보니 단비는 호텔조리학과에, 【단애의 성】에서도 꾸준히 우리에게 요리를 만들어 제공해 준 요리마니아다.
이 혹성에 막 떨어져서 에서 재료를 구매해 요리했을 때도, 이래저래 손보면서 최상급 요리로 만들었더랬지.
아무래도 도적들은 좋은 식재료는 구할 수 있었으나 좋은 요리사는 없었던지, 매번 먹는 레퍼토리가 너무 똑같긴 했다.
“요, 요리라... 그치만... 너흰 포로라서....”
“누가 도망치겠대?! 망이라도 보든가 썅! 못 참아! 재료가 낭비되는 거 못 보니까 당장 날 주방으로 데려가든가, 아니면 내 목에 칼을 꽂아넣든가!!!”
배째라는 기세로 쩌렁쩌렁 외치니, 결국 도적쪽이 꼬리를 말고 도망쳤다.
단비는 도적이 사라지고서도 한동안 발광하듯 감옥을 쾅쾅 두드려댔다.
나와 단애가 혹시나 분풀이의 대상이 될까 걱정하며 덜덜 떨었음을 말할 필요도 없다.
* * *
철그럭, 철걱!
“메로메로. 요리를 해준다면야 좋지 메로메로. 노예가 요리하는 건 이상할 일도 아니고 메로메로.”
......이상한 말투.
두 손을 구속한 구속구에서 이어지는 철그럭거리는 사슬. 단비는 그 사슬의 끝을 붙잡힌 채 끌려가고 있었다.
다행히 알몸은 아니다. 감옥 안에 던져진 거적때기 같은 누더기옷 한 장 밖에 입지 않았지만.
오히려 이렇게 입고 있으니 알몸보다 더 음란한 느낌도 들지만... 뭐.
그보다 거적때기 누더기 옷에다 스타킹을 입히는 건 무슨 의도인지 모르겠다. 지나치게 마니악한 성벽아닐까.
‘그건 그렇고.’
단비는 끌려가면서, 눈동자만을 흘긋흘긋 움직여 주변을 살폈다.
‘어찌어찌 감옥 밖으로 나오긴 했는데... 구조가 상당히 복잡하네.’
난동을 부리긴 했지만, 사실 감옥 밖으로 나오기 위한 핑곗거리를 대충 만들었을 뿐이다. 물론 재료가 아까운 것도 사실이지만.
이 동굴은 무슨 의도로 만든 것인지, 구조가 엄청 복잡하다.
먼 거리를 나온 것도 아닌데 위로 아래로, 좌로 우로 몇 번이나 꺾은 데다가 벽도 미묘하게 곡선을 그리고 있어 방향감각을 알기 어려웠다.
‘무턱대고 감옥 밖으로 나와봤자 탈출하기는 어렵겠어....’
“......읏?!”
“메로메로~.”
잠시 생각에 빠진 사이에, 어느샌가 나란히 서는 위치로 다가온 도적 똘마니가, 거적때기 아래로 단비의 둔부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탄력있는 엉덩이를 매만지는 음란한 손길에, 단비는 무심코 오싹함을 느꼈다.
“치, 치워...! 죽여버린다...!”
“할 수 있으면 해보든지 메로메로. 네 입장을 모르나 본데.”
똘마니 녀석은 단비의 구속구 사슬을 세게 잡아당겨, 바닥에 넘어뜨렸다.
단비가 이를 갈며 일어서려 하자, 이번엔 다리를 걸어서 도로 넘어뜨렸다.
원망 가득한 시선을 받고도, 괴인은 아랑곳 않고 실실 웃을 뿐이다.
“개X끼...!”
“메로메로~ 자, 가자고, 주방. 이러다 하루 종일 걸리겠네.”
“으윽...!”
비틀거리며 일어서서,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간다.
단비는 똘마니의 성희롱과 자잘한 괴롭힘을 견디며, 가까스로 주방에 도달할 수 있었다.
* * *
“단비는 단비대로 탈출로를 찾아볼 생각인 것 같고~ 우리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겠네에~★”
“......어? 단비가?”
“뭐야, 그럼 진짜 그냥 요리 때문에 난동부린 줄 알았어~? 케이는 순진하구나아~.”
단애의 손가락이 내 뺨을 훑었다.
그 손길이 어째 음란하게 느껴져, 오소소 소름이 돋았지만.
잠시 상황을 정리해보자.
우리들은 도적들의 감옥에 갇혔고, 감옥의 철창은 특수한 금속으로 되어 있어서 현재의 우리들로서는 부술 수도 열 수도 없다. 숨겨진 통로나 개구멍 같은 것도 없었다.
도적단의 똘마니 같은 것들은 수시로 와서 우리를 오나홀이나 섹스돌처럼 사용하고 떠나가고, 밤이 되면 두목인 투투가 우리 중 한 명 씩 불러서 밤새 즐긴다.
아무래도 지금은 갓 잡은 만큼 한껏 즐기고 있지만, 투투는 질릴 때쯤 되면 우리들을 도시에 상품으로서 팔 생각인 것 같다.
적어도 팔리기 전에 도망치는 편이 좋을 것 같은데....
“솔직히 말하자면, 감옥은 어렵지 않게 탈출할 수 있을 것 같아.”
“나도 생각한 건 있는데.”
우리는 서로 눈을 마주보고 끄덕였다.
