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9화 〉#2-8 돼지의 역습입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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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크라크】의 술은 【지구】의 주민들에겐 특별히 효과가 강한 모양이었다.
혹은 마법소녀에게, 일지도 모르고.
그렇지 않다면 아무리 취했다곤 해도 저 정도로 광기에 물드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을 것 같았다.
어쨌든.
저택 안을 이리저리 휘저으며 눈에 띄는 비싸 보이는 장식물들에 있는 대로 낙서를 해대고 돌아다니던 단애는 저택 내의 침입자 방지용 트랩에 걸려 붙잡혔다.
케이는 식당에서 쿠알의 술을 먹고 잠들었으나, 쿠알이 떠나고 얼마 되지 않아 부스스스 일어나 주방의 술창고까지 침범.
그 후 온갖 시큐리티와 로봇 경비병들을 제 상처가 나는 걸 아랑곳 않고 뚫고 나아간 결과, 안에 있던 술마저 진탕 마시고 뻗어버렸다.
피투성이가 된 채 손도끼를 휘두르며 미친 살인귀처럼 날뛰던 단비는, 정신을 차린 쿠알이 가동한 저택의 시큐리티 시스템과의 장절한 사투 끝에 묵직한 구속구로 움직임을 봉해진 채 끌려갔다.
꼬박 하루가 걸린 대난투에 쿠알의 저택은 난장판으로 변해버렸지만, 다행스럽게도 여자들을 석화시킨 석상들은 흠집 하나 나지 않았다.
술에 취하고서도 그건 손을 대선 안 된다고 스스로 제어한 걸지도 모른다.
“.......”
[.......]
그리고 현재.
최고급 안드로이드인 루돌프를 위한 전용 정비룸에서, 쿠알은 침울한 표정으로 눈앞의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다.
모니터에 떠오른 것은 루돌프의 얼굴.
하드웨어는 단비의 손에 처절하게 산산조각이 나버렸지만, 저택의 시스템과 링크되어 있던 루돌프는 완전히 망가지기 전에 자신의 의식 데이터를 시스템 안으로 피난시켰다.
어차피 그 기계 소체는 일시적인 것.
【뱅크】에 새로운 기술이 갱신될 때마다 소체를 거의 분해했다 다시 만드는 작업을 빈번히 하는 루돌프에게 있어서, 몸이 망가진 정도는 별 문제 아니었다.
다만 단비의 손에 의해 지나치게 난잡하게 부서졌으므로, 부품을 새로 모아 고치려면 시간은 다소 걸리겠지만.
“......루돌프....”
[죄송합니다, 주인님. 제 불찰입니다.]
“아냐, 아니다. 아니야... 마법소녀란 게 그런 악귀들이었을 줄이야....”
쿠알은 자신의 얼굴을 감싼 붕대를 매만지고 부르르 떨었다.
붕대 아래에선 이며 특수한 툴을 이용해 치유하는 중이다. 앞으로 한 시간이면 흉터 하나 없이 말끔하게 낫겠지.
다만.
상처는 낫는다지만, 당시의 공포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 무자비한 폭거를. 그 무시무시한 폭력을.
“뭔데! 여자들은 채찍질 좀 해주면 다 고분고분해주는 거 아니었어?! 암컷이란 그런 거라고 배웠다고!”
[죄송합니다, 주인님. 마법소녀는 평범한 암컷이 아닌 모양입니다.]
“루돌프, 이 무능한 안드로이드야!!”
쿠알이 분에 겨워 소리를 빼액 질렀다.
“너는 초고성능의 안드로이드잖아! 그런데 마법도 봉인 된 마법소녀들한테 이런꼴이 나고...! 관리도 제대로 못하고! 뭐라도 좀 해보라고! 이 무능한 고철덩어리야!!!”
화면 속의 루돌프는 표정 하나 바뀌지 않았다.
그도 그럴게, 안드로이기 때문에 부당한 대우를 당하든 무슨 일을 당하든 아무 것도 느끼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이 없는 안드로이드라 해도.
프로그램 된 충성심은 가지고 있다.
[주인님,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전부 석화시켜버리시겠습니까?]
“...그럴 수는 없어! 어떻게 얻은 마법소녀들인데!”
쿠알이 눈을 부릅떴다.
마법소녀들에게 된통 당한 그지만, 그렇다고 해서 귀족으로서의 긍지가 꺾인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루돌프가 말을 이었다.
[주인님의 손으로 다시 한 번 그 마법소녀들을 조교하는 건 어떻습니까?]
“저 년들은 이성이 없는 짐승들이 분명해! 내 채찍질에도 전혀 반응이 없잖아!”
[쥐가 뇌를 파먹은 듯한 이성 없는 짐승이든, 어떤 악귀 나찰이라고 하든, 지금 갇혀 있는 저들은 마법소녀... 암컷들입니다. 조교할 방법은 있습니다.]
“......그래?”
[세상에는 웬만한 조교는 통하지 않는 강인한 여성들이 있는 법이지요. 운이 나쁘게도 저 여자들이 그런 것일 뿐입니다.]