이곳에 붙잡힌 지 며칠, 이미 가능한 여러 가지 수단은 전부 생각해본지 오래다.
조금 더 이야기해보니, 아무래도 단애와 나는 아이디어는 다르지만 어쨌든 감옥에서 빠져나가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감옥에서 나가는 것과, 이 아지트에서 탈출하는 건 별개다.
무엇보다 탈출하고 나서도 문제다.
“우리가 원래 있던 곳이나, 이 아지트나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으니까~.”
“지도 같은 게 없을까?”
“【메크라크】에서 종이로 된 지도를 가지고 다니는 녀석이 있겠어~? 아마 전부 디지털화 되어있을 텐데, 본인이 아니면 쓸 수가 없겠지~.”
“훔치거나 할 수는 없단 거네....”
지구였다면 스마트폰 단말기를 훔쳐내 지도를 보든 네비게이션 기능을 쓰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메크라크】의 주민들은 특별한 단말기도 필요없이, 언제어디서나 홀로그램을 띄우고 원하는 데이터를 열람하거나 입력할 수 있다.
과연 초 하이테크.
원리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누구나 꿈꾸는 미래의 그림이 여기에 있었다.
“그렇다면 차라리 팔려버리는 것도 좋겠어....”
이건 내 의견이다.
며칠 동안 여기 붙잡혀있으면서 생각한 내용이기도 하다.
투투를 비롯한 도적들은 【메크라크】에 건너와서 처음 만난 괴인들이다.
본토의 주민들은 더 난폭하지 않을까, 더 강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었지만 실제로 뜯어보니 지구에서 본 놈들이랑 거기서 거기였다.
못 이길 정도도 아니고, 성격도 무르다.
그렇다면 상품으로 팔려 노예가 되더라도 틈은 노릴 수 있을 것 같고, 도적단을 상대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해서 제안한 건데....
“그건 절~~~~대 안 돼!!”
단애가 심각한 표정으로 극구 반대했다.
“알겠어, 케이? 우리가 상품으로 팔린다면 분명 귀족들한테 팔리게 될 거라고!”
“아니, 뭐... 그래서?”
“‘그래서’가 아니야... 귀족들은 엄청 위험한데, 그 이유 중에 하나가 ‘요게’ 달라서 그래.”
단애는 그렇게 말하며 자기 머리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려보였다.
“머리가 이상해? 돌았다는 뜻이야?”
“아니, 정상이야.”
“......그게 왜 문제야?”
“정상이니까 문제지. 도적이란 놈들이 저렇게 얼빠진게 정상이라고 생각해? 네가 지금까지 본 괴인들이 악당에 어울리는 놈들이야?”
포로로 붙잡은 주제에 침상도 음식도 최고급으로 준비해주는 도적.
지구에 나타나 여자들에게 음란한 짓을 하면서 마력을 뽑아내긴 하지만, 그럼에도 어딘가 얼빠진 구석이 있는 괴인들.
다들 변태기는 하지만, 정말로 잔인한 짓을 하는 건 본적이 없다.
악당이라고 할만한 개쓰레기들이지만, 그래도 약간 부족한 감이 있다.
“【메크라크】의 괴인들은 【뱅크】라는 곳에 영혼이라고 해야할까, 정신을 데이터화시켜서 저장해. 이건 알고 있어?”
“어... 쿠키한테 대충 들은 것 같아. 그래서 죽여도 죽여도 다시 살릴 수 있다고.”
영혼은 모아놓고, 몸만 바꾸는 느낌이랄까.
“나도 잘 아는 건 아니지만”이라며 단애가 말을 이었다.
“이 괴인들의 정신을 데이터화시키면서, 아마 뭔 수작을 부려놓은 모양이야. 라던가 같은 거.”
“?!”
“괴인들이 얼빠진 것도 그런 거겠지. 특정 행동은 못하게 막아놓고, 정신적 성향도 비틀어 놓은 거야. ...그런 얘길, 루판에게서 들은 적 있어.”
루판. 자신을 괴도라 지칭하던 그 재수 없는 가면 쓴 괴인.
그놈이 한 말이라니 신뢰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런가.
지금까지 수많은 괴인을 본 입장으로서 납득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그랬구나, 하고.
그런데 그게 지금 이야기랑 무슨 상관이지?
“상관 있지.”
단애가 단호하게 말했다.
“귀족 놈들은 데이터화되지 않은 놈들이거든. 그래서 그런지, 하는 짓에 선이 없어. 그리고 무엇보다 강해. ...큰일이지?”
“아....”
그렇구나. 그 놈들 손에 떨어지면 생명의 위기도 각오해야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반대로, 그 놈들만 아니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생명이 위험할 일은 없다는 뜻도 된다.
일단 나는 이야기를 정리하기로 했다.
“그럼 팔릴 때까지 얌전히 기다리는 건 안 된다는 뜻이네.”
“그렇다고 당장 감옥을 탈출하는 것도 현실적이지 못해~ 탈출했다가 사막에서 말라비틀어져 죽어버리면 어떡해~.”
“상품으로 팔려면 우리도 도시로 끌고 가겠지?”
“밖에 나갈 기회도 생긴단 거네?”
나와 단애의 시선이 마주쳤다.
결론은 간단하게 나왔다.
“――상품으로서 도시로 운반되길 기다렸다가.”
“――운송 도중에 도망친다.”
의견이 하나로 정리됐다. 우리는 짝! 서로 손뼉을 마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