“......그런가?”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런 여자들이라도 조교할 방법은 있습니다. 저를 믿어주십시오.]
“그럼 루돌프의 새로운 몸이 다시 만들어질 때까지....”
[안 됩니다.]
루돌프가 즉시 부정했다.
[시간과 여유를 주면 줄수록, 이상한 생각을 하게 마련이죠.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그 무지한 마법소녀들은 위대하신 쿠알님에게도 조금쯤 틈이 있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뭐, 뭐?!”
조금쯤이 아니라 아주 그냥 대놓고 얕잡아 보고 있긴 하지만.
설치된 고급 처세술 프로그램대로 주인님이 언짢아하지 않을 언어를 골라 사용하는 루돌프.
“그렇지만... 이런 일도 있었는데, 내가 할 수 있을까....”
[물론입니다. 주인님의 대단하신 점은 극히 일부만 꼽아보더라도 다 셀 수 없을 정도인데요. 그 외에도――]
이어서 【뱅크】의 데이터로 학습한 언변을 이용해 루돌프는 쿠알의 선택을 교묘하게 유도했다.
아주 그냥 프라이팬에 올려놓고 이리저리 뒤집고 비틀며 쿠알의 소심한 마음을 구워 삶는다.
[지극히 위대하신 주인님에게 미천한 제가 살짝 조언을 해드리 게 될 경우, 그리고 주인님께서 제 조언에 충실히 따라 마법소녀들을 각기 조교해주실 경우 그 시뮬레이션 결과가, 이렇게――]
루돌프의 언변은 이제는 거의 최면과도 같이 쿠알의 의식을 좀먹어가고 있었다.
아니, 최면과도 같이, 가 아니다.
고성능 스피커 및 주변 기기들을 마개조 해 내뿜는 정신에 영향을 미치는 특수한 음파, 그리고 서브리미널 효과를 응용해 쿠알이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끊임없이 눈 앞을 흘러나가는 세뇌 영상.
실제로 최면이었다.
쿠알의 정신은, 지금 막 루돌프에 의해 인격개조 수준으로 변화를 맞이하고 있었다.
“내가... 할 수 있어...?”
[예, 그렇습니다. 주인님은 아주 훌륭하고, 유능하신 분이시니까요.]
“하, 할 수 있어... 그래... 나는 훌륭한 인간이니까... 유능하니까... 후호... 후호호호호호...!”
[아아, 이 우주의 왕이 되기에 합당하신 분이시여. 부디 우주의 먼지조차 되지 못하는 마법소녀들을 철저히 굴복시켜주시기를.]
“그래... 그래! 내가 왕이다! 내가! 위대하신 이 몸이 저딴 마법소녀들을 굴복시키지 못할 리가 없지!”
쿠알은 얼굴을 감싼 붕대를 꽉 붙들고, 좍좍 찢어내며 벗겨버렸다.
붕대에 설치되어 있던 치료용 같은 것들도 전부 떨어져나갔지만, 상관 하지 않았다.
피가 약간 흘러나오긴 하지만, 이미 뇌가 반쯤 마비되어 버린 쿠알은 통증을 느끼지 않고 있었다.
얼굴에 상처가 좀 남으면 어떠리.
이 몸은 왕인데.
쿠알의 눈은 기이하고 음험하며, 위험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럼 주인님. 필요한 자료들을 재생할 테니 봐주시기 바랍니다. 마법소녀들을 굴복하는데 필요한 기술들을 임의로 산출, 【뱅크】의 데이터에 접속해 학습한 후 시뮬레이션 해봤습니다.]
“좋아... 좋아! 가르쳐 줘! 마법소녀들을 굴복시킬 방법을!”
[그 기세입니다. 주인님은 분명 할 수 있습니다.]
조금 전까지 불안에 떨던 무능한 돼지는 없다.
우수한 참모를 등에 업은, 대담하고 위험한 악당이 이곳에 있었다.
* * *
“흐흥~♪ 뭐야, 귀족이라더니 완전 허접한 X밥이잖아~♪”
감옥 같은 독방에 갇힌 단애는, 침대 위에 뒹굴거리며 콧노래를 불렀다.
그녀의 팔다리를 구속하고 있던 구속구는 전부 풀려있었다. 아무에게도 알려주지 않았지만, 마법이 있는 그녀는 언제든 구속구를 풀어버릴 수 있었다.
술에 취한 김에 깜빡 풀어버렸으니, 이제 와서 새삼스레 차고 있는 것도 좀 그랬기에 그냥 전부 풀어버렸다.
마침 케이와 단비도 독방에 따로 감금되었으니, 볼 사람은 없다.
‘그 귀족놈이 본다고 해도 뭐, 딱히 신경도 안 쓰이고~.’
단애의 의식은 완전히 느슨해져있었다.
그도 그럴게 술에 취해있었을 적의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그녀에게, 쿠알의 추태는 지나치게 인상 깊었던 것이다.
바보에 멍청이.
얼뜨기에 팔푼이.
그게 그녀 안에 있는 쿠알의 평가였다.
이 독방만해도 그렇다.
아무래도 그 얼빠진 돼지 귀족은 침대가 없는 방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건지, 노예이자 별에 별 난동을 다 부린 그녀들마저 침대가 있는 방에 가둬주었다.
그래 놓고 ‘노예에 어울리는 감옥이다!’라면서 씩씩거리며 사라져버렸다.
솔직히 말하자면 가축 우리 같은 방에 갇히는 것도 생각을 했건만.
‘아~ 공기 좋다~!’
이 방은 공기청정기에 향긋한 향이 나는 아로마 캔들에, 쇠격자가 있긴하지만 창문까지 있고, 그 외에도 온갖 기능이 완비된 초고성능 깨끗한 화장실까지 있었다.
심지어 심심하지 말라고 만화책까지!
이건 뭐.
웬만한 서민의 방보다 훨씬 좋은 이게 ‘노예에게 어울리는 방’이라니, 쿠알이란 돼지 귀족의 상상력 부족에 무릎을 탁! 치고 만다.
고맙다 돼지야!
‘이 정도면 그냥 이대로 사육해달라고 부탁해도 되지 않을까~? 아니, 하지만 피넛도 구출하러 가야되고... 음~ 그래, 부자에다 멍청이는 놓치면 안 되지. 내 허니트랩으로 꽉! 붙잡아서 꼭두각시 인형처럼 뒤에서 조종하는 거야... 으흐흐흐흐...!’
쿠알을 뒤에서 조종하는 여왕님 단애!
우핫!
재밌을 거 같아!
침대 위를 뒹굴거리며 【메크라크】의 만화책을 흥미진진한 눈으로 읽어가던 단애는, 문득 인기척을 느껴 고개를 들었다.
튼튼해보이는 기계식 강철문에는 작은 유리창이 달려있어서, 밖의 풍경이 살짝 보였다.
그리고 그 유리창 너머에.
번뜩이는 두 눈이 그녀를 노려보고 있었다.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귀귀귀귀귀귀귀귀신?!
아, 아니야, 저 눈은....
덜컹!
문이 열리고, 문 앞에 서 있던 인물이 뒤뚱거리며 안으로 들어왔다.
“살판 났나 보구나, 마법소녀.”
“에, 에헤헤헤... 아니요오... 너무 가혹한 방이라서... 단애는 젓가락보다 무거운 건 든 적도 없고오... 이런 좁은 방은 있기만 해도 속이 막~~~ 답답해져서요오...”
“.......”
“아차, 주인님은 괜찮으세요오~? 단애가 술에 취해서 마~악 뭔가 몹쓸 짓을 했다구 들었는데에~ 에잇, 에잇, 나쁜 단애! 나쁜 단애! 단애가 나쁜 짓을 해서 죄송해여어어어어~~~!”
단애는 침대 위에서 자신의 머리를 콩콩콩 두드려보였다.
그러면서 쿠알의 시선을 의식해 다리의 위치를 슬쩍 옮겼다. 안 그래도 짧은 치맛단이 말려올라가며 싱그러운 허벅지와 각선미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아앙~ 주인님 화나셨으면 어뜩하지이~~! 단애는, 단애는 무서워서... 흑흑...!”
이엇 단애는 쿠알의 눈치를 슬쩍 살피고는, 눈가를 새하얀 손으로 가리며 우는 척을 했다.
‘후후, 이 정도면 저 돼지도 속수무책으로 포로가 될터!’
서큐버스로서의 특성은 잃었어도, 아직 남자를 후리는 기술은 건재하다!
자! 쿠알!
이 무능한 부자 녀석!
나에게 굴복하라!
‘......응? 왜 조용하지?’
단애는 눈가를 가린 손등 너머로 다시금 쿠알의 안색을 살폈다.
쿠알은 무뚝뚝하게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이렇게 귀엽게 애원하는 자신을!
무뚝뚝하게!
어째서?!
아니, 그보다 어쩐지 분노하는 듯한....
“오호라... 요망한 마법소녀 년이... 후호후호. 좋다, 이뻐해줬으면 하는 거지?”
그래도 역시 돼지는 돼지.
표정이 조금 이상한 건 마음에 걸리지만, 자신의 허니 트랩에 걸린 게 분명하다고 단애는 확신했다.
그리고는 입술에 손을 올리고 목을 살짝 꺾으며 한껏 애교를 담아 말했다.
“네에에... 쿠알님이 이뻐해주셨으면 좋겠어요오....”
“그래, 좋다. 이 위대하신 쿠알님께서 너를 특별히 예뻐해주지.”
쿠알이 투실투실한 배를 흔들며 천천히 다가왔다.
‘으응...? 뭐지...? 왠지 분위기가...?’
가까이 다가오는 쿠알을 지켜보자니, 단애는 어째 오한이 드는 게 느껴졌다.
기분탓이겠지...?